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차 전주 성지 (숲정이, 서천교, 풍남문, 전동성당, 치명자산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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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차 전주 성지 (숲정이, 서천교, 풍남문, 전동성당, 치명자산 성지)

관리자 0 10194 0

20170403 14:35 여천역에서 영취산 진달래 구경을 마무리하고 열차로 전주역으로 가서 전주성지들을 들러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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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전주 성지에 대하여 피력하기 전에 영취산에 대하여 몇 마디 소개를 ~~a1c5e8008a8e872612c8126df99bf965_1491460899_834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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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취산은 진달래 군락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여수에 위치한 산이다. 

네이버 지도에서도 영취산 둘레길은 잘 보이지 않지만 구글 오픈스트릿맵으로 확대하여 살펴보면 77번국도 상암교에서 상암로를 따라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이정표가 나오고 여기에서 다시 동서로 진례산 임도가 나타나는데 우리는 우측(동쪽) 오르막을 따라 올라가 도솔암 입구 계단 아래 주차장에 이르렀는데 이곳이 봉우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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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멀리 영취산 능선의 진달래가 장관이다. 봉우재 서남쪽 능선이 진달래 군락지가 정상에서 능선 아래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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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대교/GS칼텍스 정유공장 뒤쪽 중산간에도 진례산 임도가 새로 생겨서 파쇄석이 깔려 있다.  

이 산을 한 바뀌 돌아서 서쪽 임도길을 타고 호명산 임도를 타고, 봉계제1저수지 쪽으로 다운해서 여천역에서 마무리 하는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임도코스이다!

  

 

전주시내의 성지는 비교적 짧은 거리에 분포되어 있어서 반나절이면 자전거로 순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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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역 앞 광장에서 백제대로를 따라 백제대교에 이르러 전주천의 자전거도로를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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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교에서 전주동천로로 올라와서 벚꽃로-벚꽃1길로 들어가 진북길에 있는 숲정이 순교터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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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숲머리’로도 불린 전주 숲정이는 조선 시대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 1802년 1월 31일 호남의 사도 유항검의 처 신희, 제수 이육희, 자부 이순이, 조카 유중성 등 유항검의 가족이 처음 참수되면서부터 순교자의 피가 마르지 않아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많은 신앙인들이 순교하였다. 

그중 신유박해 순교자 이순이와 유중성, 기해박해 순교자 김대권, 이태권, 이일언, 정태봉, 신태보가 2014년에 복자품에 올랐고, 병인박해 순교자 정문호, 손선지, 한재권, 조화서, 이명서, 정원지는 1984년 모두 성인품에 올랐다.


조윤호 성인의 순교를 기념해 2006년 서천교 인근 전주천변에 세운 모자이크 벽화.

 

성 조윤호 요셉(趙~, 1848-1866년)이 1866년 12월 23일 치명한 서천교에 이르렀다.

1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조윤호는 충청도 신창에서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 생활을 어려서부터 익혔다.
1864년 부친을 따라 전주 근처의 교우촌인 성지동으로 이사한 후 이 루치아와 결혼한 그는 1866년 12월 5일 부친 조화서 베드로(趙~, 1815-1866년), 정원지 베드로(鄭~, 1846-1866년), 이명서 베드로(李~,  1821-1866년) 등과 함께 성지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전주 감영에서 부친과 여러 차례에 걸친 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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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북초등학교 앞을 지나 서 어은교쪽으로 나가서 갯천의 자전거도로를 타고 서천교를 지나 주차장을 올라가서 그 앞이 너무 복잡해서 뒤로 돌아가 풍남문2길을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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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그의 동료들이 복음 전파에 온 힘을 쏟고 있던 1790년경, 조선의 천주교인들에게는 처음으로 큰 시련이 닥쳐왔다. 
천주교의 전례와 유교 의식간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 제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789년에 이어 두 번째로 1790년 9월 중국 북경에 파견된 윤유일 바오로는 선교사 파견에 대한 북경 구베아 주교의 약속과 함께 조상 제사 금지라는 회신을 갖고 돌아왔다. 이로부터 소위 '진산 사건'으로 알려진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사가 시작됐다.
 
윤지충은 25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이듬해 서울에 갔다가 명례방 김범우 토마스의 집에서 서학을 접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정약용 형제들의 지도로 열렬한 신자가 되고 다시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에게 전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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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산사건이란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 살던 진사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했다. 
그는 외종사촌인 권상연과 상의한 후,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 의식인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그해 12월 8일(음력 11월 13일) 윤지충과 권상연은 전주 옥에서 나와 남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았다. 이로써 윤지충과 권상연은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되었다.
 
윤지충이 전라 관찰사에게 적어서 남겼다는 '공술서(供述書)'는 한국 교회사에서 천주교에 대한 최초의 공식 변론으로 기록 되고 있다. 
견고한 신앙을 조목조목 정연하고 조리 깊게 적은 이 변론은 훗날 신도들의 영적 독서로 읽혀졌고, 정약종 아우구스티노의 아들로 기해박해 때 순교한 정하상 바오로 성인이 쓴 "상재상서(上宰相書)"의 뼈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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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신유년) 천주교 박해령이 내리자 3월 호남에 검거 선풍이 일어 많은 신자들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 

그해 10월 24일(음력 9월 17일) 전주 남문 밖에서 호남의 사도 유항검은 대역 부도죄, 유관검 · 윤지헌 프란치스코는 역적 모의죄로 능지처참되었고, 김유산 토마스 · 이우집은 불고지죄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후 90년 만에 그 자리에는 전동 성당이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순교한 이들 중에서 윤지충과 권상연, 유항검, 윤지충의 동생 윤지헌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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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중인 풍남문을 돌아서 건너편에 있는 전동성당 정문으로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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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한복을 입고 사진촬영을 하는라 북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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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중앙 성당이 세워지기 전까지 전주교구 주교좌 성당이었던 전동 성당은 초대 주임은 보두네(Francois Xavier Baudounet, 1859-1915년) 신부가 1908년에 착공해 1914년에 외형공사를 마친 성당이다. 

일제가 신작로를 내기 위해 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자 그 흙과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고 벽돌은 당시 공사를 담당한 중국인 기술자들이 직접 구워 낸 것을 사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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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 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尹持忠, 1759-1791년)와 권상연 야고보(權尙然, 1751-1791년)가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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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정발렌티노가 성당을 배경으로 한 기념 샷, 

사적 제288호로 지정돼 있는 전동 성당은 또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혼합된 건물로 한국의 교회 건축물 중 곡선미가 가장 아름답고 웅장하며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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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1981년 9월 25일 사적 제288호로 지정된 전동 성당은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 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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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현관 우측에 게시되어 있는 전주교구 순교복자 2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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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건축물 전문가인 김정신 교수는 “전동성당은 전체적으로 종탑부 돔이나 석조 기둥 등 비잔틴 요소를 혼합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외관의 세부 기법, 따뜻한 느낌을 주는 내부 공간 등 여타 유명 성당을 능가하는 건물”이라고 평했다. 
 
한국 천주교회 순교 1번지에 우뚝 서 100여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전주 전동 성당도 세월의 흔적만큼 모습을 달리해 왔고, 성당을 찾았던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탄식과 슬픔을 간직해 오고 있다.
 
프랑스인 마리아 앙리에트가 봉헌한 전동 성당 종은 1915년 8월 24일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갖고 종탑에 설치됐다. 

경향잡지(제9권)는 당시 종 축복식 광경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예수성심상 뒤로 보이는 중앙 종탑과 좌우의 돔은 전동 성당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대표적 상징물이다.


“주교께서는 80여명 교우에게 견진성사를 주시고 이어 성체강복을 하신 후에 종을 달아 삼종을 치니 소리 기묘하고 웅장하야 사람의 마음을 크게 움직이는지라 여러 교우들이 흔히하고 용약하야 일제히 삼종을 외우고 이제부터는 이곳에 귀막힘과 같이 지내던 외교인들도 성교회 소리에 많이 감화하야 천주의 영광이 하늘에서 이룸같이 땅에서도 또한 이루어지기를 바라더라.”
 
종이 사라질 위기도 있었다. 1942년 일제가 전동성당 종을 공출하려 하자, 당시 보좌였던 오기선 신부가 “만일 적이 공습했을 때 전기나 통신이 끊어지게 되면 성당 종을 쳐서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또 매일 울리던 종이 울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불안해 할 것”이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했다. 나바위와 수류 성당을 비롯해 전주 시내 개신교회의 종은 모두 공출당했으나 오 신부의 임기응변으로 전동 성당 종만 공출을 면할 수 있었다. 지금은 매주일 오전 10시 30분 교중미사 때만 전동 성당의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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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성당 정문 수위실에서 순례자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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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 앞 주차장 건너에 있는 사제관을 뒤로 하고 우린 팔달로 - 싸전다리를 건너 전주천서로에서 전주천의 자전거도로로 다시 진입하여 국립무형유산원 앞 건널목을 건너 한벽교 삼거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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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인도를 타고 춘향로에서 승암마을 옆 산위에 있는 치명자산 순교자묘를 바라보고 사진을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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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자산(중바위산) 정상은 1801년에 순교한 유항검(柳恒儉)의 가족들을 합장한 묘소가 있는 곳으로 동정부부 유 요한과 이 루갈다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루갈다 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주 시내를 굽어보는 중바위는 전주 8경 중 손꼽히는 기린봉 능선에 위치해 호남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보고 있다.
 
1984년 9월 2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된 치명자산 유항검 일가 합장묘에는 호남의 첫 사도요 순교자였던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그의 부인 신희(申喜), 둘째 아들 유문석(柳文碩) 요한과 조카 유중성(柳重誠) 마태오, 제수 이육희(李六喜) 그리고 동정부부로 유명한 유중철(柳重哲) 요한과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등 7명의 순교자 유해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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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치명한 후 김제군 재남리(현 전주시 덕진구 남정동)에 가매장됐다가 전동 본당 초대 신부인 보두네(Baudounet) 신부를 비롯한 신자들이 1914년 4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이어 1949년 전동 성당 신자들은 치명자산에 십자가 기념비를 세웠다. 

1993년 11월 29일 이 묘소를 개장한 후 유해 확인 작업을 벌인 결과, 이 가족 묘소에는 7개의 옹기에 각각 유해가 담겨져 있었으며, 백사발에 인적 사항이 적혀 있었고, 숯을 담은 채 옹기를 막아 놓아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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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유씨 소재공파(素齋公派) 8대손인 유항검은 1784년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집에서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는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고향인 전주 초남리(현재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에 내려와 호남 지역에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유항검은 가성직 제도가 교리에 어긋나며 독성죄가 됨을 깨닫고 이를 시정키 위해 북경 주교에게 문의 편지를 내게 했으며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 데에도 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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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신유박해가 터지자 전라도 지방에서 제일 먼저 체포돼 서울로 압송당한 유항검은 대역부도(大逆不道) 죄로 능지처참형을 받고 전주 감영으로 다시 이송, 1801년 10월 24일(음력 9월 17일) 남문 밖에서 45세의 나이로 참수되었다. 
이복동생 유관검에 이어 11월 14일(음력 10월 9일) 두 아들 유중철과 유문석 그리고 다음해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부인 신희와 며느리 이순이, 조카 유중성과 제수 이육희가 순교했다.
 

이렇게 해서 유항검 일가는 지상의 모든 삶을 영생의 세계로 옮겼고 이들의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의 확신은 일가의 단종을 가져왔다. 
조정은 이들의 흔적을 아예 없앨 요량으로 대역죄인의 집을 헐고 집터를 깊게 파 연못을 만들어 버리는 ‘파가저택’(破家瀦宅)의 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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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곳 사적지에서는 크고 작은 기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그것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발된 류항검, 류중철, 이순이 등의 시복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에게도 커다란 감동을 주게 될 것이다. 석양이 질 때 드러나는 이곳 언덕의 기념 십자가 옆에 있는 바위는 순교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과 비슷하다. 이처럼 치명자산은 더 많은 양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기 위해 오늘도 전주 시가지를 내려다보고 그곳에 서 있다. 


치명자산성지의 묘소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석양을 바라보면서 이목대/오목대를 서둘러 둘러보고서 아중리로 이동하여 숙소를 정하고 전주시내 성지 16차 순례를 마무리 한 바쁜 하루였다.


이튼날 오전에 덕진공원-경기전- 한옥마을을 둘러보고서 점심 후 KTX로 상경하는 곡성-구례-하동-백운산-광양-순천-여수-전주로 연계한 3박4일간의 짧고도 긴 첫번째 지방 순례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하느님께 감사 드리고, 동행한 동료들과 끝까지 전주성지를 함께 순례한 정발레티노 친구에게 사의를 표한다.


첨부 : 성지순례16차 -전주성지 GPX파일

※ 경로 지도 보기 : https://www.komoot.com/tour/282992449?ref=w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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