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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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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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교구 설정 80돌 특별기획] 연길 5000㎞ 대장정(12) 연길교구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간도교회,그 생명력 꽃피워 영원하라!


 

김영렬 감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로 신앙기초 다져
연길교구 1945년 당시 19개 본당 지린교구에 병합
내전과 문화혁명에도 살아남은 간도교회 이제 새 복음화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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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의 로마'로 불리는 팔도구공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2003년 8월 5일에 이미 팔도구 교우촌 건설 100주년 기념축제'를 벌일 만큼 유서깊은 공동체로, 간도교회의 주추다.


 "그래서 심는 사람도 거두는 사람도 함께 기뻐하게 될 것이다"(요한 4,36ㄴ).

 그곳에는 겨레가 있었다. 한 핏줄과 한 말글, 한 문화, 한 전통으로 살아온 배달 겨레였다. 그곳엔 또 한 핏줄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신앙을 고백하는 한민족 천주교 공동체였다.

   그래서 간도 복음화 현장을 돌아보는 여정은 힘에 부쳤지만 행복했다. 총 12회로 '연길 5000㎞ 대장정'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며 연길교구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돌아본다.


   #'간도 사도' 김영렬, 복음화 로드를 개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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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네딕도회 오딜리아연합회 선교사가 그린 선교 지도. 2009년에 한국 진출 100주년을 맞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100주년사를 편찬하던 중 독일 오딜리아연합회에서 발굴했다. 정확한 제작시기나 작성자 등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자무쓰ㆍ푸진본당이 빠져있는 것으로 미뤄 1930년대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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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도 사도' 김영렬. 사진제공=한국교회사연구소

   연재를 하며 꼭 조명하고 싶었던 인물은 김영렬(세례자 요한, ?~1931)이다. '간도의 사도'가 된 그가 박해를 딛고 공동체를 이루기까지 과정이 한국교회에 공개된 적이 거의 없어서다.

 김영렬은 한국교회 첫 세례자 이승훈(베드로, 1756~1901)과 특히 닮았다. 자발적으로 신앙을 받아들여 교회 주추를 놓은 게 너무도 비슷하다. 함북 온성 태생인 그는 원래 동학 교도인 김이기(?~1895)의 제자였다.

 참된 진리 탐구에 목말랐던 그는 스승이 1895년 3월 동학농민전쟁으로 체포돼 조선 회령 관부에서 처형당하자 이듬해 4월 평소 스승이 권하던 서학을 공부하고자 서울로 향하던 중 원산에서 발길을 멈춘다. 그 때 만난 인물이 베르모렐(J. Vermorel) 신부다. 밤을 새워 진리에 대해 베르모렐 신부와 토론한 김영렬은 입교를 결심하고 3주간 교리교육을 거쳐 그해 5월 17일 세례를 받고 간도교회 사상 첫 세례자가 된다.

 곧바로 간도에 돌아온 김영렬은 고향 호천포(湖泉浦, 후첸푸, 현 회경촌)에서 용정(龍井, 룽징)으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잡은 조선인마을에 전교한다. 이로써 1898년 간도 첫 공소 대교동(大敎洞, 따쵸우둥)공소가 세워지고, 1909년 첫 본당 삼원봉(三元峰, 싼웬펑)ㆍ용정(龍井, 룽징)본당이 설정된다. 호천포에서 용정에 이르는 길을 '복음화 경로(로드)'로 만든 게 그였다. 그가 전교한 박연삼(루카), 김진오(바오로) 등은 훗날 '간도 12사도'로 불린다.

 1928년 7월 19일 지목구 설정 당시 신자 1만1764명에 8개 본당이던 연길교구는 1945년까지 11개 본당을 추가 설정, 신자 1만8000여 명에 19개 본당(1951년 「오딜리아연합회 편람」 기준)에 이른다. 한민족 성직자도 김충무ㆍ한윤승ㆍ신윤철ㆍ이태준ㆍ김성환ㆍ한도준ㆍ허창덕ㆍ박태산 신부와 김남수(전 수원교구장) 주교 등 9명이나 배출했다.

 연길대목구(1937년 4월 13일 승격)는 1946년 4월 중국에 교계제도가 설정되면서 교구로 승격되고 봉천(奉天, 현재의 瀋陽)관구 관할로 넘어간다. 그렇지만 연길교구장 직은 연길 선교사였던 독일 뮌슈터슈바르작수도원 악커만(R. Ackermann, 1950. 11~1954. 4) 신부,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초대 원장 비테를리(T. Bitterli, 1954. 4~1980. 10) 몬시뇰 등이 2대, 3대 교구장 서리를 맡았다. 하지만 연길교구는 현재 지린교구에 병합돼 있다.

 연길교구 소속 마지막 사제로 1969년 부산교구에 입적한 박태산 신부는 "덕원에서 1943년 팔도구로 이주했다가 1945년에 소신학교에 입학하며 2년 만에 덕원에 돌아왔기에 팔도구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면서도, 어쩌면 평생 사목지가 됐을지 모를 연길교구에 대한 향수를 전했다.


   #간도교회, '신앙의 증거'로 서다

 간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지 112주년. 교구 설정으로 치면 80주년을 맞은 연길교구는 한마디로 '신앙의 증거'다. 눈부시다고 할 수밖에 없는 연길교구의 영광은 그러나 구원의 은총을 잉태하는 '어둔 밤'의 시기로 접어든다. 1945년 구 소련군 침략과 1946~48년 중국 인민해방군 진주 및 국공내전, 1948~52년 외국인 성직자 추방, 1966~76년 문화혁명 등은 간도교회를 초토화했다.

 그럼에도 간도교회는 살아남았다. 중국 당국이 북녘에서처럼 성직자를 처형하지 않고 노동개조형에 처하면서 '3자교회'를 표방했던 게 이유였다. 중국교회는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하고(自養), 복음은 중국인 스스로 전파하며(自傳), 자율적으로 다스린다(自治)는 3자교회 원칙은 1957년 8월 중국 천주교 애국회 창립 이후 중국 교회정책의 근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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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베네딕도회 수도자들과 함께 한 간도교회 조선족 사제단.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리광필 신부, 송대석 수사, 윤덕헌ㆍ염창일ㆍ염창원 신부, 고진석 수사신부, 엄태준ㆍ조광택 신부.

 현재 간도교회는 조선족 출신 사제들이 사목을 도맡고 있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지린(吉林)교구 소속 중국 사제들이 있었지만, 1979년 중국의 개혁ㆍ개방 이후 10년 만인 1989년 10월 엄태준(현 혼춘본당 주임) 신부가 조선족 출신 가운데 처음으로 사제품을 받은 이후 염창원(연길본당 주임)ㆍ윤덕헌(안도ㆍ돈화본당 주임)ㆍ조광택(화룡ㆍ용정본당 주임) 신부와 리광필(연길본당 보좌, 왕청공소 담당) 신부 등 4명이 잇따라 사제품을 받게되면서 이제 연변 사목은 5명의 조선족 사제들에게 넘어왔다.

 교세는 연길(延吉, 옌지)ㆍ용정(龍井, 룽징)ㆍ화룡(和龍, 허룽)ㆍ혼춘(琿春, 훈춘)ㆍ안도(安圖, 안투)ㆍ돈화(敦化, 둔화) 본당 등 6개 본당에 신자가 700명에서 3000명 선(중국인 포함)이다. 정확한 신자 수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잇따른 박해로 신자들이 만에 하나 박해 빌미가 될까봐 이름을 교적에 올리길 꺼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교회는 최근 들어 성모신심 단체 등을 결성하고 신자재교육과 함께 영성을 심화하는 데 힘을 쏟으면서 사제 및 수도 성소 발굴을 통해 복음화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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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고진석 수사신부가 옛 연길교구 관련 사진을 노트북을 통해 보여주자 연길본당 신자들이 지켜보며 일일이 촬영시기나 사진에 대한 증언을 해주고 있다.

 학교 문턱에도 가본 적이 없다는 연길본당 김춘수(마크리나, 79) 할머니의 고백이 눈물겹다.

 "성경을 쓰고는 싶은데 글을 모르니 어떡해요. 공책을 사다 놓고 무작정 그렸지요(?). 하루에 한 장씩 그렸어요. 다음에는 두 장, 그 다음에는 세 장…, 그렇게 한글을 깨우쳤죠. 요즘은 아침에 기도를 드리고 2시간 쓰고, 점심 뒤에 5시간 쓰고, 저녁 식사 후에 기도를 바치고 1시간 쓰지요. 종일 성경만 필사합니다. 성경에서 하느님 역사를 알았어요. 이제는 1분 1초도 하느님 없이는 못살아요."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전대식 기자 jfaco@pbc.co.kr


   #중국 내 조선족 사제인 염창원,창일 형제 신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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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차 연길본당에 들른 동생 염창일(왼쪽) 신부가 형 염창원 신부의 손을 맞잡고 밝게 웃고 있다.

   중국 내 조선족 사제 8명 중 유일하게 형제 사제인 염창원(필립보)ㆍ창일(요셉) 신부를 만났다. 형은 지린(吉林)성 지린교구에서 조선족을, 동생은 산시(陝西省)성 한중(漢中)교구서 한족을 각각 사목하는 특이한 경우다. 헤이룽장(黑龍江)성 자무쓰(佳木斯)시 태생인 이들 형제 신부의 세례와 신학 공부, 사제수품은 현재 조선족 교회의 어려움을 압축한다.

 공무원이던 부친 염성천씨가 1974년 타계하자 어머니 정천긍(우슬라)씨와 함께 무단쟝(牧丹江)으로 이주한 형제(4남 2녀 중 셋째와 넷째)는 1990년, 1991년에 각각 세례를 받았다. 두부 사업 차 연길을 찾았던 염창원 신부가 우연찮게 연길성당에 들렀다가 먼저 입교했고, 염창일 신부는 1년 뒤 형의 권유로 세례를 받았다.

 사업을 하던 중 뒤늦게 성소를 느낀 염창원 신부는 1992년 지린신학교에 입학, 7년 만인 1999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염창일 신부는 1993년 지린신학교에 입학했다가 탕산(唐山)신학교를 거쳐 쓰좌쟝(石家莊)신학교을 졸업하고 12년 만인 200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돌아보면 모든 게 하느님 은총이었지요. 신학교에 다닐 땐 책 살 돈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위생 환경도 열악했지만 기쁘게 살았습니다. 나중엔 경제적 어려움보다 더 큰 내적 갈등을 겪었지만 사제가 돼 늘 기쁘게 삽니다."

 특히 염창원 신부는 "어머니 병환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신학교를 나오려던 즈음 중국에 온 서울대교구 반포본당 순례단을 안내하고 받은 사례금으로 어머니 치료비와 수업료를 충당하고 신학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며 "지금도 반포본당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말하고 감사를 전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간도애서 만난 우리 교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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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이룽장성 무단쟝시로 향하는 길목, 발해의 옛 수도 닝안 냇가에서 빨래를 하는 조선족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을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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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산둔 공소 신자 최용숙(데레사) 할머니가 어렸을 적에 자신이 무척이나 따랐던 슈레플 신부가 1989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뇌졸중으로 투병하다가 선종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나서 송대석 수사를 끌어안고 눈물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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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가 차 형이 주임으로 있는 연길본당에 들른 염창일 신부가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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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미사 중 기도를 하는 연길본당 어린이들. 열심한 기도가 마치 연길교구의 미래를 밝혀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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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대언(토마스 데 아퀴노) 연변과학기술대 사무처장 겸 역사학 교수가 간도교회 전반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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