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차 순례- 살티공소, 살티성지 및 천황산, 재약산 사자평 억새길, 표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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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차 순례- 살티공소, 살티성지 및 천황산, 재약산 사자평 억새길, 표충사

20170610(토) 오늘은 어제 순례길 거리와 범위가 너무 방대해서 미처 돌아보지 못한 살티마을의 성지를 둘러보고 서울에서 내려온 동료들과 합류하여 영남알프스 임도를 라이딩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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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순례지의 대표 사진 살티공소 입구 안내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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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티공소를 찾아가기 위해서 덕현삼거리 숙소에서 나와 아침 식사를 하고 석남사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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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 2일차 전체 코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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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현삼거리에서 석남사입구와 주차장을 거쳐서 살티마을 입구까지는 오르막길 약 2km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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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땀방울을 흘리며 69번 도로를 올라가다보니 좌측에 살티마을과 살티공소 표지판이 반가이 맞아준다.

참고로 어제 이용하였던 382번 버스를 울산역에서 탑승하면 이곳 살티마을 입구에서 하차하면 도보순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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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포장된 마을진입 도로에 내려가 좌회전 후 내리막을 따라가서 다시 우회전하여 덕현살티길 마을 안으로 들어가 다시 골목으로 우회전하니 공소건물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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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종탑과 정문 위의 성모상

공소 담벼락에 자전거를 세우고 공소 건물을 살펴본다.

등억의 간월 공소와 죽림굴 대재 공소가 박해로 파괴되면서 부산 교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소가 된 살티 공소(1868년~)는 지금은 번잡한 관광지에 속해 있지만 박해 시대에는 수목이 울창해 대낮에도 길을 잃기 십상이었던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사람이 찾아 들기 힘든 은밀한 지역이었기에 박해시대에 신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피난처의 구실을 해주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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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내의 공소 현관 우측에는 천주교당이라는 붉은색 표지석이 있고 담벼락에는 신앙사적지 안내판이 붙어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경상남도 밀양군. 울주군의 경계 지점에 있는 가지산(1,241m)의 중턱에 위치한 살티는 원래 예로부터 전쟁을 위한 화살을 만들었던 곳이라 해서 시현(矢峴)으로도 불리었다. 그러다가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간월과 언양 지방에 살던 신자들이 호랑이 등 맹수가 많아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워 숨어 지내기 좋다는 이유로 이곳 안살티(현재 청수골 주변인데, 아무런 흔적도 없다)로 피난을 와서 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박해를 피해 살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살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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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좌측에 있는 살티공소에 대한 안내문 표지석


‘살티’라는 말의 유래는 “당시 관헌들이 교우들을 찾아 석남사까지 왔다가 경주로 빠져 나감으로써 이곳의 교우들이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살아남아 ‘살 수 있는 터’라고 하여 살틔 혹은 살티라 부른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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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쪽 뒷길에서 촬영한 살티공소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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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현관 위에 있는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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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부산교구 은인들의 도움을 받아 건립한 공소 내부


1981년 11월 언양 본당 신자들의 정성으로 김영제 베드로의 묘소를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묘지 주변은 후손들이 1984년과 그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중장비를 동원해 정지 작업을 해 둔 채 보존하여 오다가 부산 교회사 연구소의 주관으로 1994년 4월 2일 서북쪽으로 약 18미터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순교자의 5대손인 김윤근 베드로 신부가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그리고 성모상 및 성지 표지석을 세워 묘역을 다듬었다.

 

살티 공소 인근의 간월골에는 1815년 을해박해, 1839년 기해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큰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신자수도 늘고 공소 건물도 신축되었다. 하지만 1860년 경신박해, 1866년 병인박해의 여파로 공소는 불타 버렸고 교우촌은 폐허가 되었다. 이때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간월골의 몇몇 교우들은 깊은 산 속으로 피해야 했고 새로운 은신처로서 나무가 울창하고 맹수들이 득실대던 이곳 살티로 숨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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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내부에 있는 오래된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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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소 내부 벽면의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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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멈춘 공소 시계, 멈춘지 오래지만 살티공소 선조들의 신앙은 째깍 째깍 소리를 내면서 순례 후손들과 영원히 함께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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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옆에 순례확인 스탬프가 잘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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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티공소를 내려와 한참을 헤매다가 김영제와 김아가타묘를 찾아가는 길을 이웃 아주머니에게 물어 찾아간다.

마을 골목 끝자락의 마지막 집뒤으로 돌아나가면 도로가 나오는데 계속 내려가면 길안내 표지가 보이고 살티 순교성지 묘를 찾아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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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에 이르니 호스로 연결된 졸졸졸 샘물이 반기는데 더위에 흘린 땀방울을 싯기에는 안성 맞춤이다.

 

병인박해가 경상도 지역을 휩쓴 1868년 간월골의 김영제 베드로는 체포되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허인백 야고보와 함께 경주로 압송되었다. 그 후 김영제를 제외한 세 사람은 울산 장대에서 순교하였고,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한편 김영제는 다시 서울로 이송되어 9개월 동안 무수한 매를 맞는 고초를 겪은 후 고종의 혼인날을 기해 특별히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안살티에 정착했다.

 

박해가 끝나고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이후 안살티에 살던 신자들은 논밭을 일굴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공소가 있는 살티로 이주하여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숱한 고문으로 반죽음이 되어 돌아온 김영제는 그 후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다 마침내 1876년 1월 24일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현재 그의 묘소는 이곳 살티의 가족 묘소에 안장되어 있고 그의 후손들도 이곳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후손들에 의해 순교자들의 신앙의 맥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살티는 최재선 주교, 김문옥 · 이종창 · 김윤근 신부 등 많은 성직자를 배출한 성소(聖召)의 고장으로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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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주위를 둘러싼 십자가의 길을 지나 성지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 묘와 가족묘가 자리하고 있다.

부산 교구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소인 살티 공소에 그 묘가 모셔져 있는 병인박해 당시의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1827-1876년)는 일찍이 그 위세가 지방에 크게 떨치던 집안의 후손이었다.

 

그의 집안이 천주교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조부 김교희 프란치스코(일명 재권, 1775-1834년)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부는 당시 서울을 왕래하면서 남인파에 속한 선비이자 초대 천주교회의 창설자인 권일신, 정약용 등 양반들과 접촉하면서 천주교 교리를 익히고 함께 영세함으로써 부산 지방 최초의 신자가 되었다. 

그의 아들 김상은 야고보(1804-?) 역시 부친의 뜻을 따라 입교해 열심한 신앙생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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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묘역 남쪽에 설치된 예수상과 순교자 김영제 베드로(좌)와 누이동생 동정녀 김 아가타의 묘(우)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조부 김교희는 교난을 피해 인근 간월골(현재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로 피신했다. 

여기서 김영제는 김상은과 경주 최씨(마리아)의 사이의 2남 2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1839년 기해박해와 1846년 병오박해가 전국을 휩쓸면서 쫓기던 신자들은 영남 지방에까지 밀려왔다. 이때 김상은 야고보는 지방 관리들의 횡포와 고발, 재산 탈취, 집안 어른들의 배교 강요를 견디다 못해 간월을 떠나 경상북도의 자인골, 청도의 정자동, 월성군 탑곡 등을 전전하며 피해 다니다 박해의 칼날이 무디어진 1850년 12월 다시 간월의 불당골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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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월로 돌아온 김영제는 부산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당시 경상도 지방을 담당한 다블뤼(Daveluy) 안토니오 신부 및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맞이해 공소를 설립하고 1858년에는 공소 건물을 짓기도 했다. 당시 간월골에는 경기.충청.전라도 등지에서 박해를 피해 온 많은 신자들이 모여 교우촌을 이루었다.
울산 장대에서 순교한 후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된 허인백 야고보, 김종륜 루카, 이양등 베드로 등도 이 지방에서 살다가 붙잡혔다.

 

1860년 경신박해로 김영제는 부친과 여동생 김 아가타를 비롯한 많은 신자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부로 이송되었다. 

하지만 이 박해는 조정과 무관하게 지방 관리들이 사사로이 일으킨 것으로 조정의 반대와 당사자들의 파면 등으로 9개월 만에 그치고 대부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김영제만은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대구 감영을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었다가 풀려났다. 결국 경신박해의 여파로 인해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공소도 불태워져 없어졌다.

 

게다가 1866년 병인박해의 화가 전국에 미치고 무진박해가 경상도 지역을 휩쓴 1868년 7월 김영제는 또다시 체포되고 이때 간월, 대재 등지에 숨어 살던 많은 신자들이 잡혀가게 되어 간월 공소는 물론 1840년경 형성된 대재 공소도 함께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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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김영제 베드로(좌)와 누이동생 동정녀 김 아가타의 묘(우)와 뒤쪽의 십자가상과 성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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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간월에 있던 김 아가타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비문을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나온다. 슬픈 이야기다.

김영제가 잡히면서 집은 불태워지고 가산은 몰수됐으며 가족들은 또다시 흩어지고 말았다. 

그는 경주부로 이송되어 그곳 감옥에서 허인백 등 울산의 순교자 세 사람을 만나 순교하기를 결의했으나 이들 세 사람만 울산으로 이송되어 순교했고 김영제는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대구에서 그는 전교 신부들의 행방을 묻는 관리들로부터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다. 이때 받은 고문으로 종지뼈가 으스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끝까지 굳건하게 믿을 지켜 한양까지 이송되었다가 다행히도 1869년 봄, 마침 나라에 경사가 있어 특별히 사면되어 죽지 않고 9개월 만에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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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제 베드로의 조부 김교희(재권) 프란치스코의 후손 가족 묘역 표석

 

고향으로 돌아온 김영제는 피신한 가족들을 수소문해 의령 남씨 등이 피신한 안살티에 정착한 후 여기서 다시 살티 공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박해가 뜸해지면서 논밭을 일굴 수 있는 평지를 찾아 현재의 살티로 옮겨 와 살게 되었다. 

하지만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이 전신으로 퍼지고 상처 부위에서는 항시 피고름이 흘러 한겨울에도 바지를 걷고 진물을 받아 내야 하는 고통 속에 살다가 그는 결국 1876년 1월 24일 숨을 거두었다. 이처럼 고문으로 인해 생긴 병이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교회에서는 ‘장하 순교’(杖下殉敎)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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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주위를 둘러싼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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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길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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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깍은 14처상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이렇듯 순교자 김영제는 양반 가문으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신분이었으나 오직 천주를 따르겠다는 굳은 신앙 하나로 세상의 안위를 버리고 순교의 가시밭길을 걸어갔던 것이다. 

현 살티 공소에서 5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김영제의 묘소는 1981년 11월 언양 성당 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1994년 4월 2일 부산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서북쪽으로 약 18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재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성모상, 성지 표지석 등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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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십자가의 길을 따라 뒷길로 올라와 바라본 순교자 묘역 전경 

 

2008년 3월 4일 간월에 있던 여동생 김 아가타의 묘도 김영제 묘 옆으로 이장하여 그해 9월 29일 축복식을 가졌다. 나란히 자리한 남매 묘소 우측에 있는 가족묘 상단에는 부친 김상은과 모친 최 마리아의 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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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뒤쪽에는 살티농원이 있다. 순례를 끝내고 나서 ~~b2328dfd83f021ad6feb4fed52dad25b_1497497462_6059.jpg

살티농원 입구에서 북쪽 살티공소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오니 69번 도로변에 천주교순교성지, 건너편 입구에는 살티성지라는 안내판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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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티 성지를 벗어나 이제 배내삼거리로 계속하여 업힐을 하여 배내터널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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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헤어핀 오르막을 오르는데 어제 죽림굴 보다는 덜 하지만 경사도가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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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때가 거의 다되어서 배너터널 정상에 도착하니 주말이라 울산의 젊은 친구들이 원동쪽에서 단체 라이딩으로 올라오다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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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목장 쪽으로 내려가서 간월재에서 24번국도로 다운힐을 해서 내려오는 서울원정팀 일행을 반갑게 맞아 편의점 국수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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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와 콩국수와 두부김치 뿐이지만 허기진 대원들은 맛있게 뚝딱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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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 배너터널로 다시 업힐을 하여 터널 윗길로 올라가서 천황재 임도길을 타고 샘물상회-사자평으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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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석이 깔려 있고 경사도가 심해서 일부는 끌바를 해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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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올라가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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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의 업힐의 참맛을 제대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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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 하늘정원 샘물산장 삼거리에서 단체 기념촬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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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재약산 임도를 따라 사자평 억새길로 고사리 분교터를 지나 경사도가 심한 표충사로 다운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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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탱이들이 불규칙적으로 많이 널부러져 있어서 끌바를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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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을 건너기 위해 멜바도 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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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평 억새밭 침목길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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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기념 촬영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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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승용차로 울산역에 도착해서 합류한 토마스아퀴나스 형님도 오랜만에 함께하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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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평 테크 마당에는 야영온 사람들이 텐트를 치는 곳인데 30여명이 캠핑을 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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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산을 배경으로 억새밭에서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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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길은 가을이 아니어도 마치 가을처럼 제맛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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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목길 위를 자전거를 타다가 끌다가 ~~ 반복된 힘든 길이지만 즐거운 표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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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산사태로 생긴 계곡으로 길이 잘린 곳을 멜바로 건너가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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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바가 힘들어도 중심만 잘 잡으면 쉽게 내려오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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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평 침목길과 멜바를 해야 하는 골짜기를 벗어나 이제 너덜길을 타고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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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털털털~~~손목과 어깨까지 너덜 너덜 해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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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길 중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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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평 습지보호지역 생태복원사업 계획 안내판을 살펴본다. 억새밭도 많은 노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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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없는 다운힐을 하다보니 드디어 표충사 주지가 설치해 놓은 통제구역 철문에 이르렀다. 쪽 문으로 자전거를 건내고 받아주면서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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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너하게 뚫린 표충사 앞길에서 단체사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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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결정적 한방의 업힐이 남아 있다. 모두들 입에서 한 마디씩 ... 힘들다는 표현이다. ㅍㅎㅎㅎ
바드리 마을로 올라가는 업힐이 남아 있는 마지막 진을 송두리째 배앗아가는 기분이다. 이 고개를 넘어야 비로소 오늘 밤 숙소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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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힘들게 밀양 3대오지 중에 한 곳이라는 바드리마을 고개 정상에 도착했다. 힘은 들어도 모두 표정은 행복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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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집에서 화초에 물을 주는 아주머니에게 식수를 보급 받았다. 식수는 지하수를 그대로 마신다고 한다.
이제부터 1051번 도로까지 쎈~급~급~경사면 도로를 타고 다운힐을 한다.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그 어떤 급경사 보다 센 급경사 헤어핀 다운힐을 한다. 잠시도 정지하여 사진촬영도 불가한 20% 내외의 경사도로이다. 브레이크 페드 타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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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히 급경사를 내려와 19시20분이 되어서야  밀양시 단장면 범도보건진료소가 있는 아불마을에 도착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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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마을이 크다. 오미정 민박집 숙소에서 삽겹살과 동동주로 재미 있는 담소들을 나누면서, 오늘도 무사히 이틀째 원정 순례 및 영남알프스 단체 라이딩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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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부 : 30차_석남사_살티공소.성지_배내_천왕재_사자평_표충사_단장아불_170610.gpx

 

※ 경로 지도 보기 : https://www.komoot.com/tour/282984065?ref=w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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