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 순교자의 피가 만든 베트남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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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 순교자의 피가 만든 베트남 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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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지키고 고난 이겨내라”… 1798년 라방 성모 발현

[특별기획 -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순교자의 피가 만든 베트남 교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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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방 성모 성지에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기념하는 큰 성당이 세워졌지만 베트남 전쟁을 겪으며 모두 파괴됐다. 현재는 성당의 종탑만이 쓸쓸하게 남아있다.




베트남은 신흥 경제 국가답게 첫인상부터 활기가 느껴졌다. 공항에서부터 도심까지 쭉 이어지는 광고판과 오토바이 대열,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관광객까지…. 베트남의 힘이 느껴졌다. 

베트남 교회도 국가의 성장과 함께 활발한 복음화에 나서고 있다. 개혁개방 정책 이후 베트남이 종교 자유를 점차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베트남 교회의 신자 증가율은 지난 몇 년간 빠르게 증가해 왔다. 신자 수는 2016년 기준 670만여 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신자 비율은 7.4% 정도다. 3개 대교구를 포함해 26개 교구와 사제 5600명, 수도자 5만 5000여 명이 베트남 교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필리핀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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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방 성모 성지에 건립되고 있는 새 성당 전경. 베트남 교회는 2011년부터 폐허가 된 라방 성모 성지에 새 성당을 건축하고 있다.



베트남 교회의 역사

찬란한 발전을 이룬 베트남 교회지만 그 과정은 험난했다. 베트남 교회의 출발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간헐적으로 이뤄지던 선교 활동은 1615년 예수회의 진출과 함께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이 시기에 베트남에서 사목활동을 했던 예수회 알렉산드르 로즈 신부는 베트남어를 알파벳으로 표기하는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꾸옥 응으(quc ng)’라고 불리는 이 표기법은 지금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또 1659년에는 베트남 지역에 두 개의 대목구가 설립됐고, 1668년 첫 번째 베트남인 사제를 배출했다.

그러나 베트남 교회는 18세기 이후 200여 년에 걸쳐 오랜 박해를 받게 된다. 박해의 주원인은 우리나라와 같은 제사 문제였다. 중국 영향으로 조상을 모시는 유교 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 순교한 신자는 적게는 13만 명, 많게는 30만 명이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들 순교자 가운데 117위를 성인품에 올렸다. 

박해가 끝난 후에도 베트남 교회는 순탄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식민 지배에 이어 20여 년에 걸친 오랜 전쟁을 거쳐야 했다. 또 베트남을 통일한 공산 정권은 가톨릭교회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응우옌 반 투안 추기경은 공산 정권에 의해 무려 9년 동안 연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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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8년 라방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는 당시 베트남 사람들과 같은 옷차림을 하고 나타난 것으로 전해진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를 신비하게 여겨 종교를 불문하고 라방 성모를 신성한 존재로 받들어 기리고 있다.



박해받는 신자를 위로한 라방 성모

베트남 교회는 오랜 박해에도 끝까지 신앙을 지켜냈다. 수많은 이가 피를 흘린 가운데서도, 신앙을 독려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라방 성모 성지가 그 예다. 라방은 베트남 후에시에서 차로 2시간가량 걸리는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성모 성지가 있는 곳이다. 

라방 성모의 이야기는 18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회에 대한 박해가 극심할 때였다. 많은 신자가 박해를 피해 산속 깊은 곳으로 몸을 숨겼다. 라방 또한 신자들의 은신처 중 하나였다. 1798년 이 지역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저녁기도를 하고 있을 때, 긴 망토를 두르고 아기를 품에 안은 여인이 나타난다.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신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 신앙을 지키고 고난을 이겨내라고 격려한다. 

이 발현 사건 이후 수많은 신자가 라방을 찾아오게 된다. 베트남 교회는 박해가 끝난 20세기 초 라방 성모를 수호성인으로 선포한다. 1928년 큰 성당을 세웠고, 1959년 국가 성지로 지정된다. 그러나 뒤이어 터진 전쟁으로 라방에 있었던 성당은 모두 파괴됐고, 2011년부터 새 성당을 짓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라방 성모 발현지를 베트남에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고 있다. 지금도 많은 이가 이곳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승려들이나 불교 신자들이 와서 기도하기도 한다. 

라방 성모 성지 담당 팜 녹 하이 신부는 “성모님께서 발현했을 때 인근 절의 스님이 세례를 받고 개종했을 정도로 성모 발현은 신성한 일로 여겨졌다”며 “지금도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5만여 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설명했다.

후에대교구장 응구옌 찌 린 대주교는 “라방의 성모님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의미 깊은 메시지를 전해주셨고 지금도 많은 이들이 성모님을 어머니처럼 가깝게 여긴다”며 “라방 성모 성지는 베트남 신자뿐 아니라 많은 외국 신자들도 찾는 국제 순례지로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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