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리 무명 순교자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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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리
무명 순교자 묘는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의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선산인 한 야산에 약 40여 기가 산재해
있었다.
손자선 성인의 유해는 신리 교우들이 거두어 그가 평생을
두고 살아온 신리에서 가까운 선산에 묻었다. 그의 발 옆에는 그가 옥중에서 써 보낸 편지를 평소 그가 쓰던 술잔에 담아 표지삼아 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두로 전해 오는 바에 의하면, 이 야산에는 손자선 성인의 무덤뿐만 아니라 다른 무명 순교자들도 많이 묻혔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하였다.
제1차 파묘
1972년에 그 야산 일부가 개발되어 94,400평이 과수원으로 변모하였다. 이때 32기의 연고자
없는 고총이 파묘되었는데, 각 묘마다 목이 없는 시신만 나왔다고 목격자들은 전하고 있다. 또한 묘마다 묵주가 나왔는데 그 양이 당시 시골
바가지로 한 바가지 정도나 될 만큼 모아져 있었다고 한다. 구전에 의하면 대원군이 천주교인들을 목 베어 죽이고, 목은 수효를 확인하기 위해
가져가고 시신만 버렸다고 한다. 32기의 시신은 그 당시 강계에 살던 손석윤 씨가 10여 명의 교우들을 데리고 와서 사과 상자 4개에 담아서
지고, 그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어떤 공동묘지에 일렬횡대로 6봉분에 나누어 합장하였다고 한다. 이 이장 장소는 합덕읍 대전리 소재의 야산
중상부에서 서남향으로 6기의 분묘로 발견되었다.
제2차
파묘
그 후 공장이 들어서기 위해 야산 일부가 다시 개발되면서 14기가 파묘되었는데, 당진시 합덕읍 대전리 공동묘지 중상부 동북향으로 있던 14기의 묘는 1985년 4월경에 김병국(金炳國) 씨가 동료 김영기(金永寄) · 최동철(崔東喆) 씨와 함께 이장한 무명 순교자들의 묘이다. 김병국 씨는 이곳 신리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전해들은 얘기로 이 지역 대부분의 땅이 치명자 손씨 땅이었고, 손자선 성인과 많은 순교자가 이곳에 묻혀 있다고 하였다. 특히 대전리 120-8에 있는 10여 기의 묘는 손씨 가문의 치명자 묘라는 사실을 구전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던 중, 이 묘역을 포함한 일대가 공장 부지로 개발됨에 따라 지주 서종순(徐鍾淳) 씨로부터 묘 이장 작업 청탁이 있기에 상기 동료와 함께 작업하던 중 십자가(길이 약 10cm)가 발굴되자 손씨 문중 치명자 묘라는 구전도 듣고 해서 정중히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나온 십자가는 굴삭기 기사가 일도 안하고 따라다니면서 달라고 해서 주었다고 한다. 14기의 묘는 구전으로 전하는 바 손자선 성인의 가족 순교자 묘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손자선 성인의 가족 순교자 묘는 바로 옆에 있던 무명 순교자 묘역 뒤편으로 이장하여 모셨다.
[출처 : 오영환,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kr, 2005,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4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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