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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문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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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6-09-20관련성지: 포청옥서울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남경문은 20세 때 교우 처녀 허 바르바라와 혼인하였는데, 큰 병에 걸려 대세를 받고 회복된 뒤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었다가 배교하여 석방되고 나서는 첩까지 거느리고 3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교회로 돌아와 김대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신 다음 과거의 죄를 보속하고자 극기하고 인내하는 생활을 하였으며, 교우들에게 순교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1846년 병오박해가 일어나자 임성룡의 밀고로 체포되었다. 체포될 때 남경문은 금위영(禁衛營)의 군인 신분이었으므로 매우 혹독한 형벌과 유혹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마침내 9월 20일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아 5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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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문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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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6-09-19관련성지: 새남터현석문은 서울 중인 계급의 독실한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가족이 모두 순교자가 되었다. 1839년에 회장으로 임명된 현석문은 박해가 끝난 뒤 순교자들의 기록을 정리한 「기해일기」를 펴내었고, 포졸들에게 쫓기면서도 이름을 바꾸어 가며 각지에 흩어진 교우들을 찾아가 격려하였다. 한편 중국 교회에 밀사를 보내고, 1845년에는 김대건 신부와 함께 상해(上海)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1846년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뒤 김 신부의 집에 남아 있던 여교우들을 새로 마련한 집에 피신시키고 자신도 그 집에 숨어 있다가 7월 11일에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체포된 뒤에도 함께 갇힌 교우들을 위로하고 권면하며 지내다가 마침내 9월 19일 50세의 나이로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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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우 안토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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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1-04-29관련성지: 옥사경기도 광주 구산(龜山)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난 김성우는 성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넓어 모든 이에게 존경을 받았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곧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으로 전교 활동을 펼쳐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세례를 받고 서울로 이사한 뒤 자신의 집에 공소를 만들어 신부들을 도왔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천주교인으로 밀고되었으나 미리 피신하였고, 고향에 남아 있던 두 동생만 체포되었다. 그러나 김성우도 이듬해 1월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고, 감옥에서도 외교인 죄수들에게 전교하여 2명을 신앙의 길로 인도하였다. 옥살이 15개월 만인 1841년 4월 28일 치도곤 60대를 맞고 이튿날 교수형을 받아 47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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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이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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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에서 태어난 최영이는 어려서 아버지 최창흡과 어머니 손소벽의 모범을 따라 입교한 뒤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다가 20세 때 조신철과 혼인하여 아들 하나를 두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친정에 피신해 있다가 6월에 친정 식구들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어린 아들을 생각하는 모정으로 배교할까 두려워 아들을 친척에게 맡겼다. 남편이 중국에서 가져온 교회 서적과 성물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두 차례, 태장 260대의 혹형을 당하였지만 조금도 굴복하지 않았고,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을 이겨 냈다. 1840년 2월 1일 홍영주, 이문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2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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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우 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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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복사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경천’으로도 불렸던 이문우는 경기도 이천(利川)의 양반 교우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5세 부모를 여의고 서울의 오 바르바라라는 여교우에게 입양되어 성장하였다. 독신으로 살아가고자 하였으나 양모의 뜻에 순종하여 혼인하였고, 몇 년 뒤 아내와 두 자녀가 세상을 떠나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에게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에 힘쓰고 범 주교를 도와 지방을 순회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로 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자 사방에서 희사를 모아 옥에 갇힌 교우들을 돕고 박해 상황을 주교와 신부들에게 보고하던 중 11월 11일에 체포되었다. (성인은 교우들을 데리고 새남터 형장으로 가서 성 앵베르 주교, 성 모방 신부, 성 샤스탕 신부의 시신을 모셔다 노고산에 안장하였고, 그 후 성인도 체포되었다.) 이 때에 “주님께서 특별한 은총으로 나를 부르시니 어찌 그분의 부르심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며 오히려 당황하는 포졸들을 재촉하여 포청으로 갔다. 포청과 형조에서 모진 고문을 참아 낸 끝에 1840년 2월 1일 당고개에서 2명의 교우와 함께 31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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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주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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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2-01관련성지: 당고개명문 양반의 후예로 서울에서 태어난 홍영주는 충청도 내포(內浦) 지방의 여사울에서 자랐다. 대대로 이어온 신앙을 이어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형 홍병주(洪秉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으로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서양 신부들이 체포된 뒤 9월 말에 이르러 홍영주는 형과 함께 서양 신부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죄로 체포되었다. 1840년 2월 1일, 하루 먼저 순교한 형의 뒤를 따라 2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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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이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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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에서 태어난 권진이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어머니 한영이와 함께 입교하였다. 13세경 혼인하였으나 남편이 너무 가난하여 남편의 친척인 정하상(丁夏祥)의 집에서 살았다. 1833년 중국인 유방제(劉方濟) 신부가 입국한 뒤부터 신부의 시중을 들었는데, 유 신부가 조선을 떠나게 되자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난 해 7월 17일, 같이 살던 한영이, 이경이와 함께 체포되었다. 옥살이 중 한 차례 도망쳤던 죄로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21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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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덕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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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동정 순교자인 이인덕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 해 6월 어머니 조 바르바라, 언니 이영덕(李榮德)과 함께 체포되었다. 이듬해 1월 31일 당고개에서 5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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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이 아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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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동정녀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동정 순교자인 이경이는 태중 교우로 태어났다. 혼기에 이르러 어떤 내시에게 속아 혼인하였으나 곧 집으로 돌아왔으며, 범 라우렌시오(앵베르) 주교는 그 혼인을 무효화시켰다. 그 뒤 아버지를 여의고 생계가 막연해지자, 어머니를 시골에 사는 외삼촌에게 부탁하고 상경하여 한영이(韓榮伊), 권진이(權珍伊) 모녀의 집에서 살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 7월 17일 한영이, 권진이 모녀와 함께 체포되었는데, 밀고자 김순성의 간교로 한영이만 포청에 갇히고 이경이는 권진이와 사관청(仕官廳)에 갇히게 되었다. 사관청에서 한 포졸이 권진이를 납치하려 하자 이경이는 권진이와 함께 탈출하였다. 그러나 곧 체포되었고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27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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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소벽 막달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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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부인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의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손소벽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하고 또 어머니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외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17세 때 최창흡(崔昌洽)과 혼인하였으며, 1821년 전국에 콜레라가 퍼지자 남편과 함께 대세를 받고 성체를 모시고부터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6월, 손소벽은 가족과 함께 체포되었는데, 사위 조신철(趙信喆)이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의 출처 때문에 포청에서 주리 세 차례, 태장 260대를 맞는 혹형을 당하였으며, 형조에서도 세 차례의 형문(刑問)을 당하였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39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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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병주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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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홍병주는 1801년 신유박해로 할아버지 홍낙민(洪樂敏)이 순교하자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 서산으로 이사하여 그 곳에서 자랐다. 조상부터 지켜 온 신앙을 물려받아 독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며, 동생 홍영주(洪永周)와 함께 충청도 내포 지방의 회장이 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9월말 동생과 함께 체포되어 포청에서 몇 차례의 고문을 당한 뒤 형조로 이송되었는데, 친척인 형조판서는 인정상 직접 신문하지 않고 하관(下官)에게 모든 수단을 다 써서 홍병주, 영주 형제를 배교시키라고 명령하였다. 이에 홍병주는 가장 지독한 형벌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끝까지 버티어 냈고 결국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참수형을 받아 42세의 나이로 동생보다 하루 먼저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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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원 아우구스티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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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1관련성지: 당고개서울 중인 집안에서 태어난 박종원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매우 궁핍하게 살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범(앵베르) 라우렌시오 주교가 입국한 뒤 회장직을 맡아 보며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교회 일에 헌신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피신해 있던 그는 체포의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교우들과 연락하여 그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는 피신한 지 8개월 만인 10월 26일에 체포되었고, 이튿날 그의 아내 고순이(高順伊)도 체포되어 같은 옥에 갇히게 되었다. 박종원은 포청에서 아내와 함께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를 준비하였고 또 아내와 함께 혹형과 고문을 견디어 냈다. 1840년 1월 31일 5명의 교우와 함께 당고개에서 48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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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협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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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군인순교일: 1840-01-30관련성지: 옥사독실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허협은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그 해 8월에 체포되어 포청에서 매우 혹독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다. 처음엔 잘 참다가 형벌을 이겨 내지 못하고 배교의 뜻을 밝혔으나 곧바로 배교를 취소하였다. 형리가 배교 취소의 표시로 인분 한 사발을 마시라고 하자 아무 거리낌 없이 인분 한 사발을 다 마심으로써 자신의 배교 취소를 증명해 보였다. 그 뒤 허협은 여러 달 동안 포청옥에서 치도곤 130대 이상을 맞으며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지켜 내고 1840년 1월 30일 포청에서 옥사하여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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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경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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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23관련성지: 옥사충청도 정산(定山)의 부유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난 정화경은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 생활을 하였고, 장성해서는 더욱 자유로운 신앙 생활을 하고자 고향을 떠나 수원 근처로 이사해 살았다. 이 곳에서 회장을 맡아 보며 자기 집을 공소로 내놓았고 또 서울을 왕래하며 힘 자라는 데까지 교회 일을 도왔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정화경은 매일같이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순교의 마음을 북돋아 주었고, 박해를 피해 내려온 범 라우렌시오 주교에게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해 8월 주교를 찾고 있던 밀고자 김순성(金順性, 일명 여상)에게 속아 주교의 은신처를 알려 주었다. 서양 신부를 잡으려던 김순성 일당은 정화경을 이용하여 신부들을 체포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의 계략을 눈치챈 정화경은 도망하여 신부를 찾아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고 고해성사를 보았다. 9월에 체포된 정화경은 혹형과 고문을 이겨 내고 이듬해 1월 23일 33세의 나이로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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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극가 스테파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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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신분: 회장순교일: 1840-01-30관련성지: 옥사민극가는 인천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족이 모두 외교인이었으나 어머니가 사망한 뒤 아버지가 중년에 이르렀을 때 온 가족이 함께 입교하였다. 그는 20세 때 아내를 잃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재혼하여 딸 하나를 두었으나 6, 7년 뒤 재혼한 아내와 딸마저 잃게 되었다. 그리하여 민극가는 집을 나와 서울 경기 지역을 전전하며 교리 서적을 팔아 생활하였다. 또 어디서나 외교인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키고 또 자선 사업에도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회장에 임명되었다. 1839년 기해박해로 주교와 신부들이 체포되자 서울과 지방의 교우들을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회장의 직무를 열심히 이행하던 중, 그 해 12월 서울 근교에서 체포되었다. 포청에서 온갖 수단으로 배교를 강요당하였으나 민극가는 모든 위협과 유혹을 물리쳤다. 또 옥에서 배교하였거나 마음이 약해진 교우들에게 신앙을 권면함으로써 배교자 중 여럿이 다시 신앙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옥 생활에서도 회장의 본분을 다하던 민극가는 1840년 1월 30일 포청에서 교수형을 받고 53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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