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연길 5000km 대장정 개산둔→대랍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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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Martyrs Shrine

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연길 5000km 대장정<2> 개산둔→대랍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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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연길 5000km 대장정<2> 개산둔→대랍자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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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길교구 삼원봉,대랍자본당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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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1~2㎞ 남짓 떨어져 있는 삼원봉성당터와 대랍자성당터, 그리고 두 마을 전경.
사진 왼쪽 아래마을이 삼원봉본당이 있던 터이고, 오른쪽 윗마을이 대랍자본당이 위치해 있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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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렬의 첫 선교지 호천포는 현재 개산둔진 회경촌으로, 마을 주민이 거의 다 조선족이다. 그
래서인지 농사거리를 매만지는 주민들 손길이나 곁에 쌓아둔 땔감 등이 친숙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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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네딕도회 고진석 수사신부(왼쪽부터)와 송대석 수사가 삼원봉본당터에서 영암동공소 신자 박정수씨에게 삼원봉성당 진입구 및 석축 유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른쪽이 1990년대 들어 세운 용정본당 관할 영암동공소다.
 
   간도 복음화는 '호천포(湖泉浦, 후첸푸)'에서 '용정(龍井, 룽징)'으로 가는 길에서 비롯한다. 간도로 떠난 조선 이주민들이 용정으로 가는 길은 사도 바오로의 1차 전도여행 여정(사도 13-14장)에 견줄 수 있다. 그 길은 간도 전역으로 뻗어나가 공동체를 이루고 복음화 기틀을 굳히는 계기가 된다. 그 길목 부처골(佛洞)에 1898년 간도교회 첫 공소 '대교동(大敎洞, 따쵸우둥)공소'가 세워졌고, 1909년 첫 본당 삼원봉(三元峰, 싼웬펑)본당과 용정(훗날 용정하시, 龍井下市, 룽징싸쓰)본당이 동시에 설립된다. 이번호에서는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첫 선교지 호천포와 첫 본당 삼원봉(영암촌)본당, 그리고 삼원봉에서 이전한 대랍자(大拉子, 달라즈)본당을 돌아본다.


   #간도 복음화의 요람 '호천포'

   함북 종성에서 두만강을 건너면, 용정시 개산둔(開山屯, 카이산툰)이다. 둔(屯)은 군 주둔지라는 뜻이니, 일테면 국경마을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분위기가 삼엄하지 않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한 북측 위장초소만 아니라면, 한적한 시골이다. 하지만 강폭이 3~4m에 불과해 굶주린 탈북난민들이 식량을 구하고자 드나들어 경계가 강화됐다.

 140여 년 전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1860~70년 '대흉년'에 조선 농민들은 두만강 모래톱을 개간하고, 이를 간토(墾土), 혹은 간도(墾島)라고 불렀다. 이 이름이 간도(間島)라는 지명으로 굳어져 이 땅에 '사이섬 표지석'이 세워지기도 했지만, 곧 훼손돼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양대언(토마스 데 아퀴노) 연변과학기술대 교수에 따르면, '간도의 사도' 김영렬(세례자 요한, ?~1931)이 첫 선교를 시작한 호천포는 개산둔진에 있다. 또 현지 주민들은 호천포가 개산둔진에서 3~4㎞ 가량 떨어진 '회경촌 1대(隊)'라고 입을 모은다. 지금도 '호천개(개는 개울의 사투리)'로 불리는 이 동네는 김영렬과 같은 성씨인 김해김씨 집성촌이었다. 당시 원산본당 주임 브레(A. Bret) 신부도 1898년 4월 12일자 서한에서 "이곳을 관할하던 관청은 호천포 이웃 개산둔에 있었고, 개산둔은 길림장군 휘하 혼춘 부도통(副都統)이 다스렸다"고 기록,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호천포는 교우촌이 아니었다. 브레 신부도 당시 호천포에는 교우들이 4가구 밖에 없었다고 전한다. 김영렬은 친지들을 중심으로 30여 명에게 교리를 가르쳤고, 이 중 12명이 1897년 원산본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들이 바로 '북관(北關, 북간도) 12종도'로, 이들은 간도 각지로 퍼져 나가 공동체를 만들고 간도교회 초석이 됐다.

 회경촌에 김영렬의 선교 숨결이 남아 있지는 않다. 다만 1999년 당시 서울대교구 시흥동본당 주임 김승훈(마티아,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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