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선(具漢善) 타대오는 경상도 함안
미나리골(현 경남 함안군 대산면 평림리)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그는 글을 많이 읽었는데, 천주교에 입교하기 전에는
어떤 요술에 빠진 적도 있었다.
어느 날 타대오는 우연히 천주교 신자를 만나
교리를 듣게 되었다. 그리고는 즉시 이를 받아들여 그로부터 교리를 배운 뒤, 성 다블뤼(A. Daveluy, 安敦伊) 주교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런 다음 약 10년 동안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다가 리델(F. Ridel, 李福明) 신부의 복사로 선택되어 거제도 전교에 동행한 적도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한 뒤, 타대오는
리델 신부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지내던 중 진주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그곳 관아로 압송되었다. 이윽고 관장 앞으로 끌려나간 그는 갖가지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결코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 또 옥에 갇혀서는 주요 교리를 설명한 글을 적어 관장의 부인에게 전하였다.
타대오의 글을 읽은 그 부인은 관장에게 그를
석방해 주도록 요청하였고, 이 말을 들은 관장은 화가 나서 구한선 타대오를 옥에서 끌어내도록 하여 혹독하게 매질을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대오는 ‘아프다’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이에 관장이 화가 나서 ‘제대로 매질을 하지 못한다’고 형리들을 꾸짖자, 형리들은 ‘제대로
매질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더 때리면 그가 죽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관장이 이번에는 타대오를 향해 “어찌하여
‘아프다’는 소리 하나 내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늙으신 어머니가 문밖에 있을 터인데, 만일 신음 소리를 내면 어머니가
이를 듣고 기절하실 것이므로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또 관장이 “그러면 어찌하여 천주교를 신봉하였느냐?”고 묻자, 타대오는 “부모에게
효도를 하라고 가르치므로 천주교를 신봉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처럼 모진 형벌을 당한 뒤에 타대오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 형벌로 인해 7일 만에 선종하였으니, 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다. 순교한 뒤 그의 이마에는
‘품’(品)자 모양의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가족들이 고향 인근에 안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