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돈보스코 유년기 유적지 - 꼴레 돈보스코(베키의 생가, 기념성당,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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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돈보스코 유년기 유적지 - 꼴레 돈보스코(베키의 생가, 기념성당,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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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레 돈 보스코, 매주 7만여명 순례객 찾아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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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1. 꼴레 돈 보스코 전경. 왼쪽이 돈 보스코 대성당이고, 오른쪽이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기술학교다.
2.돈 보스코가 2살부터 16살때까지 살던 옛 집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순례단.
3. 돈 보스코의 이복형 안토니오가 살던 집 터에 세워진 도움이신 마리아 소성당. 오른쪽 건물이 형 요셉이 살던 집이다.

 

돈 보스코의 영적 스승,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의 성지를 돌아보고 순례단이 향한 곳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지방 중심 도시인 토리노에서 차로 1시간여 떨어져 있는 베키. 돈 보스코가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이다. 오늘날 이 곳에는 돈 보스코의 생가, 기념성당, 박물관 등으로 꾸며진 '꼴레 돈 보스코'(이탈리아어로 '돈 보스코 언덕'이라는 뜻)가 세워져 있다.

 순례단이 189년 전 돈 보스코가 태어나 살았던 과거로 여행하듯 언덕을 천천히 올랐다.
1815년 8월16일 아버지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마르가리타 오키에나 사이에서 태어난 요한 보스코가 16살까지 살았던 곳이다.
요한은 여기 한 농가의 돌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머슴으로 살던 집으로 보스코가 태어난 자리에 현재 '돈 보스코 대성당'이 우뚝 서있다.

 순례단은 대성당에 앞서 요한이 유년기를 보낸 집부터 순례했다.
요한이 두 살이 채 되기 전 갑작스레 남편을 잃은 엄마 오키에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자 농가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당시 남편 프란치스코가 마굿간으로 사용하려고 사둔 허름한 돌집이었다. 현재 이곳은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쓰러질 듯 서 있는 돌집 앞에 서자 어린 요한 보스코가 생활하던 모습이 마치 흑백 영화처럼 펼쳐지는 듯 했다.
요한은 여느 시골 농가 아이들처럼 들판을 뛰놀기도 하고, 가난했지만 엄마 오키에나의 농사일을 도우며 엄마의 포근한 품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눈에 아른 거리는 영상을 뒤로 한채 돌집에 들어섰다.
추운 겨울 요한이 언 몸을 녹이던 작은 마굿간, 온 가족이 모여 숙식을 해결하던 방 겸 부엌을 지나 조심스레 위층으로 올라가자 차가운 돌벽에 자그맣게 난 창 사이로 밝은 빛이 들어오는 골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요한이 사용하던 방이다.

 그는 아홉살 되던 해 여기서 자신의 일생을 예견하는 잊을 수 없는 꿈을 꾼다.
하루종일 어머니를 도와 농사일을 한 탓인지 저녁기도를 하곤 이내 잠자리에 든 요한은 파아란 잔디에 예쁜 꽃이 피어있는 집 앞 정원에서 조잘대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과 다른 한쪽에서 두 패거리 아이들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한다.
평소 불의를 보면 결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던 요한은 패거리에게 다가가 준엄하게 꾸짖었고 패거리와 싸움이 붙고 만다.

 이 때 눈부시게 하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나 요한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주먹으로는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 온유와 친절로 해야 한다." 흠칫 놀라는 요한에게 이번에는 어떤 여인이 나타나 팔로 감싸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는 것을 보렴." 요한이 보니 아이들이 사나운 짐승 때로 변해 으르렁거리다가 그 여인이 손을 내밀자 순하디순한 양으로 변하고 말았다.

 겁에 질린 요한이 울음을 터뜨지자 여인은 "이곳이 너의 일터다. 겸손하고 꿋꿋하고 강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고, 요한은 꿈에서 깨어났다.

 요한은 이때부터 자신의 소명을 깨닫고 성모님의 도움에 의지하며 한 평생을 살게 된다.
요한이 꿈 속에서 보았던 집 앞의 정원 그 자리에는 지금 요한의 꿈을 그린 기념탑이 서 있다.

 순례단은 돌집에서 내려와 요한의 형 요셉이 결혼한 후 살던 집터에 세워진 로사리오 경당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곳은 후에 사제가 된 요한(돈 보스코)이 자신이 돌보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 쉬던 장소이자 애제자였던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을 처음으로 만난 자리이기도 하다. 잠시 경당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는 순례단에게 돈 보스코의 수단 자락에 매달려 조잘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또 발길을 옮긴 순례단은 경당 바로 옆에 있는 도움이신 마리아 소성당으로 자리를 옮겨 미사를 봉헌했다.
요한의 이복형 안토니오가 살던 집터에 세워진 성당으로 돈 보스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전세계 살레시오회원들이 힘을 모아 지은 것이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온 순례단은 깜짝 놀랐다.
꼴레 돈 보스코를 찾은 수많은 순례객 때문이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끊이질 않는 행렬을 보며 안내 센터를 찾아 "얼마나 이곳을 찾느냐"고 묻자, "매주 7만여명이 찾아 기도하고 간다"고 했다.

 돈 보스코가 청년기와 신학생 시절을 보낸 '키에리'로 이동하기 전에 휴식을 취하다 꼴레 돈 보스코를 찾은 이탈리아 여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다는 프란체스카(26)씨는 "200여년 전 인물이지만 이 곳을 찾을 때마다 늘 새롭고 신선한 느낌으로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 있는 돈 보스코를 만나게 된다"면서 "온유와 겸손, 친절로 가난한 아이들의 아버지가 됐던 돈 보스코의 정신을 이어가는 다리가 되는 삶을 살고 싶어 가끔 순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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