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5.중국 (4)중국교회의 미래 발견한 지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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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9 11:18
[아시아교회가 간다Ⅱ] 25.중국 (4)중국교회의 미래 발견한 지린교구
발행일2006-12-03 [제2527호]
성소부족 해결 위해 중 고등과정 소신학교 운영
정규교과도 이수…신학교 졸업후 정식 학력 인정
‘중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중국에서 처음 이 말을 듣게 되면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 말뜻을 알게 된다. 개방 이후 중국 사회가 걷고 있는 길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준거와 원칙이 없다, 혹은 그것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선족자치주 속해 있어
200만명이 넘는 조선족의 70% 이상이 몰려 살고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인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가 속해 있어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지닌 지린성(吉林省)을 관할하는 지린교구에서도 중국 사회의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1946년 중국에 교계제도가 수립될 당시 지린성 내에는 지린교구를 비롯해 시핑(四平), 옌지(延吉) 등 3개 교구가 있었지만 현재는 지린교구만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설립 당시 전체 인구의 62%를 조선족이 차지한 옌볜자치주를 관할하던 옌지교구의 경우 조선족들이 대거 한국 등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숫자가 줄기 시작해 2005년 말 현재 비율이 33%로 대폭 낮아져 신자마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선양(瀋陽)교구를 필두로 푸순(撫順) 러허(熱河) 잉커우(營口) 등 4개 교구가 있었던 인근 랴오닝성의 경우도 신자가 줄어들면서 1983년 종교국에 의해 랴오닝교구 하나로 통합되고 말았다.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지린성을 비롯,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동북3성(東北三省) 가운데 2번째로 많은 신자(2006년 현재 약 13만명)가 있는 지린교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교회 신자들의 발걸음이 가장 빈번해진 곳 가운데 하나다.
지린교구는 1838년 4월 요동대목구가 설정되고 다시 1898년 동북3성 지역을 남북으로 분할해 북만주대목구와 남만주대목구가 분리 설립되고 1924년 북만주대목구가 길림대목구로 개칭되면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동북 지역의 중심적인 교회다.
특히 1928년 지린대목구에서 분할 설정된 옌지(延吉)감목구는 앞서 1920년 8월에 설립된 원산대목구 관할로 조선인에 의해 복음화의 씨앗이 뿌려져 한국교회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성소의 요람 소신학교
“하느님의 일이라면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성하시는 분은 당신이시니까요.”
지린교구 비서장 류칭춘(劉靑春) 신부의 안내로 찾은 소신학교. 그가 밝힌 하느님의 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지린교구 소신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형언하기 힘든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심으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소신학교를 운영해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소신학교 관리책임까지 맡은 류신부의 거침없는 태도가 괜한 것이 아님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지난 2004년 7월에 문을 연 소신학교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 교회의 가까운 미래라 할 수 있다. 중학교 1년부터 고등학교 3년 과정의 20명으로 시작된 소신학교는 지난해 8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인데 이어 올해도 11명이 새로 입학하면서 30명이 넘는 신학생들이 일찌감치 성소의 길을 찾는 요람이 되고 있다.
교구 재정을 비롯해 열악한 주변 여건으로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소신학교를 시작한 류신부의 판단은 단순 명확하다. 1가구 1자녀 정책의 중국에서 성소 부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남부지역의 경우 벌써 성소 부족현상으로 대신학교 성소자가 부쩍 줄어드는 것은 물론 주교도 없는 교구가 반 가까이나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미래를 간파하고 소신학교를 여는 교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지린교구의 운영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교구들의 경우 소신학교 안에서 모든 양성과정이 이루어지지만 지린교구는 기숙사에서 함께 살며 신학 등 기본 소양을 익힌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여기에 더해 모든 신학생이 일반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과 과정을 이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아무리 신학교를 졸업해도 정식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대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어온 중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류신부의 선택이다.
류신부는 “사회와 분리된 고전적 교육방식만으로는 사회 속에서 같이 성장해나갈 수 없다. 특히 현재의 중국 사회구조 안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내적 연마에 더해 사회에서 요청하는 재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성소자 양성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학교 과정에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수준 높은 훌륭한 신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류신부의 생각에는 탁월한 식견이 엿보였다.
소신학교 신학생은 조바자츠(小八家子) 등 지린교구 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10여개의 교우촌에서 본당 신부가 추천하는 이들 가운데서 직접 뽑는다. 52명의 교구 신부와 지린교구 신철학원(대신학교) 신학생 대부분이 교우촌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린교구가 지닌 잠재력을 엿보게 한다. 그래서 교우촌 복사단이 장차 사제가 될 사람이라는 그들끼리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류신부를 비롯한 교구에서 신학생들에게 기울이는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교구 재정이 어려워 제때에 학비를 대지 못할 때는 후원자를 수소문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가 하면 신학생들과 함께 살다시피 하며 음식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등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결실로 신학생들은 일반 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과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신학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는데다 일반 학교의 학비가 비싸 원하는 이들을 다 받을 수 없어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건만 된다면 최대한 많은 신학생을 받아 양성하는 게 류신부의 바람이다.
“주님의 일이기에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덕성 갖춘 성소자 양성 교회발전 초석쌓는 길”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
“한국 교회는 중국 교회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내게 없는 상대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게 발전의 길입니다.”
지린교구장 쟝한민(張翰民 다마소 82) 주교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교회가 함께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조바자츠(小八家子) 교우촌에서 태어나 지난 1983년 7월 사제품을 받은 이후 75세가 되던 1999년에야 느지감치 주교품을 받고 지린교구를 이끌어오고 있는 쟝주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교구 사목뿐 아니라 대정부 관계 일까지 다방면에서 교회의 우산이 되어주고 있는 쟝주교는 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영성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육과 이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신자, 특히 성직자들은 교회의 영성을 바탕으로 덕성을 함양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 전파 등 다른 여러 영역에서도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중국 교회의 경제적 기초가 약해 복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 쟝주교는 “덕성과 재능을 함께 겸비한 인재 양성이 현재의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어려운 교구 형편에도 교구 성직자들을 가까운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멕시코 홍콩 등지로 유학을 보내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오고 있다.
“교구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부여받는 역할을 잘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힌 쟝주교는 “교회와 사회, 가정의 발전은 같은 기초 위에 서있다”며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적극적인 몫을 역설했다.
“하느님의 일이라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길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한국 교회를 배우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뇌는 쟝주교, 그의 얼굴에 소신학교 신학생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진설명
▶지린교구 소신학교 학생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30여명의 학생들이 성소의 길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소신학교 내 경당.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소신학교는 규모가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다.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
정규교과도 이수…신학교 졸업후 정식 학력 인정
‘중국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중국에서 처음 이 말을 듣게 되면 무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 말뜻을 알게 된다. 개방 이후 중국 사회가 걷고 있는 길의 한 단면을 잘 보여주는 이 말은 달리 표현하면 준거와 원칙이 없다, 혹은 그것이 무너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조선족자치주 속해 있어
200만명이 넘는 조선족의 70% 이상이 몰려 살고 중국에서 유일한 조선족자치주인 옌볜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가 속해 있어 한국과는 남다른 인연을 지닌 지린성(吉林省)을 관할하는 지린교구에서도 중국 사회의 이런 모습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1946년 중국에 교계제도가 수립될 당시 지린성 내에는 지린교구를 비롯해 시핑(四平), 옌지(延吉) 등 3개 교구가 있었지만 현재는 지린교구만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설립 당시 전체 인구의 62%를 조선족이 차지한 옌볜자치주를 관할하던 옌지교구의 경우 조선족들이 대거 한국 등 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숫자가 줄기 시작해 2005년 말 현재 비율이 33%로 대폭 낮아져 신자마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은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여서 선양(瀋陽)교구를 필두로 푸순(撫順) 러허(熱河) 잉커우(營口) 등 4개 교구가 있었던 인근 랴오닝성의 경우도 신자가 줄어들면서 1983년 종교국에 의해 랴오닝교구 하나로 통합되고 말았다.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지린성을 비롯, 랴오닝성(遼寧省)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등 동북3성(東北三省) 가운데 2번째로 많은 신자(2006년 현재 약 13만명)가 있는 지린교구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교회 신자들의 발걸음이 가장 빈번해진 곳 가운데 하나다.
지린교구는 1838년 4월 요동대목구가 설정되고 다시 1898년 동북3성 지역을 남북으로 분할해 북만주대목구와 남만주대목구가 분리 설립되고 1924년 북만주대목구가 길림대목구로 개칭되면서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동북 지역의 중심적인 교회다.
특히 1928년 지린대목구에서 분할 설정된 옌지(延吉)감목구는 앞서 1920년 8월에 설립된 원산대목구 관할로 조선인에 의해 복음화의 씨앗이 뿌려져 한국교회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성소의 요람 소신학교
“하느님의 일이라면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성하시는 분은 당신이시니까요.”
지린교구 비서장 류칭춘(劉靑春) 신부의 안내로 찾은 소신학교. 그가 밝힌 하느님의 일이라는 표현에 걸맞게 지린교구 소신학교는 그 존재만으로도 형언하기 힘든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심으로는 ‘이렇게 공개적으로 소신학교를 운영해도 괜찮을까’하는 걱정이 없지 않았지만 소신학교 관리책임까지 맡은 류신부의 거침없는 태도가 괜한 것이 아님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지난 2004년 7월에 문을 연 소신학교는 의심할 여지없이 중국 교회의 가까운 미래라 할 수 있다. 중학교 1년부터 고등학교 3년 과정의 20명으로 시작된 소신학교는 지난해 8명의 신입생을 받아들인데 이어 올해도 11명이 새로 입학하면서 30명이 넘는 신학생들이 일찌감치 성소의 길을 찾는 요람이 되고 있다.
교구 재정을 비롯해 열악한 주변 여건으로 엄두도 내기 힘든 상황에서 소신학교를 시작한 류신부의 판단은 단순 명확하다. 1가구 1자녀 정책의 중국에서 성소 부족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리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 남부지역의 경우 벌써 성소 부족현상으로 대신학교 성소자가 부쩍 줄어드는 것은 물론 주교도 없는 교구가 반 가까이나 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미래를 간파하고 소신학교를 여는 교구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지만 지린교구의 운영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다른 교구들의 경우 소신학교 안에서 모든 양성과정이 이루어지지만 지린교구는 기숙사에서 함께 살며 신학 등 기본 소양을 익힌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여기에 더해 모든 신학생이 일반 학교를 다니며 정규교과 과정을 이수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는 아무리 신학교를 졸업해도 정식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대사회 활동에 걸림돌이 되어온 중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류신부의 선택이다.
류신부는 “사회와 분리된 고전적 교육방식만으로는 사회 속에서 같이 성장해나갈 수 없다. 특히 현재의 중국 사회구조 안에서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서 “교회에서 필요로 하는 내적 연마에 더해 사회에서 요청하는 재능을 갖추기 위해 새로운 성소자 양성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신학교 과정에서 중도 탈락하는 경우가 있더라도 그들이 사회에 나가면 수준 높은 훌륭한 신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류신부의 생각에는 탁월한 식견이 엿보였다.
소신학교 신학생은 조바자츠(小八家子) 등 지린교구 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10여개의 교우촌에서 본당 신부가 추천하는 이들 가운데서 직접 뽑는다. 52명의 교구 신부와 지린교구 신철학원(대신학교) 신학생 대부분이 교우촌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린교구가 지닌 잠재력을 엿보게 한다. 그래서 교우촌 복사단이 장차 사제가 될 사람이라는 그들끼리의 말도 그리 틀린 말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류신부를 비롯한 교구에서 신학생들에게 기울이는 노력은 가히 눈물겹다.
교구 재정이 어려워 제때에 학비를 대지 못할 때는 후원자를 수소문해서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가 하면 신학생들과 함께 살다시피 하며 음식 하나하나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쓰는 등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이 결실로 신학생들은 일반 학교에서도 뛰어난 성적과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지만 어려움도 적지 않다.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신학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는데다 일반 학교의 학비가 비싸 원하는 이들을 다 받을 수 없어 돌려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여건만 된다면 최대한 많은 신학생을 받아 양성하는 게 류신부의 바람이다.
“주님의 일이기에 하기는 쉽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리라 믿습니다.”
“덕성 갖춘 성소자 양성 교회발전 초석쌓는 길”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
“한국 교회는 중국 교회가 반드시 배워야 할 모범입니다. 내게 없는 상대의 장점을 보고 배우는 게 발전의 길입니다.”
지린교구장 쟝한민(張翰民 다마소 82) 주교는 중국과 한국 두 나라 교회가 함께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가진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조바자츠(小八家子) 교우촌에서 태어나 지난 1983년 7월 사제품을 받은 이후 75세가 되던 1999년에야 느지감치 주교품을 받고 지린교구를 이끌어오고 있는 쟝주교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교구 사목뿐 아니라 대정부 관계 일까지 다방면에서 교회의 우산이 되어주고 있는 쟝주교는 교회 발전을 위해서는 영성적인 면에서의 성장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교육과 이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신자, 특히 성직자들은 교회의 영성을 바탕으로 덕성을 함양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복음 전파 등 다른 여러 영역에서도 발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중국 교회의 경제적 기초가 약해 복음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한 쟝주교는 “덕성과 재능을 함께 겸비한 인재 양성이 현재의 어려움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어려운 교구 형편에도 교구 성직자들을 가까운 한국은 물론 이탈리아 멕시코 홍콩 등지로 유학을 보내 견문을 넓힐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 오고 있다.
“교구 발전을 위해서는 사회 속에서 교회가 부여받는 역할을 잘 펼쳐나가야 한다”고 밝힌 쟝주교는 “교회와 사회, 가정의 발전은 같은 기초 위에 서있다”며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적극적인 몫을 역설했다.
“하느님의 일이라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길이 열리리라 믿습니다.”
한국 교회를 배우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되뇌는 쟝주교, 그의 얼굴에 소신학교 신학생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는 건 왜일까.
사진설명
▶지린교구 소신학교 학생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30여명의 학생들이 성소의 길을 찾아 공부하고 있다.
▶소신학교 내 경당. 주교좌성당 인근의 반지하 건물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 소신학교는 규모가 크지 않아 수용에 한계가 있다.
▶지린교구장 쟝한민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