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차 순례-강릉 금강리 공소, 임당동 성당, 강릉부 관아, 양양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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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차 순례-강릉 금강리 공소, 임당동 성당, 강릉부 관아, 양양성당

20170520(토) 수락산역에서 7호선 첫차를 타고 강릉행 버스에 올라 24차 순례길에 나선다.

오늘 찾아가는 순례코스는 강릉 금광리 공소 - 강릉 임당동 성당 - 강릉부 관아-양양 성당 등 4곳인데 춘천교구 관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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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금광리 공소는 영동 지역에 신앙의 씨앗이 싹튼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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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고속버스터미널에서 9km를 달려 금강리공소에 이르러 정문을 열고 들어가니 공소 현관 위에 1887년 창립이라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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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 공소 연혁비

 

금광리 공소는 1887년에 개설되어 영동 지역의 천주교 모태로서 그 동안 국내의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도 잡초처럼 신앙의 씨앗이 싹튼 곳이다.
강원도 영동 지역에 천주교가 적극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한 계기는 고종 3년(1866년) 대원군에 의해서 일어난 병인박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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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뜰에 있는 성모상


강릉 지방에 천주교 공소가 만들어 지는 시기는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에 "구한말 19세기 말경에 구정면 금광리와 내곡동 등지에 천주교인들이 이주하여 옹기 굽는 일이나 농사를 지으면서 은밀하게 전교를 하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존하고 있는 금광리 공소 현판에 '1887년 창립'이라고 적혀 있는 것과 부합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교우들이 강릉에 이주한 것은 이보다 훨씬 이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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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 공소의 회장으로 오랫동안 봉사하고 있는 김중철(필립보) 씨의 증언에 의하면 그의 증조부, 증조모가 교우들과 함께 경주에서 금광리로 박해를 피해 왔다고 하며, 이영녀 씨도 그의 시아버지인 조중서(趙仲署) 씨가 소년시절에 경기도 여주에서 금광리로 피난해 왔다고 한다. 

또한 현북면 명지리 공소의 김정옥 씨도 그의 증조부인 김 요한이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금광리에 정착했다고 한다. (노암동 본당 13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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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를 나와 농로길을 따라 다시 강릉시내로 돌아와 임당동 성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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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리 본당으로 설립되어 영동지방 신앙 중심지로 발전한 성당이 강릉 임당동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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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을 들어서니 성당 우측 현관 앞에 어린이를 끌어안은 성모상이 보인다. 바로 성모상 뒤쪽으로 어린이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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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로 들어가 성체조배를 하고 나오는데 스테인드글라스가 봄 햇살에 참 아름답게 성당 내부를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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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다양한 주제를 담은 조광호 신부의 유리화와 성미술 작품으로 꾸며진 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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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에 완공되어 2010년 등록문화재 제457호로 지정된 성당 외관

 

충청.전라.경기도의 신자들이 산간 지대로 피신해 오면서 이곳에도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이 중 강릉 지역은 1882-1883년에 삼정평(강릉군 구정면 여찬리), 새울(강릉군 구정면 어단리) 공소가 설립되었고, 1887년에는 금광리(강릉군 구정면 금광리) 공소가 설립되는 등 병인박해 이후 꾸준히 신자들이 존재해 있었다.

당시 영동 지역은 1893년 이후 안변(내평) 본당에서 관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내평 본당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또 신자수가 점차 늘어나면서 본당의 설립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교구에서는 1921년 5월에 양양 본당을 설립하고 최문식(崔文植) 베드로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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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으로 설립 60주년을 맞은 임당동 본당은, 11월에는 신자 재교육을 위한 교육관을 건립하였고, 1987년 10월에는 노암동 본당을 분리하였다.

또 1991년 4월에는 성당 보수 공사를 시작하여 청동 십자가, 제대, 14처,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2년에 걸쳐 갖추었으며, 1992년 11월에는 본당 설립 70주년 기념 화보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1998년 11월에는 노후화된 사제관, 수녀원, 유치원을 신.증축하여 본당의 면모를 일신하였으며, 2001년 10월에는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사진전 등 경축 행사를 거행하였고, 12월에는 춘천교구 대희년 전대사 지정 순례지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출처 : 방상근,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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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서 나와 왼쪽 건너편을 바라보면 강릉 임영관지가 있다.

이곳 칠사당과 임영관 삼문인 객사문에서 병인박해(1866년) 당시 많은 신자들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릉 지역의 순교자로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나고 있는 이는 “치명 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심 스테파노 한 명뿐이다.

“치명일기”에 있는 심 스테파노에 관한 내용을 보면 “본디 강릉 굴아위에 살더니, 무진 5월에 경포(포도청 포졸)에게 잡혀 지금 풍수원 사는 최 바오로와 함께 갇히었다. 치명하니 나이는 29세 된 줄은 알되 치명한 곳은 자세히 모르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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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영관지(臨瀛館址)는 사적 제388호, 임영관 삼문(三門)인 객사문(客舍門)은 국보 제51호, 칠사당(七事堂)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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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임영관지의 임영관 삼문인 객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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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파견한 중앙관리가 묵었던 객사의 정문으로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다.

 

문향(文鄕)과 예향(藝鄕), 절향(節鄕)의 고장 강릉(江陵)은 산 호수 바다 삼박자를 고루 갖춘 천혜의 수려한 자연 경관과 전통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고도(古道)이다. 고구려 시대부터 도시가 형성돼 ‘하시랑’, ‘하슬라(何瑟羅)’로 불려 왔던 고도 강릉에도 어김없이 순교의 보혈(寶血)이 서려 있다. 

 

바로 KBS 강릉 방송국 옆에 있는 ‘칠사당(七事堂)’과 ‘임영관 삼문(臨瀛館三門)’인 ‘객사문(客舍門)’이 그곳이다. 

또한 임영관 삼문 길 건너편에는 고전미와 현대미가 절묘하게 조화된 임당동 성당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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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관공서로 일곱 가지 정사를 베풀던 칠사당 정문. 

 

하지만 교회 전통 사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지금까지 구전으로 전해 오는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병인박해 때 많은 신자들이 강릉 칠사당과 임영관에서 심문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강원도 유형 문화재 제7호인 칠사당은 대도호 부윤(大都護府尹)이 주재하던 조선시대 관공서로 호적(戶籍), 농사(農事), 병무(兵務), 교육(敎育), 세금(稅金), 재판(裁判), 풍속(風俗)에 관한 일곱 가지 정사(政社)를 베풀던 곳이다. 따라서 ‘칠사당’이란 현판은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고 실제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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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학자들은 여러 순교자 증언록을 인용, 이곳 칠사당에서 병인박해 때 심문도 없이 목이 잘리는 참수형으로 많은 교우들이 순교했다고 말하고 있다. 칠사당 동헌 마당 한가운데에는 체포된 천주교인들을 묶어 갖은 고문을 가하며 심문했던 것으로 전하는 고목이 아직도 푸르름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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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쪽 순례를 마치고 이제 양양으로 가기 위해 임당동 성당 앞을 지나 율곡 사거리를 거쳐 지체않고 달려 경포호수 자전거길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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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사거리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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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경기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가 호수 입구에서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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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 호수길로 진입하려다 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오죽헌을 가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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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 정문으로 가서 둘러보려고 하니 시간이 벌써 점심 때가 다되었고 오래 전에 한번 둘러본 기억도 나서 그만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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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생태저류지를 지나 아름다운 호수 자전길을 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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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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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편 마을 언덕에는 매월당 김시습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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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 달려 경포생태습지를 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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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밭도 지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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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주변에 설치된 홍길동 조각들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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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를 둘러싸는 순환산책로를 조성하면서 1999년 산책로를 따라 시비·조각산책로를 같이 조성하였다. 

2003년 홍길동 캐릭터 로드 조성과 더불어 경포호의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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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광장 근처에 이르니 오늘이 마라톤 시합이 있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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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 해안로로 진입하여 가까운 식당에서 오랜만에 시원한 물회로 점심을 ... 아침을 동서울 버스정류장에서 간단히 했기에 폭풍흡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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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강릉 앞바다의 솔밭길은 푸른 바다와 함께 싱그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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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해변에서 하평답교 문화재 마을 앞을 지나가다 보니 길 건너에 허균 시비 표지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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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어린시절 이곳 교산언덕 외가집에서 소년시절을 보냈는데 그래서 호도 산이름을 따서 교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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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 앞면에는 하학 김동욱이 번역하고 쓴 허균의 싯귀가 적혀 있으며 비명 뒷면에는 문학박사 소재명이 짓고 정양완이 쓴 글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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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시비를 뒤로하고 주문진을 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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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은 노랗게 추수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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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해수욕장들 곳곳은 벌써부터 여름철 손님 맞이 준비에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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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게 주산지 주문진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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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호해변에서 잠시 쉬면서 목을 축이며, 바닷가 모래밭에 텐트를 치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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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에 송림은 동해안의 자랑꺼리다. 솔향기도 좋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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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때면 싸리향도 곳곳에서 코 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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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소년단강원연맹 앞을 지나는데 유난히 큰 돌에 이사부를 기념하는 글 귀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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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애항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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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해수욕장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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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해수욕장 앞에는 서핑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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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고개에 이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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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넌편을 처다보며 비를 처다본다.

오늘까지 세 차례 자전거로 이곳을 지나지만 북쪽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내려 갔는데, 오늘 남쪽에서 북쪽으로 오르니 경관이 전혀 다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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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낙산대교를 건너 양양 남대천을 따라 양양 삼거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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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회전하여 시외버스종합터미널 앞을 지나 양양성당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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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성당은 목자 이광재 신부가 사목한 영동지방 신앙의 모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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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에서 주차장 입구에 이르니 좌우에 어린이집이 두 개나 있고 성당 오르막길 좌측에 순교각이 보인다.

6.25 때 성직자와 신자들의 월남을 돕다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한 이광재 신부를 기념하기 위해 1983년 건립한 순교 기념각이다. 

 

10대 주임 스미스(M. Smyth, 천) 신부는 이광재 신부의 깊은 신앙심과 순교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3년 10월1일 경당 내에 이광재 신부 기념관을 건립하고 순교 기념각을 세웠다. 그 후 1988년 4월 6일 현재의 수녀원(55평)을 신축하였고, 성당이 협소하여 많은 불편이 따르자 1995년 10월 1일 성당을 증축(75평)하였으며, 이듬해 10월 4일 농어촌 무의탁 노인들을 위해 현북 가정 간호의 집을 개원하여 서울 성가 소비녀회에 운영을 위탁하였다. 

 

14대 주임으로 부임한 이동주(李東周, 시몬) 신부는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교회상을 정립하기 위해 부임 직후 ‘디모테오 어린이 집’을 개원하였다. 

한편 본당에서는 2000년 10월 8일 이광재 신부 순교 5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는 등 이광재 신부가 시복.시성될 수 있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출처 : 김성희,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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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50주년 기념미사 뿐만 아니라 순교각(殉敎閣) 옆에 있는 옛 수녀원 건물에 ‘이광재 신부 기념관’을 개관하였으나 이광재 신부에 대해 증언해 줄 당시 생존자가 대부분 사망한데다 전쟁으로 본당 유물을 대부분 잃어버려 기념관을 꾸미는데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이광재 신부 기념사업회’를 구성하여 이광재 신부의 유품과 사료 등을 모으고 생존자를 찾아 증언을 녹취하는 등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기념관에는 이광재 신부의 제의와 제구, 친필 교리서 등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는 신자들이 그것들을 옹기에 숨겨놓고 피난을 떠난 덕분이었다.

 

 

2007년 6월 춘천교구는 1940-50년대에 그리스도교 신앙을 증언하다 죽임을 당하거나 실종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그동안 개인이나 단체 혹은 본당 등에서 6.25 전쟁 전후 북한군의 박해와 전쟁 과정에서 순교한 수많은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에 대한 조사나 현양사업이 있었으나 시복 시성을 전제로 교구 차원에서 조사에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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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우측에 있는 디모테오 순례길 안내판

 

1948년부터 연길 .함흥. 원산 지역의 성직자와 수도자들, 그리고 신자들이 양양 본당을 거쳐 남하하게 되자, 이광재 신부는 이들이 무사히 월남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러던 중 이광재 신부는 1950년 6월 24일 공산군에게 연행되어 원산 와우동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10월 9일 총살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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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의 서쪽에 있는 어린이집과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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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올라와 순교각 쪽을 바라 본다. 좌측 돌담 아래쪽으로 주차장 안내판이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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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를 오르면 우측에 성당안내 표석과 그 뒤에 큰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쉼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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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옆마당에 2009년 이광재 신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건립된 석상.

 

기념사업회에서는 본당 100년사 편찬과 더불어 이광재 신부 기념사업을 적극 전개하여 기념관을 한국전쟁 순교자들의 정신을 본받는 교육의 장으로 만들고, 또 설악산과 낙산 해수욕장이 인근에 있는 본당 입지를 최대한 활용해 타지 신자들을 대상으로 기념관을 적극 홍보하기로 했다. 

아울러 한국전쟁을 전후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남하했던 역사의 현장을 재현하기 위해 2000년부터 마련한 ‘38선 도보순례’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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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6.25.전쟁 이전에는 38선 북쪽으로 북한 땅이었다.

1936년 여름 수해로 성당이 완전 침수되자 성당 재신축 계획을 포기하고 시내 중심지로 이전하기로 결정한 뒤 현 성당 소재지의 부지 1,140평을 매입하였다. 이어 3대 주임 이광재 신부가 부임, 1940년 2월 28일 성당(65평)과 교육회관(25평)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나,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소련군의 주둔으로 성당을 빼앗기고 말았다. 

 

전란 중 성당은 화재로 소실되었고, 본당 신부가 공석이 되면서 신자 공동체 역시 혼란에 빠졌다.
이에 주문진(注文津) 본당에 이어 동명동(東明洞) 본당에서 사목하던 맥고완(P. McGowan, 元) 신부가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양양 지역을 맡아 사목하면서 성당(65평)을 신축하였다. 그리고 4대 주임으로 부임한 설리반(T. Sullivan, 서) 신부는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1954년 11월 30일 성당 봉헌식을 거행하였고, 1956년에는 강현 공소(강현면 정암리 2구)를 설립하여 12월 25일에 강당을 신축하였으며, 1958년 1월10일에는 현북면 상광정리에 460평의 부지를 매입한 뒤 11월 8일 32평의 현북 공소 강당을 신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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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디모테오 신부 석상 옆에는 순교 사제 김교명 베네딕도, 유재옥 프란치스코 두 분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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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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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동쪽 앞마당의 성모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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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건물의 북쪽으로 가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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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입구로 들어가는 석축 담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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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 쪽에서 바라본 성당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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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를 하고 나오신 서범석 주임 신부님과 토요 청년 미사를 위해 온 부제님과 잠시 대화를 하다보니 어린이집 원아가 70여명이 넘고 양양에서는 비교적 잘 운영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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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시30분 청년 미사를 참례한다. 10여명의 중고생과 여행객, 지역 신자분들 60여명이 함께 드리는 미사다.
피아노와 기타 음율에 맞추어 빠르게 진행되는 미사가 박진감도 있고, 특히 주임 신부님의 성가는 청아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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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히 나홀로 24차 순례길을 함께 동행하신 예수님께 감사 드리고,
또한 내일 디모테오 순례길도 안전하게 도와주시라는 기도를 드리며 특전 미사를 마치고 시외버스터미널 옆에 있는 숙박업소에서 샤워 하고 일정을 마쳤다.

 

※ 첨부 : 24차_강릉금광리공소_양양성당_170520.gpx

※ 경로 지도 보기 : https://www.komoot.com/tour/282987922?ref=w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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