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티 김영제와 김 아가타 묘
관리자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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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1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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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방 최초의 신자가 된 조부 김교희
프란치스코와 부친 김상은 야고보에게 신앙을 물려받은 김영제 베드로는 박해를 피해 부친과 함께 여러 교우촌을 전전하다가 간월로 돌아와 공소를
설립하고 1858년에는 공소 건물을 짓기도 했습니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되어 한양까지 압송되었다가 풀려난 그는 1868년 무진박해 때
다시 체포되었고, 이때 많은 신자들이 붙잡혀 간월 공소는 물론 대재 공소 또한 소멸되었습니다. 김영제가 잡히면서 집은 불태워지고 가산은
몰수됐으며 가족들은 또다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대구에서 그는 전교 신부들의 행방을 묻는 관리들로부터 극심한 고문과 문초를 당했고, 이때 받은 고문으로 종지뼈가 으스러져 불구의 몸이 되었습니다. 한양까지 이송되었다가 9개월 만에 특별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피신한 가족들을 수소문해 안살티에 정착한 후 여기서 다시 살티 공소를 설립해 회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박해가 뜸해지자 농사가 가능한 평지를 찾아 현재의 살티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고문으로 인한 장독이 전신에 퍼지는 고통 속에서 살다가 결국 1876년 1월 24일 숨을 거두었습니다. 살티 공소 인근에 위치한 김영제의 묘소는 1981년 11월 언양 성당 신자들이 정성을 모아 말끔하게 단장하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1994년 4월 부산교회사연구소 주관으로 서북쪽으로 약 18m 지점인 현재의 위치로 유해를 이장하고, 울산 본당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분묘를 재단장하고 순교비를 건립하는 동시에 십자가, 제대, 예수 성심상, 성모상, 성지 표지석 등을 세웠습니다. 2008년 3월에는 간월에 있던 여동생 김 아가타의 묘를 김영제 묘 옆으로 이장하여 그해 9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나란히 자리한 남매 묘소 우측에 있는 가족묘 상단에는 부친 김상은과 모친 최 마리아의 묘도 있습니다. |
미사시간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주일미사 | 일 | 06:30 | 미사 일정은 언양 성당 것입니다. |
10:30 | 교중미사 | ||
19:30 | |||
평일미사 | 월 | 06:30 | |
화 | 19:30 | ||
수 | 10:00 | ||
목 | 10:00 | ||
금 | 19:30 | ||
토 | 16:00 | 어린이미사 | |
19:00 | 특전/청소년미사 |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