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목포 산정동성당
관리자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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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2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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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음의 전파와 본당 설립 전라남도 지역에 복음이 널리 전파되기 시작한 것은 1866년의 병인박해를 피해 온 다른 지역의
교우들이 노령산맥 줄기를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부터였다. 그 후 이들은 1872년의 ‘나주 무학당(武學堂) 사건’으로 새로운
순교자를 탄생시키면서도 꾸준히 복음 전파에 노력하였으며, 한편으로는 새로 이주해 오는 신자들로 인해 전라남도 지역의 교우촌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1882년 이후에는 리우빌(Liouville, 柳達榮) 신부에 의해 장성 · 순창 · 담양의 20여 개 교우촌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 당시 목포 지역에는 100호도
안되는 마을이 있었을 뿐 신자는 한 명도 없었으므로 데예 신부는 우선 아천리 공소에 임시로 거처하면서 목포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기로 하고,
라크루 신부로부터 순창 · 정읍 · 장성 지역의 공소들을 인수받아 공소 순방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봄 판공을 끝낼 때까지 데예 신부가 순방한
공소는 순창 · 정읍 · 장성 · 담양 · 함평 · 태인 · 무안 등지의 26개소였다. 한편 1897년 9월부터 아천리 신자들을 목포로 보내
쌍교(雙橋, 현 남교동과 북교동 사이)의 토지와 가옥을 매입하기 시작한 데예 신부는, 이듬해 목포항에서 무안으로 가는 길목(현 목포 산정동)에
있는 산을 매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런 다음 그 안에 있는 가옥을 수리하여 1898년 7월 2일 목포로 거처를 옮겼다.
![]() 이 무렵 뮈텔 주교는 1897년
12월에 서품되었으나 병으로 서울에 머물고 있던 이내수(李迺秀, 아우구스티노) 신부를 요양차 데예 신부의 보좌로 임명하였다. 이에 따라 그는
1898년 8월에 목포로 와서 데예 신부와 함께 거처하다가 이듬해 7월에는 무안 우적동(현 몽탄면 사천리 牛跡洞)에 새 거처를 마련한 뒤 그곳을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900년에 다시 병이 악화되어 목포로 돌아가야만 하였으며, 데예 신부의 간호를 받다가 12월 20일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우적동 본당은 김승연(金承淵, 아우구스티노) 신부, 드뇌(Deneux, 全學俊) 신부에 이어 1904년부터
투르뇌(Tourneux, 呂東宣) 신부가 부임하여 활동하다가, 1907-1908년에 투르뇌 신부가 본당을 나주군의 남산(南山, 노안면 용산리)과
계량(桂良, 현 노안 본당)으로 이전하면서 목포 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됨으로써 ‘계량 본당’은 목포의 첫 번째 자 본당이
되었다.
![]() 이처럼 목포 본당의 정착을 위해
노력하던 데예 신부가 1909년 5월 1일 뮈텔 주교를 돕기 위해 서울 주교관으로 전임되면서 나주 계량 본당에 재임하던 투르뇌 신부가 목포 본당
2대 주임으로 임명되었고, 계량 본당 주임으로는 카다스(Cadars, 姜達淳) 신부가 임명되었다. 당시 전라남도 지역 중에서 목포 인근과 도서
지역은 목포 본당(18개 공소, 916명), 장성과 나주 일대는 계량 본당(9개 공소, 291명), 그리고 장성과 순창 일부 지역은 정읍의
신성리(新城里) 본당과 수류 본당에 속해 있었다.
![]() ![]() 타케 신부의 뒤를 이어
1922년 9월 24일에는 주재용(朱在用, 바오로) 신부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제주 본당 주임을 겸하여 부임하였다. 그는 1926년 5월부터
산정동 본당만을 맡았는데, 이해에 85평 규모의 교실 2개를 신축하여 성심 소학교(聖心小學校)를 설립하였고, 초대 교장으로 새 보좌인
이성만(李性萬, 이냐시오) 신부를 임명하였다. 이 학교는 그 후 1944년 5월에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스파이를 양성했다는 죄목으로 폐교되었고,
8·15 광복 후에는 공민학교로 존속하다가 6·25 한국 전쟁으로 완전히 폐교되었다. 주재용 신부는 1931년까지 본당에 재임하면서 교리
교사회와 복사회 등 평신도 단체를 활성화하고 전교에 노력하여 1926년경에는 신자수가 700여명에 이르렀다.
![]() 모나간 신부는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 발발과 동시에 총독부에 의해 체포 · 감금되기까지 7년여 동안 재임하면서 무엇보다도 전교에 노력하였다. 그 결과 신자수는
1,800여 명으로 증가하게 되었고, 성체회 · 청년회 · 학생회 등의 활동도 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1935년에는 산정동 97번지에 400평의
강당 겸 교리실을 신축하였고 가톨릭 문고도 설치하였다. 모나간 신부가 체포된 후 김재석(金在石, 요셉) 신부, 박문규(朴文奎, 미카엘) 신부,
최덕홍(崔德弘, 요한) 신부 등이 차례로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였는데, 1945년 5월 28일에는 성당이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되면서 남교동에 있는
건물을 임시로 빌려 미사를 봉헌해야만 하였다. 광복이 되면서 총독부에 징발당했던 성당을 되찾고 이듬해 8월 24일에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이 처음으로 본당에 파견되었으나 이후 6·25 한국 전쟁으로 인해 본당은 다시 시련을 겪지 않으면 안 되었다. 성당은 인민군 막사로
징발되었고, 본당 주임 쿠삭(Cusak, 高) 신부와 보좌 오브라이언(J. O'Brien, 吳) 신부는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그해 8월경 대전에서
피살되고 말았다.
![]() 경동
본당을 분할하기 이전의 본당 신자수는 4,262명이었지만 본당 분할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여 1958년 초에는 6,264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17대 주임 둔(Dunne, 도) 신부는
또다시 본당 분할을 계획하여 북교동에 부지를 매입하고 그 해 5월 성당을 완공한 뒤 9월 3일자로 ‘북교동(北橋洞) 본당’을 두 번째 자
본당으로 분할하였다. 한편 1957년에는 흑산도 진리에 새 부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건립하였고, 다음해에는 그 이웃에 10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고 11월 11일 봉헌식을 갖는 동시에 세 번째 자 본당으로 ‘흑산동 본당’을 분할하였다. 이로써 산정동 본당의 신자수는 1959년 7월
5일에는 본당 이웃에 ‘성 골롬반 병원’을 개원하였으며, 1957년 1월 21일에는 광주 지목구가 대목구(초대 교구장 : 헨리 주교)로
승격되었다.
그 후
신안군 도서 지역에는 여러 공소들이 설립되었는데, 18대 주임 휴그(Hughes, 유) 신부 때에는 신안군 안좌읍 공소, 19대 주임
모리시(Morrissey, 牟) 신부 때에는 안좌 대리 공소, 20대 주임 브라질(Brazil, 진) 신부 때에는 도초면 도락 공소가 각각
설립되었다. 흑산도 본당 재임 시절에 이미 도초 외남 공소를 설립하기도 한 브라질 신부는, 산정동 본당에 부임한 뒤에도 신축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1966년 5월 29일에 현재의 성당(166평)과 사제관(45평)을 완공하고, ‘대천사 성 미카엘’을 주보로 하여 헨리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
![]() 한편 24대 주임
이재흥(李載興, 힐라리오) 신부는 1978년 10월 27일에 한국 전쟁 때 희생된 광주 지목 브렌난(Brennan, 安) 몬시뇰과 본당 신부였던
쿠삭 신부, 오브라이언 신부의 순교비를 성모상 옆에 건립하여 이들을 추모하였다. 이어 25대 주임 박영웅(朴英雄, 가브리엘) 신부는 1984년
1월 1일자로 신안군의 안좌 공소를 용당동 본당으로 이관하였고, 26대 주임 김성용(金成鏞, 프란치스코) 신부는 1989년 11월 18일에
양로원을 개원하였다. 1986년 10월 19일에는 본당의 ‘매괴의 모후’ 꾸리아가 꼬미시움으로 승격되었고, 1988년 4월 5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기념비 축성식이 본당에서 거행되었다. 또 28대 주임 김양회(金良會, 요한 보스코) 신부가 부임한 뒤인 1994년에는 산정동
본당 100주년 기념 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그 사업의 일환으로 1996년 11월 15일에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기공식을 가졌으며,
1년 6개월 동안의 공사 기간을 거쳐 전시관이 포함된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431평 규모의 기념관을 완공하고 1998년 5월 23일
윤공희(尹恭熙, 빅토리노) 대주교 집전으로 축성식을 거행했다. [출처 : 차기진, 한국가톨릭대사전
제6권] ![]() 한편 광주대교구는 대주그룹의 후원과 목포시의 지원을 받아 이곳에 세계적인 규모의 가톨릭 성지를 조성하기 위해 2010년 3월 23일 성 미카엘 기념 대성당 건립 기공식을 가졌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고, 2012년 10월 9일 목포가톨릭 성지 조성사업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전반적인 사업 방향 설정을 위해 노력하였다. 광주대교구는 목포시와 손잡고 한국 최초의 레지오 마리애 도입지인 산정동 성당과 성 골롬반 병원으로도 쓰였던 구 교구청을 포괄하는 ‘가톨릭목포 성지’를 조성하기로 하고, 2016년 6월 16일자 공문을 통해 가톨릭목포 성지 조성사업에 대한 신자들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후원을 당부하였다. ![]() 가톨릭목포 성지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발상지이자 광주대교구 첫 본당인 산정동 성당 인근 전남 목포시 산정동 90-1 일대 약 2만 9000㎡에 조성되는 순례지이다. 성 미카엘 대성당(700석 규모) 건립, 옛 교구청(등록문화재 제513호) 건물 복원,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건립 등을 추진 중이다. ‘성 미카엘’은 1953년 레지오 마리애가 국내에 처음 도입된 산정동 본당의 주보성인이고, 옛 교구청은 처음 레지오 마리애 회합이 열린 장소이다. 2016년 4월 1단계 사업의 핵심인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건립이 시작되어 2017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레지오 기념관에는 성지를 찾는 신자들의 교육과 전시를 위한 공간과 피정을 위한 숙박시설을 갖추게 된다.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활동을 전시하고 선배 단원들이 남긴 흔적을 확인하는 장소로도 활용될 계획이다. 1단계 사업이 끝나면 2단계로 성 미카엘 대성당 건립을 추진하게 된다. 성 미카엘 대성당은 1897년 5월 8일 광주대교구 최초로 설립된 목포 산정동 본당의 성당과 사제관이 있던 자리에 건립될 예정이다. [출처 :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편집(최종수정 2016년 12월 30일)] ![]() ※ 신앙 선조들과 함께하는 광주대교구 도보 성지순례길 |
산정동 성당은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으로
1897년 5월 8일 수류 본당으로부터 분리 · 설립되었습니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온 교우들이 노령산맥을 따라 새로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며 전남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1872년 나주 무학당에서 순교의 역사를 쓰면서도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1896년까지 전남 지역은 본당
하나 없이 수류 본당에 속한 공소들만 있었지만, 1897년 뮈텔 주교가 전라도 지역을 순방하면서 나바위 본당과 목포 본당의 신설을
결정했습니다. 목포 본당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데예 신부는 1899년 아담한 연와제 성당을 완공했고, 1911년에 대구교구가 설정된 후 부임한 샤르즈뵈프 신부는 산정동 97번지(구 성 골롬반 병원 구역)에 새 성당을 건축해 1913년 12월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교황청 포교성성은 1933년에 전남과 제주 지역의 사목을 골롬반 외방선교회에 위임했습니다. 1945년 5월 일본군 사령부로 징발된 성당을 광복과 함께 되찾았지만 6.25 전쟁으로 다시 인민군 막사로 징발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고, 본당 주임 쿠삭 신부와 보좌 오브라이언 신부가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1950년 8월경 대전에서 피살되었습니다. 목포 수복 후 부임한 모란 신부는 1953년 한국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했고, 1966년 브라질 신부가 새 본당 부지에 현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해 봉헌식을 가졌으며, 1978년 이재흥 신부는 6.25 전쟁 때 순교한 브렌난 몬시뇰과 본당 신부들의 순교비를 성모상 옆에 건립했습니다. 1988년 김성용 신부는 레지오 마리애 한국 도입 기념비를 세웠고, 김양회 신부는 본당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건립해 1998년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이렇듯 산정동 성당은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이자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처음 도입된 곳이며, 6.25 때 순교한 세 성직자의 순교기념비가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광주대교구는 산정동 성당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고 바로 옆 성 골롬반 병원으로도 사용되었던 옛 교구청 건물의 등록문화재 지정 등을 계기로 목포시와 손잡고 이 일대에 ‘가톨릭목포 성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2016년 봄 1단계 사업으로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건립과 구 교구청 건물에 대한 복원사업을 시작해 옛 모습을 되살렸습니다. 레지오 기념관은 2017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며, 1단계 사업이 끝나면 2단계 사업으로 성 미카엘 대성당이 건립될 예정입니다. |
미사시간 | |||
미사구분 | 요일 | 시간 | 기타사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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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미사 | 월 | 06:30 | |
화 | 19:00 | ||
수 | 10:00 | ||
목 | 09:30 | ||
금 | 19:00 | ||
토 | 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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