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연(야고보) 1751년 전라도 진산 출생, 참수, 1791년12월8일 전라도 전주에서 순교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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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4 17:01
3 권상연 야고보
지위 (신분,
직업) :
출생연도 : 1751년
출생지 : 전라도 진산
순교일 : 1791. 12.
8
연령 : 40세
순교형식 : 참수
순교지 : 전라도 전주
권상연 야고보
(1751~1791년)
권상연(權尙然) 야고보는 1751년 진산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래 그는 학문에 정진해 오고 있었으나, 고종 사촌 윤지충(바오로)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운 뒤에는 기존의
학문을 버리고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입교하였다. 그때가 1787년 무렵이었다.
이후 야고보는 교리를 실천하는 데만
열중하였다. 그러다가 1790년 북경의 구베아 주교가 조선 교회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과 함께 이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또 이듬해 여름 고모(즉 윤지충의 어머니)가 사망한 뒤에는 천주교의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신주와 같은 나뭇조각을 공경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무익한 일이며, 이를 금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어기기보다는 차라리 형벌과 죽음을
택하겠다.”
야고보와 윤지충이 신주를 불사르고 전통
예절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는 소문은 친척을 통해 널리 퍼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러한 소문은 조정에까지 전해져 그곳을 온통
소란스럽게 하였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그들을 체포해 오라’는 명령이 진산 군수에게 내려졌다.
체포령 소식을 들은 야고보는 충청도
한산으로, 윤지충은 충청도 광천으로 각각 피신하였다. 그러자 진산 군수는 그들 대신 윤지충의 숙부를 감금하였고, 이러한 사실을 전해들은 그들은
즉시 숨어 있던 곳에서 나와 진산 관아에 자수하였다. 그때가 1791년 10월 중순경이었다.
진산 군수는 먼저 그들을 달래면서 천주교
신앙을 버리도록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천주교가 진리임을 역설하면서 ‘절대로 신앙만은 버릴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여러 차례의 설득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태도가 조금도 변하지 않자, 진산 군수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그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전주 감영으로
이송토록 하였다.
전주 감영에 도착한 야고보와 윤지충은
이튿날부터 문초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을 굳게 지키면서 교회나 교우들에게 해가 되는 말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천주를 큰 부모로 삼았으니, 천주의 명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그분을 흠숭하는 뜻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전주 감사는 할 수 없이 그들로부터 최후
진술을 받아 조정에 보고하였다. 이내 조정은 다시 한 번 소란스러워졌고, ‘권상연과 윤지충을 처형해야 한다는’ 소리가 드높게 되었다. 결국
임금은 이러한 대신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들의 처형을 윤허하였다. 당시 전라 감사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유혈이 낭자하면서도 신음 소리 한 마디 없었습니다. 그들은 천주의 가르침이 지엄하다고 하면서 임금이나
부모의 명은 어길지언정 천주를 배반할 수는 없다고 하였으며, 칼날 아래 죽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사형
판결문이 전주에 도착하자 감사는 즉시 야고보와 윤지충을 옥에서 끌어내 형장으로 정해진 남문 밖으로 끌고 갔다. 야고보는 이때 초죽음이 된
상태였으면서도 이따금씩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형장에 이르자, 윤지충이 먼저 칼날을
받았다. 이어 야고보도 ‘예수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면서 칼날을 받았으니, 때는 1791년 12월 8일(음력 11월 13일)로, 당시
그의 나이는 40세였다.
야고보와 윤지충의 친척들은 9일 만에 관장의
허락을 얻어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 그들은 그 시신이 조금도 썩은 흔적이 없고, 형구에 묻은 피가 방금 전에 흘린 것처럼
선명한 것을 보고는 매우 놀랐다. 이후 교우들은 여러 장의 손수건을 순교자의 피에 적셨으며, 그중 몇 조각을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당시 죽어가던 사람들이 이 손수건을 만지고 나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