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차 순례 - 상주 신앙고백비, 홍유한 사적지

Bicycle Pilgrimage 자전거 순례
홈 > After Pilgrimages > Bicycle Pilgrimage
Bicycle Pilgrimage

34차 순례 - 상주 신앙고백비, 홍유한 사적지

34차 순례길은 상주의 김삼록 도미니코 신앙고백비, 봉화의 홍유한 사적지를 둘러본다. 

20170629(목) 06:40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영주역에서 10:15에 부산행으로 환승하여 청리역에 11:57분에 도착 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4_4059.PNG

이번 순례길은 다른 친구 두 명과 함께 1박2일간 동행 후에 금요일 오후 15시경에 춘양역으로 도착하는 다른 동료 6명과 합류하여 일월산, 통고산 임도길을 2박3일간 라이딩 계획에 따라 이틀 전에 청리에서부터 순례길을 시작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5911_9893.JPG
위 코스맵에서 보듯 상주버스터미널에서 영주버스터미널 구간은 시외버스로 점프하는 구간이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4_9153.jpg 

기차는 풍기를 지나고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4_6914.jpg

제천역을 지나 ~~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5_5734.jpg 

중앙선을 타보는 것은 처음!
복선 구간을 빠르게 달려 영주역에 도착하여 대기중인 경북선 부산행 열차로 환승하여 상주역을 지나 청리역에 도착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5_1703.jpg

카페칸이 있어서 자전거를 접지 않고도 세워둘 수가 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5_3715.jpg

카페칸 내부 모습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5_7976.jpg

카페칸이 아닌 경우 통로의 화물함 공간에 접어서 세워둘 수도 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6_038.jpg

기차에서 내려 청리역을 나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다. 아침을 기차내에서 간식으로 간단히 했기에 ...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6_2548.jpg

식사를 마치고 수상교를 건너 두곡길에 접어들어 삼거리에 도착하니 삼괴2리 마을 표지석 옆에 첫번째 순례 장소인 신앙고백비 표지판이 보인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3966_508.jpg

신앙고백비 입구까지 도로가 확장 포장되어 마을 앞 들길을 달려 1km 정도 이르니 주차장 오른쪽 정자 뒤쪽으로 신앙고백비가 보인다.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100_8163.jpg 

상주시 청리면 삼괴리(靑里面 三槐里)와 그 부근의 내서면과 공성면 일대에는 옛날 박해시대부터 많은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또한 청리면 덕산리(德山里)의 서산 중턱에는 신자들을 처형한 ‘화형바위’도 있다. 

이곳 석단산(石壇山) 아래, 현재의 청리면 삼괴 2리 안골짝의 커다란 바위에는 자신의 신앙을 명백히 하기 위한 한국 교회 유일의 신앙고백비(信仰告白碑)가 서 있어 지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2_3457.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2_5789.jpg

오래되어 글짜가 선명하지 않은 최초의 신앙고백비 앞 모습

 

바위 위에서 의젓한 모습으로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고백비에는 상단의 십자형 안에 천주(天主)라는 글이 새겨져 있고, 

김삼록 도미니코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새긴 고백비에는 천주님과 교황, 주교, 신부, 교우를 위한 기도가 들어 있다.
신앙고백비의 비문(碑文)과 해제(解題)는 다음과 같다.


天主聖敎會 聖號十字嘉  천주 성교회 성호 십자가 (十字嘉는 十字架의 오자)

第一 天主恐衛咸  첫째는 천주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모신다.

第二 敎化皇衛咸  둘째는 교황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三 主敎衛咸  셋째는 주교님을 받들어 모신다.

第四 神夫衛咸  넷째는 신부님을 받들어 모신다. (神夫는 神父의 오자)

第五 敎于衛咸  다섯째는 신자들(교우)을 받들어 모신다. (敎于는 敎友의 오자)

奉敎人 金道明告  (천주)교인 김 도명고(도미니코) 제작

癸卯生本(古)盆城(今 · 金海)  계묘년(1843)에 출생, 본관은 분성(김해) 金氏이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2_8416.jpg

신앙고백비 뒤 모습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3_1011.jpg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상주에는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당시 문중의 박해로 서울서 낙향한 서광수(徐光修)에 의해 처음 복음이 전파된 후 많은 사람들이 입교해 천주교를 믿어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해 1827년 정해박해 등 역대 박해 때마다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특히 신앙고백비가 서 있는 삼괴 2리 마을에는 1866년 병인박해 전부터 김해(金海) 김씨 집안 김복운(金福云)의 아들 4형제가 열심히 천주교를 믿어 온 것으로 전해진다. 그 중 차남인 삼록(三錄, 도미니코, 1843-1935년)은 특히 신앙이 돈독해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3_3295.jpg

유적지 둘레에 세워진 십자가의 길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다른 형제들은 모두 박해의 서슬이 두려워 신앙을 버렸으나 김삼록은 끝까지 천주교를 믿어 하릴없는 도피 생활을 해야만 했다. 다행히 박해의 참혹한 손길을 피해 목숨을 구한 그는 1886년 프랑스와의 한불수호통상조약으로 공식적인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94년부터 1900년 초 김삼록은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위한 표징을 단단한 바위 위에 직접 새겼다.
자신과 집안의 문중이 살고 있던 석단산 아래 높이 127cm, 폭 39cm, 두께 22cm의 화강암에 전통적인 직사각형의 비석 몸체와 십자형을 하나의 돌로 깎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갓을 얹어 신앙고백비를 건립한 것이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3_8907.jpg

 

비록 공식적인 박해는 끝났다 하나 아직 지방에서는 사사로운 박해가 끊이지 않고 있던 시절,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신앙을 이렇듯 담대하게 고백했다는 점에서 신앙고백비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신앙고백비가 교회 사적(史蹟)으로 공식적으로 고증된 것은 1980년대의 일이었다.
김삼록은 신앙고백비를 세운 뒤 교난(敎難)을 피하기 위해 고백비 앞에 포플러나무, 미루나무 등을 많이 심어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을 피하도록 가려 두었다. 그 뒤 1945년 해방이 되자 그의 손자인 김순경(당시 79세)이 나무들을 베어 냄으로써 비로소 신앙고백비 앞이 훤하게 트이게 되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3_6052.jpg

석단사 위쪽에 세워진 대형 십자가상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4_3998.jpg

 

1982년 당시 상주 서문동 본당 이성길 신부가 우연히 김순경의 둘째 아들을 만나 신앙고백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됨으로써 교회 안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인 1984년 서울대교구 오기선 신부의 답사와 함께 신앙고백비에 대한 확실한 고증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4_1622.jpg

대형 십자가 앞에서 내려다 본 제대와 신앙고백비 전경

 

1980년대 안동교구와 남성동 성당을 중심으로 교회 사적지 개발을 위해 신앙고백비 주변 부지 매입이 시작되었고,
1999년 당시 옥산 성당 신기룡 신부와 회장단 그리고 청리 공소회장의 봉헌으로 성역화를 추진하여 대형 십자가와 제대, 십자가의 길 14처, 2000년 대희년 상징 조형물 등을 설치하였다. 2009년 12월 22일 상주 신앙고백비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62호로 지정되었다. 

2014년에는 비좁았던 진입도에 대한 확장 포장공사가 이루어지고 주차장도 마련되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024_6968.jpg
2000년 대희년 상징 조형물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100_2147.jpg

순례확인 스탬프 함도 옥산성당에서 정성스럽게 설치하였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100_4166.jpg

성지 초입 입구 주차장 앞에는 2014년 정자가 새로 설치 되어 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100_6111.jpg

김삼록 도미니코 신앙고백비 순례를 마치고 상주터미널로 향하여 페달링을 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2_3594.jpg

가뭄에다 기온이 올라가서 아스팔트 길을 라이딩 하는 게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데 두 친구들이 함께 동행해 주어서 고맙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2_558.jpg

상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영주행 13:30 버스는 이미 출발 했고, 15:00 버스를 기다려야 하기에 근처의 서문동성당을 찾아가서 둘러보고 쉬기로 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2_7565.jpg

상주 서문동성당 내부 모습

성체조배와 기도를 하고 나와서 성당 주변을 살펴본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2_9446.jpg

파티마 유치원 외부 모습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3_1444.jpg

성당 마당 앞에 세워진 정자에 몇 분의 신자들이 쉬고 계시는데 인사를 하고 함께 더위를 피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243_3745.jpg
시간에 맞추어 상주터미널로 돌아와서 버스에 자전거를 싣고 ~ 버스는 마을버스 처럼 옛 도로를 따라서 이 마을 저 마을을 거쳐 산양을 지나고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6_117.jpg

경서로를 달려서 새로 생긴 영주종합터미널에 2시간이 걸려서야 17:00에 도착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8_2023.jpg

서천교를 건너서 좌회전하여 제방 길과 마을 길을 1시간 정도 달려서 구구3리 마을회관 앞에 이르러 골목으로 들어가니 오늘 두번째 순례지인 농은 홍유한 선생의 사적지 정려문이 나타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6_3246.jpg

정려문에 대한 안내문과 그 옆에 효자 지평공 홍중명의 세계도가 보인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6_5193.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7_8018.jpg

정려문 안쪽에서 살펴 본 모습, 경종 4년(1724년) 홍유한의 조부인 홍중명(洪重明)이 하사받은 효자문 현판이 잘 보존되어 있다.

순교자 권일신과 서신 왕래하던 친필 서찰들이 후손에 의해 보존되어 오다가 현재는 천진암의 전시관에 보관되어 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6_7353.jpg

정려문 내부에 오늘의 순례 주인공인 홍유한 선생 유택지의 한국 천주교회 최초 수덕자 풍산 홍유한 선생 유적비가 보인다.

유적비 앞면에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수덕자 풍산 홍공 유한 선생 유적지’(韓國天主敎會最初修德者 豊山洪公儒漢先生遺跡址)라 기록하고, 옆과 뒷면에는 그의 생애를 상술하였다.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것이 1784년, 

이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천주 신앙을 받아들여 심신을 연마한 선각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농은 홍유한(농隱 洪儒漢, 1726-1785년)이다.
비록 물로 세례를 받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가 천주교를 대하는 입장은 단순히 신학문으로서가 아니라 천지만물의 이치를 밝히는 종교적 요소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첫 인물로 꼽힌다.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九邱里)는 바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그는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문하에서 천주학을 처음 접한 뒤 유교와 불교에서 구할 수 없었던 진리를 발견하고 바로 이곳에서 1775년부터 1785년까지 10년간 학문을 통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실천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7_003.jpg

본래 구구리는 순흥부 동원면(順興府 東園面) 지역으로 마을 뒷산에 무학봉이 있는데 “학이 구고(九皐)에서 우니 소리가 하늘에 들린다.”는 시전(詩傳)에 있는 옛 뜻을 따라 ‘구고’라 하였다 한다.  

홍유한은 본관이 안동현의 풍기(豊基)인 풍산 홍씨(豊山 洪氏) 명문가의 16대손으로 서울 아현동에서 홍창보(洪昌輔)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미 8세경에 사서삼경(四書三經)과 백가제서(百家諸書)에 통달한 신동으로 전해진다. 그의 조부모는 손자의 장래를 위해 고향인 충청도 예산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고 16세 때인 1742년 그는 당시 유명한 실학자인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순암 안정복, 녹암 권일신, 복암 이기양 등과 함께 수학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7_2777.jpg

1750년경 성호 이익이 “천주실의”(天主實義)와 “칠극”(七克) 등 서학(西學)을 연구할 때 그의 제자들도 이 신학문과 종교 서적을 탐독하게 됐고 이때 그는 천주교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성호 이익은 서학을 받아들임에 있어 피상적인 보유론적 입장에 머물렀고 함께 수학하던 순암 안정복은 천주교 신앙에 대해 극히 비판적이고 배격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홍유한은 유교와 불교에서 발견하지 못한 진리를 여기에서 발견하고 1757년 고향 예산으로 내려가 1775년까지 18년간 홀로 신앙을 연마했다. 그러던 중 다시 1775년 더욱 조용한 곳을 찾아 경상도 소백산 아래 있는 순흥 고을 구고리(이곳,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로 옮겨 가서 1785년 60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고행과 절식, 기도와 묵상으로 만년을 보냈다. 선종 후 그의 시신은 문수산 자락에 있는 우곡리에 안장되었다.

 

그는 천주교의 진리를 처음 깨달은 후부터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해 “칠극”에서 터득한 덕행을 쌓기 위해 매월 7일째 되는 날을 주일(主日)로 정해 세속의 모든 일을 전폐하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다.
나아가 욕정을 금하여 30세 이후는 정절(貞節)의 덕을 실천했다.
그리하여 천진암 강학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는 서학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스스로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최초의 수덕자로 기록되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7_5526.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337_9939.jpg

정려문 안쪽 옆에 있는 성지순례함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6_949.jpg

정려문 내부 홍유한 사적비 앞 마당에 있는 구 가옥은 폐가로 남아 있다.

 

홍유한의 신앙은 그의 후손들에게 이어져 13명이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하였다. 

그 중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 형제는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한국 천주교 103위 순교성인의 일원으로 시성되었고, 홍낙민 루카 · 강완숙 골룸바 · 홍필주 필립보 · 홍재영 프로타시오 · 심조이 바르바라 등 5명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7_2544.jpg

홍유한 유적비 순례를 마치고 내일을 위하여 봉화읍내로 페달링을 하는데 지름길 업힐을 하여 임도를 이용한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7_5172.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7_7183.jpg

임도 일부 구간에서는 산길의 풀숲을 헤치고 멜바를 해서 임도로 진입해야 한다. gpx파일에 웨이포인트가 기록 되어 있으니 참고 하시길!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7_9377.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91299_2938.JPG
녹색 구간이 끌바 멜바 구간이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8_8369.jpg

해저리 도로로 진입하여 읍내에 도착하여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8_4576.jpg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9_0754.jpg

식당 주인이 추천한 메뉴로 하루의 피로를 풀면서 34차 순례길을 마무리 한다.

오늘 저녁 숙소는 봉화가 고향인 도봉동 본당 홍성한 세베리노 형제의 고향집 한성아파트에서 1박을 하게 된다.
봉화에 간다고 하니 선듯 아파트 열쇠를 내어준 세베리노 형제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3e8ef71abbeaa55f4efb9b28af9b6d84_1499084419_4726.jpg

친구들, 그대들도 더운 날씨에 순례길을 함께 해서 많이 많이 고맙네. +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


 

※ 첨부 : 34차-상주신앙고백비~봉화홍유한사적지_170629.gpx

※ 경로 지도 보기 : https://www.komoot.com/tour/282969791?ref=wtd

, ,

0 Comments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65 명
  • 오늘 방문자 1,215 명
  • 어제 방문자 2,573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600,391 명
  • 전체 게시물 1,336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