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소양로 성당

Korea Martyrs Shrine 한국의 순교 성지

춘천 소양로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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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략설명 콜리어 신부 살신성인 기념성당
 지번주소 강원도 춘천시 소양로 2가 78-1 
 도로주소 강원도 춘천시 모수물길22번길 26
 전화번호 (033)255-2117
 팩스번호 (033)242-2117
 홈페이지
 전자메일 ccsoyangro@catholic.or.kr
 문화정보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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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된 성당 정문.소양로(昭陽路) 성당은 춘천교구 소속 본당으로 1949년 1월 죽림동(竹林洞)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으며, 주보는 성 파트리치오(Patricius)이다.
 
8.15 광복 무렵 죽림동 본당 관할이었던 소양로 지역의 신자수가 그 후 나날이 늘어나자 사목적 차원에서 본당 설립이 시급히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1949년 1월에 소양로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콜리어(A. Collier, 고) 안토니오 신부가 부임하였는데, 설립 당시 신자수는 약 250명이었고, 이때 발산 공소와 금산 공소가 소양로 본당 관할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교구장 퀸란(T. Quinlan, 具仁蘭) 몬시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복사 김 가브리엘과 함께 생포되어 6월 27일 인민군에 의해 사살되고 말았다. 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 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2006년 원형 보존작업을 통해 말끔하게 단장하고 2009년 중창 축복식을 가진 성당의 제대.집사 겸 복사인 김 가브리엘과 밧줄에 묶여 끌려가던 콜리어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인민군 병사는 경고 한 마디 없이 총을 난사했다. 그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안고 쓰러진 콜리어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콜리어 신부의 순교 이후 한국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소양로 본당에는 신부가 파견되지 못했다. 그 후 휴전이 되면서 1954년 8월에서야 서울 대신학교(현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던 선종완(宣鍾完) 라우렌시오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렇듯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으로 인하여 소양로 본당은 설립된 지 7년 만에 성당을 마련할 수 있었다. 즉 1956년 4월에 3대 주임 버클리(J. Buckley, 부) 야고보 신부가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 3일 국내외 여러 은인과 교우들의 도움으로 9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반원형 평면 양식으로 제대를 중심으로 신자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있는 성당 내부.성당 건축을 진두지휘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버클리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했다. 밖에서 보면 원을 반 뚝 잘라 놓은 반달형이다. 내부는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있다. 춘천교구장 퀸란 몬시뇰과 버클리 신부가 흔치 않은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한국 전쟁 중에 소양로ㆍ묵호ㆍ삼척 성내동에서 선교하던 신부들이 공산군에게 죽음을 당하자 그들의 순교혼이 서려 있는 터에 기념성당을 짓기로 한 것이다.
 
성당 건립 후로도 계속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부임하다가 1967년 9월 15일 풍수원(豊水院) 본당의 이응현(李應鉉) 티모테오 신부가 6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부터 한국인 사제들이 본당 사목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각종 신심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하여 본당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6.25 전쟁 중 끝까지 본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다 체포되어 자신을 희생해 신자를 살린 콜리어 신부를 기억하게 하는 춘천교구 사적비.소양로 성당은 건축기법에 있어서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히 혼합된 형태이다. 아치형 버팀벽, 천정 몰딩 등은 교회건축에서 흔히 사용되는 고전적 기법이다. 반대로 외형을 반원형 평면으로 하고, 실내외 의장과 제단 주변을 소박하게 처리한 점은 현대건축이 추구하는 단순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또 원형창 유리화를 제대 십자가 조형과 일치시키고, 보존상태가 양호한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아 2005년 4월 15일 문화재청으로부터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소양로 성당은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강원도 및 춘천시의 도움을 받아 원형 보존 작업을 시행하였다. 이음매가 낡은 함석지붕과 창호를 보수하고 없어졌던 성가대와 벽제대를 복원했다. 붉은 카펫이 깔려있던 제단을 나무널판으로 바꾸고 목조 난관으로 그 둘레를 둥글게 감았다. 성전 외벽을 두르고 있던 전선을 모두 지하로 넣어 원형을 최대한 살려 2009년 5월 3일 춘천 교구장 장익 주교의 주례로 중창(重創) 축복식을 가졌다. 또한 춘천교구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콜리어 신부의 순교혼을 기억하고자 소양로 성당을 살신성인 기념성당으로 명명했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7권과 평화신문, 2007년 2월 11일, 김원철 기자의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1년 11월 8일)]
광복 무렵 죽림동 본당 관할이었던 소양로 지역의 신자수가 늘어나자 1949년 1월 소양로 본당이 설립됨과 동시에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콜리어 신부가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 신부는 교구장 퀸란 몬시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복사 김 가브리엘과 함께 생포되어 6월 27일 인민군에 의해 사살되었습니다. 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 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성당 마련이 늦어지다가 1956년 3대 주임으로 부임한 버클리 신부가 성당 신축 공사에 착수하여 같은 해 9월 3일 9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했습니다. 버클리 신부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반원형 평면 양식을 택해, 제대를 중심으로 회중석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져 나가도록 했습니다. 소양로 성당의 이러한 건축기법은 고전적 요소와 현대적 요소가 적절히 혼합된 형태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제 제16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그 후 소양로 성당은 2006년부터 문화재청과 강원도 및 춘천시의 도움을 받아 원형 보존 작업을 시행했습니다. 이음매가 낡은 함석지붕과 창호를 보수하고 없어졌던 성가대와 벽제대를 복원했으며, 붉은 카펫이 깔려있던 제단을 나무널판으로 바꾸고 목조 난관으로 그 둘레를 둥글게 감았습니다. 성전 외벽을 두르고 있던 전선을 모두 지하로 넣어 원형을 최대한 살려 2009년 5월 중창(重創)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또한 춘천교구는 양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은 콜리어 신부의 순교혼을 기억하고자 소양로 성당을 살신성인 기념성당으로 명명했습니다.
미사시간
미사구분 요일 시간 기타사항
주일미사 07:00  
10:30  교중미사
19:30  
평일미사 06:00  
19:30  
10:00  
19:30  
10:00  
10:00  매월 첫주 성모신심미사
16:00  어린이미사
19:30  특전미사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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