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 붓다의 나라 태국, 그 안의 가톨릭교회(2)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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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 붓다의 나라 태국, 그 안의 가톨릭교회(2)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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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교회 첫 복자이자 순교 사제… ‘태국의 김대건 신부’

[창간 31주년 특별기획 / 아시아 교회 복음화 길을 따라서] 붓다의 나라 태국, 그 안의 가톨릭교회(2)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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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기념 성당의 전경. 육각지붕에 가운데 치솟은 첨탑에는 킷밤룽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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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북부 치앙마이의 한 성당 구내에 세워진 킷밤룽 신부 동상. 태국 교회에서 킷밤룽 신부는 교회의 가장 큰 어르신으로 모셔진다.




▨태국의 순교 사제,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4월 중순의 태국은 70여 년 만의 국왕 대관식을 앞둔 설렘으로 가득했다. 거리에는 새로 즉위하는 국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곳곳에 대관식을 축하하는 문구들이 새겨져 있었다. 새 국왕의 초상화가 없는 곳은 불상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국왕과 불교의 나라다운 풍경이었다. 

수도 방콕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나콘빠톰(Nakhon Pathom)으로 가는 길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리에는 수십 개의 불상과 새 국왕의 초상화만 보일 뿐 십자가 하나 보기 힘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신앙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기적이 아닐까 싶었다.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Nicholas Bunkerd Kitbamrung, 1895~1944)는 그 ‘기적’을 실천한 첫 번째 태국인 사제다.

태국 교회의 첫 복자이자 태국의 순교자 중 유일한 본토인 사제인 킷밤룽 신부는 우리나라의 김대건 성인과 비슷한 위상을 지닌 분이다. 그는 1926년 1월 사제품을 받고 15년간 태국 각지에서 복음을 선포했다. 그러던 중 1941년 태국과 프랑스가 국경선 결정을 두고 전쟁을 벌인다. 프랑스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태국 교회는 ‘프랑스의 첩자’라는 의심을 받았고 많은 신부가 해외로 추방되거나 감옥에 갇힌다. 킷밤룽 신부도 이때 당국에 체포돼 교도소에 수용됐다. 그가 갇힌 이유는 다소 황당했다. 정해진 시간마다 종을 울리며 프랑스의 승리를 기원했다는 것이다. 이후 간첩죄로 15년 금고형을 선고받은 그는 3년이 지난 1944년 1월 감옥에서 병사한다. 수감생활 동안 그는 여러 차례 개종을 강요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또 수감생활 중에도 재소자 68명에게 세례를 주는 등 끝까지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3월 5일 그를 시복했다. 또 태국 교회는 킷밤룽 신부가 순교한 날인 1월 12일을 그의 기념일로 해마다 미사를 봉헌하고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또 해마다 그를 본받고 현양하기 위해 1만여 명의 순례자들이 킷밤롱 신부가 묻혀 있는 성당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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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신부 성당 내부. 제대 바로 뒤에 킷밤룽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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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앙마이 주교좌성당인 성심성당 내부에 모셔진 킷밤룽 신부의 유해. 그의 유해는 태국은 물론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 등 동남아 각지의 성당으로 보내졌다.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기념 성당

복자 킷밤룽 신부가 묻혀 있는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기념 성당’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1시간여 떨어진 나콘빠톰에 자리하고 있다. 나콘빠톰은 매연과 경적 소리로 가득한 방콕과 달리 군데군데 널찍한 논이 들어선 한적한 도시다. 이런 곳에 성당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우려와 달리 킷밤룽 신부 기념 성당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육각 지붕과 높이 치솟은 첨탑은 킷밤룽 신부가 태국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킷밤룽 신부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 밀랍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밀랍상 밑에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킷밤룽 신부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킷밤룽 신부의 유해는 순교지인 방꽝(Bang Kwang) 교도소 근처의 방 프랙(Bang praek) 불교사원에 방치됐다. 그의 유해가 절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태국 교회는 유해를 이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전쟁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태국 교회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태국 교회는 끝까지 킷밤룽 신부의 유해 이장을 요청했고 3개월이 지난 1944년 3월 방콕 주교좌성당인 성모 승천 대성당으로 킷밤룽 신부의 유해를 이장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왓송콘(Watsongkhon)의 일곱 순교 복자와는 달리 그에게 전구를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왓송콘의 순교자들이 태국 사람들에게 일종의 ‘가정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지녔다면, 킷밤룽 신부는 태국 교회 자체를 지키는 수호성인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만큼 그는 태국 교회에서 가장 큰 어른으로 모셔진다. 그의 상징성을 보여주듯 태국 성당에서는 그의 동상과 유해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순교 복자 니콜라스 신부 성당 보좌인 쿤 쿵(Khun Kung) 신부는 “니콜라스 신부님은 태국 교회의 순교 정신을 상징하는 사제”라며 존경을 표했다.

태국 교회는 최근에 그의 시성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타레농상대교구장 참니언 산티숙니란 대주교는 “태국 교회에는 한국 교회만큼은 아니지만 여러 순교자가 있고 그 가운데 킷밤룽 신부가 가장 큰 어른으로 모셔진다”며 “그분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기 위해 태국 교회는 그분의 시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콘빠톰(태국)=장현민 기자 memo@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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