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31. 잇닿은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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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31. 잇닿은 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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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청 감시망 피해 신자 가옥 담장 사이에 비밀 통로를 만들다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31. 잇닿은 담장

2020.12.20발행 [15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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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완숙 골룸바가 왕족인 은언군 부인 송씨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탁희성 화백 그림.



초기 교회의 공간 운영법

1795년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 이후, 천주교 집행부는 부쩍 촘촘해진 포도청의 감시망에서 모임 공간과 조직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꼈다. 말단의 세포 조직은 잘라내면 그만이었지만, 신부나 핵심 조직의 노출은 자칫 조선 교회 전체의 와해를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포도청에서는 끊임없이 간자(間者)를 풀어 비선(秘線)에 닿음으로써 천주교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그럴수록 조직의 은폐와 접선, 공간 위장을 위한 방법도 강화되었다. 포교를 하려면 불특정 다수에게 손길을 내뻗어야 하고, 이것은 자칫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 위험 속으로 자신들을 통째로 몰아넣는 일이기도 했다. 특별히 1795년 이후로는 만에 하나 신부가 체포되는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고, 극소수의 검증된 신자들만이 첩보 작전을 수행하듯이 비밀리에 신부와 접촉할 수 있었다.

인구가 밀집하여 외부의 시선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서울의 경우는, 규모가 작거나 동족 부락의 성격이 강한 지방보다 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신자들은 아래 윗집으로 담을 사이에 두고 연이어 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몇 집이 얼려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으면, 무엇보다 출입에 외부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비상시에는 연결된 비밀 통로를 통해 급히 피신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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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학징의」에 수록된 윤운혜 공초 기록.


「사학징의」 중 윤운혜의 문목(問目)에는 “지아비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와, 기꺼이 사학의 소굴이 되어, 접옥연장(接屋連墻) 즉 집이 맞붙고 담장이 잇닿은 것이 모두 사학하는 자들의 집이고, 문호상통(門戶相通) 곧 대문이 서로 통해 밤낮으로 뒤섞여 왕래하니” 운운한 대목이 보인다. 천주교 신자들이 이웃으로 모여 살며 담장을 사이에 두고 문을 통해 왕래하였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기찰포교에게 적발될 위험이 있으면, “이웃한 서너 집의 요서(妖書)와 요물(妖物)을 거두어 모아서, 전부 임조이(任召史)의 집에다가 감추어 두었다”고 썼다. 임조이는 윤유일의 숙부 윤현(尹鉉)의 아내였다. 이들은 조직의 보호를 위해 한 구역을 블록화해서 체계화된 비상 방호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었던 셈이다.

또 윤운혜의 남편 정광수 바르나바는 1799년 아내 윤운혜와 함께 상경하여 서울 벽동(碧洞)에 집을 구해 이사한 뒤, “설법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몇 칸의 방사(房舍)를 빈터에다 정밀하게 얽어 지어, 매번 무리들을 모아 날마다 강습하였다”고 했다. 공초에서는 “1799년 서울의 벽동으로 이사 와서 최해두(崔海斗, 1668~1740)와 조섭(趙)의 집과 이웃에 살면서 대문과 담장이 서로 통하였고, 정사(精舍)를 얽어서 첨례하는 장소로 만들었다”고 자백했다.

이때 안국동 살던 약방 주인 손경윤(孫敬允) 제르바시오가 첨례 공간의 도배까지 맡아서 해주었다. 정광수 내외는 새로 이사한 벽동 집의 빈터에 새로 예배용 건물을 지었고, 그 아래 윗집에는 천주교 신자인 최해두와 조섭이 살고 있었으며, 도배 등 공간 내부 인테리어를 당시 신도 조직에서 역할을 맡아서 함께 진행했다. 그러니까 그 집은 정광수 개인의 것이 아니라, 조선 천주교회의 공적 자산이었던 셈이다.

가운데 정광수의 집은 천주교 집회가 열려도, 들어오는 출입구는 여러 곳이고, 세 집은 담장으로 연결된 문이 따로 있어, 외부인이 볼 때는 특별히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 구조였다. 집과 집 사이의 연결통로는 외부인의 시선을 엄폐하고, 비상시 탈출 통로로 활용되기도 했다.



담장 사이의 비밀 통로


달레의 「조선천주교회사」에 정조의 서제(庶弟) 은언군 이인(李)의 양제궁(良宮), 또는 폐궁(廢宮)으로 불린 공간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당시 이 집에는 은언군의 부인 송씨와 그녀의 며느리이자 아들 이담(李湛)의 부인인 신씨가 살았다. 두 사람은 1791년경 천주교에 입교했다. 천주교 내부에서조차 역모와 관련된 은언군 집안의 두 여자가 재앙의 근원이 될 것이라 하여 이들과의 접촉을 꺼렸다.

강완숙 골룸바만이 겁내지 않고 두 왕족을 보러 그 집을 자주 출입했고, 뒤에는 주문모 신부를 그 집에 모셔가서 성사를 받게 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은 이른바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왕가의 두 여인은 본명이 모두 마리아였다. 신앙 또한 대단히 열심이어서 그녀들이 부리던 종도 여럿이 입교했고, 두 사람은 뒤에 명도회에도 가입하여 활동했을 정도였다.

달레의 기록은 이렇다. “그들은 신부를 궁에 모셔 들이는 것을 기뻐했다. 홍익만 안토니오의 집이 바로 붙어 있었다. 신부가 거기 있을 때는 담에 비밀리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그 집과 왕래할 수 있게끔 떨어진 방에 숨어 있었다.”

신부는 그 집 대문을 통해 들락거리지 않았다. 옆집으로 슬며시 들어가 별채에 숨어 있다가 인적이 완전히 끊긴 뒤에 담으로 연결된 비밀 통로를 통해 들어갔다. 왕가 두 여인의 신앙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완숙은 그 옆집을 매입해서 연결 통로까지 마련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왜 하필 홍익만이었을까? 강완숙의 아들 홍문갑이 그의 사위였다. 당시 천주교도 사이의 인적 네트워크는 물샐 틈 없이 촘촘했다.

도심에는 여러 집을 연결 지어 블록화했다. 여의치 않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공간을 골랐다. 반촌 중에서도 가장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있었다는 김석태의 집이 그랬고, 내부를 중국식으로 꾸민 천주당을 차려두고 주문모 신부를 모셨던 종로의 계산동(桂山洞) 깊은 골짝에 자리한 최인길의 집이 그랬다. 떨어져 있어야 바깥의 관심을 차단할 수 있었고, 저들의 접근을 이쪽에서 먼저 알 수가 있었다.



주문모 신부의 은신술

1795년 5월 11일, 한영익의 밀고를 통한 주문모 체포 작전이 실패하고, 윤유일, 지황, 최인길이 의금부에 끌려가서, 당일 자취 없이 형을 받아 죽은 뒤, 조선 정부는 주문모 신부의 체포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가 중국인 신분이었기에, 자칫 이 문제는 중국과 외교 문제로 비화할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그에 대한 수배와 추적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정조는 쥐도 새도 모르게 그를 체포해 덮을 생각이었다.

포도청에서는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했지만, 천주교도들의 신부 보호를 위한 필사적 노력에 가닿지는 못했다. 「벽위편」에 당시 우포도대장 이해우(李海愚, 1760~1832)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해우가 연부(蓮府), 즉 장용영(壯勇營)에 있으면서, 왕명을 받들어 사학의 무리를 자세히 조사하며 주문모를 기찰하여 잡으려 한 지가 벌써 4, 5년이 되었다. 그간 단서를 많이 얻어 주문모를 거의 잡을 뻔한 기회가 여러 차례였지만, 혹 부인의 가마를 타고, 혹은 상복을 입고, 정처 없이 거처를 자주 옮기는지라, 매번 팔을 스치며 지나가면서도 놓쳤다.”

1795년 실포 이후 결정적인 순간에 간발의 차이로 번번이 체포에 실패했다는 이야기다. 주문모 신부를 붙잡으려는 쪽과 지키려는 측 쌍방간에 필사적인 두뇌 싸움이 치열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시작되어, 당시 책임자가 이해우를 찾아가서 자문을 청했을 때, 이해우는 말없이 「염문기(廉問記)」란 제목의 서류 한 뭉치를 내어주었다. 그 안에는 그간 자신들이 수집한 천주교 신자 조직에 관한 정보와 탐문 실패의 증거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가 제공한 이 고급 정보들이 신유박해 당시 천주교 조직 와해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중간 거점의 존재


박해의 불길이 점차 거세지면서, 천주교도들은 고정 거점이 노출되었을 경우 급하게 피신할 만한 장소를 도처에 마련해두어야 했다. 교계 중심 인물들의 집은 이미 감시망 안에 포착되어 있었다. 드러나지 않은 중간 거점들이 곳곳에 필요했다.

「사학징의」 중 김계완(金啓完)은 공초에서 “올해(1801년) 2월 초에 나라의 금지령이 지극히 엄한지라 저는 황사영, 이용겸 등과 함께 도피하여 용호영 안에 있는 사학하는 매파(媒婆) 김연이(金連伊)의 집에서 유숙했습니다”라고 했다. 검거조직의 턱밑에서 이들의 동태를 한눈에 보면서 이들은 숨을 죽인 채 한동안 숨어 있었다. 이른바 허허실실에 해당하는 움직임이었다.

다시 검거망이 좁혀 오자 김계완 등은 동네 안 돈녕부 근처의 우물이 있는 대장장이 최가네 집에서 10여 일 은신했고, 다시 반촌에 갔다가, 계동으로 계속 거처를 옮겨가며 숨어지냈다. 이후 그는 앞집에 살며 자신을 포교했던 과부 윤씨의 도움으로 아현의 활 만드는 한성호의 집 뒷방에 세를 들어 숨어 살았다. 이 과정에 다시 소공동의 필공(筆工) 곽정근과 동구 안 최가, 재동 사는 곽정근의 스승인 이가 등의 존재들이 잇달아 거명되고 있다. 손경윤 또한 공초 과정에서 동막의 처족 과부 태씨(太氏)의 집과 연서(延曙) 촌가, 아현 최봉득의 집, 편자동에 사는 여종 판례의 집 등의 중간 거점들을 계속 노출시켰다.

이렇듯 도심의 곳곳에 신자의 가옥이 세포 조직으로 활동하고 있었고, 이들은 지도부의 검거를 막기 위해 며칠 간격으로 거처를 옮겨가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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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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