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평
관리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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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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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제주에서 발생한 신축교안은
1900년 조정에서 파견된 봉세관이 황실 재정을 채우기 위해 온갖 잡세를 거두는 수탈정책의 시정을 요구하는 민란으로 출발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도정 책임자와 봉세관은 도피하고 민군들은 공격 대상을 천주교로 돌렸습니다. 이에는 일부 신자들이 봉세관의 중간 징세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주민들을 더욱 격분하게 한 것도 한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 신부를 쫓아내고 한반도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려던 일본제국주의의
음모, 축첩과 인습에 젖은 토호세력, 토착민의 문화를 무시하고 신당을 파괴하고 신목을 베어 버린 일부 신자들의 무리한 행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대규모 천주교 박해로 이어졌습니다. 신축교안은 유서 깊은 관덕정 앞을 사형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제주읍성을 함락한 민군은 천주교인을 포함한 양민 수백 명을 살해했는데, 170여 명의 신자들이 관덕정 정자 앞에서 모진 매를 맞고 처형되었습니다. 당시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 명단 등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신축교안으로 희생된 신자 수는 대략 300-35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교우들의 시신은 별도봉 기슭에 가매장되었다가 1903년 조정으로부터 황사평을 양도받아 이장했습니다. 이때 황사평으로 이장한 무연고 묘와 시신의 수는 합장한 묘를 합해 총 26기에 28구였습니다. 총 면적이 약 18,000평의 황사평은 현재 신축교안 순교자 묘역뿐만 아니라 제주교구의 공동 안장지로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1980년 순교자들의 묘를 평장으로 이장했다가 1995년 11월 제주교구 선교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28구의 유해를 합장하여 순교자 묘역을 새 단장하고 교구 성직자 묘지를 조성했습니다. 1998년 제주에서 활동한 외국인 성직자들을 기리는 공덕비와 제주 출신 최초의 신자인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순교비를 세웠습니다. 2008년 제주교구는 황사평 순교자 묘역 앞에 납골당 건설 작업에 착수해 아름다운 추모공원을 조성했습니다. |
미사시간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주일미사 | 일 | 06:30 | 미사 일정은 인근 동광 성당(064-721-9911) 것입니다. |
09:30 | |||
11:30 | 교중미사 | ||
19:30 | |||
평일미사 | 월 | 06:30 | |
화 | 19:30 | ||
수 | 10:00 | ||
19:30 | |||
목 | 06:30 | ||
금 | 10:00 | ||
19:30 | |||
토 | 06:30 | ||
19:30 | 특전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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