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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iago Pilgrimage

[유럽4개국 자전거순례] (5) 4월/27일(금), D+4day, 오리손 ~ 론세스바예스~에스피날~수리비~ 팜플로나 까지

[유럽4개국 자전거순례] (5) 4월/27일(금), D+4day, 오리손 ~ 론세스바예스~에스피날~수리비~ 팜플로나 까지  

 

오리손 산장에서 04시쯤 화장실 가는 소음 때문에 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이슬비가 내리는데 오늘 등반 라이딩을 생각하니 먹구름 처럼 걱정이 몰려온다. 빼치카에 불을 지피는 발렌티노의 부지런함 때문에 다른 외국인의 잠을 깨울까 염려가 되지만 792m가 넘는 피레네 중턱의 차거운 아침 바람을 피하려는 자구책이 고맙기도 하다.

아침식사 장소 오리손으로 이동하는 오르막길의 차거운 이슬비는 장갑 속을 뚫고 들어와 뼈마디까지 압박 하는데 마치 오늘 피레네의 경고장을 받은 듯 하다.

07시 바게트 빵과 커피 한 잔으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보지만 도보 순례자들이 우비를 입고 나서자 우리도 우의를 입고 자전거 안장에 올라 피레네를 향해 도전장을 내민다.
 

▲ 오락 가락하는 비와 가스 때문에 잠시 비옷을 입으면서 ...

▲ (이 사진은 당시 사진이 아니고 웹에서 가져온 사진)
좌측 청색 포장도로는 유혹의 길, 비가 내려 진흙 투성이 적색 임도는 피레네 정상을 향하는 길인데 ... 

▲ 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진흙이 두려운 나머지 그만 포장도로를 향해 달려가고 말았다.


▲ 우측의 청색 경로가 가지 말았어야 할 길이다. 막다른 곳에서 더이상 길이 없음을 깨닫고 나서야 알바를 한 사실을 실감하며 왔던 길로 다시 달려서 원점인 피레네 진입점(Cruz de Thibault)까지 왕복 24km정도를 주행하다 보니 정오가 다되었다.
▲ 사실 우리는 위 지도의 우측으로 진입하여 Col d'Arnosteguy 지점에서 나폴로옹 길로 가로질러 가려고 시도 하였다.  

 ▲ 이곳에서 국경을 끼고 연결된 하이킹 임도로 진입 할 수 있다. 물론 끌고 밀고 ...를 반복 했었야만 했겠지만 ~ 안개비로 앞이 보이지 않고 진창 길에다 가파르게 보이는 앞 길이다 보니 두려움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초반부터 감정을 다치지 않기 위해 자기 주장을 피하려고 얼토당토 않은 행동을 결행 한 것이다. 길고 험한 피레네 산맥도 넘어야 하지만 동행한 사람도 팀웍을 이루어 함께 넘어야 하는 시련이고 한편으로 순례자의 덕목이다.
귀국하여 이 거리를 측정해 보니 1.7km 정도였다.  
 
▲ 우여곡절 끝에 호락호락 하지 않은 피레네의 속내를 깨닫고서야 우리는 원점으로 회귀하여 정비를 한 후에 다시 피레네 정상을 향한다. 

피레네 진입점(Cruz de Thibault)의 표시이기도 한 십자가에서 숨을 돌리고 서서히 안개 걷히기 시작하는 피레네 임도를 향하여 올라간다. 자전거 새들백 위에 부착한 아침에 먹다가 가져온 바게트빵 반쪽을 둘이서 나누어 먹고서 ~~~ 고난의 순례길이다.
일반 여행자와 순례자가 다른 점은 무엇일까?
고난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피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기꺼이 고난도 맞이하고 극복할 것이가? 끌바를 하면서 많은 물음을 던지며 피레네를 오른다.  

▲ (사진 차용) 화창한 날씨라면 이 고개 위치가 이렇게 보인다.고개 우측 언덕에는 롤랑 기념비가 있다. 

▲ 어렵게 자전거를 끌고 밀면서 600여미터를 지나 드뎌 고개까지 올라와서 기다리니 동행한 친구도 올라온다.


▲ (차용한 사진) 우측 봉우리 밑에 있는 조난 대피소, 그 당시에는 안개 때문에 이곳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 안개 때문에 피레네 북쪽 산맥이 보이지 않는 전망대에서, 이곳부터는 스페인 땅이다. 
자전거로 오른 피레네 산의 첫번째 고개는 프랑스 중세 서사시로 유명한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 전설이 엮여 있고, 
조금 가면 롤랑의 샘(Fuente de Roldán)이 나타난다.


▲ 이렇게 달려볼만한 피레네 정상 임도도 있다. 
 

여기서 잠시 샤를마뉴와 롤랑의 전설을 읽어보자!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서사시 ‘롤랑의 노래'(La Chancon de Roland)에서 나온 샤를마뉴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롤랑은 프랑크 왕국의 황제 샤를마뉴의 조카이자 12명의 성기사 중에서 가장 용
맹하고 뛰어난 기사였다. 샤를마뉴는 그를 너무나 사랑해서 자신이 아끼는 보검 두란다르트(Durandart)를 하사하였는데, 이 검은 요정들이 만든 검으로 산을 쪼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고. 778년 8월 15일 샤를마뉴와 그의 군대는 이슬람교도에게 사라고사(Zaragoza)를 탈환하려는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피레네 산맥을 넘던 중 후방을 맡고 있던 롤랑의 부대가 롱스포에서 사라고사의 마르실리오 왕으로부터 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프랑크 왕국의 군대에는 악명 높은 배신자인 가늘롱(Ganelon)이 있었는데, 그는 롤랑의 의붓아버지로 롤랑이 기사로 성공하여 샤를마뉴의 오른팔이 된 것을 질투했다고 한다. 


불시에 기습을 받은 롤랑의 군대는 위험에 처하게 되었으나 자존심과 책임감이 강한 롤랑은 부하인 올리비에(Oliveros)의 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왕의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전설의 뿔 나팔 올리판테(Olifante)를 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주위에 60여명의 부하들만이 남게 되자 올리판테를 불어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이때 샤를마뉴는 가늘롱과 함께 체스를 두고 있었는데, 올리판테 소리를 들은 가늘롱은 이미 사라고사의 왕 마르실리오와 결탁하여 롤랑을 처치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알게 된다. 롤랑은 죽는 순간 성 베드로의 치아가 포함된 자신의 칼 두란다르트를 파괴하기 위해서 커다란 바위에 내리쳤는데 바위만 갈라지고 칼은 멀쩡했다고 한다. 

 


▲ 바로 롤랑의 샘(Fuente de Roldán)이란다. 순례객의 목을 축일 수 있는 1300m 고지에 있는 현대식 수도꼭지가 달린 ~ 

▲ 롤랑의 샘(Fuente de Roldán) 바로 옆에는 조난자를 위한 Help Point, 그런데 여기게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면 누가 언제 어떻게 치울까 싶다. 

 

이 전투에서 롤랑과 프랑크족의 열두 명의 성기사, 용감한 부하 올리비에와 튀르팽(Turpin) 주교까지 전멸을 당했다고 전해진다. 뒤늦게 전투에 패한 것을 알게 된 샤를마뉴는 후방 부대가 잠복했던 계곡까지 돌아가 끔찍한 대학살을 보고, 죽은 병사들을 위한 카톨릭식 무덤을 마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모두 옷을 벗겨서 함께 매장했다. 그러나 적군과 아군을 섞어서 매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므로 샤를마뉴는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는 증표를 달라고 기도를 했다. 그러자 조금 뒤 병사들이 그에게 달려와서 입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시체가 있다고 전했다. 이에 샤를마뉴는 이들을 분리해서 그리스도교 무덤에 매장했다. 이 것이 로시스 바예(Rosis Valle; 장미의 계곡) 즉 론세스바예스라는 지명의 기원이다. 

 

▲ 좌우 나무에는 파릇한 잎들이 싱그럽게 피어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임도가 나온다.

 

샤를마뉴는 적을 쫓아가 전멸시켰고 사라고사를 정복했으며 가늘롱과 공모했던 왕인 마르실리오를 죽였다. 프랑스에 숨어있던 가늘롱은 신의 심판을 받고 네 토막으로 잘려 사형 당했다. 샤를마뉴는 롤랑과 그의 부하 올리비에 그리고 튀르팽 주교의 유해를 프랑스로 가져갔다고 전해진다. 샤를마뉴는 당시 이슬람교도들에게 당황스러운 패배를 당하고 나서 시사 골짜기로 후퇴해 흐느껴 울었다. 이곳엔 아직도 그의 눈물로 젖은 바위가 있다고 전해진다. 이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그를 위로하며 젊은 여자들을 불러 모으라고 가르쳐주었다. 이에 샤를마뉴는 53,066명의 아가씨들을 불러 모은 후 그들을 기사들처럼 갑옷을 입히고 무장시켰다. 이슬람군들은 이들을 샤를마뉴의 대군이라고 생각하여 두려움에 떨며 항복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 후 젊은 여자들이 발까를로스로 돌아와서 창을 바닥에 꽂아놓고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기적이 일어나 땅에 꽂아놓은 창이 꽃이 핀 나무로 변해 있었다. 그때부터 이곳을 ‘창의 숲’ (Bosque de Las Lanzas)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 Izandorre(대피소)에 도착했다. 악천후 시에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곳이다.

▲ 대피소 내부에는 대피행동 요령과 여러 나라 글자들로 나름 수 많은 순례자들의 영역표시가 다양하고 가득하다.  

 


▲ 뒤쪽을 처다보니 남동쪽 중산간 피레네의 D428 포장도로의 편한 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엉뚱하게 13시가 되어서야 피레네 능선 전망대를 통과 하면서 구름과 안개가 수시로 오락가락 하지만 아름다운 피레네를 볼 수 있는 큰 기쁨을 느낀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었던가 싶다. 만일 오전에 일찍 안개비 속에서 이곳을 통과 했다면 나폴레옹 길의 아름다운 풍광을 못보고 지나쳤을 것이리라. 

 


 

▲ 노면이 온통 돌탱이이가 굴러다녀서 계속 끌바를 하며 올라가니 점점 피레네 정상이 가까워진다. 저 멀리 지나 온 대피소가 보인다.
▲ 포르투갈 친구들 세 명을 여기서 만나 함께 기념 촬영도 하고, 서둘러 앞서가는 그들에게 "부엔 까미노~"를 외친다.
▲ 정상으로 오르는 구간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4월28일인데~  

 

 
 

▲ 드디어 피레네 정상 가까이에 있는 가장 높은 전망대에 올랐다. 여기에는 Help point가 있다.

 


▲ 높이 1441m, 순례길 정상에 있는 LEPOEDER 전망대 Help point 이용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생장 사무실에서 크레덴셜에 빨간 X표시가 있는 스템프를 찍어주면 나폴레옹길은 가지 말라는 경고 표시란다.

때론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너무 무리하게 겨울철에 이 나폴레옹 길로 오르다가 조난을 당하여 헬기가 구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브라질 순례객이 생명을 잃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헬기를 띄웠던 어느 한국 젊은이는 스페인 정부가 청구한 정확한 금액은 잘 모르지만 엉청난 금액의 벌금을 물었다고 들었다. 

  

▲ 이제 여기 정상 전망대가 마지막 론세스바예스로 들어가는 갈림길이기도 한데 우측의 청색 NA2033 길을 따라 갈 수도 있지만 ~

▲우린 도보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자갈들이 깔린 위 사진의 사람이 보이는 가파른 임도를 따라 브레이크를 잡아가면서 론세스바예스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론세스바예스는 롤랑의 노래와 관련된 것으로 넘쳐난다. 

샤를마뉴가 자신의 군대가 공격 당하는지도 모르고 체스를 두었을 때 사용했다는 아름다운 체스판을 볼 수 있다. 또한 샤를마뉴의 방이라고 알려져 있는 성령의 성당에는 롤랑이 죽어가며 자신의 칼을 부러뜨리려고 애쓰던 장소가 있고, 프랑크의 열두 기사와 전투에서 죽은 영웅들이 매장된 장소, 이바녜따 언덕에는 롤랑이 도움을 청하며 뿔나팔 올리판테를 불었던 거대한 바위, 골짜기 반대편의 발까를로스는 샤를마뉴가 체스를 두다가 도움을 구하는 뿔나팔 소리를 들었던 장소, 그리고 론세스바예스에서 팜플로나로 가는 길 위, 린소아인(Linzoain)이 끝나갈 무렵엔 롤랑과 그의 아내와 아들의 발걸음이 표시되었다는 거대한 돌이 보존돼 있다. 


▲ 다행히 비가 멈춰서 무난하게 자전거를 끌다가 타다가를 반복하며 내려가는데 타고 가는 것은 무리다. 만일 계속 타고 내려가려면 NA2033 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 내려가는 길목에는 부라질 순례객이 조난을 당해 사망한 위치에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 (사진 대체) 론세스바예스 초입에 있는 목재다리 밑 개천에서 진흙 투성이가 된 자전거와 신발을 30여분이상 열심히 세차를 한다. 손끝이 깨질듯이 아프고 시리다.


▲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에서 숙식을 하려고 계획 하였는데 ..
벌써 시간은 오후 4시인데 수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 앞에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물었드니 이미 번호표를 나누어 줘서 번호표 받은 사람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줄서 있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니 스탭이 오해를 하여 저지를 하기에 단지 세이요(sello)를 찍으러 간다고 하니 안내를 해준다. 이곳 최대 수용가능 인원은 강당과 마을 전체에 최대 60~70여명이란다. 또 다시 돌발 변수로 계획을 변경하여 스템프만 찍고나서 계속 진군을 할 수 밖에 없다.

 

 

  ▲ 잠시 론세스바예스 전투기념비를 둘러보고 

▲ 우측 건물이 론세스바예스의 산티아고 성당, 가운데 삼각 지붕의 성령경당 


▲ 유명한 산 아구스틴 경당  

 

이하의 글은 출발 전 준비한 자료인데 계획데로라면 오늘은 수비리에서 쉬어야 했으나 피레네에서 알바를 했기 때문에 론세스바예스에서 마무리 하려 했으나 계획을 변경하여 잠을 잘 수 있는 곳 까지 계속 라이딩을 해야 할 상황이다. 더구나 업친데 덥친격으로 론세스바예스를 빠져나오니 빗줄기 커지면서 불안해진다. 

 

■ 론세스바예스 둘러볼 곳

 => http://caminocorea.org/?page_id=733


ㅇ바리의 성 니콜라스 성당 (Iglesia de San Nicolas de Bari)

ㅇ린소아인(Linzoain) 끝자락 롤랑과 그의 아내와 아들의 발걸음이 표시되었다는 거대한 돌

ㅇ산따 마리아 왕립 성당 (Real Colegiata de Santa Maria)

ㅇ왕실 부속 성당 산따 마리아의 회랑 (Claustro de Real Colegiata de Santa Maria)

ㅇ성령의 소성당 (Capilla del Sancti Spiritus)

ㅇ성당 박물관 (Museo de la Colegiata)

ㅇ산 아구스띤 소성당 Capilla San Agustin

ㅇ산 살바도르 데 이바녜따 소성당 (Capilla San Salvador de Ibaneta)

ㅇ롤랑의 거석 (Monolito de Roldan) (Capilla San Agustin) 

ㅇ치스뚜(바스크 지방의 구멍 세 개짜리 피리) 

ㅇ소르시꼬(바스크 지방의 민요)

ㅇ 빰쁠로나에선 거리에서 열리는 엔시에로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

ㅇ‘마녀들의 밤’(Noche de las Brujas)

ㅇ메스키리츠 고개 ; 정상 비석에“여기에서 론세스바예스의 성모에게 구원을 기도한다”라는 문구가 있다. 

ㅇ린소아인 “롤랑의 발자국”

ㅇ에로 고개

ㅇ벤따 델 뿌에르또(Venta del Puerto)유적지

ㅇ부르게떼의 분위기는 빅토르 위고(Victor Hugo), 구스타보 아돌포 베케르(Gustavo Adolfo Becker),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등이 대표적. 

특히 헤밍웨이는 산 페르민의 도시 빰쁠로나의 소음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그의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집필.

ㅇ9월 가나도 축제(Feria de Ganado)

  

■■ 생장~(RoncesVlles론세스바예스,27km)~Zubri수비리(26km/53km

*마을: 뿌에르또스데시세Puertos de Cize,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 에스삐날Espinal, 수비리Zubiri


■ 에스삐날 Espinal통과 또는 상황에 따라 숙소예약

ㅇAlbergue Haizea(12€) +34 948 760 379 

 => http://www.refuge-orisson.com

ㅇIrugoienea(10€) +34 649 412 487 

 => http://www.irugoienea.com  

■ Zubiri 수비리 숙소예약 

ㅇAlbergue de Peregrinos de Zubiri(6€), +34 628 324 186

ㅇAlbergue Zaldiko(10€), +34 609 736 420 

 => http://www.alberguezaldiko.com

ㅇAlbergue El Palo de Avellano(15€),+34 666 499 175 

 => http://www.elpalodeavellano.com

 

 

▲ 브리게떼에서 비가 잠시 그쳐서 주변을 몇 컷 하고 계속 N135번 도로를 달려서 마을 마다 숙소를 알아보는데 대부분 문이 닫히거나 열린 곳은 만원사례다.  


▲ 론세스바예스~팜플로냐 까지 숙소를 찾지 못해 달리고 달려서 21시쯤 카티디널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숙소를 탐문했지만 결국 찾지를 못하였다.

 

1시간 이상을 알베르게 직원이 근처 10여 호텔에 전화하여 빈방을 체크해 보지만 축제연휴로 모든 호텔이 만원 ㅠㅠ

마지막으로 우린 소방서와 경찰서에 가서 잠자리를 구걸 하기 위해 밤길을 달리다가 50대의 한 아주머니를 만나 상황을 설명 했더니 그녀가 우리에게 던진 말은 Youre Lucky! 

그 말을 듣고 따라 갈 때 까지도 반신반의 했지만 그녀의 끈질긴 숙소 찾기 탐방은 계속 되었고 무려 10여곳을 찾아 다니다 한 호텔에서 소개를 받은 호텔이 너무 비싸고 유명한 호텔. 그 호텔은 바로 헤밍웨이가 어려서 성장했던 집, 지금은 호텔로 개조하여 팜플로냐의 유명한 관광호텔이 된 곳인데 5성급으의 Gran Hotel La Perla, 우리는 여기서 천신만고 뜻 밖에 천사 1호를 를 만나서 노숙을 면하게 되었는데 새삼 스페인 사람들의 지극한 친절과 열정을 다하여 도움울 주는 서비스 정신에 밤새 잠못이룰 정도로 감동하며 하느님의 목소리를 그녀를 통하여 듣고 또 듣는 체험을 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늦은 시간에 그녀와 함께 근처 바를 찾아 허기를 해결 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는 영어 선생님이었던지라 동네 학부형들과 친분이 넓었고 우리와 소통도 쉬웠던 것이다.


▲ Gran Hotel La Perla 호텔

한편 그동안 저의 건성건성한 외국인에 대한 길 안내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순례자나 여행객은 또 다른 천사가 필요 하다는 것을 뼈속까지 느끼는 훌륭한 경험이었다.

▲ Gran Hotel La Perla 앞에 위치한 카스티요 광장

 

■ 팜플로나 가는길 둘러볼 곳 

*마을: 이라야츠(Ilarratz)와 에스키로츠(Ezkirotz),에스키로츠,라라소냐,아께레따,이로츠,뜨리니닷 데 아레,부를라다

 => http://caminocorea.org/?page_id=903

ㅇ산따 루시아 소성당(Capilla de Santa Lucia) 

ㅇ시글로 14세 다리(Puente del Siglo XIV) 또는 도적들의 다리(Puente de Los Bandidos)라 칭함

ㅇ13세기 건축 성 리콜라스 성당

ㅇ그리스도 거룩한 변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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