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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aminoKorea 까미노코리아 &amp;gt; After Pilgrimages &amp;gt; Global Pilgrimag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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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aminoKorea 까미노코리아 &amp;gt; After Pilgrimages &amp;gt; Global Pilgrimage</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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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기 1편- 르 퓌 앙블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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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LG V30과 함께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기 1편- 르 퓌 앙블레</p><p><br />

까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순례길이다. </p><p>프랑스 남부의 국경 마을인 생장 피에르 포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예수의 12제자 중 성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800킬로미터를 걸어가는 길이다. </p><p>중세 시대부터 가톨릭 성지 순례길로 잘 알려진 까미노 프란세스, 즉 프랑스 루트는 현재 순례자들은 물론, 도보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가장 인기 있는 스페인의 순례 길이다.</p><p> </p><p>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RYm9sDOZ_67b9ba5d8581cbd3ae9cc9929a95b4fa2c4032c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RYm9sDOZ_67b9ba5d8581cbd3ae9cc9929a95b4fa2c4032c7.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RYm9sDOZ_67b9ba5d8581cbd3ae9cc9929a95b4fa2c4032c7.jpg" alt="프랑스 남부에서 출발하는 순례길 풍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br />

&lt;프랑스 남부에서 출발하는 순례길 풍경&gt;
</p><p> </p><p>
그러나 스페인에만 순례 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되어 있는 여러 루트의 순례 길이 있다. </p><p>그중 하나가 프랑스 남부 소도시 르 퓌 앙블레(Le Puy En Velay)에서 꽁끄(Conques)로 이어지는 GR65 일명 르 퓌 (Le Puy) 길이다. </p><p>특히 중세 시대에는 유럽 전 지역의 순례자들이 르 퓌 앙블레로 집결한 후 스페인 산티아고로 향하는 출발지였다고 한다. </p><p>나는 이번 순례길이 처음이었다. 나 또한 처음 경험하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로 향하는 첫걸음은 역사적인 의미가 충만한 순례의 첫 출발지인 르 퓌 앙블레로 정했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yMzixDN2_21c0d155a282d476c2092874c68c9d0a1c8ffce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yMzixDN2_21c0d155a282d476c2092874c68c9d0a1c8ffce1.jpg" alt="까미노 프란세스와 프랑스의 세계문화 유산 지도로 지도에 표기되어있는 오렌지 라인과 선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로 가는 길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class="img-tag "/></a></p><p>&lt;까미노 프란세스와 프랑스의 세계문화 유산 지도로 지도에 표기되어있는 오렌지 라인과 선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로 가는 길을 표시해 놓은 것이다. &gt; </p><p> </p><p>르 퓌 앙블레 (Le Puy En Velay)에서 순례를 시작하면 생장 피에르 포르 (St Jean Pied de Port)까지 800킬로, 다시 생장 피에르 포르에서 도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800킬로를 더하면 총 1,600킬로미터이다. </p><p>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xZgKQpqa_f2e2dd8d567047a6a7b8e877f8ff596bfde10685.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xZgKQpqa_f2e2dd8d567047a6a7b8e877f8ff596bfde10685.jpg" alt="르 퓌 앙블레 도시 전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p><p> </p><p>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sVl1xGgN_bf1eea1600102b1b51f1600b0c5012b71e45bc04.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sVl1xGgN_bf1eea1600102b1b51f1600b0c5012b71e45bc04.jpg" alt="르 퓌 앙블레 도시 전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 </p><p>
&lt;르 퓌 앙블레 도시 전경&gt;</p><p> </p><p>

까미노 프란세스를 걷기 위해 우리나라 순례자들은 대부분 적게는 3~4개월 혹은 6개월 이상 준비한 후 단숨에 걷는 반면, 유럽인들은 평생에 걸쳐 순례길의 거리를 조금씩 늘려간다고 한다. </p><p>나도 그들처럼 훗날을 기약하면서 20일 동안 300킬로만을 걷고, 나머지 대부분의 도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까지 1,600킬로 전부를 완주 아닌 완주를 했다. 이동 중에 경험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찬란한 문화유산, 축제, 새로운 음식, 친절한 사람들은 순례길에서 만나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p><p> </p><p>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Em3Y6Iay_197309e566679e5c05337c27a2d494615984064c.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Em3Y6Iay_197309e566679e5c05337c27a2d494615984064c.jpg" alt="파리에서 구입 한 르퓌 (Le Puy) 행 기차 표."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lt;파리에서 구입 한 르퓌 (Le Puy) 행 기차 표.&gt;
파리 시내에서 르 퓌 앙블레로 가는 길은 조금 험란하다. 파리 리옹(Paris Gare de Lyon) 역에서 테제베(TGV)로 리옹 파르 디유(Gare de Lyon Part Dieu) 역까지 2시간, 환승한 후 상테티엔(St Etienne Chatea)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T2qOG74V_35492047b050577b153251840abc6455a1151ca5.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T2qOG74V_35492047b050577b153251840abc6455a1151ca5.jpg" alt="프랑스 순례길 GR65 길 안내 사인"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lt;프랑스 순례길 GR65 길 안내 사인&gt;
이곳에서 세 번째 기차로 갈아타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다. 마을버스로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아있다.</p><p> </p><p>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PJkFXWaL_68cd29f075f676bba858063615f6492cb248710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PJkFXWaL_68cd29f075f676bba858063615f6492cb2487101.jpg" alt="르 퓌 앙블레 도시 전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르 퓌 앙블레 도시 전경&gt; </p><p> </p><p>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 오트 루아르(Auvergne Haute Loire) 지방의 르 퓌 앙블레는 화산이 도시의 모양을 만들었고,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세 개의 바위산이 있다. 교회가 있는 생 미셀 데 귈(Saint Michel d’ Aiguilhe), 노트르담 드 프랑스(Notre Dame de France) 동상이 있는 코르네이유(corneille), 그리고 노트르담 뒤 퓌 (Notre Dame de Puy) 대성당이 있는 아니스 산이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jVL2Sznh_ee3b2df60a7c88c8f1bddc7d14f11f78640c4bf8.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jVL2Sznh_ee3b2df60a7c88c8f1bddc7d14f11f78640c4bf8.jpg" alt="생 미셀 데 귈 교회 입구"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생 미셀 데 귈 교회 입구&gt; </p><p> </p><p> 
첫 번째 바위산 생 미셀 데 귈에는 82미터 뾰족한 용암 위에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교회가 있다. </p><p>10세기경 르 퓌 대주교인 고칼 테스크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 건축했다고 전해지고 있다.</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8dr5oVYk_12ebcbee9c128f6e356dc61206fca1cc221ef7a6.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8dr5oVYk_12ebcbee9c128f6e356dc61206fca1cc221ef7a6.jpg" alt="생 미셀 데 귈 교회로 올라가는 길"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p><p>&lt;생 미셀 데 귈 교회로 올라가는 길&gt; </p><p> </p><p>바위산 정상에 위치한 생 미셀 데 귈 교회를 가기 위해서는 268개의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p><p>교회 내부는 좁고 어둡지만, 낡은 창문과 빛바랜 벽화가 천년을 훌쩍 넘긴 세월의 무게와 신비감을 더해 준다.</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rE7bzIMd_05771f60fdbdc803d49e087ea7e67dfcc1a022a1.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rE7bzIMd_05771f60fdbdc803d49e087ea7e67dfcc1a022a1.jpg" a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gt; </p><p> </p><p>또 다른 바위산 코르네이유에는 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이 있다. 1856년 크림 전쟁(Crimean War)에서 승리한 프랑스가 러시아에서 가져온 213개의 대포를 녹여만든 성모 마리아 동상이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Xfy8nITJ_90de035683e01f9ddc63aaa00e3dc74b3a84364b.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Xfy8nITJ_90de035683e01f9ddc63aaa00e3dc74b3a84364b.jpg" a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에서  바라본 르 퓌 시내"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에서 바라본 르 퓌 시내&gt; </p><p><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EIHUZ0JP_d472b9d50b7cc87aa75e3f9ff27b6c4c8ecec047.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EIHUZ0JP_d472b9d50b7cc87aa75e3f9ff27b6c4c8ecec047.jpg" a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에서  바라본 르 퓌 시내" class="img-tag max-width: 750px;"/></a> </p><p> </p><p>&lt;노트르담 드 프랑스 동상에서 바라본 르 퓌 시내&gt; </p><p> </p><p>비좁은 성모상 내부를 나선형 철 사다리를 타고 끝까지 올라가면 중세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르 퓌 시내를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hqGKw0ga_07d965d52d5332cec3ce859463c499fa6dad036c.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hqGKw0ga_07d965d52d5332cec3ce859463c499fa6dad036c.jpg" alt="르 퓌 시내 중세의 골목과 건물들"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르 퓌 시내 중세의 골목과 건물들&gt; </p><p> </p><p>르 퓌 시내 전경을 바라보며 굽이굽이 바위산을 내려오면 돌문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는 중세의 골목들을 만날 수 있다. </p><p>아주 비슷하지만 전부 다른 크고 작은 돌로 만들어져있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H9B1IuEk_6edb8320bcad701ba62af2c43c70111e5ec79c1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H9B1IuEk_6edb8320bcad701ba62af2c43c70111e5ec79c12.jpg" alt="르 퓌 시내 중세의 골목과 건물들"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르 퓌 시내 중세의 골목과 건물들&gt;
화산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얼핏 봐도 수백 년은 훌쩍 넘어 보이는 건물들로 가득하다. 도로와 상점, 가정집 등 온통 돌 세상이다. 르 퓌 시민은 대부분 문화제에서 생활하고 있었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xRUFyn1o_a4c9fb0027038fb5bd00190c24b59b66ad77d0fe.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xRUFyn1o_a4c9fb0027038fb5bd00190c24b59b66ad77d0fe.jpg" alt="르퓌의 건물에는 건축된 시기가 붙어있다."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lt;르퓌의 건물에는 건축된 시기가 붙어있다.&gt; </p><p> </p><p>르 퓌의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세 번째 아니스 바위산 위에 아름다운 노트르담 뒤 퓌 대성당이 보인다. </p><p>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성당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 델라 순례길의 출발지이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ut2eQwMO_f03867682bf3d5c20e74d326e1c884bf0cdfce7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ut2eQwMO_f03867682bf3d5c20e74d326e1c884bf0cdfce72.jpg" alt="검은 성모상의 모습"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검은 성모상의 모습&gt; </p><p> </p><p>12세기 오베르뉴 지역을 대표하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은 검은 성모상과 함께 피에타 상 앞에 있는 커다란 검은 돌판이 유명하다. </p><p>만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그냥 지나치기는 아주 어렵다. 꼭 만져봐야 한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q62phM5A_34d23149785cf38400de28f414479c872951ea0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q62phM5A_34d23149785cf38400de28f414479c872951ea02.jpg" alt="당뗄이 르 퓌의 특산품임을 알 수 있는 거리 풍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lt;당뗄이 르 퓌의 특산품임을 알 수 있는 거리 풍경&gt; </p><p> </p><p>르 퓌 앙블레의 골목 탐험이 끝나갈 무렵 순례길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맛 집을 찾아 나섰다. </p><p>르 퓌 앙블레의 특산품은 크게 두 개가 있다. 하나는 이 지역의 주요 산업인 손으로 짠 레이스 땅뗄(Dentelle)이다. </p><p>15세기 경부터 이 지역의 사제들과 귀족들의 의상 제작을 위해 발달한 순백의 당뗄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인기상품이다. </p><p>실제로 르 퓌 시내를 걷다 보면 온통 흰색 옷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p><p> </p><p> </p><p>

<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801%2F3232235521_6TkAxKuJ_ad6e7d30e6154e78b4b9d97166302ca3820df42b.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801/3232235521_6TkAxKuJ_ad6e7d30e6154e78b4b9d97166302ca3820df42b.jpg" alt="당뗄이 르 퓌의 특산품임을 알 수 있는 거리 풍경" class="img-tag max-width: 750px;"/></a></p><p>
&lt;당뗄이 르 퓌의 특산품임을 알 수 있는 거리 풍경&gt; </p><p> </p><p> 
당뗄에 뒤지지 않는 퓌 렌즈콩(Lentilles Vertes du puy) 역시 이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이다. </p><p>우리에게도 건강식으로 잘 알려진 렌틸콩이다. 밤에는 매우 춥고 낮에는 온도가 높은 기후와 지질 영향으로 100년 넘게 재배된 렌틸콩은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AOC(원산지 표기 인증제)를 받은 특별한 콩이다. </p><p>프랑스에서 인증받은 콩 맛이 궁금해졌다. 중세의 골몰에 모여있는 작은 식당들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백반집인 듯했다. </p><p>역시 렌틸콩 요리가 주메뉴였다. 콩 맛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특별하게 느낀 점은 콩은 그냥 콩이었다.</p><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28 Jan 2018 20:19:5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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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7.중국 (6)센센교구</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div class="basic-box board-title bold"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20px 30px;color:rgb(99,99,99);font-size:13px;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p class="title" style="list-style:none;font-size:24px;color:rgb(51,51,51);line-height:26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7.중국 (6)센센교구</p></div><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2-24 [제2530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Xdh07qlT_76614200e208efd0f08c1a23608aa5ba2fbf5102.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Xdh07qlT_76614200e208efd0f08c1a23608aa5ba2fbf5102.jpg" alt="3232235521_Xdh07qlT_76614200e208efd0f08c1a23608aa5ba2fbf5102.jpg" class="img-tag "/></div></div><div>젊은이 열정 가득한 믿음의 교회로 <br /><br />매년 대학생 대회에 청년들 적극 참여<br /><br />신자 8만5000명에 성당은 206곳 <br /><br />성소자 양성 규모는 중국교회 선두권 <br /><br />맥없이 돌아가는 선풍기로는 한낮의 태양으로 달궈진 성당 안의 열기에 속수무책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에 얼굴은 이미 익을 대로 익어 하나같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br /><br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다는 게 유일한 위안인 성당, 이방인에게는 이름마저도 낯선 센센(獻縣)교구 주교좌 다장좡(大張庄)성당에서는 더 낯선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성당 입구에서부터 20대 안팎으로 보이는 청년들로 넘쳐나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더니 성당 전체가 젊은이들에게 점령당한 듯 쾌활한 웃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마치 한국의 어느 성당에라도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젊은이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 보였다.<br /><br /><br /><br />마치 한국의 어느 성당에라도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젊은이들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어 보였다. 종교나 이와 관련된 활동이라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중국에서 내놓고 축제를 벌이듯 들떠있는 중국 교회 청년들과의 첫 대면은 이내 온 몸에서 배어나는 땀에 어깨죽지를 쓸고 지나가는 식은땀까지 더해져 몹시나 당혹스런 체험이었다. <br /><br />대성당 근처 그늘에서는 접수를 받는 지 길게 늘여 세운 피켓들 아래로 한 무리의 청년들이 몰려 있었다. 성당 안에서는 무슨 준비를 하는지 청년들의 분주한 몸놀림이 끊이지 않았다. 그 흔한 현수막도, 행사를 안내하는 리플릿도, 그렇다고 특별한 안내자도 없는 가운데 이어지는 그들만의 움직임은 우연히 들른 방문객을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br /><br />기자가 센센교구(교구장 리량귀 주교)를 처음 찾은 날은 우연의 일치인지 하느님의 이끄심인지 엿새간으로 예정된 교구의 대학생 신앙대회가 막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허베이성 창저우(滄州)시에 위치한 센센교구는 그렇게 중국에서는 처음 대하는 낯선 풍경 속에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br /><br />청년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확인 <br /><br />“청년들 스스로가 자신이 서 있는 현주소를 확인하고 신자로서 정체성을 세워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br /><br />올해로 3회째를 맞고 있는 신앙대회를 주관하고 있는 센센교구 사무실(교구청) 주임 저우원수 신부는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은 우리 교구는 물론 사회의 희망”이라는 말로 행사에 거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br /><br />첫 대회가 열린 2004년에는 대학생은 물론 일반 청년들에게까지 문호를 열어 10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참가하는 바람에 교구에서도 놀랄 정도였다고 한다. 이때는 대회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 주교좌성당 전체를 통틀어도 다 수용할 수가 없어 매일 집과 행사장을 오가며 대회를 진행했다. 지난해 열린 두 번째 대회 때부터 신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열리고 있음에도 200명이 넘는 이들이 참여하는 것만 봐도 센센교구가 지닌 잠재력을 엿볼 수 있다. <br /><br />대학생들의 방학을 이용해 열리는 행사 기간 중에는 창저우는 물론 타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교구 소속 청년들도 먼 길을 개의치 않고 달려온다. <br /><br />행사를 준비하는 교구측에서도 젊은이들의 열의에 탄복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br /><br />톈진(天津)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리샹취(23)씨는 “타지에 나가 공부를 하다보면 조그만 정보나 도움이 아쉬울 때가 적지 않다”며 “이런 기회를 통해 서로 알게 되면 신앙적으로나 현실적으로도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br /><br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개막미사로 막이 오른 신앙대회는 센센교구 대학생연합회 임원과 봉사자들의 주도로 짜임새 있게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여러 개의 조로 나눠 스스로 끼니를 해결해가며 신앙 강좌를 듣고 토론을 하는가 하면 성직자의 체험담을 들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돌아보기도 했다. 또 교구와 교회의 역사를 공부하고 함께 기도하며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br /><br />탕산(唐山)과학기술대 2학년인 왕즈신(22)씨는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누고 믿음을 나누다 보면 신앙이 더 튼튼해지는 것 같다”며 “한국 교회의 대학생들과도 교류하며 신앙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br /><br />대회에 함께 한 저우 신부는 참가자들에게 “우리는 이 행사를 통해 우리들이 처한 현실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가정과 사회, 나아가 교회와 예수님의 희망인 대학생들이 이러한 활동을 통하여 더 큰 신앙을 갖고 살아가길” 당부했다. <br /><br />굳건한 신앙의 전통 오늘까지 이어져 <br /><br />올해로 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은 센센교구는 교구가 속한 행정지명을 따 창저우(滄州)교구로도 불린다. 하지만 교구뿐 아니라 신자들도 오랜 전통과 자신들의 신앙의 역정이 담긴 ‘센센’이란 이름에 더 애정을 느끼고 그렇게 부르고 있다. <br /><br />센센교구는 1856년 5월 30일 베이징대목구를 치베이(冀北)대목구와 치동난(冀東南)대목구, 치시난(冀西南)대목구로 분할할 때 나눠진 치동난대목구가 1924년 상하이 주교회의에서 개칭된 이름이다. 창저우 일대는 초대 대목구장이었던 예수회 소속의 란귀랏(Adrianus Languillat) 주교와 6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본격적인 신앙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다. 센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선교사들은 우선 선교의 근거지를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 성당 건립과 함께 초등학교와 소신학교 등을 세워 성소자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선교사들이 성당 건립을 통해 선교에 기울인 노력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교구청 건물과 주교좌성당의 규모만 봐도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br /><br />1863년 12월 센센 장좡마을에 세워진 주교좌 다장좡성당은 고딕식으로 길이만도 50m에 이르고 폭이 21m가 넘을 정도로 웅장해서 허베이(河北)성을 비롯해 산시(山西) 산둥(山東) 허난(河南) 등 4개 성을 아우르는 화베이(華北)지역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꼽히기도 했다. <br /><br />선교사들의 이 같은 노력으로 선교에 나선 지 10년이 채 안된 1864년에 이미 164개의 성당에 32개의 고아원, 22개의 학교를 운영할 정도로 교세가 커져 신자수만 1만1367명에 이를 정도가 됐다. 20여년이 지난 1890년에는 교구 소속 성당만 674개에 이르고 곳곳에 87개의 진료소를 열어 운영하는가 하면 732명의 교리교사가 활동할 정도로 발전을 거듭해 신자가 5만명을 넘을 정도로 큰 성장을 이뤘다. <br /><br />반면 센센교구는 베이징에서 동남쪽으로 230여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앙 정치나 국제 정세의 영향을 쉽게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다. 치동난대목구 시절이던 1900년(경자년)에는 의화단에 의해 일어난 경자교난으로 프랑스 신부 4명과 신자 5153명이 순교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 시기 600개가 넘는 성당이 파괴돼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는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또한 1927년에는 도적떼들의 습격이 잦아 신부들이 벽돌을 높이 쌓고 이들에게 저항해야 할 정도로 복음화의 여정에 굴곡이 적지 않았다. <br /><br />이런 가운데서도 센센교구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심이 돼 1923년 지금의 톈진공상대학교의 전신인 징구공상대학교를 설립하는가 하면 이에 앞서 1914년에는 톈진에 베이쟝박물관을 세우는 등 교회 성장과 함께 중국 사회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교구 설정 초기부터 교육에 기울인 이런 노력은 지금도 교회 발전을 위한 유용한 자산으로 남아 현재도 유치원과 중학교 등 다수의 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년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해외로 유학 보내는 등 교육에 남다른 노하우를 발휘하고 있다. <br /><br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땅과 교회 건물이 국유화돼 교세가 크게 위축되긴 했지만 주교좌성당을 중심으로 몰려있는 소신학교와 수녀원 등은 센센교구가 지닌 저력과 위상을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br /><br />굳은 신앙의 전통을 반영하듯 센센교구는 갖은 난관을 극복하며 현재 100명 가까운 사제와 8만5000여명의 신자들이 206개(2003년 말)의 성당에서 믿음의 길을 개척해오고 있다. 성소자 양성 규모면에서 중국 교회 단연 선두권에 서 있는 센센교구, 낯선 이름이지만 이제 더 이상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그들과 공유하게 된 신앙의 여정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br /><br />사진설명<br /><br />▶센센교구 제3회 대학생 신앙대회에 참가한 청년들로 가득찬 주교좌성당.<br /><br />▶1863년 12월 센센 장좡마을에 건립된 다장좡주교좌성당 전경<br /><br />▶센센교구 사제 서품식 장면.<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9:5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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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6.중국 (5)시안(西安)교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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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class="basic-box board-title bold"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20px 30px;color:rgb(99,99,99);font-size:13px;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p class="title" style="list-style:none;font-size:24px;color:rgb(51,51,51);line-height:26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6.중국 (5)시안(西安)교구</p></div><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2-17 [제2529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tOJxcAE2_ee9612d22f2f880068019ef8c30234ec6b65b757.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tOJxcAE2_ee9612d22f2f880068019ef8c30234ec6b65b757.jpg" alt="3232235521_tOJxcAE2_ee9612d22f2f880068019ef8c30234ec6b65b757.jpg" class="img-tag "/></div></div><div>낙후된 경제, 사목활동 발목<br /><br />교육 농업 의료 등 거의 전 분야 지원 <br /><br />사제양성에 심혈…“형제적 도움”요청 <br /><br />기원전 11세기부터 서기 10세기까지 수천년 동안 서주(西周) 진(秦) 서한(西漢) 당(唐) 등 숱한 왕조들의 도읍으로 중원(中原) 중의 중원으로 자리해온 시안에서 화려했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건 남아있는 거대한 성곽과 진시황제의 능, 그리고 황제의 병마용 등이다.<br /><br />시안은 중국 고대 문화의 중심지이자 중국불교 토착화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인도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현장 법사가 당 태종의 지원 아래 불경을 번역해 소개함으로써 중국에 불교가 뿌려진 곳이다. 이로 인해 오랜 세월 중국뿐 아니라 동양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안은 문화발전소에 비유되곤 한다. <br /><br />대륙의 한 구석에 있었던 탓에 그리스도교의 뿌리가 얕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난징대목구에 속해있던 이 지역이 독자적인 신앙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696년 산시대목구가 설정되면서부터였다. 이후 1887년 산시대목구가 산베이(陝北)대목구와 산난(陝南)대목구로 분리되고 다시 1910년 산베이대목구에서 분할돼 나온 관중(關中)대목구가 1924년 시안대목구로 개칭된 후 1946년 중국에 교계제도가 세워지면서 시안대교구로 교회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는 교구장도 없는 교구가 상당수여서 교구와 대교구의 구별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게 현지 교회 관계자들의 말이다. <br /><br />토착화 모색 <br /><br />중국 교회에서 토착화는 ‘본색화(本色化)’라는 말로 불린다. 복음화의 관건이라 할 본색화에 있어 개신교계의 노력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나 가톨릭교회의 모색은 쉬 찾기 힘든 게 시안교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중국 교회의 현실이다. <br /><br />중국 사회는 공산화 이후 5.4운동 이전의 전통적 가치관과 정신이 붕괴돼 이를 재건하는데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피폐해진 정신으로는 어떠한 높은 이상과 열정도 이내 소진되고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음을 오늘의 중국 사회는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러한 걸림돌은 교회라고 비켜가지 못해 시안교구(교구장 리두안 주교)를 비롯한 중국 내 많은 지역교회들이 홍수가 휩쓸고 간 후 곳곳에 논밭의 흔적만 남아있는 황량한 들판을 다시 옥토로 일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속에서 시안교구는 본색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난, 그리고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찾고 있다. <br /><br />24개 본당을 포함해 50여개의 성당이 있는 시안교구 내 2만여 명의 신자 대부분이 농사를 짓는 가난한 농민들이어서 정부에서도 주교좌성당마저 ‘농촌성당’이라고 부를 정도로 시안교구는 가난 속에 놓여있다. 이 때문에 시안교구의 대사회 활동도 자연스럽게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는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시안교구가 관할하고 있는 지역들 대부분이 중국에서 제일 못사는 축에 들어 교회의 활동은 조그만 것도 눈길을 끌기 십상이다. <br /><br />본색화의 기반이 되는 성소자 양성에 시안교구가 쏟는 공은 특별해 54명의 교구 신부 가운데 13명이 산시신철학원(대신학교)에서 봉직하고 있을 정도다. 현재 시안교구 신학교에는 인근 10여개 교구로부터 찾아온 110여명의 신학생들이 성소의 길을 찾고 있다. <br /><br />시안교구 사회복지센터 <br /><br />시안교구 사회복지센터(주임 천루이쉐 신부)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는 중국 교회의 현재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준다. <br /><br />시안 자체가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가운데 하나여서 시안교구도 독자적인 힘만으로는 운신에 적잖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 교구 재정이 넉넉지 않아 교구청 개보수마저 당장 급한 사업들의 후순위로 돌리다 보니 낡을 대로 낡은 건물로 수십 년을 이어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은 다른 교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낡은 창틀 하나라도 바꾸기 위해서는 여간 큰 마음을 먹지 않고서는 힘든 게 중국 교회의 현실이다. <br /><br />시안교구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를 외부와의 연대에서 찾은 모범 사례로 다른 지역교회에도 본보기가 되고 있다. 교구청에 자리한 교구 사회복지센터 사무실에는 한국 교회에도 낯익은 해외원조기관들의 이름을 단 파일들이 촘촘하게 꽂혀 있다. 독일의 대표적인 원조기관인 ‘미제레올(MISEREOR)’을 비롯해 독일 교황청립 전교회 ‘미씨오(Missio.선교)’, 미국 주교회의 해외원조기구인 가톨릭 구제회(CRS.Catholic Relief Services), 오스트리아의 DKA, IMF 등 서구 기관들은 물론 홍콩 마카오 대만 등 각국 교회 원조기관과의 교류 역사를 담은 파일들은 시안교구의 관심과 걸어온 길을 잘 보여준다. <br /><br />사회복지센터는 이들 기관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다양한 사회 영역으로 보폭을 넓혀오고 있다. 전기는 물론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어 고립되어 지내다시피하는 오지의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발전시설을 들여오고 오토바이를 보급하는가 하면 소나 양 등 가축을 분양해 신자들의 자활을 돕는 등 복지센터가 하는 일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다. 근래에는 유기농 농장에 대한 지원과 유기농법 교육 등으로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교육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는 몫이어서 유치원 운영은 물론 7개의 초등학생 합주반을 만들어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br /><br />이런 활동의 성과의 하나로 지난 20년간 수리를 지원한 중국 전역의 성당만 500곳에 이를 정도다. 그나마 이처럼 성당을 개보수할 수 있게 된 것도 예전에 비해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돈이 있어도 함부로 성당을 수리할 수 없어 여름이면 비가 들이치는 성당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br /><br />5년간의 미국 유학을 거쳐 지난 1999년부터 사회복지센터 책임을 맡고 있는 천루이쉐(陳瑞雪) 신부는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가난한 이들이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게 현실”이라며 “정부는 물론 어디에도 손 벌릴 수 없는 이들을 찾아가는 게 교회의 몫”이라고 밝혔다. <br /><br />경제 개발과 더불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 문제는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여서 교회는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에이즈 예방 교육에 적잖은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또 정부의 의료서비스가 미치지 못하는 오지에 진료소를 열어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활동을 펼치는 것은 물론 홍콩이나 대도시의 의사 등을 초빙해 처치술을 교육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br /><br />5~6인 가족이 한 해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5000위안(한화 약 65만원)을 벌기 힘든 상황이라 5000위안이 드는 간단한 언청이 수술도 상상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백내장이나 심장병 수술 같은 경우는 아예 포기하고 마는 농민들에게 복지센터는 희망 그 이상의 존재가 아닐 수 없다. <br /><br />“한 곳을 도우면 어느 새 소문이 퍼져 도와달라는 요청이 빗발칩니다.” <br /><br />사정이 이렇기에 천신부는 외부와의 교류에 더욱 힘을 쏟고 있다. 시안교구에 총원을 두고 있는 예수성심회도 600여명의 수녀 가운데 200명이 교우촌 내 60여개 진료소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사회복지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손길은 끝이 없어 보인다. <br /><br />시안교구 사회복지센터의 역량은 다른 영역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스자좡교구 사회복지센터는 물론 멀리 랴오닝교구 선양(瀋陽)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복지 기관과도 연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심고 있다. <br /><br />“자신이 먼저 변할 수 있어야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에 함께 해준다면 큰 힘이 되겠습니다.” <br /><br />한국 교회를 향해 손을 내미는 천신부의 얼굴에서 중국 교회의 희망이 읽혔다. <br /><br /><br /><br />사진설명<br /><br />▶시안교구 주교좌 성 프란치스코성당 전경. <br /><br />▶시안교구 주교좌 성 프란치스코성당 정문. 낡은 철제문이 시안교구의 어려운 현실을 엿보게 한다. <br /><br />▶진시황제의 병마용. 고대의 영화와 현재의 힘겨운 여정을 대비시켜 주는 유물이다.<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8: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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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5.중국 (4)중국교회의 미래 발견한 지린교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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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class="basic-box board-title bold"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20px 30px;color:rgb(99,99,99);font-size:13px;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p class="title" style="list-style:none;font-size:24px;color:rgb(51,51,51);line-height:26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5.중국 (4)중국교회의 미래 발견한 지린교구</p></div><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2-03 [제2527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lMa1rtK5_888936ce32a8561b3ac75b642faff33d26011631.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lMa1rtK5_888936ce32a8561b3ac75b642faff33d26011631.jpg" alt="3232235521_lMa1rtK5_888936ce32a8561b3ac75b642faff33d26011631.jpg" class="img-tag "/></div></div><div>성소부족 해결 위해 중 고등과정 소신학교 운영<br /><br />정규교과도 이수…신학교 졸업후 정식 학력 인정 <br /><br />‘중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br /><br />중국에서 처음 이 말을 듣게 되면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 말뜻을 알게 된다. 개방 이후 중국 사회가 걷고 있는 길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준거와 원칙이 없다, 혹은 그것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br /><br />조선족자치주 속해 있어 <br /><br />200만명이 넘는 조선족의 70% 이상이 몰려 살고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인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가 속해 있어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지닌 지린성(吉林省)을 관할하는 지린교구에서도 중국 사회의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br /><br />1946년 중국에 교계제도가 수립될 당시 지린성 내에는 지린교구를 비롯해 시핑(四平), 옌지(延吉) 등 3개 교구가 있었지만 현재는 지린교구만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br /><br />설립 당시 전체 인구의 62%를 조선족이 차지한 옌볜자치주를 관할하던 옌지교구의 경우 조선족들이 대거 한국 등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숫자가 줄기 시작해 2005년 말 현재 비율이 33%로 대폭 낮아져 신자마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br /><br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선양(瀋陽)교구를 필두로 푸순(撫順) 러허(熱河) 잉커우(營口) 등 4개 교구가 있었던 인근 랴오닝성의 경우도 신자가 줄어들면서 1983년 종교국에 의해 랴오닝교구 하나로 통합되고 말았다. <br /><br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지린성을 비롯, 랴오닝성(遼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동북3성(東北三省) 가운데 2번째로 많은 신자(2006년 현재 약 13만명)가 있는 지린교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교회 신자들의 발걸음이 가장 빈번해진 곳 가운데 하나다. <br /><br />지린교구는 1838년 4월 요동대목구가 설정되고 다시 1898년 동북3성 지역을 남북으로 분할해 북만주대목구와 남만주대목구가 분리 설립되고 1924년 북만주대목구가 길림대목구로 개칭되면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동북 지역의 중심적인 교회다. <br /><br />특히 1928년 지린대목구에서 분할 설정된 옌지(延吉)감목구는 앞서 1920년 8월에 설립된 원산대목구 관할로 조선인에 의해 복음화의 씨앗이 뿌려져 한국교회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br /><br />성소의 요람 소신학교 <br /><br />“하느님의 일이라면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성하시는 분은 당신이시니까요.” <br /><br />지린교구 비서장 류칭춘(劉靑春) 신부의 안내로 찾은 소신학교. 그가 밝힌 하느님의 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지린교구 소신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형언하기 힘든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심으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소신학교를 운영해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소신학교 관리책임까지 맡은 류신부의 거침없는 태도가 괜한 것이 아님을 이내 알 수 있었다. <br /><br />지난 2004년 7월에 문을 연 소신학교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 교회의 가까운 미래라 할 수 있다. 중학교 1년부터 고등학교 3년 과정의 20명으로 시작된 소신학교는 지난해 8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인데 이어 올해도 11명이 새로 입학하면서 30명이 넘는 신학생들이 일찌감치 성소의 길을 찾는 요람이 되고 있다. <br /><br />교구 재정을 비롯해 열악한 주변 여건으로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소신학교를 시작한 류신부의 판단은 단순 명확하다. 1가구 1자녀 정책의 중국에서 성소 부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남부지역의 경우 벌써 성소 부족현상으로 대신학교 성소자가 부쩍 줄어드는 것은 물론 주교도 없는 교구가 반 가까이나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br /><br />이런 미래를 간파하고 소신학교를 여는 교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지린교구의 운영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교구들의 경우 소신학교 안에서 모든 양성과정이 이루어지지만 지린교구는 기숙사에서 함께 살며 신학 등 기본 소양을 익힌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여기에 더해 모든 신학생이 일반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과 과정을 이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아무리 신학교를 졸업해도 정식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대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어온 중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류신부의 선택이다.<br /><br />류신부는 “사회와 분리된 고전적 교육방식만으로는 사회 속에서 같이 성장해나갈 수 없다. 특히 현재의 중국 사회구조 안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내적 연마에 더해 사회에서 요청하는 재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성소자 양성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학교 과정에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수준 높은 훌륭한 신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류신부의 생각에는 탁월한 식견이 엿보였다. <br /><br />소신학교 신학생은 조바자츠(小八家子) 등 지린교구 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10여개의 교우촌에서 본당 신부가 추천하는 이들 가운데서 직접 뽑는다. 52명의 교구 신부와 지린교구 신철학원(대신학교) 신학생 대부분이 교우촌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린교구가 지닌 잠재력을 엿보게 한다. 그래서 교우촌 복사단이 장차 사제가 될 사람이라는 그들끼리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br /><br />류신부를 비롯한 교구에서 신학생들에게 기울이는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br /><br />교구 재정이 어려워 제때에 학비를 대지 못할 때는 후원자를 수소문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가 하면 신학생들과 함께 살다시피 하며 음식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등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결실로 신학생들은 일반 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과 평가를 받고 있다. <br /><br />그렇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신학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는데다 일반 학교의 학비가 비싸 원하는 이들을 다 받을 수 없어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건만 된다면 최대한 많은 신학생을 받아 양성하는 게 류신부의 바람이다. <br /><br />“주님의 일이기에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 믿습니다.”<br /><br /><br /><br />“덕성 갖춘 성소자 양성 교회발전 초석쌓는 길”<br /><br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 <br /><br />“한국 교회는 중국 교회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내게 없는 상대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게 발전의 길입니다.” <br /><br />지린교구장 쟝한민(張翰民 다마소 82) 주교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교회가 함께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br /><br />조바자츠(小八家子) 교우촌에서 태어나 지난 1983년 7월 사제품을 받은 이후 75세가 되던 1999년에야 느지감치 주교품을 받고 지린교구를 이끌어오고 있는 쟝주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br /><br />교구 사목뿐 아니라 대정부 관계 일까지 다방면에서 교회의 우산이 되어주고 있는 쟝주교는 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영성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육과 이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br /><br />“신자, 특히 성직자들은 교회의 영성을 바탕으로 덕성을 함양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 전파 등 다른 여러 영역에서도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br /><br />중국 교회의 경제적 기초가 약해 복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 쟝주교는 “덕성과 재능을 함께 겸비한 인재 양성이 현재의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어려운 교구 형편에도 교구 성직자들을 가까운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멕시코 홍콩 등지로 유학을 보내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오고 있다. <br /><br />“교구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부여받는 역할을 잘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힌 쟝주교는 “교회와 사회, 가정의 발전은 같은 기초 위에 서있다”며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적극적인 몫을 역설했다. <br /><br />“하느님의 일이라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길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br /><br />한국 교회를 배우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뇌는 쟝주교, 그의 얼굴에 소신학교 신학생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건 왜일까. <br /><br />사진설명<br /><br />▶지린교구 소신학교 학생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30여명의 학생들이 성소의 길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br /><br />▶소신학교 내 경당.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소신학교는 규모가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다.<br /><br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8:0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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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4.중국 (3)희망의 빛 ‘스자좡교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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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class="basic-box board-title bold"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20px 30px;color:rgb(99,99,99);font-size:13px;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p class="title" style="list-style:none;font-size:24px;color:rgb(51,51,51);line-height:26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4.중국 (3)희망의 빛 ‘스자좡교구’</p></div><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1-26 [제2526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9pNbB8Hf_310e9b3cb5939f11de673a0430cdc62751a4afe3.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9pNbB8Hf_310e9b3cb5939f11de673a0430cdc62751a4afe3.jpg" alt="3232235521_9pNbB8Hf_310e9b3cb5939f11de673a0430cdc62751a4afe3.jpg" class="img-tag "/></div></div><div>교육·출판·복지 등 각 분야서 ‘두각’ <br /><br />복음화율 가장 높지만 비공식교회 어려움 적잖아<br /><br />종교신문 ‘신더’(信德) 발행…갈라진 교회 하나로 <br /><br />한순간 울컥하며 눈물을 쏟을 뻔했다. 중국에서 처음으로 성대하게 봉헌되는 미사를 접한 탓도, 장엄한 미사 분위기 때문만도 아니었다. 미사가 시작되기 오래 전부터 성당을 찾아 무릎을 꿇고 주님과 만나고 있는 수많은 젊음들, 바로 그들로 인해 눈시울 뜨뜻해지는 체험이었다. <br /><br />이방인으로서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참례한 스자좡(石家庄)교구 주교좌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성당에서의 주일미사. 미사는 저녁 준비가 한창일 법한 오후 6시30분에 시작됐다. 고단한 일터에서 막 돌아온 듯한 젊은이와 나뭇가지를 대충 깎아 만든 지팡이에 온 몸을 의지해 성당을 찾은 장애인, 성경에 푹 빠진 앳된 소녀, 사람 좋은 인상이 그만인 젊은 병사까지…. 미사는 그런 이들이 자리를 가득 메운 가운데 이어졌다. 입당한 사제는 성수채를 들고 신자석을 돌며 성수를 뿌리는 예식으로 미사의 시작을 알렸다. 향을 사르며 제대 주위를 도는 주례사제의 모습도 이채롭게 다가왔다. 가끔씩 성당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도 미사의 한 부분이라는 느낌일 뿐 미사의 감동을 사그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br /><br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로 진행되는 미사 속에서 가끔 ‘아멘’이라는 말마디만으로 함께 하면서도 가슴은 점점 충만돼 갔다. 숱하게 무릎을 꿇었다 일어서길 반복하면서도 진지한 모습을 잃지 않는 신자들의 모습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br /><br />‘저들에게 신앙은, 하느님은 어떤 존재일까?’ <br /><br />허베이성의 성도(省都)인 스자좡에 보금자리를 튼 스자좡교구(교구장 장타오란 주교)에서 맞은 주일은 중국 교회를 새롭게 보게 하기에 충분했다. <br /><br />중국의 23개 성(省)은 물론 5개 자치구, 4개 직할시, 2개 특별자치구를 통틀어 복음화율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허베이성에 위치한 성당과 신자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색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br /><br />스자좡교구를 비롯해 2004년 말 현재 14만명이 넘는 신자로 가장 많은 신자를 보유한 장자커우(張家口)교구, ‘수도 베이징의 남대문’이라고 불리는 바오딩(保定)교구, 셴셴(獻縣)교구, 탕산(唐山)교구, 청더(承德)교구, 한단(邯鄲)교구 등 성 내에 9개 교구가 있는 허베이성에는 중국 전체 가톨릭신자의 10%가 넘는 150만명의 신자들이 신앙의 여정을 걸어오고 있다. <br /><br />이 지역은 공식교회보다 비공식교회를 통해 신앙 활동을 하는 신자가 더 많아 고단한 중국 교회 신자들의 신앙의 역정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실제 지난 1995년 5월에는 500명이 넘는 공안국 요원과 정부 관리들로 구성된 공작조가 허베이성 일대에 파견돼 비공식교회 신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비공식교회 신자가 가장 많은 바오딩교구의 경우는 성당이 파괴당해 신자들이 공터에 제대를 설치해놓고 미사를 봉헌하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br /><br /><br /><br />스자좡교구의 역정 <br /><br />허베이성 지역은 마태오 리치와 함께 베이징에 온 예수회 디에고 데 판토하(Diego de Pantoja.1571∼1618) 신부와 페레이라(Ferreira) 신부가 1604년 바오딩(保定)을 중심으로 선교에 나섬으로써 신앙의 씨앗이 뿌려졌다. <br /><br />이후 스자좡지역 등으로 선교가 확대되면서 튼튼한 신앙의 전통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당시 선교사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때 식사를 제공해 많은 사람을 입교시켰다. <br /><br />1917년 7월에 큰 비가 와 허베이성 대부분이 물에 잠겨 수많은 익사자가 발생하자 가톨릭교회는 1700여구의 시신을 수습하는가 하면 그 해에 대기근이 들고 전염병이 돌자 이재민 지원에 나서 적잖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 같은 교회의 활동에 힘입어 1919년 스자좡대목구(당시는 정딩대목구)는 7만875명의 신자를 필두로 외국인 신부 20명, 중국인 신부 40명, 대신학생 17명, 소신학생 112명에 성당 86곳, 소성당 및 공소가 550개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대사회 활동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져 스자좡교구의 사회사목은 교육 사업을 필두로 각종 연구 및 출판 사업, 사회복지, 사회 개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br /><br />하지만 스자좡대목구는 베이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관계로 중앙정치의 변동이나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스자좡지역은 일본군에 점령당해 병참기지 역할을 해야 했다. <br /><br />이 때문에 교회도 당시 대목구장이던 스라벤 주교를 비롯한 20여명의 성직자가 살해당하는 등 큰 입해를 입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 외적인 문제로 1946년 정식 교구로 승격된 스자좡교구의 교세는 1948년 당시 5만2000여명의 신자를 대상으로 69명의 사제(외국인 16명, 중국인 53명)가 사목할 정도로 위축되고 말았다. <br /><br />신앙의 샘 ‘신더사’ <br /><br />스자좡시 북쪽 외곽의 우키로(57路)는 스좌좡교구에서는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교구는 물론 중국 교회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신더사(信德社)와 신더문화연구소를 비롯해 교구의 사회복지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베이팡 진더(北方進德), 허베이성천주교신철학원(대신학교) 등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br /><br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스자좡교구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신더사(주임 장스쟝 신부)는 상하이교구의 광계사와 함께 중국 교회에 정신적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저수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 1991년 4월에 창립돼 올해로 설립 15주년을 맞은 신더사는 그해 9월 1일부터 격주간으로 ‘신더(信德.Faith)’라는 신문을 발행하며 단절 상태에 놓여 있던 각 지역 교회들을 잇는 중요한 몫을 해오고 있다. 5만부 이상 발행되는 ‘신더’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에 흩어져있는 신자들을 하나로 묶는 중국 교회 유일의 전국지이기도 하다. 총 8면의 타블로이드판형에 전면 컬러로 발행되는 신더에는 중국 교회의 소식뿐 아니라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교회의 소식이 비중있게 다뤄지기도 해 보편교회와의 소통에도 남다른 역량을 기울이고 있는 면면을 찾아볼 수 있다. <br /><br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세를 바탕으로 성경을 비롯한 전례서, 묵상집, 교리서, 성인전 등을 발행해 신자들의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이끄는가 하면 해외의 각종 논문과 유명 저서들을 번역해 소개하는 등 신자들의 신앙을 살찌우는데 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br /><br />신더사의 설립자이기도 한 장스쟝 신부(張士江.42)는 “신더는 갈라진 교회를 묶는 교량 역할을 자신의 중요한 소명으로 삼고 있다”면서 “중국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봉사하기 위해 다양한 모색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br /><br />이런 모색의 결과는 다양한 사회 참여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지난 1997년에 설립된 천주교사회복지센터 ‘베이팡 진더’다. 베이팡 진더는 사회복지를 목적으로 한 중국 교회 최초의 비정부기구(NGO)로 중국 정부에 전국단위 단체로 정식 등록돼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진더는 국내외에서 모금한 자선기금을 바탕으로 교육 부문의 사회발전계획 실행을 돕는 사업을 비롯해 재난 구호활동, 보건, 빈곤 추방, 장애인복지, 교회 운영 프로그램 지원 등 다양한 영역을 개척해오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진더는 지금까지 6500명이 넘는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조성한 것을 비롯해 20개의 초등학교를 짓고 전국에서 일어난 35건의 재난 피해자를 돕는 성과를 남기기도 했다. <br /><br />또한 베이팡 진더는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에이즈 문제, 노인 문제 등 중국 사회의 갖가지 문제에 재빨리 대처해 교회 안팎으로부터 호평을 얻으며 선교에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진더의 지원으로 작은자매회가 운영하고 있는 천주교진더노인요양원은 스페인교회 등 외부로부터의 후원을 바탕으로 질 높은 서비스를 선보여 멀리 산동지역이나 산시성 등지의 노인복지시설 직원들까지 찾는 등 단골 연수코스가 되고 있다. <br /><br />신더사 바로 옆에 위치한 신철학원도 허베이성은 물론 중국 교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지난 1984년 12월 스자좡교구 교구청에서 처음 문을 열어 1997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신학교는 160여명의 신학생이 성소의 길을 걸으며 중국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못자리가 되고 있다.<br /><br /><br /><br />사진설명<br /><br />▶미사 전 일찌감치 성당을 찾은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는 스자좡교구 주교좌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성당 모습. 신자들의 열성을 볼 수 있다.<br /><br />▶신더사 자료실에서 자료 정리를 하고 있는 연구원들.<br /><br />▶진더노인요양원에서 연수 중인 복지시설 관계자들.<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6:5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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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3.중국 (2)서광계와 상하이교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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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 class="basic-box board-title bold"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20px 30px;color:rgb(99,99,99);font-size:13px;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p class="title" style="list-style:none;font-size:24px;color:rgb(51,51,51);line-height:26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3.중국 (2)서광계와 상하이교구</p></div><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1-19 [제2525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iN46MQem_36e5c826e03284b8ffda0979504ae54fdf2aa1fc.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iN46MQem_36e5c826e03284b8ffda0979504ae54fdf2aa1fc.jpg" alt="3232235521_iN46MQem_36e5c826e03284b8ffda0979504ae54fdf2aa1fc.jpg" class="img-tag "/></div></div><div>찬란한 과거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 <br /><br />평신도에 의한 신앙 전파… 한국교회와 닮아<br /><br />‘18세미만 종교교육금지’ 등 정부규제로 어려움 <br /><br />서광계와 서가회 <br /><br />“겨자씨는 어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마태 13, 32) <br /><br />드라마틱하기까지 한 성경의 이 구절을 중국 땅에서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는 곳을 들라면 상하이교구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상하이교구는 물론 중국 교회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존재 서광계(徐光啓.바오로.1562∼1633). 중국 교회의 세 기둥(三柱石) 가운데 첫 자리에 꼽히는 서광계가 나고 천주교의 씨앗을 뿌린 곳이 바로 상하이다. 평신도에 의해 신앙의 씨앗이 뿌려진 한국 교회와 닮은 점을 찾을 수 있어 상하이는 어떤 곳보다 친근하게 다가온다. <br /><br />상하이교구도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교구의 맹아를 서광계의 입교에서 찾을 정도로 그가 교회에 남긴 유산은 가늠키 힘들다. 그는 1596년 광둥성(廣東省) 사오저우(韶州)에서 예수회 선교사 카타네오를 만나 처음으로 천주교와 서구과학문물을 접한 후 1603년 난징에서 로차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1607년 한림원 관리직에서 물러나 고향인 상하이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서가회(徐家匯.쉬자휘)에 성당을 건립하면서 온힘을 선교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상하이의 상업 중심지로 지금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서가회도 그의 가족과 후손들로 인해 붙게 된 이름이다. <br /><br />그는 서양 선교사들을 도와 한역서학서의 저술과 간행에 헌신한 것은 물론 스스로도 ‘벽망(闢妄)’을 비롯한 많은 서학서를 번역해 후손들에게 풍부한 영적 자산을 남겼다. 그러한 노력의 결과 1663년경 상하이에는 이미 2개의 성당을 비롯해 66개의 경당에 4만명의 신자가 생겨나게 됐고, 18세기 초에는 쟝수성(江蘇省) 전체 신자 10만명 가운데 8만명이 상하이 부근에 살 정도로 성장했다. <br /><br />서광계가 뿌린 씨앗이 자라나 상하이 교회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며 1933년 12월 13일 대목구로 설정되고 1946년에는 교구로 승격됐다. 이후 중국의 공산화와 문화혁명 등으로 암울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의 후광은 지금도 상하이교구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인 것이 그의 이름을 딴 광계사. <br /><br />문화혁명이 끝난 후 중국에서 다시 공식적인 종교활동이 가능해지던 시기인 1985년 설립된 광계사(The Guang Qi Research Center)는 교계 연구 및 출판 기관으로는 중국 내에서 단연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여기서 나온 중국어 성경이나 기도서, 전례서 등 각종 신앙 서적과 자료들은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가 중국 교회를 살찌우는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교구 주보를 비롯해 각종 교구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기 때문에 광계사에서 나오는 간행물에 대한 검열은 철저한 편이다. 올 한해 동안에만 최신 CD자료를 포함해 각종 서적 등 35종의 출판물을 발간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을 정도여서 광계사가 지닌 역량과 중국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다. <br /><br />이 외에도 교구에서 운영하는 광계영성센터와 광계컴퓨터학교, 광계노인요양원 등은 한 사람에게서 비롯된 그리스도의 향기가 얼마나 오래도록 남아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그가 지었던 서가회성당은 1911년 다시 지어졌으나 한동안 폐쇄되었다가 1979년 11월에 다시 문을 열어 지금은 주교좌성당으로 상하이교구의 주추가 되고 있다. <br /><br />교구의 빛과 그림자 <br /><br />상하이는 1842년 8월 아편전쟁 결과로 체결된 난징조약에 의해 구미 열강에 개방되고 외국인 조계가 설치되는 등 제국주의 세력이 중국을 침략하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아울러 선교사들을 통해 서구의 종교가 중국에 진출하는 거점이 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상하이는 중국에서 손꼽히는 대외무역과 상공업 중심지로 발전했지만 동시에 1949년까지 민족해방운동과 노동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br /><br />이런 영향으로 상하이는 지금도 사목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더구나 중국에서는 법적으로 18살 미만의 국민에 대한 종교교육이 일체 금지돼 있어 상하이교구에서도 유아 세례는 찾아보기 힘들고 주일학교 운영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br /><br />“한 사람에게 세례를 주는 게 마치 대나무밭에서 대나무를 뽑아내는 것과 같다”는 한 선교사의 말은 대나무 뿌리가 얽히듯 수많은 관계가 얽히고 설켜 그만큼 선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하이교구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중국에 신정부가 들어서던 1949년 30만명이 넘던 신자수가 2000년 현재 14만명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새로운 활력을 찾아가고 있는 상하이교구의 모습은 중국 교회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를 함께 보게 한다. <br /><br />희망은 자라나고 <br /><br />상하이에서 제일 높은 서산(余山) 마루에 위치한 서산성모대성당. 1935년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을 혼합해 지어진 성당은 그 아름다움으로 매년 성모성월이면 중국 각지에서 5, 6만명의 순례객들이 찾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관광객으로 붐비는 명소로 자리잡아 선교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 서산성당 발치로 난 십자가의 길과 그 길 끝자리에 조성된 ‘삼위일체정자광장’, 그리고 그 옆의 중산성모성당 등은 서산이 마치 애초부터 성지로 꾸며진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산을 둘러본 후 들른 서산 산기슭의 상하이교구 서산신학교에서는 학장 신부와 6명의 신학생들이 소탈한 점심을 막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돼지고기와 생선조림에 새우국이 놓인 단출한 식탁에서 식사를 마치고 자신이 먹은 식기를 손수 씻어 찬장에 가지런히 챙겨두는 모습은 이국인에게는 이채롭게까지 보였다. 이런 모습들은 중국의 다른 신학교에서도 두고두고 볼 수 있는 광경임에도…. <br /><br />영성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신학교의 한 신부는 한국 신자들의 열성에 대한 찬탄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의 안내로 찾은 서산신학교 애덕도서관. 오래된 책 냄새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도서관에서는 8만권의 책이 중국교회의 희망처럼 서가에서 빛나고 있었다. 1848년 서가회에 세워져 1954년 신학교가 폐쇄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30만권의 장서를 자랑하던 곳이었지만 1982년 다시 문을 열어 서산으로 옮길 때까지 안팎의 지원이 끊기면서 고가의 희귀도서부터 처분 대상이 되고 말았던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br /><br />현재 80명 안팎의 신학생들이 성소의 길을 고르고 있는 서산신학교는 올해 14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상하이교구뿐 아니라 인근의 푸젠(福建), 쟝시(江西), 안후이(安徽), 저쟝(浙江), 쟝수(江蘇), 산동(山東) 등 6개 지역에서 10명이 새로 성소를 찾아 입학하는 등 중국 교회의 요람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br /><br />이들 성소자들은 3년 과정의 소신학교를 졸업한 후 2년의 철학과정을 시작으로 실습 1년, 4년의 신학 공부를 마치더라도 종교국의 허가를 얻지 못하면 사제 품을 받지 못한다. 이로 인해 신학교 졸업 후에도 2, 3년간 사제품을 받지 못하고 대기하며 신학교나 교구 일을 돕는 이들이 적지 않다. <br /><br />더구나 중국의 신학교들은 사회적으로 정식 학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이 점 또한 교회 발전에 발목을 잡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사제품을 받은 후에도 향후 활동을 위해 유학을 떠나거나 일반 대학에 다시 진학하는 등 어려운 여건 속에서 신앙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나마 이 또한 교구 재정이 허락하거나 외부의 도움이 있는 경우에나 가능해서 대부분의 사제들은 공인 학력이 낮아 대사회적으로도 활동에 제약을 받는 경우가 적잖다. <br /><br />중국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한 교구에, 교구에서 설립하거나 지정하는 하나의 수도회만이 활동하는 게 보통이다. 상하이교구의 경우에도 지난 1985년 교구에서 설립한 성모헌당회(The Congregation of Presentation of Mary)에서 배출된 수녀들이 광계사를 비롯해 사회복지 시설 등 교구의 각종 사목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상하이를 비롯한 중국의 종교인들은 외부와의 교류를 통해 탈출구를 찾고자 하지만 여권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제약이 많은 실정이다. 여기서 가까운 이웃이자 형제인 한국교회의 몫을 발견할 수 있다. <br /><br />사진설명<br /><br />▶상하이에 천주교 씨앗을 뿌린 서광계.<br /><br />▶서가회주교좌성당을 찾은 신자들이 기도하고 있다.<br /><br />▶상하이교구청 전경. 뒤로 중국의 발전상을 드러내는 고층건물들이 보인다.<br /><br />▶상하이에서 제일 높은 서산 마루에 위치한 서산성모대성당.<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6:0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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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2.중국 (1)낙관론과 비관론의 교차</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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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b><span style="color:rgb(51,51,51);font-size:24px;background-color:rgb(255,255,255);font-family:NotoSansM;letter-spacing:-.65px;">[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2.중국 (1)낙관론과 비관론의 교차</span><div class="basic-box bg01 board-date thin" style="border:1px solid rgb(206,226,233);padding:10px 30px;margin-top:-1px;background:rgb(244,247,251);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font-size:13px;letter-spacing:-.65px;"><p class="date" style="list-style:none;font-size:14px;color:rgb(151,159,162);">발행일<span style="margin-left:10px;padding-left:10px;">2006-11-12 [제2524호]</span></p></div><div class="float-wrap detail-story" style="margin:20px 0px;font-size:16px;line-height:24px;color:rgb(99,99,99);font-family:NotoSansDL, NotoSansM, NotoSansB, NotoSansDL;letter-spacing:-.65px;background-color:rgb(255,255,255);"><div style="float:left;margin:4px 14px 14px 0px;"><div style="width:auto;"><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aDAsk8B6_bd42cbfcbdcb5ab464b896a9293132b3af4fb1ab.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aDAsk8B6_bd42cbfcbdcb5ab464b896a9293132b3af4fb1ab.jpg" alt="3232235521_aDAsk8B6_bd42cbfcbdcb5ab464b896a9293132b3af4fb1ab.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margin-bottom:14px;color:rgb(98,65,172);width:auto;font-size:13px;"><span style="font-size:12px;font-weight:bold;"></span> ▲ 중국 청년 신자들이 북부 허베이성에 위치한 스자좡교구 주교좌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다.<br /></div></div></div><div>‘지상-지하교회’ 이분법적 인식이 걸림돌 <br /><br />교황청과 관계 끊고 ‘애국회’ 세워 독자적 길 걸어<br /><br />이웃교회 뿐 아니라 중국 내 상호교류 안돼 단절도 <br /><br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 그 변화를 수식하는 ‘무섭다’는 말은 이제 단지 느낌이 아닌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무서울 정도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에서 교회는 여전히 죽의 장막 뒤에 놓여있는 모양새다. <br /><br />이런 가운데 중국교회에 대한 전망은 맹목적 낙관론부터 과장된 비관론까지 광범위한 게 현실이다. 미국 타임지 기자로 일한 바 있는 저명한 언론인인 데이비드 에이크만은 자신의 저서 ‘베이징의 예수’에서 중국 그리스도교를 강렬하면서도 힘차게 약동하는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에이크만은 종교가 이미 중국 정치는 물론 경제와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고 본다. 나아가 중국이 앞으로 30년 안에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그리스도교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br /><br />그는 이런 변화가 새 그리스도교 종파를 만들어내고 종파간 변동을 촉진하면서 전체 그리스도교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br /><br />그러나 그의 이런 분석은 하나의 보편된 교회인 가톨릭교회와는 별 상관없는 얘기로 들린다. 중국 내 가톨릭 신자수만 하더라도 13억 인구의 1%에도 못 미칠 뿐 아니라 그들 대부분이 가난하고 교육 혜택에서 소외된 이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교회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이 교차한다. 가까운 이웃이자 형제인 한국교회의 몫을 발견하는 일도 여기서 시작할 수 있다. <br /><br />이해의 첫걸음 <br /><br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국. 세상에 나온 것이라면 이튿날 똑같은 것을 선보인다는 중국에 없는 게 있다. 바로 ‘통계’가 그것이다. <br /><br />2005년 1월로 13억명을 돌파한 중국의 인구통계는 말 그대로 ‘공식적’인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인들 스스로도 한 2, 3억명은 더 숨어있을 것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한다. 전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중국 인구는 여기에 더해 매년 1천만명씩 늘어나고 있다. <br /><br />중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런 각종 통계의 부재는 여러 면에서 어려움을 낳는다. 단적으로 중국천주교 주교회의가 1998년 국가의 행정구역에 따라 전체 교구를 115개 교구로 재설정했지만 실제 10년 넘게 교구장 주교는 물론 사목자 없이 기록상으로만 존재하는 교구도 적지 않다. <br /><br />더구나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여건으로 이웃 교회와는 물론 중국교회 내부간의 상호 교류도 그리 활발하지 않아 어떻게 만남을 갖고 어디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할 지 가늠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아 교회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br /><br />특히 통계의 부족은 상호 이해의 부족으로 이어져 보편교회 안에서 한 형제임을 지향하면서도 결과적으로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가게 하는 소통의 부재를 확대재생산해내고 있다. <br /><br />따라서 중국교회에 다가서는 일은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국 사회와 그 안에서 면면이 이어져오고 있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일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br /><br />중국교회 약사 <br /><br />중국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가 소개된 것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던 네스토리우스주의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중앙아시아를 거쳐 635년 처음 중국에 전해져 ‘경교(景敎)’ 또는 ‘대진(大秦) 경교(景敎)’로 불리며 200여년간 교세를 유지했다. 경교가 종교 탄압 등으로 소멸된 후 1289년 프란치스코회 회원인 몬테 코르비노의 요한(Johannes de Monte Corvino)이 파견된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선교 활동이 본격화됐으나 원 제국이 멸망하면서 이들의 선교 활동도 막을 내렸다. <br /><br />이후 명나라 말기인 1582년 예수회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신부가 마카오를 통해 중국에 들어오면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된다. 리치는 중국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적응주의’ 노선의 선교로 중국교회의 기반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나가게 된다. <br /><br />그는 그리스도교를 먼저 중국인들의 문화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기 위해 중국의 생활 습관을 따르고 이교적 우상숭배의 혐의가 없는 한 공자 숭배와 조상 숭배 등을 중국식 전통 계승 방법으로 인정했다. <br /><br />또 영향력있는 문인이나 관리 등과도 널리 교제하며 스콜라철학적인 신개념으로써 그들의 ‘상제’(上帝)가 바로 천주(天主)임을 가르쳤다. 그의 이 같은 보유론적(補儒論的) 선교방식은 성공을 거두어 선종 당시 2000명이 넘는 개종자가 나타났다. 이런 그의 활동이 밑거름이 돼 1700년까지 가톨릭신자 수는 30만명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br /><br />하지만 예수회에 뒤이어 중국에 진출한 도미니코회(1631)와 프란치스코 수도회(1633)가 예수회의 적응주의적 선교 방침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거진 100여년(1634∼1742)에 걸친 중국의 의례 논쟁에 대해 바티칸이 부정적 결정을 내림으로써 보편교회의 중국 선교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br /><br />이후 중국 왕조의 변화에 따라 수차례의 박해가 발생하고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나면서 중국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br /><br />19세기 들어 유럽 열강들의 본격적인 중국 진출이 이루어지면서 선교사들의 활동도 개항장을 중심으로 내륙 지역에서도 재개되었다. <br /><br />1840년 아편전쟁에 패한 중국이 1844년 프랑스와 황푸조약을 맺어 천주교 금교령을 해제하고 1858년 톈진(天津)조약으로 중국 내지에 교회와 학교 설립이 가능해지자 신자수가 1870년까지 37만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도약기를 맞는 듯했다. <br /><br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구 열강의 힘을 업은 그리스도교의 이러한 선교 활동은 1900년 북경에서 일어난 반외세운동인 의화단 사건으로 4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br /><br />특히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되면서 가톨릭을 비롯한 중국 내 모든 종교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외국인 선교사의 중국 내 선교 활동이 금지되면서 1950년 2274명의 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나야 했다. <br /><br />또 방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종교 활동이 금지되고 교회에서 운영해오던 학교 3932개, 병원 216개를 비롯해 약국, 고아원, 출판사는 물론 정기 간행물 55개가 폐쇄 또는 폐간되고 말았다. <br /><br />이런 가운데 교황청은 1946년 11월 4일 중국에 20개의 대교구, 79개의 교구, 38개의 감목구로 교계 제도를 설정하게 된다. <br /><br />그러나 중국 정부는 1957년 7월 교황청과 독립적으로 중국 천주교 애국회(Patriotic Association of Chines Catholics)를 설립해 독자적인 종교 노선을 가시화한다. 특히 중국 정부가 사도좌의 승인없이 1958년 26명의 주교를 ‘선출’함으로써 중국 교회는 깊은 질곡의 길을 걷게 된다. <br /><br />새로운 만남을 위해 <br /><br />역사를 통해 볼 때 중국교회는 고비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며 더디지만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중국교회 전문가들은 이런 가운데 하느님의 역사하심이 드러나고 있으며 그 도정에 놓인 시대의 징표를 찾아 따라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몫임을 역설한다. <br /><br />대중국 관계 연구에 있어 남다른 노하우를 축적해오고 있는 홍콩교구 성신연구센터 사무총장 람써이케이(林瑞琪.안토니오) 박사는 “중국교회가 놓인 외부와의 관계 단절 자체가 중국 교회 신자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질곡”이라고 강조하고 “중국 신자들의 입장이 돼 그들의 시각에서 보편교회와 중국교회를 바라볼 것”을 당부한다. <br /><br />람박사의 이런 지적은 여전히 중국교회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에서 거두어내지 못하고 있는 ‘지상교회·지하교회’식의 이분법적 구분이 오히려 중국교회에 다가서려는 노력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현실 분석에서 나온 통찰을 담고 있다. <br /><br />그는 “중국교회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가 승인한 ‘공식교회(official church)’와 그렇지 못한 ‘비공식교회’로 구분하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실제 공식·비공식 교회가 공존하는 경우가 많으며 단지 지역별로 공식교회가 우세한 곳이 있고 비공식교회가 우세한 곳이 있을 따름”이라고 밝혔다. <br /><br />또한 독립성이 인정되는 자치지역 교구의 경우 거의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인 교구 행정을 유지해오고 있다고 전한다.<br /><br />“공식교회에 속한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안팎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미국, 독일 등지에서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교회를 위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되리라 생각합니다.”<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서상덕 기자</p></div>]]></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14: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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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해 진쟈샹(김가항.金家巷)성당의 어제와 오늘</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p><b><span style="font-size:12pt;">[성 김대건 신부 서품 170주년 특집] 상하이 진쟈샹(金家巷)성당의 어제와 오늘</span></b></p><p> </p><p> </p><b>
<span style="font-size:10pt;">지금은 흔적조차 남지 않은 ‘한국인 첫 사제 탄생’의 자취</span></b><p> </p><p><b><span style="font-size:10pt;">
파괴·철거 등 아픈 역사 반복</span><br /><span style="font-size:10pt;">2004년 자리 옮겨 새성당 봉헌</span><br /><span style="font-size:10pt;">성인 유해 안치한 기념 경당 마련</span><br /><span style="font-size:10pt;">한문·한글·영문 성인 생애 소개</span></b></p><p> </p><p> </p><p>
발행일
2015-08-23 [제2958호, 10면]</p><p> </p><div style="width:550px;clear:both;"><br /></div><div style="width:550px;clear:both;"><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7dyuY29t_a0416a464591240ca3e808051aad35f84105d7f2.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7dyuY29t_a0416a464591240ca3e808051aad35f84105d7f2.jpg" alt="3232235521_7dyuY29t_a0416a464591240ca3e808051aad35f84105d7f2.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size:12px;font-weight:bold;"></span> ▲ 2001년 3월 철거되기 전 진쟈샹(金家巷)성당 모습. 한국인 첫 사제 성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곳이다. <br />(가톨릭신문 자료사진)</div></div><div>한국교회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가 1845년 8월 17일(주일)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하이 진쟈샹(金家巷)성당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모태와도 같은 기념비적 사적지다.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 170주년을 맞아 8월 15일 오후 5시 상하이 포동신구 진쟈샹성당에서 열린 가톨릭남성합창단 울바우 초청 음악회와 8월 16일 오전 11시 같은 장소에서 봉헌된 기념미사가 감격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다. <br /><br />안타깝게도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식이 열렸던 ‘바로 그’ 진쟈샹성당은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 없다. 진쟈샹성당은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황포강 동쪽인 포동지역에 위치하다 2001년 3월 25일 당시 상하이교구장 김로현(金魯賢) 주교 주례로 마지막 미사 봉헌 후 그해 3월 30일 상하이시가 도시개발계획 명목으로 철거를 단행했다. 2001년까지 진쟈샹성당이 서 있던 자리에는 상하이해사(海事)법원 부속건물(상하이시 포동신구 민생로(民生路) 1288)이 들어서 옛 자리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 법원 부속건물 경비의 감시와 제재가 심해 진쟈샹성당 옛 자리를 답사하거나 촬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옛 진쟈샹성당 주변 건물들도 함께 헐리면서 그 자리를 최신식 관공서들이 대신하고 있다. <br /><br />진쟈샹성당 철거 당시 상하이 천주교 한인공동체에서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장소임을 표시하는 표석을 세워달라고 상하이시에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r /><br />진쟈샹성당은 철거된 자리에서 1㎞ 남짓 떨어진 상하이시 포동신구 다무즈(大拇指)광장 옆에 2004년 6월 기존 성당보다 큰 규모로 새롭게 봉헌됐다. 진쟈샹성당이 새롭게 자리한 곳은 서울로 치면 강남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성당 주변은 고층 빌딩과 아파트, 상가들이 즐비하다. <br /><br />비록 김대건 신부가 서품된 정확한 장소는 아닐지라도 기존 성당에 모셨던 김대건 신부의 유해(척추뼈)를 안치해 2005년 4월 김대건 신부 기념 경당도 마련했다. 이 경당은 김대건 신부가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 등과 함께 1845년 8월 31일 상하이에서 강경으로 출발한 라파엘호를 본떠 배 모양으로 건축돼 순교지로 떠나던 김대건 신부의 뜨거운 신심을 묵상하게 한다. 상하이교구 소속인 진쟈샹본당은 건물 입구 벽에 한문과 한글, 영어로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과 순교, 시성 등 약사를 청동판에 기록해 부착했고 본당 마당 게시판에도 한문으로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적어 진쟈샹성당을 찾는 모든 이에게 김대건 신부를 알리고 있다.<br /><br />이처럼 2000년대 들어 철거와 재건축이라는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낸 진쟈샹성당은 17세기 중국 명나라 숙종(1628~1643) 대에 건립된 중국 화동지역 최초의 성당이라는 장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숙종 대에 건립’의 의미에 대해 당대에는 신자 가정집을 성당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고 일반적 의미의 성당이 실제로 건립된 것은 후대의 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br /><br />1841년에는 남경교구 주교좌성당으로 지정되면서 4년 뒤 김대건 신부가 진쟈샹성당에서 한국인 최초의 사제로 탄생되는 역사적 장소가 됐다. 교회 건축 전문가 단국대 김정신(스테파노) 교수는 진쟈샹성당이 김대건 신부의 사제서품 장소로 선택된 배경에 대해 “진쟈샹성당은 크기가 60평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 상하이 인근에서는 최대 규모였기 때문에 주교좌성당의 지위를 누렸고 사제서품식이 그곳에서 열릴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r /><br />상하이교구에서 발행된 교회역사 기록을 종합하면, 진쟈샹성당은 신자 수가 증가하면서 1872년 700~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 성당’을 건축해 양자강 이남 지역 선교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1922년에는 다시 이 성당을 확장, 수리해 성당의 모양이 장관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새 성당은 1937년 일본군의 폭격에 의해 파괴되고 1949년 4월 1000명이 한꺼번에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고딕양식의 성당을 준공하지만 한 달 만에 국민당 군대에 의해 파괴됐다. 이어 1958년 대약진 운동 때는 제대, 성모상 등이 뜯기거나 불태워졌으며 철공소로 사용됐다. 최초의 진쟈샹성당은 새 성당이 건립되면서 소성당으로 보존되다 새 성당이 파괴된 후 기능을 회복해 1987년 12월부터 다시 문을 열었다. <br /><br />진쟈샹성당은 최초의 성당 신축, 새 성당 건축과 파괴, 재건축 등의 복잡한 역사를 이어가면서 과연 김대건 신부의 서품장소가 2001년에 철거된 진쟈샹성당인지, 파괴돼 대지에 남아 있지 않은 다른 건물이었는지 등을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진쟈샹성당의 철거 부재를 상하이 당묘교성당으로 직접 옮긴 상하이한인성당 강병조(안드레아)씨도 이에 대해 “김대건 신부님 서품 장소가 2001년 철거된 진쟈샹성당이 아닐 수 있다는 의견을 들은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4년 진쟈샹성당 내 ‘성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을 설계한 최부득(바오로) 상하이한인성당 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건축학 박사)은 “건축 양식으로 볼 때 2001년 철거된 진쟈샹성당에서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서품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br /><br />현대 중국어로 ‘진쟈샹’으로 발음되는 김가항(金家巷)은 ‘김씨들이 사는 골목’이라는 뜻으로 실제 진쟈샹성당 주변에는 김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 한국에서 ‘금가항성당’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진쟈샹성당의 잘못된 표기라는 견해가 대체적이다. <br /><br />1992년 8월 한중 수교가 맺어지기 전까지는 한국인의 중국 왕래가 제한돼 오랜 세월 한국 신자들에게 잊힌 존재였다. 한중 수교 후에야 진쟈샹성당은 중국을 찾는 한국 신자들의 필수 순례코스가 됐다. <br /><br /></div><div style="clear:both;margin:4px 14px 14px 0px;text-align:center;"><div style="width:550px;clear:both;"><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lLoUKPtN_aede7aa4e5d9b5adcfa65ee7bb54755f8e6b2c45.jpg" alt="3232235521_lLoUKPtN_aede7aa4e5d9b5adcfa65ee7bb54755f8e6b2c45.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size:12px;font-weight:bold;"></span> ▲ 2004년 건축된 진쟈샹성당 현재 모습.<br /></div></div><div style="width:400px;clear:both;"><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gSl8z670_d613b2c3af4eb7bfaef8a039963a384407a6e2aa.jpg" alt="3232235521_gSl8z670_d613b2c3af4eb7bfaef8a039963a384407a6e2aa.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400px;"><span style="font-size:12px;font-weight:bold;"></span> ▲ 상하이 진쟈샹성당 내 위치한 ‘성 김대건 신부 기념경당’. 김대건 신부가 탔던 라파엘호 모양을 하고 있다.<br /></div></div></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중국 상하이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1:05: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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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해 김가항 성당 “김대건 신부는 사회적 국제적 재평가 받아야”</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11</link>
	<description><![CDATA[<b><span style="font-size:12pt;">[특집] 수원교구 설정 40주년 기념 심포지엄 ‘우리 벗아!’</span></b><p> </p><p><b>
<span style="font-size:10pt;">“김대건 신부는 사회적 국제적 재평가 받아야”</span></b></p><p>발행일2002-11-17 [제2323호, 15면] </p><p> </p><p> </p><div style="width:550px;clear:both;"><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aHn9FV70_891511e8f0282cc4ff3037f178541037b6e1f5f3.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aHn9FV70_891511e8f0282cc4ff3037f178541037b6e1f5f3.jpg" alt="3232235521_aHn9FV70_891511e8f0282cc4ff3037f178541037b6e1f5f3.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size:12px;font-weight:bold;">▲ “우리 벗아!”</span> 수원교구는 내년 10월 7일 교구 설정 40주년을 앞두고 11월 9일 수원교구청 대강의실에서 성 김대건 신부와 은이성지.김가항 성당의 관계를 조명해보는 심포지엄 「우리 벗아!」를 개최했다.<br /></div></div><div>수원교구(교구장=최덕기 주교)가 교구 설정 40주년(2003년 10월 7일)을 앞두고,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의 국내 복원 문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는 자리를 가졌다.<br /><br />「수원교구 은이 성 김대건 신부 현양위원회」(위원장=한상호 신부)와 「교구 설정 40주년 기념사업분과 위원회」는 11월 9일 오후2시 수원교구청 대강의실에서 성 김대건 신부와 은이성지.김가항 성당의 관계를 조명해보는 심포지엄 「우리 벗아!」를 개최했다.<br /><br />성직자와 수도자, 관련 학계 전문가와 관계자, 평신도 등 200여명이 참석한 이번 심포지엄은 용인 은이 성지에 김가항 성당을 복원하는 데 선행되어야 할 정당성과 학문적 토대를 점검하기 위한 토론의 장으로 마련됐다.<br /><br />정종득 신부(수원교구 구산성지 주임)의 사회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안병선 신부(양지본당 주임 겸 현양위원회 총무)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하성래 교수(문학박사)의 「성 김대건 신부와 굴암 및 은이」 ▲서종태 박사(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원)의 「상해 김가항 성당과 성 김대건 신부」 ▲김정신 교수(단국대학교 건축학과)의 「상해 김가항 성당의 실측조사와 복원의 의미」에 대한 주제발표로 진행됐으며, 차기진 박사(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신의식 교수(주성대학교 중국문화학과), 윤성호 교수(한서대학교 건축학과)가 각 주제의 약정 토론자로 나섰다.<br /><br />「성 김대건 신부 현양의 현주소」를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안병선 신부는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기 위한 국내에서의 노력은 관련 저술과 연구 논문, 유해발굴, 성화와 성극 공연, 영화 및 비디오 제작, 도보 성지 순례와 유해 순회 기도회 등 다양하게 추진되어 왔다』면서 『향후 김대건 신부에 대한 현양은 가톨릭 교회 차원을 넘어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확인하고 알릴 필요가 있고, 국내에 국한된 인물이 아닌 당시 국제적인 인물로서도 재평가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신부는 『인터넷과 영상매체라는 새로운 문화의 장에서 김대건 신부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물이나 자료물을 만나기는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br /><br /><strong>“김가항 성당 복원 원활히 이뤄지길”</strong><br /><br />기조강연에 앞서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는 『김대건 신부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과 교우촌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은이성지는 각각 미리내 성지와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개발되지 않아 안타까웠다』면서 『오늘 심포지엄을 통해 김대건 신부의 성지인 은이를 널리 알리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기도 속에서 향후 김가항 성당의 복원사업이 원활히 이뤄지기를 축원한다』고 당부했다. <br /><br /><br /><br /><strong>■ 주제발표(요지) - 성 김대건 신부와 굴암 및 은이’/ 하성래 교수</strong> <br /><br />“김대건 신부 나고 체포된 곳은 솔뫼-골배마실 아닌 용인 굴암” <br /><br /><div style="margin:10px 10px 10px 0px;text-align:center;float:left;width:116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VnlmZGOw_19f56a037502cdfd0a20b44672c1c1803da263c2.jpg" alt="3232235521_VnlmZGOw_19f56a037502cdfd0a20b44672c1c1803da263c2.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116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하성래 교수</div></div>이제까지 우리는 모방 신부가 김대건 신부를 「솔뫼 출신」이라고 한 데 근거해 그의 생애를 1821년 솔뫼 출생, 1827년 서울 청파동, 용인 한덕동, 골배마실, 신학생 선발 및 유학, 귀국 후 순교로 도식화했다.<br /><br />그러나 「일성록」의 「김대건공초」에 「조선 용인 땅 태생」, 「현종실록」의 「용인 사람」, 정하상의 「용인 사는 김제준의 아들 재복」 등을 근거로 그가 솔뫼 태생이 아니라, 용인 굴암 태생임을 조심스럽게 추정해볼 수 있다.<br /><br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은 비록 고향을 떠나 살지라도, 자신의 고향을 말할 때면 그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가문의 고향을 들어 말하는 사회적인 통례가 있다. 김대건 신부가 비록 용인 땅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솔뫼 김씨 집안」이라고 말한다든가, 「솔뫼 김씨 집안 자손」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br /><br />위와 같은 사료로 볼 때, 김 신부가 체포된 곳은 이제까지 알려진 바와 같이 골배마실이 아니라 용인 굴암이며, 골배마실로 이사온 것은 김제준이 순교한 후 그의 처 고우술라가 남은 가족들을 거느리고 온 것으로 보여진다.<br /><br />은이는 1830년 이여진의 선종지이며, 1836년 김대건 신부가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곳이다. 이곳은 또 1846년 성 한이형 라우렌시오가 살다가 잡혀간 곳이다. 동시에 은이는 성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고 처음으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은이상뜸이 모친댁에 와서 머물며 그 주변 교우들과 함께 부활절 미사를 드린 곳이기도 하다.<br /><br />특히 은이에 1830년대, 또는 그 이전부터 공소가 있었다는 것은 은이가 그 지역 교우촌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며, 이는 은이가 한국 천주교회사에서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곳임을 입증한다 하겠다.<br /><br />굴암과 은이는 각각 김대건 신부가 탄생하고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은 역사적 의의가 깊은 곳이다. 은이 뿐만아니라 굴암 지역도 성지로서 개발되고 성역화되어야 한다. <br /><br /><br /><br /><strong>■ 주제발표(요지) - ‘상해 김가항 성당과 김대건 신부’/ 서종태 박사</strong> <br /><br />“실측 결과 사제품 받은 성당, 증축 보수 가능성은 있어” <br /><br /><div style="margin:10px 10px 10px 0px;text-align:center;float:left;width:116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jzAuyRDO_40767f12b89becdc3bc459d64f6b43078d1c6518.jpg" alt="3232235521_jzAuyRDO_40767f12b89becdc3bc459d64f6b43078d1c6518.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116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서종태 박사</div></div>중국 상해 연안에 위치했던 김가항 성당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았던 곳이다. 김신부는 1845년 8월 17일 이곳에서 페레올 주교로부터 사제품을 받았으며, 8월 24일 상해에서 약 30리되는 곳에 위치한 횡당 소신학교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했다.<br /><br />김가항 성당은 김대건 신부가 사제 품을 받은 뒤 곧 잊혀졌다가, 오기선 신부가 1990년 7월 「가톨릭신문」의 취재단을 인솔해 김가항 성당을 방문하고 돌아온 뒤부터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br /><br />당시 오기선 신부 일행은 성당 관계자로부터 「김신부가 사제품을 받은 본래의 성당은 파괴된지 오래고, 후대에 새로 세운 세 번째 건물이 들어섰다」는 설명에 따라 그것을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대신에 김대건 신부의 유해, 석고상, 초상화 등을 성당측에 기증해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는 활동을 주로 지원했다. 이후, 김가항 성당은 김대건 신부를 매개로 한 한.중 양국 교회의 교류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명소로 발전하게 됐다. 그러나 김가항 성당은 상해 정부의 포동 지역 개발 정책에 따라 지난해 3월 30일 철거되고 말았다.<br /><br />여기서 우리는 김가항 성당이 김대건 신부가 사제품을 받았던 본래의 성당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를 체계적으로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br /><br />우선 「상해종교지」, 「양경향지」, 「강남전교사」 등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김가항천주당」에서 발췌한 구체적인 문헌 자료를 살펴보면, 김가항 성당은 명나라 숭정 년간(1628∼1644)에 처음 세워진 이후 계속해서 확대 발전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일본군과 국민당 군대의 포화로 인해 증축되고 보수되었을 지는 모르지만, 1872년 700∼8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큰 성당을 별도의 장소에 건축할 때까지 기존에 있던 옛날 성당 건물은 계속해서 본당으로 사용됐다. 즉, 새로운 큰 성당을 사용할 때에는 기존의 성당 건물(김신부가 사제품을 받았던 성당)을 교사와 교우들의 학습 등 교육관으로 사용했던 것이다.<br /><br />이와 같이 여러 문헌 자료들을 통해 확인한 김가항 성당에 관한 사실들은 건물 구조의 실측?조사 결과와도 합치된다. <br /><br /><br /><br /><strong>■ 주제발표(요지) - ‘김가항 성당 실측조사와 복원 의미’/ 김정신 교수</strong> <br /><br />“상해 김가항 성당 재현은 내면적 이미지 형상화가 중요” <br /><br /><div style="margin:10px 10px 10px 0px;text-align:center;float:left;width:116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JwkxgPpy_bc936d26e030d4064408164c616fb64b2f8bcd89.jpg" alt="3232235521_JwkxgPpy_bc936d26e030d4064408164c616fb64b2f8bcd89.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116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김정신 교수</div></div>건축의 현장은 시공간의 맥락속에 존재한다. 중국 상해의 김가항 성당을 양지의 은이공소에 재현하고자 할 때, 자칫 시간성과 장소성의 개념이 충족되지 않는 건물의 모형(껍데기)으로 남게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충분한 고증이나 자료가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시대적 의식도 그 밑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재현의 방법도 「미메시스(자연모방)」 적인 모방이나 모사가 아니라 「구술」과 「이미지」를 통한 체험적 재현이 되어야 할 것이다.<br /><br />여기서 체험적 재현이란 대상의 외적인 모양을 기계적으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 능력과 내적인 감수성을 통해 다양한 매체의 특성을 이용, 보다 본질적이고 내면적인 이미지를 파악하고 형상화하는 것이다.<br /><br />김가항 성당의 실측조사는 철거되기 직전인 2001년 3월 24일과 25일 양일간에 이뤄졌으며, 건물이 높지않고 주변에 여유공간이 있기 때문에 수작업에 의한 직접실측이 가능했다. 다만 문양이나 디테일의 정밀한 실측은 어려웠고, 건축양식과 구조 및 재료의 노후상태 등을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없었다.<br /><br />김가항 성당의 전체 대지는 약 3760㎡(1137평)이며, 성당의 평면은 장방형으로 단변이 9.09m, 장변이 25.108m로서 약 228㎡(69평)이다. 여기에 2층의 김대건 신부 기념관이 우측에, 단층의 제의실이 좌측에 연결돼 있다. 성당의 높이는 처마까지가 4.363m, 지붕 용마루가 7.56m이다.<br /><br />성당의 내부는 5개씩의 양열주에 6칸의 장변축으로 구성되어 맨 마지막 칸이 제단을 구성하고 있다. 지붕 가구 형식은 전통적인 중국 목구조의 대량식을 따랐고, 횡축(도리방향)과 종축(보방향)을 바꿈으로써 넓은 실내공간과 바실리카식 공간을 확보했다. 또, 출입문과 창호에 아치를 둠으로써 교회의 이미지를 나타냈다.<br /><br />직접 실측조사를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건물의 증축사실과 문헌기록, 그리고 현지 중국신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김대건 신부의 사제 수품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상해에서의 중국식 성당건축의 건립 과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으며, 60여평에 불과한 김가항 성당이 당시 남경교구 주교좌성당이었다는 것도 밝혀냈다. 셋째, 중국식 성당 건축의 구조와 내부공간 구성 및 장식 상세 등을 알 수 있었다. 넷째, 중국의 성당건축 양식의 수용과 토착화 과정의 실증적인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 다섯째, 시공간의 맥락속에 존재하는 건축물을 다른 곳에 재현하고자 할 때 시간성과 장소성 개념, 재현 대상의 내면적인 이미지와 방법론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있어야 하겠다.<br /><br /></div><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곽승한 기자</p><p class="author" style="margin-top:30px;list-style:none;font-size:15px;">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0:53:4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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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b><span style="font-size:11pt;">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span></b><p> </p><p><b>하느님 사랑한 성인의 숨결 살아 숨쉬다</b></p><p> </p><p>

성 김대건 안드레아.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서 한국교회의 큰 걸음을 뗀 김대건 성인은 25살의 짧은 생애에 겨우 1년 남짓 사제생활을 했음에도 수많은 발자취들이 아직도 성인의 삶을 말해준다. 고향인 솔뫼성지에서부터 박해를 피해 머문 골배마실, 사제가 돼 처음으로 밟은 고국 땅인 용수리포구와 나바위, 어려서 세례를 받고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던 은이성지, 순교의 피가 뿌려진 새남터성지, 시신이 묻힌 미리내성지에 이르기까지. 그 발자취만으로도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신학생으로서 공부하던 마카오에서도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김대건 성인이 공부하던 신학교,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김대건 성인이 자주 찾아가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성 바오로성당이 남아 있다.<br /><br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그를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남쪽의 섬나라, 필리핀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필리핀 불라칸(Bulacan)지역의 롤롬보이(Lolomboy). 그곳에 남아있는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아가봤다. <br /><br /><strong>▧ 한글로 적힌 표지판 눈에 들어와</strong><br /><br />마닐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거기서 또다시 30분가량을 필리핀 특유의 교통수단 지프니(Jeepney)로 달렸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마을 롤롬보이. 지프니에서 내려 매캐한 매연을 헤치고 주변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다. 고온다습한 날씨도, 건물들도, 사람들의 모습도, 심지어는 풀포기에 이르기까지 달랐다. 지금이야 그나마 포장도로나 콘크리트 건물들이 늘어서 그나마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지만 170여년 전 열일곱의 어린 신학생 김대건이 이 땅을 밟았을 당시에는 조국의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별세계였을 것이다.<br /><br />‘성 김대건 안드레아.’ 알파벳으로 가득한 이 이방의 땅에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김대건 성인의 늠름한 동상이 반기고 맞은편에는 최양업 신부의 동상이 당장이라도 복음을 선포하러 갈 듯 지팡이를 짚고 있다.<br /><br />김대건 성인이 이곳 필리핀에 처음 온 것은 1837년 8월. 서울에서 순명과 봉사를 서약하고 6개월간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이 공부를 시작한 지 불과 두달 만이었다. 신학생들은 당시 아편문제로 혼란에 빠진 마카오를 피해 필리핀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39년 4월 다시 민란을 피해왔고 1842년 2월 대만으로 가기 전 10여 일을 머물기도 해 김대건 성인이 이곳에서 생활한 기간만 1년 이상이다. 현재 김대건 성인의 성지가 조성된 곳이 바로 도미니코수도원 터다. </p><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UymN1YEn_32a8bdbd2593271c9cf46c65640c0f334738a159.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UymN1YEn_32a8bdbd2593271c9cf46c65640c0f334738a159.jpg" alt="3232235521_UymN1YEn_32a8bdbd2593271c9cf46c65640c0f334738a159.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40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김대건 성인은 이곳 롤롬보이를 3차례 방문하고 1년 이상을 공부하며 생활했다.</div></div><br /><br /><strong>▧ 롤롬보이 주민들도 성인에 큰 관심 가져</strong><br /><br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으로는 성인의 유해소와 기와지붕의 경당이 있고 경당 옆에는 커다란 망고나무가 서있다. 도미니코수도회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은 ‘망향의 망고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 곁에서 김대건 성인이 부친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망고나무를 뒤로하고 길을 따라가면 7궁방탑이 보인다. 관상의 7단계를 상징하며 김대건 성인이 온갖 역경을 딛고 공부하던 과정을 기억하게 하는 이 탑은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로 탑 7층에 올라가면 롤롬보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탑에는 각 층별로 작은 방을 마련해 기도와 피정 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br /><br /><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IQF8Nkcu_de7d1a16812208bb350f08365ad29f7d5e2d2754.jpg" alt="3232235521_IQF8Nkcu_de7d1a16812208bb350f08365ad29f7d5e2d2754.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롤롬보이본당의 김대건 성인상의 모습, 성지조성으로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눈다.</div></div><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Asz5eS0K_03816b02d47e6bb4c38a34b3f438aad9885bbbb1.jpg" alt="3232235521_Asz5eS0K_03816b02d47e6bb4c38a34b3f438aad9885bbbb1.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기와를 활용,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경당과 7궁방탑의 모습.</div></div>이곳은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롤롬보이 사람들 사이에선 ‘한복을 입은 목 없는 귀신이 나오는 흉가’로 불리며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1986년 고 김수환 추기경, 고 오기선 신부 등이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세우고 2002년부터 성안드레아수녀회가 성지를 매입, 조성하면서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사라지고 롤롬보이 주민들도 김대건 성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br /><br /><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iSOTZbvY_c60d019b38de08bddd76d7ae54394288bec976d5.jpg" alt="3232235521_iSOTZbvY_c60d019b38de08bddd76d7ae54394288bec976d5.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40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유해소 외부 모습.</div></div><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yL4AD6ue_0af151b7b5779772b2b8ecdd07a0a0ee099ac49f.jpg" alt="3232235521_yL4AD6ue_0af151b7b5779772b2b8ecdd07a0a0ee099ac49f.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유해소에 안치된 김대건 성인의 유해 모습.</div></div><br /><br /><strong>▧ 후원금 부족으로 성지 건축 진행 힘들어</strong><br /><br />성안드레아수녀회는 약 10년간 후원금이 마련될 때마다 성지를 가꿔 지금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조성했지만 후원금의 부족으로 진척이 안 돼 아직도 성지의 중심이 될 성당과 봉헌소 등의 건축이 진행 중이다. 특히 김대건 성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갓’을 형상화해 8층 높이의 건물로 건축 중인 성당은 호숫가에 지어져 성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자금 부족으로 건축이 중단된 채 방치되기도 했다. 또 피정의 집도 있어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br /><br /><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3kHa9tVZ_8c264eba71d9a479dbfa4806c33d7de5441a5417.jpg" alt="3232235521_3kHa9tVZ_8c264eba71d9a479dbfa4806c33d7de5441a5417.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55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갓’을 형상화한 성당(좌측)과 봉헌소(우측)의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완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div></div><div style="margin:10px 0px;text-align:center;clear:both;width:770px;"><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9/3232235521_MHWhFTa8_034e51af3c63c5545527e9e2c5c5c17bd43d2b94.jpg" alt="3232235521_MHWhFTa8_034e51af3c63c5545527e9e2c5c5c17bd43d2b94.jpg" class="img-tag "/><div style="line-height:19.5px;text-align:left;padding-bottom:20px;color:rgb(98,65,172);font-size:13px;width:400px;"><span style="font-weight:bold;"></span> ▲ 성지에 마련된 피정의 집은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찾는 방문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피정의 집 모습.</div></div><p>필리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느낌의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성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롤롬보이 사람들에게 김대건 성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심어줬다.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대건 성인의 정신은 필리핀에서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필리핀, 이 멀고도 가까운 섬나라에서 유학생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학업에 정진했던 김대건 성인의 숨결이 느껴졌다.<br /><br />※순례문의 031-673-8560 성안드레아수녀회, 후원계좌 310-08-225166 우리은행 (예금주 김화숙)<br /><br />
롤롬보이(필리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p><p> </p><p> </p><p>-----------------</p><p> </p><p><b><span style="font-size:12pt;">필리핀 롤롬보이 김대건성인 성지</span></b></p><p> </p><p>1836년 12월3일 서울을 떠난 지 6개월여 간의 고생 끝에 1837년 6월7일 마카오에 당도한 김대건 일행은 긴장이 채 풀리기도 전에 파리외방전교 회원들과 함께 마카오를 떠나야만 했다. 포르투갈 식민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8월에 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p><p> </p><p>김대건 일행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오른 피난길의 기착지가 바로 마닐라였다.당시 마닐라는 마카오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제 무역도시였고 포르투갈인이 아닌 스페인 선교사 즉 예수회원들이 진출해 있던 곳이다.</p><p> </p><p>다행히 1837년의 마카오 민란은 그래 겨울이 진압돼 다음해 1838년 마카오로 귀환하게 됐으나 11월 26~27일 밤 사이에 김대건 일행의 맏형이던 최방제가 열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처럼 두려워하던 죽음이 드디어 들이닥치고 만 것이다.</p><p> </p><p>동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채 아물기 전인 다음해 1839년 4월6일 마카오 민중이 재봉기하자 김대건과 최양업은 칼레리, 데플레슈 신부 등과 함께 다시 마닐라로 피난길에 올랐다.마닐라로 피난 온 김대건 일행은 다행히 성 도미니꼬 수도회 원장 초청으로 마닐라 인근의 롤롬보이(Lolomboy)에 있는 성 도미니꼬 수도원 별장에서 11월 마카오로 귀환할 때까지 약 6개월간 피난살이를 했다.</p><p> </p><p>그 후 1842년2월28일(2.15일 메트로신부와 에리곤 호 탑승 마카오출발) 대만으로 가시기 위해 다시 이곳에 들러 10일정도 머무시다, 가신 인연 깊은 곳이다.</p><p> </p><p>롤롬보이 623번지, 지주 멘도사(Mendosa)가문의 사유지였다.김대건 신부 시성을 기념해 멘도사 여사가 옛 수도원 터 일부를 1986년에 한국 천주교회에 기증해 이곳에 김대건 신부 동상을 세울 수 있었다.</p><p> </p><p>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임석하에 고, 오기선 신부님 주선으로1986년 5월 22일 동상 봉헌식을 올린데 이어 2002년부터 성 안드레아 수녀회 수녀들이 파견돼 성지 관리 등을 맡고 있다.</p><p> </p><p>수녀회는 2000년 가을 필리핀 방문 길에 롤롬보이 성지를 순례하던 중 사유지인 이 부지를 주인이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2002년 10월 이곳 부지 550여평을 매입하고 필리핀 정부와 현지 교구청 인가를 받아, 성당을 건립, 봉헌식을 거행한 후 예수성심상, 김대건 성인 유골이 모셔진 봉헌소, 성모당, 7궁방(7층탑)을 차례로 건립했으며, 현재는 피정의 집까지 필리핀 현지에 세운 한국의 성지이다.</p><p> </p><p>1988년 창립해 91년 수원교구 인준을 받은 수녀회는 2000년 현재의 '성안드레아수녀회'로 수도회 명칭을 변경했다. 수녀회는 하느님을 향한 김대건 성인의 열정적 사랑을 본받아 그 정신으로 이 시대에 절실한 가정성화와 생명수호를 위한 어린이 집, 미혼모의 집, 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p><p> </p><p>이곳 사적지에는 김대건과 최양업의 피난생활을 회상시키는「망향의 망고나무」가 있다.</p><p>망향의 망고나무는 이곳에 피난 와 있던 김대건이 그해 여름(1839년 8월) 아버지 김제준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편지를 받아보게 돼 고향을 그리는 김대건의 마음을 생각해 붙여진 이름이다.</p><p> </p><p>중국으로 가는 동지사 일행 속에 숨어들었던 한 신자가 북경까지 그 편지를 갖고 와 뭍으로 바다로 해서 몇 만 리를 지나 김대건의 손에 닿은 부친의 편지였다.아버지 김제준이 쓴 편지의 발신일자는 1837년 가을, 롤롬보이에 있는 김대건의 손에 닿기까지 무려 네해가 걸렸다. 편지 내용은 희소식밖에 없었다. 집안도 무사하며 앵베르 범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 모두가 안녕하다는 소식이었다.김대건과 최양업은 이 편지에 뜨거운 눈물을 적시며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읽고 또 읽고 한 자도 빠짐없이 외울 정도로 거듭 거듭 읽었다.그러나 김대건이 편지를 받고 감격해 할 무렵 조선에선 기해박해가 터져 그의 아버지 김제준과 최양업의 부친 최경환은 옥고를 치르고 9월 장엄히 순교했다.</p><p> </p><p>김대건이 받은 부친의 편지는 이역만리 떨어진 아들에게 희망과 위안, 기쁨을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p><p>김대건 신부의 사적지에서 약 3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성 김대건 신부를 주보로 모시고 있는「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서 롤롬보이 주민들 모두가 매주일 주보인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며 그의 영성을 본받고 있다.이곳에는 성인께서 순교를 하신 시점부터 밤이면 목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 동네 사람들이 혼비백산 하여 도망쳤고, 개들까지도 자지러지도록 짖어댔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p><p> </p><p>이런 일이 계속되자 이곳에 거주하던 주택의 식모들이 무서워 견디지를 못하고 도망갔다고 하며, 그 후 그 집은 동네사람들이 귀신이 나오는 집, 즉 흉가로 알려졌다.</p><p>사람들은 성인께서 한국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성인의 영혼이 나타나시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p><div><br /></div><div><br /></div><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9 Sep 2017 10:36: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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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산티아고 가는 길#1</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9</link>
	<description><![CDATA[<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산티아고(Santiago)란</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영어로는 "St. James",  베드로의 친구이면서 예수의 열두제자중의 하나입니다. 스페인이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인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에 무덤이 있다고 알려지면서 중세시대부터 이곳으로 향한 성지순례가 이어져왔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순례 계획하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일단 순례를 마음먹었으면, 순례길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수집을 하게됩니다. 물론 산티아고가는길에 관한 책들도 읽어보겠고요.</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u>산티아고가는길 관련 도서</u></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현재 한국어로 출판된 산티아고가는길 관련책은 다음과 같이 두가지가 있습니다.(<span style="font-size:9pt;line-height:1.5;">(요즘은 서점에서 훨씬 많은 순례 관련 도서를 볼수 있습니다) </span></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em>"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2  (스페인 산티아고 편)", 미래M&amp;B</em></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em>"아름다운 고행 산티아고 가는 길", 예담</em></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em>"산티아고 가는길에 유럽을 만나다" 김효선</em></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관련 게시글  -<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82"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u>순례 시작 장소 선정</u></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관련 게시글<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659"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여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비자</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한국 국적이신분은 대부분의 유럽국가 여행시 비자 없이 90일간 체류가능합니다. 카미노를 위해서라면 따로 비자를 발급받을 필요가 없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기차 예약</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TGV (파리-생장) 예약하기<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2812"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여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순례를 위한 짐싸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배낭은 깃털처럼(?) 가벼워야 합니다. 30일넘게 지내려면 이것저것 필요한것들이 많아 챙기다보면 쉽게 10KG를 넘어가는 데요. 5~6KG정도가 좋겠고, 7~8KG를 넘기지는 않는것이 좋겠습니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순례를 시작하는 경우 첫날부터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하기때문에 그날 바로 길에 버리거나 다른 순례자들에게 많은 덜 필요한 짐들을 기증(?)하게 됩니다. 알베르게에 보면 순례자들이 덜 필요한 물건들을 놓고 갈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는데요, 가장 많이 놓고 가는 것은, 책, 옷, 신발 등등 입니다. 왠지 꼭 필요할것 같은 가이드북이나 회화책들도 실제 순례길에서는 그다지 필요하지 않게 됩니다^^ 가이드북은 출발하기전에 열심히 보시면서 계획을 세우시고요, 굳이 가져가지 않으셔도 되겠습니다. 독서를 즐기신다면 가이드북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읽고 싶은 책을 한두권 가져가서 오후 또는 져녁때 읽는것이 좋을듯 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관련 게시글 -<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262"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 또<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591"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침낭 선택 관련 -<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504"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숙박</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수도원, 성당 또는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순례자용 전용숙소가 보통 5~10km마다 존재합니다. 이 숙소를 이용하려면 순례자임을 증명하는 패스포트 (Philgrim Passport, Philgrim Credential)를 제시하면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숙박을 할수 있습니다. 숙박은 원칙적으로 1박 (one night)만 허용됩니다. (하루나 이틀 추가로 숙박하는 것을 허용하는 곳도 있으니 필요한 경우 호스피탈레로와 상의하시기 바랍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순례자용 숙소이외에도 마을마다 Hostal, Hotel 또는 Pension등의 숙소가 가격대별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u>알베르게 이용하기</u></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마을 또는 도시의 알베르게 앞까지 도착하게 됩니다. 알베르게는 보통 오후 2시 또는 3시부터 문을 열기 때문에 그 전에는 알베르게 앞에 배낭을 놓고 주변을 둘러보거나 Bar에서 커피를 마시며 쉬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큰 도시가 아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이렇게 배낭을 알베르게 앞에 세워두고 자리를 떠도 누구 하나 훔쳐가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치만 대도시에서는 배낭을 잃어버리는 순례자들이 가끔 있는 것으로 봐서 조심을 해야할것 같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알베르게가 문을 열면 순례자들을 차례대로 호스피탈레로에게 등록을 하고 침대를 배정받습니다. 대부분의 알베르게에서 호스피탈레로가 문앞으로 나와 순례자들을 일일히 맞아 주면서 등록을 받은 후 숙소 이곳저곳을 안내해 줍니다. 등록할때는 본인의 순례자용 여권을 호스피탈레로에게 보여주면 이름, 국적, 순례시작장소 등을 기록합니다. 때에따라 순례자에게 직접 기록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등록을 마친 후 정해진 숙박비가 있는 경우에는 숙박비를 그 자리에서 지불합니다. 등록을 마친 후에는 호스피탈레로가 침실로 안내해주면서 그 날 사용할 침대를 지정해 줍니다. 경우에 따라 어느 방이든 원하는 침대를 이용하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호스피탈레로는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자원봉사자로서 카미노를 마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90%이상이 스페인 사람입니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길을 묻는다거나, 레스토랑, 수퍼마켓등을 물어 보면 친철하게 알려 줍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식사</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순례자들은 보통 수퍼에서 식재료를 구입하여 직접 조리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순례자용 숙소에는 대부분 식사를 준비할수있는 공용부엌이 있고, 냄비, 식기, 올리브유 등이 기본적으로 준비되어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Bar에서는 간단한 샌드위치등이 항상 가능합니다. 스파게티등이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레스토랑에서는 순례자용 특별메뉴 (Menu del Peregrino)를 판매하기도 합니다. 대략 8유로 정도. 비슷한 가격의 정식 (Menu del Dia)를 이용하시면 가격대비 괜찮다는 평이 많이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스페인에서는 일정하게 정해진 시간에만 점심과 저녁을 서비스합니다. 점심은 2시부터 5시, 저녁은 9시부터 11시. 순례자용 메뉴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약간 앞선 저녁 8시부터 저녁식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레스토랑에서 식사하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레스토랑에 들어서면 그 곳 직원이 맞이 합니다. 만약 직원이 안보인다면, 입구쪽에 서서 기다립니다. 손님이 많아서 바쁜 시간에는 직원들이 신경을 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혼자가는 경우에는 조금 덜 붐비는 시간에 가거나 조금 덜 붐비는 레스토랑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직원에게 식사하러 왔다고 얘기한 뒤 ("꼬미다"라고 한마디만 하시면 되겠습니다)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습니다. 만약 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원하는 자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옮겨도 돼냐고 얘기를 해봅니다. (이때 다른 빈 자리를 가리키며 한국말로 얘기해도 통한답니다...어차피 스페인어가 아니면 다 마찬가지 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옮겨 줄 것입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자리에 앉으면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오는데요, 물론 이것도 레스토랑 마다 다릅니다. 조금 고급에 속하는 레스토랑에서는 이렇게 메뉴판을 들고 와서 오늘의정식(Menu del Dia) 이외의 많은 메뉴 중에서 고르도록 하지만 Bar나 조금 규모가 작은 레스토랑에서는 "정식" 만 제공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정식"만 가능한 경우, 메뉴판에는 정식 중의 선택요리 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전채요리 4가지, 본요리 4가지, 후식 3~4가지, 와인과 물, 이렇게 쓰여 있는 것들 중에 하나씩 고르시면 되겠습니다. 종종 메뉴판 없이 말로 선택메뉴들을 쭉 불러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스페인어를 잘 모르면 난감하지는데, 이럴때는 메뉴판을 달라고 요청하든지, 다른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것들을 가리키면서 주문 할 수도 있습니다. (먹고 살려면 얼굴이 두꺼워져야겠지요!)</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3코스로 이루어진 '정식'을 주문하고, 선택메뉴를 다 골랐으면, 직원이 빵과 와인 먼저 가져다 줍니다. (여기서는 물대신 와인 선택했다고 가정). 스페인에서의 식사에는 항상 빵이 곁들여 집니다. 대부분은 바케트 빵입니다.  포도주를 한잔 마시며 기다리면, 첫번째 코스 요리를 가져다 줍니다. 스프, 스파게티 또는 샐러드 정도가 되겠지요. 첫번째 요리를 다 먹고나면, 두번째 요리가 나옵니다. 연어구이, 스테이크 등이 되겠고, 감자칩이나 삶은 감자가 곁들여져 나옵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또 와인을 곁들여서 드시기 바랍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한시간~두시간에걸쳐서 (또는 그이상) 식사들 하더군요.  두번째 요리까지 다 마치면 디져트로 요거트, 아이스크림 또는 플란 (계란푸딩)이 제공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작은 마을에서는 레스토랑이나 Bar가 그 마을에 하나뿐인 경우가 많이 있고, 모든 순례자들이 같이 모여 식사를 하게됩니다. 혹 레스토랑이 여러군데 있더라도, 식사하러가서 자연스럽게 다른 순례자들과 합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직원이 합석을 권할때 굳이 거절할 머뭇거릴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다른 순례자들과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또 같이 얘기하다보면 식사 시간이 한결 즐거워 집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Bar에서 주문하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Bar에 들어가 바텐더에게 주문하는 경우도 있고 자리에 앉아 있다가 바텐더 또는 종업원이 지나갈때 불러서 주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보통 광장에 있는 Bar의 경우, 밖에 테이블을 내놓고 있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곳에 앉으면 바텐더가 돌아다니면서 주문을 받습니다. 서비스 요금이 붙기 때문에 가격이 약간 높아 지는것 같더라고요. 순례길에 만나는 대부분의 Bar에서는 바텐더 앞에 가서 직접 주문을 한다음 받아서 원하는 자리로 가서 드시면 되겠습니다. 팁은 눈치껏... 다른 사람들이 팁을 주면 따라하시고요.  시골 마을의 Bar에서 커피나 간단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는 팁을 잘 안주는 것 같더라고요.</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분위기를 잡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도 순례길에 꼭 해봐야 할 것중에 하나입니다. (물론 강제사항은 아니지요^^) 그날의 순례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전에 커피를 한잔하면서 여유를 만끽하는 것도 괜찮고요. 커피가 질리면 시원한 맥주를 마셔도 좋겠구요.  짧게 커피한잔만 하고싶을 경우 바텐더 앞에서 마시면 되는데, 가끔 커피를 마시러 온 동네사람들의 관심의 표적이 되기도 하면서 나름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기회가 되기도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u>커피</u></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우유를 넣은 커피를 원하는 경우 "카페 콘 레체", 진한 에스프레소가 땡기면 "카페 솔로" 이렇게 주문 합니다. 때에 따라 바텐더가 "그랑데?", "쁘띠?" 이렇게 되묻는 경우가 있는데, 큰잔 또는 작은잔 이렇게 사이즈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원하시는 데로 주문하시면 되겠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u>샌드위치</u></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바게트빵 반쪽을 이용해 만드는 샌드위치인 보카디요스는 거의 모든 Bar에서 제공합니다. 속에 무엇을 넣느냐에따라 이름이나 가격이 달라지구요. 치즈, 햄, 소시지 등이 속재료로 가장 널리 이용됩니다. 보카디요스 중에 "또르띠야 콘 초리소"는 소시지와 계란으로 만든 오믈렛을 바게트 빵 사이에 넣은 샌드위치로 순례자들 사이에 아주 인기가 많이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비용</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순례비용 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항공권입니다. 한국에서 유럽까지의 항공권은 비수기에는 100만원, 비수기에는 60~70만원 가량 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공항에서 순례의 출발지점까지 가는 교통비가 되겠지요. 파리에서 세장피드포르 까지의 열차요금은 대략 93유로 정도 입니다. 순례를 시작한 다음에는 알베르게에서의 숙박요금이 0~5유로, 아침식사 4~5유로, 점심과 저녁 10~15유로, 하루에 대략 25~30유로 정도의 비용이 소요됩니다. 레스토랑보다 수퍼에서 빵이나 음식재료를 사서 직접 조리한다면 비용은 훨씬 줄어들게 됩니다,. 그런 경우 하루에 15~20유로 또는 그 이하의 비용이 들겠군요.</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좀더 간단한 방법은 순례길 1KM당 1유로씩 계산하는 것입니다. 생장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약 800KM를 32일에 걷는다고 하면, 하루 평균 약 25KM 정도 되고요, 비용은 25유로 되겠습니다. 숙박비 5유로,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 10유로, 아침/점식 기타 등등 10유로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네요</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관련 게시글 -<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593"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한국으로 수신자 부담 전화 걸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900-99-0082 를 누르면 연결이 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관련 게시글 -<span> </span><a target="_blank" href="http://cafe.naver.com/camino/380" style="text-decoration:none;" rel="nofollow noreferrer">요기</a></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다쳣을때</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평소 건강한 사람도 순례길 중에 여러가지로 다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가장 흔한 것은 물집입니다. 도보 여행이다 보니 발바닥에서 가장 먼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지요. 물집이 생겼을 경우에는 바늘 같이 뾰족한 것으로 물집을 터뜨린 후 대일밴드 같은 것으로 감싸줍니다. 이때 바늘은 반드시 소독을 해야 합니다. (안그러면 파상풍 걸려요ㅜㅜ) 라이터나 성냥같은 것을 구하기 어려울 때에는, 알베르게 부엌에 있는 가스렌지 등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스페인의 약국 (파르메시아)에는 물집을 터트리는 데 사용하는 바늘과 실을 판매한다고 합니다. 말이 안통해서 힘든 경우에는 그냥 물집이 생긴 발을 보여 줍니다. 그럼 약사가 알아서 필요한 약을 챙겨주기도 합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물집 다음으로 순례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근육통 입니다. 오래 걷다 보니 다리에 알이 배기고 또 무거운 배낭 때문에 어깨와 허리에 통증이 생기기도 합니다. 스프레이 파스나 바르는 근육통 로션을 준비하면 유용합니다. 출발전에 근육을 풀어주기위한 간단한 스트레칭 동작을 익혀가면 많이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근육통 알약을 사서 복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어느 정도 규모의 마을에는 항상 약국이 있어서 다쳣을 경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필요한 경우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데, 진료비가 대략 50유로 정도 합니다. 대도시에는 순레자를 위한 무료 병원이 있다고 합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의사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레로에게 도움을 청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해 줄 것입니다.</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길을 잃어버렸을때</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거의 모든 갈림길에 노란 화살표로 잘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길을 잃어 버리는 경우는 매우 적지만 그래도 순례도중에 한두번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생깁니다. 당황하지말고 가장 마지막으로 본 노란 화살표까지 되돌아 간 다음 그곳에서부터 다시 주의를 기울여 길을 찾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화살표 방향을 잘 못 보았다든지, 약간 흐릿한 화살표가 있었다든지 해서 다시 옳바른 길로 들어 서게 됩니다. 올바른 방향을 찾기가 어려울 때는 마을 사람에게 물어봅니다. 대부분의 스페인 사람들은 순례자들에게 상당히 호의적이고 길을 알려주는데 매우 적극적입니다.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 </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color:rgb(51,51,51);font-style:normal;font-weight:normal;letter-spacing:normal;text-indent:0px;text-transform:none;white-space:normal;word-spacing:0px;"><strong>동행만들기</strong></p><p style="list-style:none;margin:0px;padding:0px;font-size:12px;font-family:'돋움', dotum, Helvetica, sans-serif;"></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1 Aug 2017 20:39:39 +0900</dc:date>
	</item>
	<item>
	<title>메밀꽃부부의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데 산티아고</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8</link>
	<description><![CDATA[<p> </p><div class="se_doc_header_end"></div><div class="se_doc_contents_start"></div><div class="se_component_wrap sect_dsc __se_component_a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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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viewArea"><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3232235521_pOFuTPXk_4d0879b1e31926fae17222083b2c41e6ecb1c0f1.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3232235521_pOFuTPXk_4d0879b1e31926fae17222083b2c41e6ecb1c0f1.pn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3232235521_pOFuTPXk_4d0879b1e31926fae17222083b2c41e6ecb1c0f1_750x500.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 style="width:886px;"/></a></a>메밀꽃부부의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소개하여 드립니다.</div><div class="se_viewArea">전체 일정의 후기를 읽으면 산티아고 기실 분들께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첫 번째 준비내용만 옮깁니다.</div><div class="se_viewArea">아래 글 작성자 블로그를 많이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div><div class="se_viewArea">뿐만 아니라 이 부부가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알뜰하게 기록한 후기를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정보가 많이 실렸습니다.<br /><br />세계일주 프로젝트 도서 =&gt;  <a h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70432"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270432</a><br />블로그 바로가기 =&gt; <a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894091772"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http://blog.naver.com/mina860527/220894091772</a><br /></div><div class="se_viewArea"><br /></div><div class="se_viewArea"><br /></div></div></div></div><div class="se_component se_paragraph default"><div class="se_sectionArea"><div class="se_editArea"><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 se_fs_T3 se_align-left" style="line-height:160%;"><div class="se_editView"><div class="se_textView"><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4" style="color:rgb(0,153,145);"><b>2016. 10. 
15 ~ 2016. 11. 23</b></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4" style="color:rgb(171,208,114);"><b>St.Jean pied de port, France - Santiago de 
compostela, Spain</b></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4" style="color:rgb(120,204,201);"><b>메밀꽃부부의 
산티아고 순례길 / 까미노 데 산티아고</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프랑스의 생장에서 스페인의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에 달하는 그 길을 걷고 왔습니다.</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정말 그 곳에 있었던건지, 벌써 아득하게 
느껴져서-<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다른 곳의 여행기들을 조금 
미뤄두고 순례길 이야기를 먼저 풀어놓으려고 합니다.<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프랑스길, 북쪽길, 포르투갈길 등 다양한 루트가 
있지만,</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저희부부는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 '프랑스 길'</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을 걸었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프랑스의 남부 생장에서부터 시작하는 길로, 풍광이 아름답고 순례자를 위한 
편의시설들도 잘 갖춰져 있지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앞으로 이 
길을 걷게 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준비물, 저희가 참고했던 사이트나 유용했던 어플, 경비, 팁, 알베르게 
정보 등을 정리해서 
올려볼게요.<br /></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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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ckquote class="se_textarea">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까미노 준비물</blockquote></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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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아무래도 세계여행자의 배낭은, 일반적인 여행의 배낭보다는 훨씬 무거울 수 
밖에 없는데<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특히 저희 부부의 경우는 
장비(노트북, 카메라, 렌즈, 충전기 등)의 무게만 해도 거의 10kg 정도였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이건 어떻게 해도 줄일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장비 외 다른 짐들을 
최소화 하고 정말 필요한 것만 넣고 다녔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랬더니 앞뒤로 메던 배낭이 하나로 줄어들었답니다. 이제서야 진짜 
여행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어요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배낭이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본격적으로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에 우체국부터 
찾으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산티아고 우체국이나 한인민박의 
짐보관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어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불필요한 짐은 미리 산티아고로 보내놓고 가볍게 
시작하는거죠-<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리고 내가 원하는 마을의 알베르게까지 배낭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도 
있으니<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길이 험하거나 많이 걸어야 하는 
날</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이용할 수도 있겠죠.</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저희부부는 처음부터 우리가 질 수 있는 짐만큼 지고, 끝까지 메고 가기로 
했기 때문에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정말 필요할 것 같은 것만 최소한으로 
챙겼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배낭 보내지 않기, 택시나 버스 
타지 않기.<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이 두가지는 저희 스스로 한 
약속이었는데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지켰다는 것에 대해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D<br /></span><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08_5101.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08_5101_750x500.png" alt="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08_5101.pn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br /></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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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textView">
<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등산화&gt;</b></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고어텍스 뭐 이런거 기능성 이런거 다 
필요없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고어텍스라도 비 많이 오면 다 
젖구요,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내 발에 편한 
게  최고예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밑창이 두꺼운 것이 좋고, 발에 길들여진 것으로 신고 
가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신던거 신었는데도 초반 10일은 
계속 물집 잡히더라구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배낭&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가장 중요해요. 무게분산이 잘 되고 허리밴드가 두껍고 튼튼한 것으로 
준비하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저희는 세계여행을 함께 했던 
킬리배낭 커플로 멨는데 다들 넘 예쁘다고 :-)<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수납공간 많고, 개인적으로 이보다 좋은 배낭은 없는 것 
같아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확장형이라 옆으로 포켓이 하나씩 더 있는데 거기에 물, 빵이나 간식 
넣었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레인커버는 역시 유용했고, 비올 
땐 레인커버+우비 입으면 배낭 전혀 젖지 않더라구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리고 베드버그 있는 알베르게가 워낙 많은데 커버로 씌우고 지퍼 잠그면 
걱정 끝.<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제껀 40리터 남편꺼는 
50리터짜리예요.</span><br /></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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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v class="se_og_thumb"><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g.php?img=http%3A%2F%2Fdthumb.phinf.naver.net%2F%3Fsrc%3D%2522http%253A%252F%252Fblogthumb2.naver.net%252F20160816_221%252Fmina860527_1471351987590lrRW3_PNG%252FIMG_78413.png%253Ftype%253Dw2%2522%26amp%3Btype%3Dw480"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dthumb.phinf.naver.net/?src=%22http%3A%2F%2Fblogthumb2.naver.net%2F20160816_221%2Fmina860527_1471351987590lrRW3_PNG%2FIMG_78413.png%3Ftype%3Dw2%22&amp;type=w480" alt="" class="img-tag "/></a></a></div><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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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iv class="se_og_tit"><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킬리배낭 : 장기여행&amp;세계일주 배낭 추천 / 보라 40, 50 한정판</a></div><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a><div class="se_og_desc"><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킬리배낭 : 장기여행 &amp; 세계일주 배낭 추천 / 보라 40, 50 한정판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고민했던...</a></div><a class="se_og_box" href="http://blog.naver.com/mina860527/220789285598" target="_blank" rel="nofollow noreferr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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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침낭&gt;</b></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반드시 필요하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계절 상관없이 반드시 
필요합니다.</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저희는 10월중순부터 
걸었는데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난방이 잘 안되는 알베르게가 많았고,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보통 새벽에는 라디에이터를 끄기 때문에 
추웠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알베르게에서 주는 담요는 절대로 
덮지 않아요. 베드버그의 온상입니다..........</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많은 알베르게들이 시트 세탁을 매일 하지는 않으므로, 
위</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생 때문에라도 침낭이 필요해요. 
</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알베르게에서 부직포로 된 일회용 시트를 0.5~2유로에 판매하기도 
하는데<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있는 곳이라면 항상 구입해서 
썼습니다. 베개커버와 매트리스 커버가 있고, 훨씬 쾌적하게 잘 수 있어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스페인어로는 '사바나'라고 합니다. 사바나 달라고 하면 알아들을거예요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킬리 침낭은 무겁지 않고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도 따뜻해요. 쏙 들어가 
있으면 온기가 빠져나가지 않아서 좋아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br /></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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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viewArea"><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3232235521_WO2faFqN_e849e0c66cfa0b1185d16101b1d5468bb0e598c9.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3232235521_WO2faFqN_e849e0c66cfa0b1185d16101b1d5468bb0e598c9_750x500.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 style="width:886px;"/></a><br style="clear:both;" /></a></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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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스틱&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개인적으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무릎의 부담을 확실히 줄여줍니다. 오르막, 내리막에 
필수.<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네팔에서 트레킹할 때도 느꼈지만 
스틱은 내 몸같이!!<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있는것과 없는것은 정말 
달라요. 이거 없었음 끝까지 못 걸었을거에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두 개 써도 되고, 하나만 써도 되는데- 저희는 한 개씩 써요. 사진 
찍기 불편해서 ^_^;;;<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데카트론에서 
5.99유로에 샀는데 아주 가볍고 튼튼하니 좋았어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 프랑스, 스페인의 큰 도시에 가면 데카트론이라는 스포츠용품 매장이 
있어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없는 게 없는 곳! 아주 저렴하게 필요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답니다.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등산화, 배낭, 스틱, 의류 등등. 저희는 파리에서 
샀어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슬리퍼&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보통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입구에서 등산화를 벗어요. 신발장이 따로 
있거든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하루종일 신고 걸었던 등산화를 
신고 그대로 방에 들어가는 건 엄청 몰상식한 행동이랍니다.(스틱 갖고 들어가는 것도 포함)</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숙소 도착해서 갈아신을, 공기 잘 통하고 편하고 가벼운 
슬리퍼 하나 있으면 아주 유용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br /></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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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imageStripArea" style="width:30.78%;"><a class="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3232235521_iUeMD31J_e667fde7e56c34e708652344db0b4fa200668b4a.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92_1203.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92_1203_750x500.png" alt="be170b5cc89f449652b25f7c2ebb6b41_1502274492_1203.png" class="img-tag "/></a><br style="clear:both;" /></a></div>
<div class="se_imageStripArea" style="width:69.21%;"><br /></div></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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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2" style="color:rgb(241,47,34);"><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2"><b>&lt;장갑&gt;</b></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이것도 데카트론에서 산 거. 없었으면 손 다 부르틀 
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아침 공기가 차더라구요. 새벽에 
항상 끼고 스틱 잡았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경량패딩&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음, 일단 저희는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걸었는데 패딩은 입지 
않았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생각보다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였는데 그래도 챙겨가면 좋답니다.</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숙소에서 입어도 좋아요 
:)<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br /></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b>&lt;후리스&gt;</b></span></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아주 유용! 추운날은 후리스 위에 바람막이 입었고, 아닐 때는 숙소 
도착해서 입고 다녔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이것도 데카트론 
가면 싸요. 쌉니다.</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까미노는 보통 아침 일찍부터 걷기 시작하는데 이 때는 입김도 나고, 
추워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럴 땐 후리스위에 바람막이 입다가 
더워지면 안에 후리스 벗고 더 더워지면 바람막이 벗고 반팔만!<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런식으로 했어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바람막이&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방수 되는 바람막이 유용해요. 오흐리드에서 엄청 싸게 산 나이키 
바람막이가 나의 유니폼 ㅋㅋㅋ</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등산모자&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챙있는 거 꼭 챙겨가세요. 피부 상해요. 계절에 상관없이 햇빛이 
강하답니다.</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의류&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옷은 사실 한 벌만 있어도 
됩니다.</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대부분의 알베르게에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오늘 세탁해도 내일 입을 수 
있거든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다 짐이에요. 절대로 많이 가져가지 마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걸을 때 입을 옷 한두벌, 숙소에서 편하게 입을 옷 한 벌만 있음 
됩니다.<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양말은 2개 정도, 속옷도 2개 
정도. 잘 마르는 것으로 가져가면 
좋아요.<br /></span></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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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editArea">
<div class="se_viewArea"><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3232235521_VrgivGPF_673c722fc14b31c6e49a2814e2b0b39b03a4219d.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3232235521_VrgivGPF_673c722fc14b31c6e49a2814e2b0b39b03a4219d_750x500.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 style="width:886px;"/></a><br style="clear:both;" /></a></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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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textView">
<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우비&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반드시 필요! 그동안 배낭 속에 있기만 하고 사용을 거의 하지 않았던 
우비가<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까미노에서는 제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ㅋㅋㅋ<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근데 사실 비 많이 오면 우비 입어도 
젖더라구요. 어쨌든 필수.</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배낭까지 모두 덮을 수 있는 것으로 
가져가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우산은 
필요없음!<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스포츠타올&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한 사람당 한 개씩. 알베르게에서는 수건 안 
주거든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혹시 덜 말랐을 경우 배낭에 매달아놓고 
걸었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잘 마르는 스포츠타올로 준비. 
<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화장품&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선크림겸 비비크림과 눈썹연필로 40일을 
해결했습니다.<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피부 상할까봐 스킨, 에센스, 
크림은 꼼꼼하게 발랐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걸으면서 햇빛을 
많이 받기 때문에 타기도 하고, 찬바람 때문에 피부가 상할 수 있어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립밤은 있으면 좋더라구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샤워제품&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샴푸로 모든 걸 해결했습니다.<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긴 머리지만, 컨디셔너를 포기했어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모든 것을 샴푸로. 올인원이면 감지덕지.<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그리고 폼클렌져 하나.<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의약품&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감기약, 소화제, 상처났을 때 바르는 연고, 진통제, 밴드, 바세린, 
알콜(물집치료 바늘 소독용)<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필요한 것들은 
약국에서 대부분 구입할 수 있어요.</span><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특히 까미노에 있는 약국에는 물집, 근육통 관련 약들이 
많아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아! 호랑이 연고 챙겨가시면 
좋습니다. 진짜 좋아요. 큰 도시에서 가끔 팔기도 하는데 비싸더라구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저는 다 쓰고 나서 안티프라민 사서 바르긴했는데 역시 호랑이연고가 
최고예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이런 연고들은 매일 밤마다 발목, 
다리, 무릎에 바르면서 마사지 하고 풀어줬어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베드버그 약은 현지에서 구입했구요(먹는 거, 바르는 
거)<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바세린은 매일 아침 발가락 사이에 
발라줬어요.(마찰 때문에 생기는 물집방지)</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비상식량&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한인마트, 중국마트가 있을 때 필요한 것을 사서 가지고 
다녔어요.(고추장, 라면, 카레가루 등)<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주방이 있는 알베르게에서 대부분의 식사를 해 
먹었습니다.<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쌀은 일반 슈퍼에서도 
파니까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냄비밥에 소세지 야채볶음 자주 해 
먹었지요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안대, 
귀마개&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완전 필수. 필수입니다. 수백명이 함께 자는 알베르게에서, 수십명이 
한꺼번에 코를 곤다고 생각해보세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반드시 
필요해요. 반드시!!!<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span><span class="se_ff_nanummyeongjo se_fs_T3" style="color:rgb(241,47,34);"><b>&lt;그 
외&gt;</b></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바늘, 실 준비하세요.(물집치료용)<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콘센트가 적어 충전이 어려운 알베르게도 가끔 있으니 보조배터리 있음 
편리해요.</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p></div></div></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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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viewArea"><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8%2F3232235521_KiLqdcCn_5b6b2631a5bfc5304a765eb94dd3fb979249061d.pn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thumb-3232235521_KiLqdcCn_5b6b2631a5bfc5304a765eb94dd3fb979249061d_750x500.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 style="width:886px;"/></a><br style="clear:both;" /></a></div></div></div></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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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se_viewArea se_ff_nanumgothic se_fs_T3 se_align-left" style="line-height:160%;">
<div class="se_editView">
<div class="se_textView">
<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두번째, 세번째 그 길을 걷는다는 분들을 만났을 때 
의아했었는데.....<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정말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그 
땐 북쪽길이나 포르투갈길을 걸어보기로.<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자 그럼 이제부터... 40일간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D</span><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br /></span></p><p class="se_textarea"><span class="se_ff_nanumbarungothic se_fs_T4"> </span></p></div></div></div></div></div></div>
</div><p>

<a class="se_mediaArea __se_image_link __se_link" href="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amp;logNo=220894091772&amp;redirect=Dlog&amp;widgetTypeCall=true#" rel="nofollow"><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8/3232235521_KWvx1AJ7_1d279b85ea496588b7d8b2c981bacafe7c1e6fa1.png" alt="" class="img-tag se_mediaImage __se_img_el" style="width:309px;"/>  </a> </p><p> </p><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9 Aug 2017 19:43:44 +0900</dc:date>
	</item>
	<item>
	<title>까미노 데 산티아고 +30: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strong>까미노 데 산티아고 +30: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pan> </span><br /><br /><br /><br /></strong>[헤럴드경제=강인숙 여행칼럼니스트] 까미노에서 침낭을 개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다니! 아침이면 제일 먼저 침낭을 정리하고 배낭을 둘러메고 하루하루를 걸었다. 하루 동안 걸은 만큼 산티아고가 가까워졌기에, 단 하루도 쉼 없이 걸어왔다. 날마다 머리를 눕힐 침대가 있는 것,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던 하루하루는 자연스럽게 순례자의 그것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이다.<span> </span><br /><br />침낭 속에서 눈만 뜨고 케이를 부른다. 8시가 넘도록 기상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게 얼마만인가? 케이와 그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그러나 자기 침대에 널브러진 케이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괴로워하고 있다. 어제저녁으로 먹었던 소고기 구이가 탈이 난 것이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소고기를 먹는다며 하얀 지방질까지 구워서 맛있게 먹더니만 몸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다. 밤새 화장실만 들락거렸다는 케이의 얼굴이 백지장이다. 가지고 온 약을 챙겨먹기는 했다지만 힘들어 보인다. 옆 침대에서 자면서도 그것도 모르고 밤새 숙면을 취했으니 괜히 더 미안해진다.<br /><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6pRfKqwu_6afbb58f5c3b9b0b066b1ffb7203f1a3a78cc9ad.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6pRfKqwu_6afbb58f5c3b9b0b066b1ffb7203f1a3a78cc9ad.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6pRfKqwu_6afbb58f5c3b9b0b066b1ffb7203f1a3a78cc9ad.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어제의 파란 하늘과 아름다운 석양은 온 데 간데 사라지고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다. 알베르게에서 우산을 빌려 쓰고 아픈 케이와 함께 12시 미사를 보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간다.<br /><br />우선 순례자 사무소를 찾아가서 산티아고 도착 도장과 완주 증명서인 콤포스텔라를 받는다. 순례자 여권에는 빈칸이 별로 남아있지 않아 이 여정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려준다. 대여섯 명의 순례자가 줄을 서 있다. 성수기에는 몇 시간을 기다릴 정도로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비수기라 순례자가 적어 금방 끝난다.<span> </span><br /><br />콤포스텔라를 받고 뿌듯한 마음으로 케이를 기다리고 있자니 낯익은 얼굴 하나가 순례자 사무실로 들어온다. 아픈 다리 때문에 동행하던 그룹과 헤어지고 사리아에서 머물면서 병원에 다니던 스페인 남자 빠꼬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그는,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며 다음에 다시 까미노를 걷겠다고 한다. 그것이 최선일 거라고 열심히 위로를 해주지만 그의 얼굴에는 가득한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다. 다치기 전에는 언제나 웃는 얼굴에 활기가 넘치던 빠꼬라서 더욱 안타깝다. 누구나 한 달이라는 시간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나도 활짝 웃어주지는 못한다.<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PTyGNuQc_58b4cc4be605d070822bf649ed25d1ee3aea905f.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PTyGNuQc_58b4cc4be605d070822bf649ed25d1ee3aea905f.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br />순례자 사무소에서의 일을 다 마치고 드디어 오후 12시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보러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들어간다. 빈자리를 찾아 앉아 제단을 바라본다. 남미에서, 까미노에서 크고 작은 성당에 들락거리고 미사도 여러 번 참석했지만 마음은 최고로 긴장되고 경건하다. 오늘 발걸음을 멈추고 산티아고에 머무는 것은 바로 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까미노데산티아고를 완주한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내가 그 순례자로 참석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br /><br />지난 천 년 간 순례자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던 대성당에서 순례자의 자격으로 미사를 기다린다. 드디어 미사가 시작되고 순례자가 호명된다. “데 론세스바예스, 페레그리노, 꼬레아” 마이크에 울려 퍼지는 상기된 목소리는 금방 허공에 사라지지만 마음속에서는 수백번을 메아리친다. 이만큼 걸어오기까지 지나온 길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고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이 감동을 더한다.<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HYSFCiUd_57dbc32026c4ae483340a4870b1f80975eb14d82.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HYSFCiUd_57dbc32026c4ae483340a4870b1f80975eb14d82.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br />옆자리에는 스페인 엄마와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앉았다. 엄마는 애써 나를 외면하고 정면만 응시하는데 아이는 계속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면 윙크도 해주고 자꾸 눈짓으로 말을 거니까 아이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다가도 다시 나를 빤히 바라본다. 옆 사람과 평화의 인사를 하는 시간에 드디어 아이와 엄마의 따뜻한 손을 잡고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br /><br />미사의 마지막은 보타푸메이로(Botafumeiro)라는 대향로가 장식한다. 천장에 달린 밧줄의 끝에 커다란 향로가 달려있다. 성가대가 부르는 찬송가의 화음이 천상의 것인 듯 울려 퍼지고 있다. 예닐곱 명의 수사들이 중앙에 모여 긴 밧줄을 힘껏 당기면 연기를 피우는 향로는 진자가 되어 흡사 괘종시계의 추처럼 왕복운동을 시작한다. 하얀 연기는 금세 성당 안에 퍼진다. 중세 때 오랜 여행으로 지친 순례자들을 위해 향로에 향을 피워 평안을 주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함으로 시작된 이 의식은 순례자를 위한 전통으로 남았다고 한다.<span> </span><br /><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VSqkdZ6C_63ef88683c6440452a2438159915c2d817690dff.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VSqkdZ6C_63ef88683c6440452a2438159915c2d817690dff.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성당을 가로지르는 향로의 흰 연기와 성가대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합창, 향로의 줄을 당기는 수사들의 몸놀림,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미세한 흥분과 감격이 순례자의 마음에 전해진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겁고 뭉클한 것이 복받쳐 오른다.<span> </span><br /><br />노란 화살표를 따라 오직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왔다. 신은 그런 나를 축복해 주었다. 까미노는 물리적인 길이지만 걸어본 사람은 그것이 마음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려 800km라는 거리를 두 발로 걸어온 고행의 길이라는 표면적인 수사보다, 그 한 달 내내 마음을 들여다보며 걷는 길이라는 표현이 맞다. 걷다 보면 길 위의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그렇게 길게 늘여진 시간도 돌이킬 수는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느낀 순간들이 영원할 수 없음을 실감했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나지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건 이미 내 안에 있었다.<br /><br />미사가 끝난다.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문을 나서는데 문 앞에 구걸하는 여자 둘이 손을 벌리고 있다. 방금 충만한 미사를 드리고 신의 자비에 감사하고 나왔는데, 성당 문지방을 넘자마자 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span> </span><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i5fVQjnt_1b63003ac0b7da7d99a906b93fb99f4fa2645c13.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i5fVQjnt_1b63003ac0b7da7d99a906b93fb99f4fa2645c13.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br />제법 사람이 많아진 광장 주변에서 누군가 “헤이 코리아!!”하며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포르토마린에서 하루까의 소식을 전해주었던 독일 남자다. 이 사람과는 하루까의 소식만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이지만,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까미노를 함께했던 그 누구라도 만나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다. 나의 까미노에서 만났던 기억 속의 순례자들은 어디쯤 있는 걸까?<br /><br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 장을 보려고 할인매장을 찾아보니 오늘은 휴무일이다. 오늘이 일요일인 것을 생각도 못했다. 어쩐지 시내가 한산하다. 그나마 열려 있는 구멍가게에서 빵과 음료를 사서는 빗속을 걸어 알베르게로 돌아온다. 속이 좋지 않은 케이는 먹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다며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동행이 아프니 마음이 불편하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하루 쉬는 오늘에서야 케이가 아프다는 사실이고, 어차피 비가 많이 와서 산티아고를 돌아보기 힘들다는 것도 위로 아닌 위로가 된다.<span> </span><br /><br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지는 오후, 혼자 책 읽고 여행 정리하고 까미노 다음 일정을 챙겨본다. 시간이 흘러 벌써 까미노 이후를 생각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인터넷에 접속하니 페이스북을 통해 하루까가 전해온 메시지가 와 있다. 그녀는 내일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내일모레 버스를 타고 피니스테레에 간다고 일정을 전한다. 케이와 나는 내일 산티아고를 떠나 사흘을 더 걸어 피니스테레로 갈 생각이다. 서로 만나고 싶어 하지만 일정은 조금씩 어긋난다. 하루까도 그렇게 멀어지나 보다 생각하니 더욱 쓸쓸해진다.<span> </span><br /><br />갑갑해서 우산을 빌려 밖으로 나가 보지만 어두워진 하늘에서 쏟아지는 많은 양의 비가 의욕을 상실하게 한다. 케이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 젖은 옷을 걸어 놓고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시간을 보낸다.<span> </span><br /><br /><center><a href="http://caminokorea.org/bbs/view_image.php?fn=%2Fdata%2Feditor%2F1705%2F3232235521_t1NeVdpI_5ed4dc5648c88a856eb7dd2a9fb49555ace6b58d.jpg" target="_blank" class="view_image"><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5/3232235521_t1NeVdpI_5ed4dc5648c88a856eb7dd2a9fb49555ace6b58d.jpg" alt="" class="img-tag " style="width:650px;"/></a></center><br /><br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오고 나서 며칠 동안 비가 왔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한 어제는 맑은 하늘이 반겨주었다. 덕분에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노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까미노에서 단 하루 쉬어가는 오늘 케이가 아픈 것도 불행 중 다행이다. 가장 중요한 대성당 미사에 다녀올 즈음에는 소강상태이던 빗방울은 오후가 되니 점점 더 굵어진다. 산티아고는 모든 것을 다해 나를 환영해 준 것이다. 이만큼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span> </span><br /><br />인도에서 남미로,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길에서 막무가내로 들어선 까미노였다. 이 여정에서 “순례자”라는 단어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도 못했다. 그토록 힘들던 발걸음, 그렇게도 풍성하던 시간, 그리도 단순한 일상을 이제는 즐기게 되었다.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까미노가 그리워질 것이다. 나는 일생의 한 번 이 길을 걷는 영광을 맛본 게 아니다. 언젠가는 이 길 위에 다시 서기를 바라게 되었다.<span> </span><br /><br />빗속에서 밤이 깊어간다. 폭우가 쏟아진다 해도 내일은 피니스테레(Finisterre)로 가는 노란 화살표를 찾고 있을 것이다. 이 걸음은 아직 끝이 아니다.<span> </span><br /><br /><br /><a>정리=강문규기자mkkang@heraldcorp.com</a>	<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9 May 2017 13:28:57 +0900</dc:date>
	</item>
	<item>
	<title>카미노 데 산티아고(1)- 당신 햇살 아래 드리워진 내 그림자에 담긴 주님</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두려움 속에 인내하고 상처안고 간 길에서 만난 주님</span></p><p><br style="letter-spacing:0px;" /> </p><div style="color:rgb(102,102,102);margin:0px;padding:0px;line-height:20px;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  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최근 국내에서도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사도 야고보가 묻혀 있는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를 향해 떠나는 순례자들이 부쩍 늘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이 길은 2000여년 전 야고보가 스승 예수의 뜻에 따라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겠다는 열망을 안고, 당시 세상 끝이라고 믿었던 이베리아 반도를 향해 걸은 '야고보의 길'이다.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이지만 모든 루트의 종착점은 야고보 무덤에 세워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이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내면 성찰을 위해 홀로 '산티아고 가는 길'에 오른 자유기고가 박현주(엘리사벳, 26)씨가 길 위에서 보내온 도보 순례기를 5회에 걸쳐 싣는다. 박씨는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도시 생장피드포르에서 이달 5일 출발, 피레네 산맥을 넘는 일명 '프랑스 루트(800㎞)'를 따라 걷고 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이 순례길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고 불릴 정도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그래서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배낭을 메고 이 길을 걸으며 삶을 되돌아보고, 대자연 속에서 위로를 얻는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순례자들은 대개 하루 평균 25㎞씩 걸어 30여 일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한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OMR9AvhW_efb91ecfa6aa97c734e04da982ecc56fc1355fdd.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OMR9AvhW_efb91ecfa6aa97c734e04da982ecc56fc1355fdd.jpg" alt="3232235521_OMR9AvhW_efb91ecfa6aa97c734e04da982ecc56fc1355fdd.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td></tr></tbody></table> <br style="letter-spacing:0px;" /><b># "나는 여자란 말이에요"</b><br style="letter-spacing:0px;" />    스무 여섯해를 살아온 평범한 사람이다. 지난 1월, 뜻밖의 부름이 있었다. 바로 800㎞가 넘는 대장정으로의 초대이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개인적으로 큰 변화와 갈등을 겪으면서 지쳐있던 내게 한 선배가 '자신을 찾는 길'이라며 이 길을 소개해줬다. 4개월 준비 끝에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 아니, 이 길을 걷기로 결심한 4개월 전부터 이미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위에 있었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순례를 준비하면서 4개월 동안 거의 매일 북한산을 올랐고, 마음을 준비하기 위해 기도했다. 순례의 기도는 고심해서 짧게 만들었다. 긴 기도는 외우기 어렵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주 예수님, 당신 친히 저의 인도자 되소서. 저와 저에게 속한 이들을 한 걸음마다 봉헌합니다.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서 보호하여 주시고 제가 당신께 영광이 되게 하소서."<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많은 이들의 걱정을 뒤로 하고 오른 순례길. 첫날부터 걱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출발지 생장피드포르역에 가려고 바이욘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려는데 허기가 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나 다름없는 상태로 고속전철(TGV)를 타고 바이욘역까지 겨우 도착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나는 불어를 한 마디도 모른다. 영어는 소위 '생존 영어'(Survival English) 수준이다. 긴장감 탓에 기차를 기다리면서 샌드위치 4조각을 꾸역꾸역 삼켰다.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작은 체구 아가씨 식탐(?)을 곁눈질로 쳐다보는 것 같았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오후 7시 30분 넘어 도착한 생장피드포르. 순례자 무리를 따라 순례협회 사무실에 가서 크레덴시알이라 불리는 순례자 여권(수첩)을 받았다. 그곳에서 나의 털털한 성격과 중성적 이미지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크레덴시알을 발급하는 직원이 남/여를 구분하는 란에 F를 체크하는 나에게 "노, 노"를 연발하며 M을 체크하려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당황해서 "난 여성이에요. 숙녀란 말이에요."라고 외쳤다. 서로 한바탕 크게 웃었다. 첫날 밤은 설렘과 두려움에 이리저리 뒤척였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다음날 아침, 시계가 7시를 가리키는 순간 몸을 일으켜 설레는 마음으로 800㎞ 대장정의 첫발을 뗐다. 첫날이 힘들다는 소문은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꾸물꾸물 심상치 않던 하늘이 비를 퍼붓는가 하면,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는 길은 내 인내와 지구력을 시험하는 것 같았다. 순례를 준비하며 읽은 책들에는 예쁜 들판 길만 나오던데, 왜 아무도 이런 험난한 길을 알려주지 않았는지 원망 아닌 원망이 들었다. 오르고 올라도 자욱한 안개뿐이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어느 순간이었을까? 안개가 걷힌 주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황홀한 경치를 인내의 선물로 안겨주었다. 해발 1400m 지점에서 보란듯이 아침 겸 점심으로 빵을 뜯어먹었다. <br style="letter-spacing:0px;" /><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FIjquwdy_1f09915c0a5a3c6edbbf9a8d75212f2786b99caa.jpg" alt="3232235521_FIjquwdy_1f09915c0a5a3c6edbbf9a8d75212f2786b99caa.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 발가락에 잡힌 물집이 느긋하게 걸으라고 걸음을 멈춰 세웠다.</td></tr></tbody></table><br style="letter-spacing:0px;" />　다음날 출발하는 발걸음이 조금 무거웠지만, 처음에는 다 그렇겠거니 하고 걸었다. 그런데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발가락이 아팠다. 양말을 벗어 보았다. 물집이 터져 피가 흘렀다. 양말은 이미 흥건히 젖어 있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그 상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었고,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나 자신과 주위의 작은 것들을 만나게 해주었다.<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내가 언제 천천히 기어가는 작은 달팽이를 밟을까 두려워 그토록 마음쓴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 답답한 속도에 동감한 적이 있었던가? 내 살이 찢어진 고통을 느꼈기에, 작은 생명이라도 밟히거나 다치는 고통을 겪게 할 수 없었다. <br style="letter-spacing:0px;" />　피에 젖은 양말을 벗고 한참 길에 주저앉아 들여다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느 부부가 약을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도 내 발 상태를 알게 된 캐나다 언니, 스페인 아저씨, 독일 할아버지, 루마니아 군인 아저씨 등이 연거푸 상처에 약을 발라 주었다. 그 상처는 축복이고 은총이었다. <br style="letter-spacing:0px;" />   그러나 발가락은 쉬이 아물지 않았다. '쉬는 것도 순례'라고 자위하며 하루치 거리를 포기했다. 조급한 마음을 비우니 빨래널기 좋은 햇볕과 스케치하고 싶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b>#개(犬) 이야기로 시작한 순례</b><br style="letter-spacing:0px;" />　5일째 여정에서 공원을 지나가다 큰 개를 만났다. 개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찾던 모양인데, 이른 새벽에 출발한 나는 앞서는 순례자도, 뒤따라오는 순례자도 없는 텅빈 길에서 그 녀석과 마주쳤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개가 사납게 짖으며 달려왔다. 개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 달려들지 않는다는데, 눈을 아무리 부릅뜨고 쏘아봐도 돌진하는 개는 멈추지 않았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순간 예전에 읽었던 만화 성인전이 떠올랐다. 어느 성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성모님께 기도했다는 만화책 장면이 사실이기를 바라며 성모님을 불렀다. 질끈 감았던 눈을 떴을 때, 피를 흘리고 쓰러진 나를 상상했는데, 달려오던 개는 내 주위를 빙빙 돌더니 발에 자신의 발을 살짝 올려보고 떠나는 것이었다. <br style="letter-spacing:0px;" /><br style="letter-spacing:0px;" />　산티아고에 다녀온 사람들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개판, 개 이야기다.<br style="letter-spacing:0px;" /><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nA9f7hyU_d8fd63231d7d03440d865316b462acbaeff3c1d0.jpg" alt="3232235521_nA9f7hyU_d8fd63231d7d03440d865316b462acbaeff3c1d0.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 순례길에서 마주치는 조가비 문양과 화살표는 어둠 속 망망대해에서 만난 등대마냥 반갑다. 조가비는어부였던 사도 야고보, 화살표는 산티아고 방향을 가르킨다.</td></tr></tbody></table><br style="letter-spacing:0px;" />　하지만 마주친 것은 개이지만, 체험한 것은 하느님이다. 그분이 이 여정의 모든 순간에 함께 하신다는 것, 그런 크고 작은 체험의 반복이 바로 이 순례길에서 진정 만나는 것들이다.<br style="letter-spacing:0px;" /><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tbody><tr style="font-size:16px;"><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uQKI3R5b_0107cf3ebfa732137fa17fc16396ffc1b0de14e2.jpg" alt="3232235521_uQKI3R5b_0107cf3ebfa732137fa17fc16396ffc1b0de14e2.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body></table></div><p>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05 Feb 2017 18:44:38 +0900</dc:date>
	</item>
	<item>
	<title>카미노 데 산티아고(2)-"길에서 마음으로 사람을 만났습니다"</title>
	<link>http://caminokorea.org/bbs/board.php?bo_table=ck02_06&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p> </p><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color:rgb(102,102,102);font-size:16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itemprop="image" content="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Vc47XpJZ_12b174e36670f6743c0c68c5e7737b143be1c361.jp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Vc47XpJZ_12b174e36670f6743c0c68c5e7737b143be1c361.jpg" alt="3232235521_Vc47XpJZ_12b174e36670f6743c0c68c5e7737b143be1c361.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font-size:12px;">▲ 페르돈 고개 정상에 순례자들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이 설치돼 있다. 옛날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이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다.</td></tr></tbody></table><p><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지난 일주일 동안 길 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어디서나 히죽히죽 잘 웃는 넉살 좋은 성격 덕에 사람들과 쉬이 친해졌다. 형편 없는 영어 실력으로 농담도 주고받고, 때로는 식사도 함께 준비해 먹으면서 우정을 나눴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보름 동안 쌀밥 구경 못한 딱한 사정을 하느님께서 아신 것일까? 프랑스에서 온 실비아 아줌마와 그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밥을 해먹게 됐다. 쌀과 해물볶음에 필요한 재료들을 사왔는데, 모두들 밥은 내가 잘 할 것 같다며 맡겨주었다. "오늘 저녁에는 돌을 삼킬지도 모른다"고 으름장(?)을 놓고 쌀을 씻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에서 온 자존심을 걸고 정성껏 냄비밥을 지어냈다. 즐거운 마음과 좋은 기운 덕에 밥은 꼬들꼬들 잘 됐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font color="#0000FF" style="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b><span style="font-size:14pt;">#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span></b></font><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4pt;"><br style="letter-spacing:0px;" /></span><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함께 시장보고 밥짓고, 빨래하고, 잠자고…. 피부색과 언어는 달라도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도움을 주면, 상대도 그걸 느낀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나바레떼 알베르게(순례자 숙소) 관리인 아저씨는 손수 크레페를 만들어 순례자들에게 돌렸다. 피곤에 지친 순례자들 얼굴에서 피로를 씻어내는 웃음꽃이 피어났다. 소박한 베풂으로 숙소 분위기를 환하게 밝히는 아저씨를 보면서 일터를 기쁨의 자리로 만드는 것 또한 각자 개인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한 번은 순례 여정에서 자주 마주치는 프랑스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그분은 프랑스어 밖에 할 줄 몰랐다. 우리는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며 상형문자 대화를 나눴다. 그 광경을 보고 베니스에서 온 아저씨가 끼어 들어 짧은 영어와 프랑스어를 오가며 통역을 해줬다. 마음으로 사람을 만나는 이 길은 언어가 장벽이 아님을, 그리고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만나는 법을 새겨주었다.</span> </p><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color:rgb(102,102,102);font-size:16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qK5FThr3_7fc513055fb37190c32148a955fc657e9512fab5.jpg" alt="3232235521_qK5FThr3_7fc513055fb37190c32148a955fc657e9512fab5.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font-size:12px;">▲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와인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는 순례의 벗들. 순례를 하는 동기와 목적은 얼굴 생김새마냥 제각각이다.</td></tr></tbody></table><p><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산티아고 가는 길은 주변을 잘 살피면서 걸어야 한다. 한적한 시골길은 몰라도 큰 도시나 건물이 많은 곳을 지나갈 때 노란 화살표를 놓치면 한참을 헤매야 한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팜플로나라는 큰 도시를 지날 때였다. 재밌는 거리 풍경에 취해 걷다 그만 화살표를 놓치고 말았다. 당황해서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길가 끝에서 노란 화살표가 "이쪽이야"라고 손짓하는듯 하늘거렸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더니 화살표가 아니라 노란 꽃이었다. 그 황당함이란…. 그 후로 길가에 핀 노란 꽃들만 보면 황당했던 그 순간이 떠올라 절로 웃음이 난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font color="#0000FF" style="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span style="font-size:14pt;"><b># 아저씨, 정말 미안해요</b></span></font><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지인들이나 고마운 분들께 엽서 띄우는 걸 좋아하는 터라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우체국을 먼저 찾는다. 순례 여정에서 처음 엽서를 보내려고 우체국을 찾았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체국같아 보이는 건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우체국'이란 단어 하나 외워오지 못한 게으름을 자책하며 동네를 이리저리 헤맸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거리에서 한 아저씨에게 영어로 우체국을 물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꼬레오@#%&amp;^”라고 하는 게 아닌가. 선글라스를 낀 인상이 그렇잖아도 무서웠는데, "한국인이냐?"고 반문하는 말투가 예사롭지 않아 무조건 줄행랑을 쳤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쫓아오면서 "꼬레오@#$%^&amp;"를 외쳤다. 달리기라면 나도 자신있지만 무게가 8㎏나 되는 배낭을 메고 도망가는 게 쉽지 않았다. 무조건 뛰었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골목에서 아저씨가 안 보이는 듯 싶어서 호흡을 가다듬고, 아주머니 한 분께 우체국을 다시 물었다. 그런데 친히 우체국까지 데려다주신 그 분 덕에 알게된 사실은 우체국이 스페인어로 '꼬레오스(Correos)'라는 것이었다. 맙소사! 그 친절한 아저씨를 파렴치한으로 오해했다니. 그 후로 '꼬레오스'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우체국을 이용할 때마다 그를 기억하는 것으로 미안한 마음을 달랬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내 자신이 만화 주인공같이 여겨지는 우스운 일들, 어처구니 없는 일들, 그럼에도 계속되는 매일의 걸음, 나는 안다. 이 길은 내가 가는 길이 아니고, 나를 인도해주시는 분의 손길에 내가 맡겨져 가는 길임을….</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숙소 사정에 따라 하루에 많게는 30㎞에서 적게는 5㎞를 걷는다. 발가락은 까져 피가 났을지언정, 하루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 아침에 일어나 다시 길 위에 오를 생각을 하면 '오늘은 그냥 근처 다른 숙소에서 쉴까?'하는 달콤한 유혹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어제 걸은 걸음이 오늘의 걸음을 대신할 수 없고, 내일 걸을 걸음을 오늘 기약할 수 없기에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러면서 걸음이 가르쳐 주는 성실과 인내를 새긴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하찮은 한 걸음 한 걸음이 모여 100㎞, 500㎞, 800㎞를 만들어 순례를 완성한다고 생각하면 이 순간이, 그리고 삶의 한 걸음이 더없이 소중해 진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길 위에서 나 자신의 긍정성과 잠재력을 보게 된다. 아무리 상황이 절망적이라 하더라도 다시 웃으며 발걸음을 떼면 순례자들이 용기를 준다. 그 속에서 힘을 주시는 분의 마음을 만난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4pt;"><b><font color="#0000FF"> # 더 큰 자유 안겨주는 침묵<br style="letter-spacing:0px;" /></font></b></span><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나 자신을 위한 일에 너무 몰두하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어 내 것들을 잘 챙기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위선적이고 왜곡된 모습이란 걸 알게 됐다. 진정한 사랑의 첫 걸음은 나 자신을 잘 돌보는 것임을 가르쳐준 발가락에 한 없이 감사했다. 매일 약을 발라주고 다독여준 발가락은 조금씩 좋아졌다.</span> </p><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color:rgb(102,102,102);font-size:16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wFaXI24e_e72acb9af40be370cac9cdc5f7342851cbaa5d99.jpg" alt="3232235521_wFaXI24e_e72acb9af40be370cac9cdc5f7342851cbaa5d99.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font-size:12px;">▲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오늘도 무념(無念)의 순례자가 되어 '비움과 채움'의 길을 뚜벅뚜벅 걷는다.</td></tr></tbody></table><p><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이른 새벽에 걸을 때는 침묵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이 순례를 단순한 걷기여행이나 특별한 여행 정도로 끝내고 싶지 않은 욕심에서 만든 나만의 규칙이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고독한 침묵 뒤에 숙소에 도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만나고 도움을 주게 된다. 부부나 친구가 다정히 손잡고 걷는 모습이 이따금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나의 침묵과 고독이 더 큰 자유와 사랑을 살게하기에 감사하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홀로 걷는 여정은 고독하다. 그러나 자유롭다."</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고독 안에 잘 머무는 방법을 찾게 된다면 고독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할 것이다. 아울러 다시 돌아갈 나의 자리를 더 큰 사랑으로 품게 될 것이다. </span><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새는 손을 잡고 날지 않는다. 새는 무리를 지어 날되, 홀로 난다. 창공을 자유로이 비행하며 외로운 순례자를 지켜보는 저 하늘의 새들이 내게 속삭인 이야기다. </span> </p><table class="__se_tbl_ext" width="100%" cellspacing="5" bgcolor="#FFFFFF" style="border-collapse:collapse;border-spacing:0px;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color:rgb(102,102,102);font-size:16px;"><tbody><tr><td style="margin:0px;padding:0px 5px 0px 10px;line-height:1.3;"><img src="http://caminokorea.org/data/editor/1702/3232235521_RgePxJ4Q_5f98e1d24d45d2e4f1194dacac32fc2f6a02cf71.jpg" alt="3232235521_RgePxJ4Q_5f98e1d24d45d2e4f1194dacac32fc2f6a02cf71.jpg" class="img-tag IMG2" align="left"/></td></tr><tr><td align="left" class="main808080" style="color:rgb(128,128,128);margin:0px;padding:0px 0px 0px 10px;line-height:1.3;font-size:12px;">▲ 순례길 낯선 도시에서 마주친 세례자 요한 성당 십자가.</td></tr></tbody></table><p><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br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 /><span style="color:rgb(102,102,102);font-family:'Nanum Gothic', sans-serif, dotum, '돋움';font-size:16px;">박현주(엘리사벳, 자유기고가) </span> </p>]]></description>
	<dc:creator>관리자</dc:creator>
		<dc:date>Sun, 05 Feb 2017 18:42:1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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