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이(루갈다), 1782 한양, 참수, 전라도 전주 180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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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이(루갈다), 1782 한양, 참수, 전라도 전주 1802.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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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이순이 루갈다 지위 (신분, 직업) : 동정 부부 양반
출생연도 : 1782년 출생지 : 한양 순교일 : 1802. 1. 31
연령 : 20세 순교형식 : 참수 순교지 : 전라도 전주

 

이순이 루갈다 (1782~18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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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이순이(李順伊) 루갈다는 1782년 한양의 유명한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였다. 1801년에 순교한 이경도(가롤로)와 1827년에 순교한 이경언(바오로)은 그녀와 남매간이고, 1801년에 순교한 유중철(요한)은 그녀의 남편이다.


루갈다의 부친 이윤하(마태오)는 당대의 학자 이익의 외손으로, 그의 학문을 이어오고 있었다. 또 처남인 권철신(암브로시오)과 권일신(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이승훈(베드로) 등과 어울리다가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직후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러한 분위기 안에서 루갈다의 모친도 자연스럽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자신이 배운 교리를 어린 그녀에게 가르쳐 주었다. 뿐만 아니라 루갈다는 일찍부터 어머니에게서 글도 배웠다.


1793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루갈다는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교리를 실천해 나가면서 오로지 영혼을 구하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그리고 1795년에는 주문모(야고보) 신부로부터 첫 영성체를 하였다. 이를 위해 그녀는 나흘 동안을 집안에 들어앉아 영성체를 받기 위한 교리를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루갈다는 오로지 성체를 보존하고 덕행을 쌓는 데만 마음을 쏟았다. 그리고 천상 배필을 위해 동정을 지키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그러나 조선 사회 안에서는 처녀가 혼인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15세가 되던 1797년 어느 날, 루갈다는 어머니에게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해 왔다는 사실을 고백하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는 매우 놀랐지만 딸의 선택을 허락해 주었고, 주 신부와 이 문제에 대해 의논하였다. 그때 신부는 동정 생활을 하기로 결심한 전주 유중철이 머리에 떠올랐으며, 이에 즉시 사람을 보내 둘의 혼인을 주선하였다.


1797년 가을, 루갈다는 남편의 고향 전주 초남(현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으로 가서 남편과 함께 시부모님 앞에서 동정 서약을 하고 오누이처럼 일생을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이후로는 남편 요한이 동정 서약을 어기려고 할 때마다 기도와 묵상으로 이를 극복하도록 도와주었다.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한 지 얼마 안되어 루갈다가 살던 초남에도 포졸들이 들이닥쳤다. 이때 그들은 루갈다의 시아버지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을 가장 먼저 체포하여 한양으로 압송하였고, 이어 그녀의 남편 유중철도 체포하여 전주로 끌고 갔다.


이순이 루갈다는 그해 9월 중순경에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전주로 끌려간 그녀는 함께 갇혀 있는 가족들을 위로하며 순교의 길로 나가자고 권면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루갈다가 옥중에서 언니들에게 보낸 서한에 들어 있다.

“우리 다섯 사람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천주를 위해 순교하자고 언약하고, 철석같이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렇게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한 결과 우리의 원의가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자연히 온갖 후회와 근심 걱정이 잊혀졌습니다. 날이 갈수록 천주의 은혜와 은총은 쌓이고, 우리 마음에는 신락(神樂)이 더해지며, 아무 걱정도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 후 전주 관장은 루갈다와 그녀의 친척에 대한 판결을 조정에 요청하였고, 조정에서는 즉시 이를 담당할 관리를 전주로 파견하였다. 그 결과 루갈다는 유배형을 받고 함경도로 떠나게 되었다. 이때 그녀가 친척들을 대표하여 ‘법에 따라 처형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소용이 없었다.


루갈다가 친척들과 함께 유배지로 떠난 지 얼마 안되어 전주에서 파견된 포졸들이 쫓아와 그들을 다시 체포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 순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다시 감사 앞으로 끌려나간 루갈다는 사형 선고를 받은 다음 매를 맞고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갈다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으며, 4~5일 뒤에는 형벌로 인한 상처가 말끔하게 나았다고 한다.


감사는 결국 조정에 사형 판결을 요청하였고, 얼마 뒤에는 임금의 윤허가 내려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루갈다는 1802년 1월 31일(음력 1801년 12월 28일) 친척들과 함께 숲정이라고 불리는 전주 형장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20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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