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량 순교 현양비
관리자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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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3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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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배를 타고 장사를 하던 그는 1857년 2월 18일 모슬포로 항해하다가 풍랑을 만나 표류하던 중 3월 26일 중국 광동
해안에서 영국 배에 의해 구조되어 홍콩에 있는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휴양 중이던 조선인 신학생 이 바울리노를
만났습니다. 이 바울리노에게 교리를 배운 그는 성령강림 대축일인 5월 31일 루세이유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김기량은 고향을 떠난 지 1년 2개월 만인 1858년 4월 죽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가족과 사공들에게 돌아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천주교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 후로도 육지를 오가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65년에 두 번째 난파를 당하여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하여 프티장 신부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무사히 귀국한 후 육지로 나와 리델 신부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사공 두 명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주를 복음화하려는 그의 노력은 1866년 병인박해로 중단되었습니다. 박해가 일어난 직후 통영의 게섬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관아로 끌려간 그는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굳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혹독한 매를 맞고도 네 명의 신자들에게 “나는 순교를 각오하였으니, 그대들도 마음을 변치 말고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결국 관장은 다섯 명 모두 옥으로 옮겨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령했고, 특히 김기량의 가슴 위에 대못을 박아 다시는 살아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때가 1867년 1월로 당시 김기량의 나이는 51세였습니다. 제주교구는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의 순교 정신을 현양하기 위해 1999년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황사평 순교자 묘역에 김기량 순교비를 세웠고, 2003년 1월 조천 성당에도 순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2005년 4월 24일에는 그의 고향인 조천읍 함덕리의 함덕 중학교 서쪽 도로변에 부지를 마련하여 순교 현양비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시복시성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고, 마침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는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
미사시간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주일미사 | 일 | 10:30 | 교중미사, 미사 일정은 조천 성당 것입니다. |
19:30 | |||
평일미사 | 월 | 06:00 | |
화 | 19:30 | ||
수 | 19:30 | ||
목 | 06:00 | ||
금 | 19:30 | ||
토 | 19:30 | 특전미사 |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