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신평 성당
관리자
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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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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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 성당의 관할 구역인 원머리(당진군 신평면 한정리)는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병인박해(1866년) 당시 이미 상당히 큰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에 둑을 쌓기 시작한 곳이라는
뜻에서 나온 언머리가 변형된 것으로 주로 염전과 논농사를 주로 하며 살던 박씨, 양씨, 조씨, 문씨 등이 신앙을 받아들여 복음을 전파함으로써
이미 병인박해 때 상당히 큰 교우촌으로 성장하였다.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의 아우 박 요셉은 1920년대에 형의 순교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다. “마르코는 모친의 뜻을 따라 착실히 수계하면서 모친과 함께 동네 교우들과 연락하고 지냈다.” 신부님이 오시어 성사를 받으려하면 부친이
금하는 고로 이를 마음속으로 꺼리더니 무진년에 수원 포교에게 체포되어 잡혀 갈 때 그는 부모에게 하직하며 위로하되 ‘거기 가서 죽으면 육정의
박절함이 없을까 만은 주 명대로 위주하여 죽는 것이 구령에 편한 일이라, 부디 염려마시고 훗날을 조심하십시오.’라고 한 다음 사촌 형인 박태진
마티아와 함께 수원옥에 갇혔다.
모진 고문을 당할 때 박태진 마티아가 이를 못 이겨 배교하려 하자 박선진 마르코는
“천주를 배반하고 영벌을 받으려 하느냐?”고 형을 깨우쳤고, 이에 박태진 마티아는 배교한 것을 뉘우치고 옥에 갇힌 지 15일 후에 같이
순교하였는데, 죽은 후 외교인의 도움으로 시신을 찾아 이곳 원머리 박씨 집안 땅에 안장하였다. 이때 박선진 마르코의 나이는 33세였고 박태진
마티아의 나이는 52세였다. 그 후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묘는 1989년 4월 4일 신평 성당 구내로 옮겨 모시고 현양비를
세웠다.
신평 성당은 2000년에 새 성당을 건축하면서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묘를
재정비하였고, 2009년 대전교구 성지위원회의 결정과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의 허가를 얻어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그 해 11월
3일 본래 두 순교자가 묻혔던 원머리로 유해를 다시 옮겨 모셨다. 그리고 현양비도 수정하여 다시 세우고 묘역 또한 재정비하였다. 아울러 20여
년간 두 순교자가 모셔져 있던 신평 성당 자리에 기념비를 세워 두 분의 믿음과 순교정신을 기리고 있다. [출처 : 신평 성당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1년 11월
7일)]
신평 성당 내에는 1989년부터
2009년까지 11월까지 신평 원머리(한정리) 출신 순교자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의 묘소가 있었습니다. 2009년 순교자 현양과 원머리
성지 개발을 위해 두 순교자의 유해를 본래의 자리인 원머리로 재이장했습니다. 현재 신평 성당 내에 두 순교자의 묘소가 있던 자리에는 순교자
기념비를 세워 두 분의 정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한 2000년에 새로 건립된 성당 또한 곳곳에서 순교자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건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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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 19:00 | ||
수 | 10:00 | ||
목 | 19:00 | 매월 첫 목요일 성시간, 성체강복 | |
금 | 19:00 | ||
토 | 18:00 | 학생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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