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박대식 빅토리노 묘
관리자
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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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2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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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식 빅토리노는 1812년 현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입교한 후 가족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중 1868년 무진박해 때 대구와 김해에서 온 포졸들에게
잡혀 조카 박수연과 함께 김해 관아로 압송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송 마태오와 박 요셉을 만나 3일간 문초를 받으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믿음을
지켰고, 대구로 압송되어 감영에서 혹형을 받아 뼈가 부러지고 몸이 뒤틀렸지만 끝까지 배교를 거부했습니다. 가족들이 면회를 왔을 때는 험한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옷으로 몸을 가렸다고 합니다. 결국 박대식은 1868년 10월 12일 조카와 송 마태오, 박 요셉과 함께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습니다. 가족들이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와 선영에 모시려 했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인근의 유씨 문중 산에 평장으로 매장했습니다. 그 후 1956년 후손들이 무덤의 봉분을 크게 하고 순교자 부인의 묘도 이장했습니다. 1966년 진영 본당 주임신부의 주선으로 순교자의 무덤 앞에 비석을 세웠고, 2001년 그의 세례명이 빅토리노임이 밝혀졌습니다. 진례 성당은 매년 후손들과 함께 순교자를 기리는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박대식 빅토리노는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
| 미사시간 |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 주일미사 | 일 | 10:30 | 교중미사, 미사 일정은 진례 성당 것입니다. |
| 평일미사 | 화 | 19:30 | |
| 수 | 19:30 | ||
| 목 | 10:00 | ||
| 금 | 10:00 | ||
| 토 | 19:30 | ||
* 미사시간이 변동될 수 있으니 성지나
관련기관으로 전화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한국
천주교회 초창기 신자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 지역에 살았다. 그러다가 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할 곳을 찾아 강원 · 충청 · 전라 지역으로 흩어지면서
신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상도 지역에 신자들이 늦게 나타난 것은 지리적인 이유로 특히 마산교구가 위치한 서부 경남지역에 가장 늦게
신자들이 등장했다. 그로인해 초기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 때 이 지역에서는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다.
박대식(朴大植)
빅토리노(1812-1868년)는 1812년 경상도 김해 예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시례리, 詩禮里)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들 삼형제(종립
· 종반 · 종철)를 두었다. 그가 언제부터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입교한 이후 부친 박만혁과 형제 대붕 · 대흥과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던 중 병인박해를 만났다. 다행히 이때는 가족 모두가 피신하여 체포되지는 않았다.
경상감사는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준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머리를 매달도록 했다. 순교 소식을 듣고 대구로 온 가족들은 포졸들에게 돈을 주고 순교자의 시신을
모셔와 선영에 모시려 했으나 마을 사람들과 집안 외인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아들과 친척들이 다동(현 경남 김해시 진례면 청천리
책골) ‘유씨’ 문중 산에 평장으로 매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