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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4개국 자전거순례] (6) D+5day 팜플로나 ~푸엔테라레이나

[유럽4개국 자전거순례] (6) 4월/29일(일), D+5day 팜플로나 ~푸엔테라레이나

 

어제 밤 늦은 시간에 잠에 들었던 훌륭한 호텔에서 잠에 깨어나 하루 쯤 더 머물고 싶은 팜플로냐는 2000년 역사를 지닌 궁전, 성당 건축물과 갖가지 전설과 오래된 전통을 느낄 수 있다. 중세에 이베리아 반도를 가로지르는 로마 제국의 침략루트들이 만나는 전략적 도시이면서, 이베리아 반도와 갈리아를 잇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바라 왕국의 수도는 스페인을 프랑스로부터 지키기 위한 첫 번째 방어 거점이기도 했는데, 19세기 까를리스따(Carlistas) 전쟁의 배경이 현재 나바라의 수도인 팜플로나였다.   

▲ 헤밍웨이 젊은시절 모습의 사진이 호텔 여러 벽에 게시되어 있다.

팜플로나는 원래 나바라의 원주민이 살고 있던 곳, 이곳에 11세기부터 프랑스인과 유태인이 이주해 오면서부터 문화와 예술, 다양한 전통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도시가 된 것.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이 팜플로나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건축물과 예술의 기반을 만들었다. 

지금은 현대적인 도시가 된 팜플로나에는 엘 발루아르떼 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가야레 연극제(Teatro Gayarre) 처럼 1년 내내 중요한 문화 행사가 많이 열린다. 또한 어제 저녁에 만난 영어교사 천사1호와 같은 친절한 사람들과 환상적인 축제, 맛있는 음식 때문에 관광객이 넘쳐 흐른다

만일 우리가 7월6일~14일 사이에 왔더라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산 페르민 축제(Fiestas de San Fermin)는 카스티요 광장과 시청을 중심으로 이 골목길에서 구경을 하며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과 왁자지껄한 소란스러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을 텐데 ...

 


▲ 산사투리노 성당

 


▲ 나바라 박물관

 


▲ 박물관에 진열된 조각 작품
▲ QR코드를 스캔하여 폰에 팜플로나 앱을 설치하면 팜플로나 시내 유적 지도를 따라가면서 살펴볼 수 있다. 
▲ 산티아고 광장-로스 부르고스 광장-시청을 거쳐 시내를 조망 할 수 있는 성벽으로 올라간다.

 


▲ 우리가 돌아 본 팜플로나 투어 경로
  

우리가 당초 계획 했던 코스인 팜플로나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막달레나다리 옆에 나병환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다. 

도시나 마을의 입구에 나병환자를 위한 시설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렇게 교외에 병원을 두었던 이유는 주민들에게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순례자들은 프랑스 문(Portal de Francia)으로 도시에 들어오는게 보통이다. 이 문은 수말라까레기의 문(Puerta de Zumalacarregui)이라고도 불린다.  


▲ 팜플로나는 오랫동안 작은 마을 여러 개가 모인 형태로 구성돼 있었으므로 도시들의 도시라고 말할 수 있다. 마을들은 역사와 출신이 서로 달라서 대립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성벽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현재 도시 곳곳에서 보이는 구획이 나뉘어 있는 길은 이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가장 오래된 구역인 라 나바레리아(La Navarreria)는 고대 로마의 구획을 아직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산 사뚜르니노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6각형 형태를 하고 있으며 산 니콜라스 성당은 고딕 양식 특유의 직사각형 양 건축물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 아르강을 끼고 있는 팜플로나 도시의 중세의 성벽 (Murallas) 

 

16세기 적들로부터 팜플로나를 훌륭히 지켜주었던 방어막인 이 성벽은 펠리페2세가 건설했다. 5각형 형태의 튀어나온 수비 거점이 있는 이 성벽은 스페인에 남아있는 방어용 성벽 중에서 역사적인 의미 많은 유적이다. 이 성벽이 함락된 것은 역사상 단 한차례였다고 한다. 

1808년 2월 18일에 일어난 일이었는데, 함락되기까지 단 한차례의 발포도 유혈 사태도 없었다. 겨울이 되어 눈이 쌓이자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꾀를 내어 눈싸움을 하는 척 했고, 이 모습이 너무나 평화롭고 재미있어 보여서 이때 성벽을 방어하던 스페인 군사들이 이 놀이에 끼기 위해 성문을 열었다. 프랑스인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눈 속에 숨겨놓았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 무혈로 성벽을 함락했다. 

성벽 주변에는 현재 라 부엘따 델 가스띠요(La Vuelta del Castillo)라고 하는 근사한 공원이 있고 프랑스문이 있다. 



▲ 성벽 위에서 바라본 북쪽 전망


▲ 카테드랄 대성당은 유료라서 티켓을 구입 후 입장이 가능하다.  
▲ 폼페이우스가 로마시대 도시를 세워질 때 옛 시가지에 유명한 건축가 마태오의 동료 에스테반이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으나 14세기에 화재로 소실 되었다가 팜플로나 도시를 통일한 카를로스3세가 고딕양식으로 재건하여 현재는 그의 부부 무덤과 도시 유물들, 예술품들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성당에서부터 회랑으로 가는 입구는 암빠로의 문(Puerta del Amparo)이라고 하며 팀파눔(Timpano)엔 역동적이고 표현주의적으로 표현된 ‘성모의 영면(La ‘dormicion’ de la Virgen)’ 성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 기가 조각되어 있다.

▲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둘러 볼 수 없는 곳은 사진으로 안내 하고 있다.

▲ 사진으로 전시된 유물들을 둘러 본다. 
▲ 카를로스3세가 세운 카테드랄 산타마리아 모자상   
▲ 카테드랄 입구 


▲ 주교관 건물


▲ 산타마리아 성당 (3€ 입장료)


▲ 건너편 수도원 건물
 

성모상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 

어느 날 아침 아르가 강물 위에 이상한 물체가 둥둥 떠내려 왔다. 사람들이 이것이 성모상이라는 것을 알아내서 장대를 가지고 성모상을 강가로 끌어오려고 했으나 성모상은 이상하게 장대를 피해갔다. 밤이 되도록 성모상을 강물에서 꺼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마침내 지쳐서 강둑에 앉아 쉬고 있었다. 이때 산 뻬드로 수도원(Convento de San Pedro)의 아우구스티누스 회 수녀들이 강가로 다가와 성모상을 보고 놀라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성모상이 강가로 떠내려 와서 수녀들이 건져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멈춰 섰다. 이렇게 해서 수녀원으로 성모상을 가져가자 그때 병에 걸려 생명이 위태롭던 수녀원장의 건강이 회복되었고 이를 기리기 위해 이때부터 수녀원에서 이 성모상을 모셨다고 한다. 

  
▲ 각 유적 마다 앱을 다운로드 받아 유적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있어서 좋지만 한국어 지원이 안되어서 아쉽다.
 
▲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동상 앞에서 

 어네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이곳에서 집필하였다. 

 
▲ 예수회 설립자 산 이냐시오 로욜라 동상

 

성인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족의 귀족 가문에서 11남매의 막내로 출생했고, 기사가 되어 나바라의 태수였던 나헤라 공작의 군대에 입대하였다. 1521년 침공한 프랑스 군과 맞서 나바라의 팜플로나 성채를 수비하다가 포격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회복기간 동안 종교서적을 몇 권 읽었는데, 특히 작센의 루돌프가 쓴 『그리스도전』과 야코보 데 보라진느가 쓴 『성인열전』을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기사가 되어 활약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순례 여행을 떠났다가 도중에 인근의 만레사 동굴에 머물면서 1년 간 수도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신비 체험을 하고 소명을 받았다. 이후 그는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파리에 유학가서 늦게나마 신학공부를 했으며(1528-1535), 그곳에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신학 동지들을 만나 연구, 수도, 봉사, 교육,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예수회를 조직하게 된다.
 


▲ 나바라를 하나의 도시로 통합시킨 타코네라 공원에 있는 카를로스 3세 여왕상


▲ 시청 건물 


▲ 카스티요 광장에 있는 카를로스 3세 동상

 


▲ 산 리콜라스 성당 


▲ 비아나 광장(Plaza Príncipe de Viana)


▲ 문도 성당(Iglesia Cristiana La Luz Del Mundo)

 


▲ 산 페르민 성당(Parroquia de San Fermin)
 
▲ 산 페르민 성당 현관

 
▲ 산 레이문도 데 피트로 성당(Parroquia San Raimundo de Fitero)
 
▲ 성 요한 보스코 성당(Parroquia San Juan Bosco)

팜플로나에도 성 돈보스코 성당이 있어서 찾아갔다. 

  
▲ 돈보스코 성인이 아이들 사이에 둘러 쌓인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품이 인상적이다.
 
▲ 성 돈보스코 성당 전경  
▲ 시수르메리노 길로 접어드니 자전거 도로가 있다. 
▲ 산 세레도니오(San Emeterio San Celedonio) 성당
▲ 산 에메티오와 산 셀레도니오 성당 

 


▲ 시수르 메리노 마을을 벗어나서 ~

 


▲ 도심을 벗어나니 점점 들꽃이 많이 보이고, 노란 꽃들이 피어나 싱글럽다.  

 

 

▲ 비가 점점 많아져서 잠시 쉬면서 산타마리아 성당(Parroquia de Santa Maris de La Esperanza)을 둘러본다.  
▲ 마을을 벗어나 페르돈 고개로 오르는 길은 이제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 아직은 자전거를 타고 달릴만한 임도가 푸른 밀밭 사이로 수 많은 순례자들이 지나갔던 길이다. 
▲ 밀밭 사이로 페르돈의 성모 수도원 (Ermita de Nuestra Senora del Perdon) 옛건물이 보인다. 
▲ 밀밭 사이에는 아직 작물을 심지 않은 황토빛 들판이 드넓게 펼쳐진다.  
▲ 경사도가 있고 자갈이 깔린 임도 오르막이라 발렌티노가 끌바로 뒤를 따라온다. 
▲  왼쪽의 언덕에는 갈라르(Galar)라는 마을이 있으며 이를 지나쳐 작은 다리와 저수지를 넘어가면 오른쪽으로 구엔두라인(Guendulain)의 별장지대가 나온다. 마을 뒤로 저 멀리 페르돈 고개 능선 언덕의 풍력 발전 프로펠러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보인다.

여기에서부터 도보 순례자들은 부지런히 걸어도 2시간 반이 걸리므로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다음 마을인 사리끼에기로 오르는 좁은 도로는 좌 우로 넓게 펼쳐져 있는 넓은 밀밭이 순례자의 마음을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 페르돈 고개를 향해 오르며 지나온 임도 뒤를 돌아 보니 좌우에 밀밭이 싱그럽기 그지 없다.
  
▲ Koks France Belgie 순례자 위령탑이 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며~   


▲ 비가 게인 창공에는 무지개가 보이고 그 아래로 지나온 갈라르 마을이 보인다.
 
▲ 페르돈 고개로 오르는 비좁은 비탈 임도에는 조금 전에 내린 우박이 쌓여 있다. 
▲ 진창을 요리 조리 피해 보지만 오늘도 타이어는 진흙투성이고 드디어 페드론 고개에 올라서 내려다 본 북동쪽 전망 
 
▲ 페르돈 고개 정상에 세워진 조망 안내판
 
▲ 페르돈 고개에서 내려다 본 남쪽 전망 
▲ 페르돈 고개 정상에 있는 빈센테 갈베테(Vincente Galbete) 설치 작품  ‘당나귀를 타고 가는 12명의 순례자’
힘겹게 올라간 정상에서 뜻밖에도 순례자들의 조각상을 만났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조각상이 있을 수 있을까? 놀랍다. 왜 12명일까? 열 두 제자를 의미하는걸까! 

▲ 페르돈 고개에 있는 안내판

  
▲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on) 고도 750m의 천년이 넘게 헤아릴 수 없이 수 많은 사람이 이 "용서의 언덕"을 넘으면서 누굴, 무얼 용서 했을까?
그리고 난 이번 순례에서 누구를 용서를 하며 두 달간을 달려야 하는가! 

▲ 어느새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며 페르돈 고개 정상에 있는 빈센테 갈베테(Vincente Galbete) 설치 작품도 하늘 빛에 따라 모습이 변한다. 
 


▲ 기상이 자주 변하니 서둘러 페르돈 고개 내리막 중간 쯤에 이르니 두 갈래 길을 안내 한다. 자전거 순례길과 도보 순례길이다. 우리는 우측 비시그리노 길로 향한다.


▲ 페르돈 고개의 긴 내리막 길에 갈린 자갈 길은 잠시라도 길 바닥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 어렵게 밀바 끌바를 해서 고개를 내려와 개천에서 진흙들을 싰어내는 작업에 허리가 아프다. 평지 임도를 달리다 보니 성모상이 있다. 

▲ 오바노스 마을에 이르렀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당이다. 오바노스 중세문을 지나서~

 

여름에 열리는 축제 ‘오바노스의 신비’는 스페인 관광 축제 중 하나이며 정식 명칭은 ‘성 펠리시아의 순교와 성 기옌의 회개’(Del Martirio de Santa Felicia y la Penitencia de San Guillen)이다. 이 축제의 기원에는 슬픈 전설이 남아있다. 

14세기에 오바노스에 아끼따니아 공작에게는 펠리시아와 기옌이라는 젊은 남매가 있었다. 어느 날 딸인 펠리시아는 종교적 소명을 받고 나바라의 영지인 에구에스 계곡에 있는 아모까인으로 은둔해 들어갔다. 그러자 오빠인 기옌이 동생을 데리러 그곳까지 쫓아갔는데, 펠리시아가 계속해서 돌아갈 것을 거부하자 분노하여 그녀를 죽였다. 그 후 기옌은 회계하여 신의 용서를 구하며 산띠아고까지 순례를 떠났고 마침내 수사가 되어 오바노스 근처의 아르노떼기에서 여생을 울면서 살며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도와주었다. 


 

▲ 푸엔테라레이나 십자가 성당(Iglesia de Crucifijo)에 도착했다. Y자 모양의 십자가가 유명하다, 고딕 십지가는 14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리스도 얼굴과 V자 모양의 팔, 몸에서 고통이 잘 들어난다고 해서 템플기사단의 상징으로 쓰였다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중세 독일의 순례자들이 그들의 도시에서 창궐했던 전염병이 사라진 것에 감사하며 십자가상을 들고 순례했다고 한다. 그런데 뿌엔떼 라 레이나에 이르자 십자가가 움직이지 않고, 아무도 십자가를 옮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십자가상을 이곳에 두기로 결정하고 14세기부터 십자가 성당에 소장되어 있다. 또 다른 전설은 어느 순례자가 까미노를 걷던 중 병이 나서 뿌엔떼 라 레이나에 머물게 되었고 같이 길을 떠난 순례자들은 산띠아고까지 순례를 계속했다고 한다. 

마을에 있던 수도원의 수사들이 극진하게 병든 순례자를 돌봐줬고 산띠아고에서 돌아오던 동료 순례자들이 이에 감사하여 이 십자가를 만들어 선물을 주었다고 한다. 

 


▲ 산 페드로 성당 "작은 새의 전설"로 잘 알려진 작은 새의 동정녀 상이 있다.
14세기에 만들어진 신랑이 하나 인 중세의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네 개의 소성당이 증축되었다. 세 개의 구획으로 나뉜 신랑의 끝은 다각형으로 되어 있고 단순한 고딕식 아치로 덮여 있다. 내부엔 바로크 양식 제단화가 있고 측면의 제단에는 초리의 성모상이 있다. 

 


▲ 내리던 비도 그치고 여왕의 다리 (Puente de Puente la Reina)에 이르렀다.
 

▲ 산티아고 성당(Parroquia de Santiago San Pedro) 뒤쪽으로 무지개가 선명하게 빛이난다. 하느님의 표징을 두 번이나 보게된다! 
▲ 여왕의 다리 (Puente de Puente la Reina) 남쪽에서 바라 본 아름다운 무지개
 


▲ 여와의 다리 건너 언덕 위에 Camping El Real( Albergue) 가는 길 

 

■■ 팜플로나 ~Pueente la Reina(푸엔테라레이나)

* 마을:시수르 메노르 Cizur Menor,사리끼에기 Zariquiegui, 우떼르가 Uterga, 오바노스 Obanos,푸엔떼 라 레이나 Puente la Reina

 

■ 푸엔테라레이나 숙소들 

 => http://caminocorea.org/?page_id=5272

ㅇAlbergue de los Padres Reparadores,+34 948 340 050,5€(예약불가)

ㅇAlbergue Jakue, +34 948 341 017,10€

 => www.jakue.com (예약가능)

ㅇAlbergue Santiago Apostol, +34 948 340 220,8€

 

■ 푸엔테라레이나 가는 길 둘러볼 곳

 => http://caminocorea.org/?page_id=1058

 

ㅇ샤를마뉴와 무슬림 군대의 우두머리 거인 아이골란도(Aigolando) 사이의 전투에 대한 전설, 1대 1, 20대 20, 100대 100의 싸움

ㅇ성 미구엘 성당

ㅇ성 에메떼리오와 성 셀레도니오 성당 (San Emeterio y San Celedonio)-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시골 성당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당의 정면에는 세 개의 아치가 있고, 기둥 위에는 잎사귀 무늬로 장식된 주두가 있으며 팀파눔엔 키로 문양

ㅇ레니에가 분수 전설 - 산띠아고를 향하던 목마른 순례자에게 악마가 다가왔다. 악마는 순례자에게 하느님과 성모님 그리고 사도 야고보를 부정하면 물을 주겠다고 유혹 했다. 그러나 순례자가 이 유혹을 참고 악마를 피하자 사도 야고보 나타나 그 지팡이로 땅을 내려쳤고, 그 자리에서 신선한 물이 솟는 샘솟았다.

ㅇ사도 안드레아 성당 (La Parroquia de San Andres) - 성당의 내부에 12,13세기에 제작된 성모상

ㅇ페르돈의 성모 수도원 (Ermita de Nuestra Senora del Perdon)

ㅇ페르돈 고개의 빈센테 갈베테(Vincente Galbete) 설치작품

ㅇ성모승천 성당 (Iglesia de la Asuncion)

ㅇ성 니골라스 성당

ㅇ산 에스떼반 성당 (Iglesia de San Esteban)

ㅇ산따 마리아 데 에우나떼 성당 (Iglesia de Santa Maria de Eunate)

ㅇ포도주 - 팔라시오 데 무루사발(Palacio de Muruzabal; 무르사발의 궁전)라벨

ㅇ‘성 펠리시아의 순교와 성 기옌의 회개’(Del Martirio de Santa Felicia y la Penitencia de San Guillen) 축제

ㅇ세례자 요한 성당 (Iglesia de San Juan Bautista)

ㅇ뿌엔떼 라 레이나 순례자 종 소리- 40회

ㅇ십자가상 성당 (Iglesia de Crucifijo)

ㅇ여왕의 다리 (Puente de Puente la Reina) / 초이성모상

ㅇ산띠아고 성당 (Iglesia de Santiago) - 산띠아고 벨차(Santiago Beltza; 바스크어로 검은 산띠아고)

ㅇ산 뻬드로 성당 (Iglesia de San Pedro)-초이성모상

ㅇ순례자 기념물 (Monumento Peregrino)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이 만나는 푸엔테라레이나로 들어가는 입구에 순례자를 형상화한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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