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전국 성지순례 71세 김덕자 할머니
관리자
순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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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22:13
자전거 전국 성지순례 71세 김덕자 할머니
굽이굽이 곡절많은 인생순례와 흡사
61세에 교토대 입학 일문학 연극영화학 공부
번지점프.백두산 도보정복·20여개국 여행도
발행일2000-10-01 [제2219호, 7면]
▲ 자전거 순례중 인천가톨릭대학교를 방문, 이찬우 총장신부의 영접을 받고 있다.
61세 일본 교토대학 입학, 66세 번지점프, 백두산 도보정복, 71세 자전거 무전여행 시작…. 이력만 봐도 뭔가 심상치 않은 김덕자(안젤라) 할머니. 배낭 하나에 갈아입을 옷 두 벌, 전국 지도, 건빵, 물 한 통, 「2000년대 김삿갓 자전거로 전국을 달린다」라는 깃발이 꽂힌 자전거 한 대가 고희를 넘긴 나이에 자전거로 성지순례를 시작한 김할머니의 전 재산이다.
『칠십 평생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죄스러워 전국을 순례하며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봉사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자 여행을 시작 했습니다』늘 마음속으로는 신앙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정이 어려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는 할머니는 지난 4월 큰아들이 있는 중국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자전거 순례를 시작한 또 한가지 이유는 급작스런 마비로 하루아침에 걸을 수 없게된 다리가 회복된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8월 9일 경남 창원을 출발, 동해를 돌아 일주일만에 통일 전망대에 도착한 김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서해 일주를 시작했다. 평소 선교사 입국 통로이자 역사지인 강화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할머니는 순교지 갑곶돈대를 돌아보고 인천 가톨릭대학교를 방문했다. 굽이굽이 곡절 많은 할머니의 인생 또한 그가 순례하는 길과 흡사하다.
스물 여덟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아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낮에는 고등학교 일어교사로, 밤에는 막노동부터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어렵게 살았던 할머니는 아들 둘을 모두 출가시킨 후 홀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할머니의 나이 쉰 여섯의 일. 평생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던 그는 연고도 없는 일본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일어 교사 경력으로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된 할머니는 90년 61세의 나이로 교토대학 일어 일문학과에 입학했고 학업을 마친 후 2년간 연극 영화학까지 공부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죠』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대학 졸업 후 일본어 교사활동 외에도 간병인 교육이수, 정신지체 장애학교 교사 등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또한 다리 건강을 회복한 후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세계 20여 개국을 돌아보기도 했다. 두 달 여간의 여행 중 노숙을 경험하기도 했다는 할머니는 『힘든 길을 걸을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생각하며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해를 일주하고 남해로 도는 순례를 마친 후 본당에서 단체활동을 하며 사회복지와 교육분야에서 봉사할 계획이다. 『육지에서 배를 띄웠으니 항해는 계속해야하지 않겠어요?』라며 김할머니는 다시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
『칠십 평생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온 것이 죄스러워 전국을 순례하며 앞으로 남은 생애동안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봉사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자 여행을 시작 했습니다』늘 마음속으로는 신앙에 대한 갈망을 느끼고 있었지만 사정이 어려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는 할머니는 지난 4월 큰아들이 있는 중국에서 세례를 받았다. 그가 자전거 순례를 시작한 또 한가지 이유는 급작스런 마비로 하루아침에 걸을 수 없게된 다리가 회복된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8월 9일 경남 창원을 출발, 동해를 돌아 일주일만에 통일 전망대에 도착한 김할머니는 서울로 올라와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서해 일주를 시작했다. 평소 선교사 입국 통로이자 역사지인 강화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할머니는 순교지 갑곶돈대를 돌아보고 인천 가톨릭대학교를 방문했다. 굽이굽이 곡절 많은 할머니의 인생 또한 그가 순례하는 길과 흡사하다.
스물 여덟 나이에 남편을 잃고 어린 두 아들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낮에는 고등학교 일어교사로, 밤에는 막노동부터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어렵게 살았던 할머니는 아들 둘을 모두 출가시킨 후 홀로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할머니의 나이 쉰 여섯의 일. 평생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던 그는 연고도 없는 일본 땅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일어 교사 경력으로 외국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일본어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게 된 할머니는 90년 61세의 나이로 교토대학 일어 일문학과에 입학했고 학업을 마친 후 2년간 연극 영화학까지 공부했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죠』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대학 졸업 후 일본어 교사활동 외에도 간병인 교육이수, 정신지체 장애학교 교사 등 한순간도 쉬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또한 다리 건강을 회복한 후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세계 20여 개국을 돌아보기도 했다. 두 달 여간의 여행 중 노숙을 경험하기도 했다는 할머니는 『힘든 길을 걸을 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생각하며 걸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해를 일주하고 남해로 도는 순례를 마친 후 본당에서 단체활동을 하며 사회복지와 교육분야에서 봉사할 계획이다. 『육지에서 배를 띄웠으니 항해는 계속해야하지 않겠어요?』라며 김할머니는 다시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