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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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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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롤롬보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지

 

하느님 사랑한 성인의 숨결 살아 숨쉬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서 한국교회의 큰 걸음을 뗀 김대건 성인은 25살의 짧은 생애에 겨우 1년 남짓 사제생활을 했음에도 수많은 발자취들이 아직도 성인의 삶을 말해준다. 고향인 솔뫼성지에서부터 박해를 피해 머문 골배마실, 사제가 돼 처음으로 밟은 고국 땅인 용수리포구와 나바위, 어려서 세례를 받고 마지막 미사를 집전했던 은이성지, 순교의 피가 뿌려진 새남터성지, 시신이 묻힌 미리내성지에 이르기까지. 그 발자취만으로도 김대건 성인의 생애를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뿐이 아니다. 신학생으로서 공부하던 마카오에서도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김대건 성인이 공부하던 신학교,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는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김대건 성인이 자주 찾아가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성 바오로성당이 남아 있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김대건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다니며 그를 기억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남쪽의 섬나라, 필리핀의 발자취를 찾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필리핀 불라칸(Bulacan)지역의 롤롬보이(Lolomboy). 그곳에 남아있는 김대건 성인의 흔적을 찾아가봤다. 

▧ 한글로 적힌 표지판 눈에 들어와

마닐라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거기서 또다시 30분가량을 필리핀 특유의 교통수단 지프니(Jeepney)로 달렸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작은 마을 롤롬보이. 지프니에서 내려 매캐한 매연을 헤치고 주변을 보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낯설다. 고온다습한 날씨도, 건물들도, 사람들의 모습도, 심지어는 풀포기에 이르기까지 달랐다. 지금이야 그나마 포장도로나 콘크리트 건물들이 늘어서 그나마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지만 170여년 전 열일곱의 어린 신학생 김대건이 이 땅을 밟았을 당시에는 조국의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별세계였을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알파벳으로 가득한 이 이방의 땅에 한글로 또박또박 적힌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 들어서자 김대건 성인의 늠름한 동상이 반기고 맞은편에는 최양업 신부의 동상이 당장이라도 복음을 선포하러 갈 듯 지팡이를 짚고 있다.

김대건 성인이 이곳 필리핀에 처음 온 것은 1837년 8월. 서울에서 순명과 봉사를 서약하고 6개월간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세 신학생이 공부를 시작한 지 불과 두달 만이었다. 신학생들은 당시 아편문제로 혼란에 빠진 마카오를 피해 필리핀의 도미니코 수도원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39년 4월 다시 민란을 피해왔고 1842년 2월 대만으로 가기 전 10여 일을 머물기도 해 김대건 성인이 이곳에서 생활한 기간만 1년 이상이다. 현재 김대건 성인의 성지가 조성된 곳이 바로 도미니코수도원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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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건 성인은 이곳 롤롬보이를 3차례 방문하고 1년 이상을 공부하며 생활했다.


▧ 롤롬보이 주민들도 성인에 큰 관심 가져

김대건 성인 동상 뒤편으로는 성인의 유해소와 기와지붕의 경당이 있고 경당 옆에는 커다란 망고나무가 서있다. 도미니코수도회의 기록에 따르면 지금은 ‘망향의 망고나무’로 불리는 이 나무 곁에서 김대건 성인이 부친의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망고나무를 뒤로하고 길을 따라가면 7궁방탑이 보인다. 관상의 7단계를 상징하며 김대건 성인이 온갖 역경을 딛고 공부하던 과정을 기억하게 하는 이 탑은 근방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로 탑 7층에 올라가면 롤롬보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이 탑에는 각 층별로 작은 방을 마련해 기도와 피정 등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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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롤롬보이본당의 김대건 성인상의 모습, 성지조성으로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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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와를 활용,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경당과 7궁방탑의 모습.
이곳은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롤롬보이 사람들 사이에선 ‘한복을 입은 목 없는 귀신이 나오는 흉가’로 불리며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1986년 고 김수환 추기경, 고 오기선 신부 등이 김대건 성인의 동상을 세우고 2002년부터 성안드레아수녀회가 성지를 매입, 조성하면서 ‘목 없는 귀신’의 소문은 사라지고 롤롬보이 주민들도 김대건 성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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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해소 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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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해소에 안치된 김대건 성인의 유해 모습.


▧ 후원금 부족으로 성지 건축 진행 힘들어

성안드레아수녀회는 약 10년간 후원금이 마련될 때마다 성지를 가꿔 지금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조성했지만 후원금의 부족으로 진척이 안 돼 아직도 성지의 중심이 될 성당과 봉헌소 등의 건축이 진행 중이다. 특히 김대건 성인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갓’을 형상화해 8층 높이의 건물로 건축 중인 성당은 호숫가에 지어져 성지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것으로 기대되지만 자금 부족으로 건축이 중단된 채 방치되기도 했다. 또 피정의 집도 있어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방문객이 거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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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갓’을 형상화한 성당(좌측)과 봉헌소(우측)의 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자금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완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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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지에 마련된 피정의 집은 30여 명이 숙식할 수 있지만 찾는 방문객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피정의 집 모습.

필리핀에서는 보기 힘든 한국적인 느낌의 건축물들은 그 자체로도 이목을 끌기 충분했지만 성지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롤롬보이 사람들에게 김대건 성인에 대한 깊은 사랑을 심어줬다. 롤롬보이본당은 김대건 성인을 본당주보성인으로 삼고 성인의 축일에는 마을 전체가 성대하게 축제를 벌이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김대건 성인의 정신은 필리핀에서도 퍼져나가고 있었다. 필리핀, 이 멀고도 가까운 섬나라에서 유학생으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학업에 정진했던 김대건 성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순례문의 031-673-8560 성안드레아수녀회, 후원계좌 310-08-225166 우리은행 (예금주 김화숙)

롤롬보이(필리핀)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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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롤롬보이 김대건성인 성지

 

1836년 12월3일 서울을 떠난 지 6개월여 간의 고생 끝에 1837년 6월7일 마카오에 당도한 김대건 일행은 긴장이 채 풀리기도 전에 파리외방전교 회원들과 함께 마카오를 떠나야만 했다. 포르투갈 식민정치에 불만을 품은 청국인들이 8월에 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김대건 일행이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과 함께 오른 피난길의 기착지가 바로 마닐라였다.당시 마닐라는 마카오보다 훨씬 규모가 큰 국제 무역도시였고 포르투갈인이 아닌 스페인 선교사 즉 예수회원들이 진출해 있던 곳이다.

 

다행히 1837년의 마카오 민란은 그래 겨울이 진압돼 다음해 1838년 마카오로 귀환하게 됐으나 11월 26~27일 밤 사이에 김대건 일행의 맏형이던 최방제가 열병으로 죽고 말았다. 그처럼 두려워하던 죽음이 드디어 들이닥치고 만 것이다.

 

동기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채 아물기 전인 다음해 1839년 4월6일 마카오 민중이 재봉기하자 김대건과 최양업은 칼레리, 데플레슈 신부 등과 함께 다시 마닐라로 피난길에 올랐다.마닐라로 피난 온 김대건 일행은 다행히 성 도미니꼬 수도회 원장 초청으로 마닐라 인근의 롤롬보이(Lolomboy)에 있는 성 도미니꼬 수도원 별장에서 11월 마카오로 귀환할 때까지 약 6개월간 피난살이를 했다.

 

그 후 1842년2월28일(2.15일 메트로신부와 에리곤 호 탑승 마카오출발) 대만으로 가시기 위해 다시 이곳에 들러 10일정도 머무시다, 가신 인연 깊은 곳이다.

 

롤롬보이 623번지, 지주 멘도사(Mendosa)가문의 사유지였다.김대건 신부 시성을 기념해 멘도사 여사가 옛 수도원 터 일부를 1986년에 한국 천주교회에 기증해 이곳에 김대건 신부 동상을 세울 수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마롤로스 교구장 알마리오 주교 임석하에 고, 오기선 신부님 주선으로1986년 5월 22일 동상 봉헌식을 올린데 이어 2002년부터 성 안드레아 수녀회 수녀들이 파견돼 성지 관리 등을 맡고 있다.

 

수녀회는 2000년 가을 필리핀 방문 길에 롤롬보이 성지를 순례하던 중 사유지인 이 부지를 주인이 팔려고 내놓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2002년 10월 이곳 부지 550여평을 매입하고 필리핀 정부와 현지 교구청 인가를 받아, 성당을 건립, 봉헌식을 거행한 후 예수성심상, 김대건 성인 유골이 모셔진 봉헌소, 성모당, 7궁방(7층탑)을 차례로 건립했으며, 현재는 피정의 집까지 필리핀 현지에 세운 한국의 성지이다.

 

1988년 창립해 91년 수원교구 인준을 받은 수녀회는 2000년 현재의 '성안드레아수녀회'로 수도회 명칭을 변경했다. 수녀회는 하느님을 향한 김대건 성인의 열정적 사랑을 본받아 그 정신으로 이 시대에 절실한 가정성화와 생명수호를 위한 어린이 집, 미혼모의 집, 복지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 사적지에는 김대건과 최양업의 피난생활을 회상시키는「망향의 망고나무」가 있다.

망향의 망고나무는 이곳에 피난 와 있던 김대건이 그해 여름(1839년 8월) 아버지 김제준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편지를 받아보게 돼 고향을 그리는 김대건의 마음을 생각해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으로 가는 동지사 일행 속에 숨어들었던 한 신자가 북경까지 그 편지를 갖고 와 뭍으로 바다로 해서 몇 만 리를 지나 김대건의 손에 닿은 부친의 편지였다.아버지 김제준이 쓴 편지의 발신일자는 1837년 가을, 롤롬보이에 있는 김대건의 손에 닿기까지 무려 네해가 걸렸다. 편지 내용은 희소식밖에 없었다. 집안도 무사하며 앵베르 범 주교, 모방, 샤스탕 신부 모두가 안녕하다는 소식이었다.김대건과 최양업은 이 편지에 뜨거운 눈물을 적시며 망고나무 그늘 아래서 읽고 또 읽고 한 자도 빠짐없이 외울 정도로 거듭 거듭 읽었다.그러나 김대건이 편지를 받고 감격해 할 무렵 조선에선 기해박해가 터져 그의 아버지 김제준과 최양업의 부친 최경환은 옥고를 치르고 9월 장엄히 순교했다.

 

김대건이 받은 부친의 편지는 이역만리 떨어진 아들에게 희망과 위안, 기쁨을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김대건 신부의 사적지에서 약 3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성 김대건 신부를 주보로 모시고 있는「성 십자가와 성인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서 롤롬보이 주민들 모두가 매주일 주보인 김대건 신부를 현양하며 그의 영성을 본받고 있다.이곳에는 성인께서 순교를 하신 시점부터 밤이면 목이 없는 사람이 나타나, 동네 사람들이 혼비백산 하여 도망쳤고, 개들까지도 자지러지도록 짖어댔다고 하는 일화가 있다.

 

이런 일이 계속되자 이곳에 거주하던 주택의 식모들이 무서워 견디지를 못하고 도망갔다고 하며, 그 후 그 집은 동네사람들이 귀신이 나오는 집, 즉 흉가로 알려졌다.

사람들은 성인께서 한국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성인의 영혼이 나타나시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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