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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차 성지순례-남한산성 성지, 천진암 성지

20170316(목) 11차 성지순례를 위해 아침 식사 후 복장을 갖추고 08시 자전거 핸들을 잡는데 뒷바퀴에 바람이 없다.

어제 오후에 체인 청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이상이 없었는데 ... 

서둘러 예비 튜브로 교체하고 접이식 자전거로 7호선을 타고 군자역-천호역 환승 후-산성역에 09:40에 도착 일행과 합류하여 두 명이 남한산성길 업힐을 시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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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업힐이 꽤 길지만 오르는데 힘든 만큼 다운힐 보상도 충분해서 신나는 58.38km 순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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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로터리 직전에 남한산성 행궁을 한 컷 하고 ...

바로 이 로터리에 천주교도들을 수감했던 옥터와 처형터가 있다. 

동문 쪽에서 로터리에 도착하면 오른쪽에 있는 주차장이 옥터로 추정된다. 

정면에는 10년간 2만여 명의 천주교인을 학살한 것으로 전해지는 대원군의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일러 주는 듯하다. 

어느 사찰 승려들이 세워 준 것으로 전해지는 불망비와 마주한 곳이 바로 처형지였다고 교회사가들은 전한다. 

여기서 처형된 교우들이 시체가 되어 산비탈로 질질 끌려 내려가 동문 밖 개울로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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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에서 동쪽 방향으로 100m 정도 내려가면 우측에 순교자현양비와 그 뒤로 남한산성 성당 한옥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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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앞으로 내려가서 현양문 안쪽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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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양문을 들어가면서 성호경을 긋고 순교자들의 영면을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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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현양비가 아침 햇살에 좀 더 선명하게 한 눈에 들어오고, 비 기단에 있는 순교자 명단이 새겨진 것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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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무명 순교자가 자그만치 300여명이나 된다.

남한산성 처형터에서는 병자호란(1839년) 이후 기해박해(1839년)와 병인박해(1866년) 때에 

당시 광주(廣州) 일원, 양주(楊洲), 용인(龍仁), 이천(利川)에서 잡혀 온 교우들이 치명 순교한 곳이다.

 

남한산성이 위치한 자리는 신라 문무왕(661-681년)이 쌓은 주장성(일명 일장산성)의 옛터로 그 후 몇 차례 축조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남한산성은 조선 인조 2년(1624년) 때 크게 고쳐 지은 것으로 후금국의 위협과 이괄의 난을 계기로 2년간에 걸쳐 축성되었다고 한다.

 

동문을 지나 몇 걸음을 옮기면 오른쪽으로 도랑 건너편에 '천주교 순교 성지'라는 철제 푯말이 서 있다. 

여기에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은 서기 1791년 신해(辛亥), 1801년 신유(辛酉), 1839년 기해(己亥), 1866년 병인(丙寅) 네 차례에 걸쳐 한덕운, 김덕심, 

정은 등을 위시하여 70명 이상(실제 순교자 2-3백 명으로 추산) 순교한 곳임."

 

이곳을 몇 차례 트레킹 하면서 지나쳤지만 왜 그 때는 이런 푯말을 보지 못했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던 동문, 신앙 선조들은 오랏줄에 묶여서 살아서 동문을 들어왔지만 혹독한 고문 끝에 결국은 시체가 되어 성 밖으로 던져졌고,
살아서 동문을 들어온 이들은 죽어서는 물이 빠지는 구멍으로 성 밑에 파놓은 수구문을 통해 내팽개쳐졌다. 

그래서 수구문(水口門)은 시구문(屍口門)이 되었고, 이곳으로 흘러내리던 물도 핏물이 되었으며 동문 밖 계곡에는 시신이 쌓였다.

 

시구문은 동문을 바라보며 왼쪽 길 바로 밑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얼핏 보면 잘 알 수 없고 얼기설기 철조망으로 가려 놓은 밑으로 잘 들여다보면 어른 두어 명이 허리를 굽히고 다닐 만한 크기의 사각진 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옆길로 돌아 비탈길을 내려서 시구문 바깥쪽으로 내려서면 마치 당시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보이는 듯 선하고 그 험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내고야 말았던 선조들의 굳은 신앙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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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탬프는 현양비가 있는 서쪽 마당에 비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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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기존 협소한 성당을 대신할 한옥 형태의 2층 건물 새 성당 건립.

 

아름다운 한옥 성당을 뒤로 하고 다시 페달을 돌려 당시의 슬픈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터리에는 산행 나온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가득하고 처형터 주변에 즐비한 식당은 날마다 등산객들이 모여 식사를 할 것이다.

 

이제 도마삼거리를 향해 달려서 광주에서 합류하는 일행을 만나서 광동교를 건너 천진암을 향해 열심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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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교를 건너기 전에 허기를 메우기 위해 점심 식사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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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계속 되는 오르막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한국 천주교 신앙이 싹이 튼 곳 천진암에 도착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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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성역" 표지석 앞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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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옆에는 아직 성탄 구유가 그대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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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성역 표석 맞은편을 처다보니 광암성당이다. 광암은 이벽 성조의 호이니 바로 광암성조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평일 12시에 미사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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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 광암 이벽 성조를 기념하기 위해 광암 성당이 세워졌다.

조심스럽게 성당 내부로 들어가니 미사가 진행중이다. 시계를 보니 이미 미사가 끝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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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현관에 비치된 이벽 성조의 영정 상본을 한 장 챙기고 사진을 찍으면서 실제 인물과 얼마나 닮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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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터를 향해 오르는 14처 길 입구 좌측에 있는 사도 성베드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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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보이는 태극기와 그 가운데 보이는 대형 십자고상을 향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 명은 걸어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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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곳이 우리나라 천주교의 발상지라는 생각을 하면 할 수록 새삼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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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대성당 터 전경. 

전체적으로 십자형태의 평면을 하고 있고, 중앙에 야외 제대와 출입문 위치를 알려주는 대형 H빔 문틀이 성당의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이 깊은 산골짜기에 이렇게 드넓은 분지가 있다는 것이 더욱 신비롭다. 주춧돌들이 놓여진 것이 1984년도에 이곳에 왔을 때와는 달라졌다.

아쉽지만 우리가 죽기 전에는 대성당 건물은 보기가 어려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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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계획으로 이 분지에 세워질 대성당의 조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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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 내려오니 설계도들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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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출발은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하고 돌아온 1784년 봄으로 잡는다. 

하지만 그보다 5년이 앞선 1779년 겨울 바로 이곳 천진암에서는 이미 자랑스러운 교회사가 시작됐다.

당시 천진암 주어사에서는 당대의 석학 녹암(鹿菴) 권철신이 주재하는 강학회가 있었다.

권철신. 일신 형제와 정약전.약종.약용 형제, 이승훈 등 10여 명의 석학들은 광암(曠菴) 이벽의 참여와 함께 서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강학회가 끝날 무렵 이벽이 지은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와 정약종이 지은 "십계명가"(十誡命歌)는 이러한 강학회의 결실을 잘 드러내 준다. 

 

이벽의 권유로 이승훈이 북경에 가서 세례를 받고 귀국 후 가장 먼저 이벽은 그로부터 세례를 받고 마재의 정약종과 그 형제들, 양근의 권철신. 일신 형제들에게 전교한다. 또 그 해 가을에는 서울 명례방에 살던 통역관 김범우를 입교시키고 수도 한복판에 한국 천주교회의 터전을 마련했다.

 

한국 교회의 발상지로서 천진암은 교회사적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오랫동안 잊혀 왔다. 

지난 1960년에 와서야 이곳 지명들이 문헌에 근거해 밝혀졌고 마을 노인들의 증언과 답사를 통해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서 천진암의 가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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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달라진 것은 1999년에 성모경당 봉헌,

그리고 1992년 박물관 건립 인준 후 1995년 기공식, 천진암 박물관은 2011년 건물 공사를 마치고 축성식을 했다. 

지금도 내부 전시장과 수장고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2013년 6월 23일에는 성모경당과 대성당터 중간에 좌대 포함 22m 높이의 '세계평화의 성모상'을 건립했다.
세계평화의 성모상은 모든 국가와 민족의 신앙의 자유와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청동을 이용해 파티마 성모상 형태로 제작하였다. 

그런데 내 눈에는 성모님 얼굴이 다분히 동양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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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상 앞 땅 바닥 잔디 위에는 버려진 것 처럼 느껴지는 예수님고상 작품이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설치된 것이다. 무슨 뜻일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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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평일 14시~16시 2시간 동안만 문이 열리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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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1970년대에 사적지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1979년에는 경기도 포천에서 이벽의 유해가 이장되었다. 

이어 1981년에는 화성군 반월면에서 정약종(丁若鍾, 아우구스티노)의 유해가, 

인천 만수동에서 이승훈의 유해가, 

감마을 뒷편의 효자봉 자락에서 권철신, 권일신의 유해가 각각 천진암으로 이장 되었으며, 

1981년 12월에는 경기도 광주 배알미리(현 하남시)에서 정하상(丁夏祥, 바오로) 성인의 유해가 간신히 수습되어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바로 이곳에 성인 5위의 묘역이 조성된 것이다.

 

슬프구나 우리 나라 사람들, 

비유하니 주머니 속에 사는 것과 같네. 

성현(聖賢)은 만리 밖에 있으니, 

누가 이 몽매함을 열어 줄 것인가? 

머리 들어 세상을 바라보니, 

뜻을 깨달은 이들이 드므네. 

모방하기에만 급급하니, 

오묘한 것을 가려낼 겨를이 없구나.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시문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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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6월에는 천진암 일대 12만 평의 땅을 매입, 그 초입에 가르멜 수녀원이 문을 열었고 노기남 대주교의 이름으로 그 해 6월 24일 제막된 한국 천주교 창립 200주년 기념비가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1982년 한국 천주교회 창립사연구원이 설립되었고, 

한민족 100년 계획 천진암 대성당 공사가 시작되어 2000년까지 토목공사를 마치고 

2020년까지 기초공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는 대성당 터에 야외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돌제대가 마련되어 있다. 

2040년까지 골조공사를, 

2070년까지 조적공사를, 

2079년까지 마감공사를 통해 3만석 규모의 대성당이 위용을 드러낼 예정이다. 

 

성지 입구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수원교구에서 위탁 운영하는 경기도 청소년야영장, 실내체육관 옆으로 정하상과 유진길 성인묘역과 창립 선조 가족묘역이 자리하고 있다. 천진암을 순례할 때 꼭 들러야 할 곳인데 미처 살피지 못하고 돌아서며 아쉬웠다.

정씨 가문에서 최초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정약종의 아들로 양근 지방 마재에서 태어난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1795-1839년)는 양반 신분을 감추고 어떤 역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살다가 북경에 가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는 11회나 왕래하며 뜻을 같이 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劉進吉, 1791-1839년)와 함께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고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 등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되고 동시에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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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있는 관리실을 들러 방명록을 작성하고 스탬프를 찍고 

순례를 마무리 하고 천진암을 나오는 정문 우쪽에 세워진 3층짜리 사유지 건물과
성인 5위 묘역 뒤쪽 사유지에서 대형 스피커를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대중가요, 불경 등을 천진암 성지 전역에 울려퍼지게 하는 얄팍한 이기심을 오늘 나에게는 없는가를 뒤돌아 반성해 보면서... 얼마나 돈을 받아야 저런 망측한 행동을 중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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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배알미대교를 지나 팔당역으로 달려 순례길 라이딩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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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니 15시25분이다. 경의중앙선 마지막 자전거 칸에 오르니 자전거가 즐비하게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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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접어서 출입구 옆에 세우고 서서 상봉역, 중랑역에 이르니 모두 하차한다. 

회기역에서 환승하여 집까지 오는 전철에서 2시간여 동안 앉지 못하고 서서 왔지만 마음이 기쁘니 몸도 피곤을 모르는 성지순례 길이었다. 

끝으로 언제나 순례길을 동행하는 정병권(그레고리오)교수, 초은 형님께도 감사 드리고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첨부 : 성지순례11차 -GPX파일 (남한산성성지, 천진암 성지)

※ 경로 지도 보기 : https://connect.garmin.com/modern/activity/1623177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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