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여산 동헌(백지사터)
관리자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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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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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산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 당시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유곡에 숨어 살다 이곳 여산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순교지입니다.
1866년 병인박해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들을 혹독한 박해의 칼날 아래로 내몰았고,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습니다. “치명일기” 등에 기록된 순교자만도 25명에 이르는 여산은 특히 다른 어느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가혹한 처형 방법으로 유명합니다. 여산 동헌에 잡혀 온 신자들은 참수, 교수는 물론 백지사형(白紙死刑)으로도 죽임을 당했습니다. 백지사형이란 교우들의 손을 뒤로 결박하고 상투를 풀어서 결박된 손에 묶어 얼굴을 하늘로 향하게 한 다음 얼굴에 물을 뿜고 그 위에 백지를 여러 겹 붙여 질식사시키는 처형 방법이었다. 조선 말기의 건조물로 추정되는 여산 동헌은 1980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었고, 맞은편 여산 초등학교 내에 있던 감옥은 흔적도 없습니다. 여산 동헌과 여산 숲정이 사이에 위치한 여산 성당은 동헌 바로 아래 부지를 매입하여 백지사터 성지를 조성했습니다. 백지사터 성지에는 순교성지 기념비와 십자가의 길, 백지사형 당하는 얼굴 조각 등이 있어 박해 당시의 처절함을 느끼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
| 미사시간 |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 주일미사 | 일 | 10:30 | 교중미사, 미사 일정은 여산 성당 것입니다. |
| 평일미사 | 월 | 06:00 | |
| 화 | 19:30 | 19:00(동절기) | |
| 수 | 10:00 | ||
| 목 | 19:30 | 19:00(동절기) | |
| 금 | 10:00 | ||
| 토 | 19:30 | 19:00(동절기) | |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전주
교구의 ‘제2 성지’라 불리는 여산 성지는 1868년 무진박해(戊辰迫害) 당시 여산군의 속읍지였던 고산, 금산, 진산 등의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숨어 살다 이곳 여산 관아로 잡혀 온 천주교 신자들이 모진 형벌과 굶주림의 고통을 당한 순교지이다.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는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평화롭게 살았던 교우들을 혹독한 박해의 칼날 아래로 내몰았다. 비록 조그마한 고을이었지만 여산에는
사법권을 지닌 부사와 영장이 있었기 때문에 교우들을 마구잡이로 처형시킬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동헌은 당시 사법권을 비롯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며 고을을 다스리던 곳으로 최근까지 마을 경로당으로 사용되었다. 이 동헌 자리 주위에는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고목들이 남아 있어 유적을 돋보이게 한다. 특히 동헌 마당에는 옛 부사들의 선정비(善政碑)나 불망비(不忘碑)들과 함께 대원군의
척화비(斥和碑)가 서 있다.
여산
숲정이 성지 여산 숲정이는 천주교가 전래되어 수많은 순교자들을 배출한 전주교구 제2의 성지입니다. 지금은 논과 밭
가장자리가 되었습니다만 박해 당시에는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숲정이 성지로 유래되어 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순교하신 분들
가운데 10분의 시신은 지금 고산 천호 성지에 묻혀 계십니다.
동헌
백지사터 성지 동헌은 부사의 행정 집무실이고 백지사터는 부사의 집터. 현재 동헌은 경로당으로 쓰고 있고,
백지사터는 우리 교회에서 매입하여 순교성지로 보존해 오고 있습니다.
배다리에서
참수된 시신은 배다리 옆 미나리꽝에 던져졌습니다. 그런데 신도들이 야음을 틈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건져내어 순교자들의 옷을 벗겨보니 솜을 두텁게
넣어 입었던 옷 속에 솜이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배가 하도 고파서 솜을 다 뽑아 먹었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