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개갑장터
관리자
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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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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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에 위치한 개갑 장터는 조선시대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곳은 또한 무장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여겸 마티아의 순교 터이기도 합니다. 윤지충과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된 그는 고향 무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습니다. 신유박해 때 한산의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된 그는 무장과 전주
감영, 한양 포도청과 형조에서 굳건히 신앙을 증언해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고향으로 이송되어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고창군은 개갑 장터의 이런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2004년 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하고, 전주교구 고창 본당과 함께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고 인근 유적지와 연계해 개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09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에 들어가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한 후 2013년 9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개갑 최여겸 마티아 순교성지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2014년 8월 16일 최여겸 마티아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에 위치한 개갑 장터는 조선시대 당시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그러나 한일합방 후 구한말 의병들의 물자 보급소와 연락처로 활용되면서 일제로부터 미움을 사고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고창군은 2004년 6월 개갑장터의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하였다.
최
마티아가 무장 관아에 이르자, 관장은 곧장 그에게 형벌을 가하면서 문초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어떠한 형벌로도 그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를 다시 전주 감영으로 이송하도록 하였다. 이곳에서도 최 마티아는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옥중에서 열렬한 신자인 복자 한정흠 스타니슬라오(韓正欽, 1756-1801년)와 김천애 안드레아(金千愛, 1760-1801년)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전주교구
고창 본당은 이런 역사적 · 교회사적 사실에 근거해 2002년부터 고창군과 함께 개갑 장터를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고, 인근 유적지와 연계해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2004년 1차로 부지를 매입해 표석을 설치하고, 2009년부터 고창군과 함께 개갑 장터 부지에 ‘최여겸 마티아 순교터
성지조성 개발계획’을 세우고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에 들어갔다. 총 16,500㎡(5,000여 평) 규모의 부지를 마련하고, 그곳에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400m 길이의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하였다. 12m 높이의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벽면은 최여겸 순교자의 활동상과 순교를 주제로
남용우 마리아 원로 유리화가의 모자이크 색유리화로 장식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