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청소년국 청년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기
관리자
0
5803
0
2017.02.05 18:31
"그 길 끝에 주님 계셨네"
▲ "부엔 카미노(부디 좋은 길을 가세요)!" 야고보 사도가 묻힌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를 향해 끊임없이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들 모습. |
야고보 사도가 묻혀 있는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를 향해 끊임없이 걸었던 청년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청년부(담당 우창원 신부)가 주최한 '2009 청년 봉사자를 위한 성지순례'(8월 16~27일)에 참가한 청년들이 11박 12일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하루 평균 25㎞씩 걸었던 청년들은 사리아, 포르토마린, 팔라스 데 레이, 아르주아, 페드로자 등 총 113㎞로 구성된 순례코스를 도보로 완주했다. 청년들은 그 곳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을까.
성지순례에 참가한 이지용(데보라, 32, 서울 화곡6동본당)씨의 순례기를 싣는다.
▲ 이지용(데보라, 32) |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오후 2시 30분 인천공항 도착. 지난 열흘간 참 많이 가까워진 우리 1조 조원들과 기념사진을 찍는다. 정말 내가 그 길을 걸었던 것일까? 무거운 몸이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진 지금의 내가 나에게 말한다. 참 잘 다녀왔다고.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지난 몇 년 간 바쁜 내 일상에서 꿈꾸던 하나의 장면이 있다. 바다 보다는 푸른 숲이 좋아 그 속에서 마음 편히 쉬어 보고 싶다는 상상, 그 상상은 곧 기도가 됐고 주님은 나의 기도를 산티아고 순례길을 통해 이뤄 주셨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시작된 순례의 길. 사리아의 이른 새벽,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자신 있는 첫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오후가 될수록 그 자신감은 가방의 무게로 인한 어깨 통증으로 무너졌다. 결국 첫째 날 목적지 포르토마린에 도착해서 배낭에 있는 물건들을 삼분의 이 정도 덜어내야 했다.
다시 시작된 새벽, 눈처럼 내리는 별을 보며 걷기 시작했고 오후가 가까워질수록 무더위가 몰려왔다. 더위 속에서 함께 걷던 우리 조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뒤쪽에서 걸어갔다. 늘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는 생각, 언젠가부터 이러한 생각들이 날 힘들게 했고 여유 없는 나를 만들었다. 하지만 순례의 길에서 만큼은 제일 뒤에서 마음 편히 여유로운 꼴찌를 즐기고 있었다.
순례 셋째 날, 순례 기간 중 가장 긴 27㎞를 걸었던 날, 전날 저녁부터 회색으로 흐려져 있던 하늘은 그림처럼 펼쳐지는 카미노의 길에 반가운 비를 선물로 줬다. 빗길 속 빨간 처마 밑에서 마셨던 커피 한잔처럼 주님께서는 촉촉한 비로 내 마음 속의 무더위와 길 위의 무더위를 모두 식혀 주셨다.
넷째 날은 내게 가장 힘든 날이었다. 지치고 아픈 몸은 밤새 뒤척이게 했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마음만을 강하게 붙잡은 채 그렇게 새벽이 밝았다. 산티아고로 향하던 마지막 날, 육체적 고통으로 인해 지팡이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오직 주님께 대한 기도를 읊조리며 땅만 보고 걸어 나갔다. 하지만 고개를 드니 내 곁에는 함께 걸어주고 힘을 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주님이 계셨다.
길 위에 넘어진 승희를 위해 진심으로 함께 아파하시던 1조의 예수님, 아픈 조원들을 챙기다가 가장 꼴찌로 길을 떠난 용수 형제님의 예수님, 분명 혼자서 걸어가도 벅차고 힘든 순례길인데 힘들어하는 동생의 손을 힘차게 잡아 준 현미 언니의 예수님. 숲에서, 아스팔트에서,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그리고 매일 함께 기도했던 미사 중의 찬양 속에도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셨던 주님.
산티아고를 향해 걸으며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와 내 일상의 여러 길들을 걸으며 알게 됐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기적 같은 곳, 바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하지만 이 기적의 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바로 여기, 내가 손을 내밀고 또 내 손을 잡아주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그리고 평범한 나의 일상 속에 이미 산티아고는 존재하고 있었다.
감사의 길, 축복의 길, 추억의 길 산티아고. 분명 난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도 세상을 향해 그리고 주님을 향해 걷고 있다.
"부엔 카미노(부디 좋은 길을 가세요)! 고마운 나의 친구들!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