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안드레아), 충청도 면천, 참수, 경상도 대구 181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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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한(안드레아), 충청도 면천, 참수, 경상도 대구 1816.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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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김종한 안드레아 지위 (신분, 직업) : 평신도 지도자 양반
출생연도 : 년 출생지 : 충청도 면천 순교일 : 1816. 12. 19
연령 : 세 순교형식 : 참수 순교지 : 경상도 대구

 

김종한 안드레아 ( ?~18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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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 사이에서 ‘계원’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김종한(金宗漢) 안드레아는 충청도 면천의 솔뫼(현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에서 태어났다. 족보에는 그의 이름이 ‘한현’(漢鉉)으로 나온다. 1814년에 순교한 김진후(비오)의 아들로, 성 김 데레사의 아버지가 되며, 성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작은 할아버지가 된다.


김종한 안드레아는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지 몇 년 후 맏형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이에 앞서 그의 맏형은 ‘내포의 사도’라고 불리던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으로부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 이를 가족들에게 전해 주었다. 한편 안드레아의 부친 김진후 비오는 처음에 입교를 거부하였으나, 계속되는 자식들의 권유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는 아주 열심한 신자가 되었다.


솔뫼의 김씨 집안은 이후 박해 때마다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하였다. 특히 안드레아의 부친 김진후 비오는 체포와 석방, 형벌과 유배를 번갈아 당하다가 1814년에 해미에서 옥사로 순교하였다. 그 동안 안드레아의 신앙은 오히려 굳건해져서 언제든지 시련을 이겨낼 덕행을 갖추게 되었다.


부친 비오가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안드레아의 형제들은 안전한 신앙 생활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안드레아도 가족과 함께 홍주를 거쳐 경상도 영양의 우련밭(현 경북 봉화군 재산면 갈산리)으로 가서 오랫동안 숨어살았다.


안드레아는 교리를 실천하는 데 아주 열심이었다. 끊임없는 기도 생활과 이웃을 위한 애긍, 신심을 함양하기 위한 극기 행위는 거의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낮에는 천주교 서적을 필사하여 교우들에게 나누어주었고, 밤에는 신자들을 자신의 집에 모아놓고 가르쳤다. 또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노력하여 많은 사람들을 입교시켰다.


1815년의 을해박해가 일어난 뒤, 김종한 안드레아는 영양에서 체포되어 안동으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은 뒤 대구로 이송되었다. 그가 대구 감영 앞에 이르렀을 때, 마침 김윤덕(아가타 막달레나)이 일시 마음이 약해져 석방되어 나가고 있었다. 이것을 본 그는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그녀를 열성적으로 권면하였고, 이에 감화되어 그녀는 다시 관장 앞으로 나아가 신앙을 증거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안드레아가 신앙을 증거할 차례였다.


관장은 그의 마음을 돌려보려고 형벌을 가하면서 배교를 강권하였으나, 그의 신앙은 여러 차례의 형벌에도 불구하고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조용하면서도 꿋꿋하게 천주교가 진리임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감사는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김종한은 마음 깊이 천주교를 좋아하여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면서도 천주교 서적을 가지고 다니면서 익혀왔다.”고 조정에 보고하였다.


조정에서 사형 판결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안드레아는 옥중에서 2통의 편지를 형에게 보내고, 교우들에게도 1통의 편지를 보냈다. 그 중에서 형에게 보낸 편지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저는 순교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며, 감히 이 마지막 은혜를 바라기까지 합니다. 제가 만일 이 훌륭한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이후에는 어떻게 삼구(三仇)에 대적해 나가겠습니까?……만약에 제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그것을 영영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천주님의 은총을 바라고, 다음으로는 여러 교우들의 기도를 믿습니다.”

안드레아가 옥에 갇혀 있은 지 1년 6개월 정도가 되어서야 임금은 사형을 윤허하였다. 그러자 대구 감사는 즉시 천주교 신자들을 옥에서 끌어내 처형하도록 하였다. 이때 안드레아가 지도층 신자로 지목되어 제일 먼저 칼을 받고 순교하였으니, 그때는 1816년 12월 19일(음력 11월 1일)이었다. 순교 후 그의 시신은 형장 인근에 매장되었다가 이듬해 3월 2일 친척과 교우들에 의해 그 유해가 거두어져 적당한 곳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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