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46. 충주 교회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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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46. 충주 교회의 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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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직능·성별 역할 분담 효율적으로 이루어진 ‘충주 교회’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6. 충주 교회의 저력

2021.04.11발행 [1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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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국가도서관 소장 「성교공과」 아침 기도 오배례(五拜禮) 부분. 신유박해 때 충주 지역 신자로 순교한 이부춘은 최후 진술에서 십계와 오배를 쉬지 않고 강습했다고 자백하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이기연 집안의 신앙

이기연 형제가 선두에서 이끈 충주 교회는 교회 창립기부터 다져온 저력이 있었다. 충주 교회는 당시 전국의 거점 지역 중에서 가장 기반이 단단하고 균형이 잡힌 차진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충주 교회의 출발은 이기연 이최연 형제가 권일신 집안과 사돈을 맺고, 그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충주에 살던 권철신의 처남 남필용(南必容, ?~1801)과 권철신의 사위 이재섭(李載燮) 등이 충주 교회의 출범을 함께 도왔다. 이기연의 사위인 권상익(權相益)도 충주에 근거지를 마련해 가세했다.

「사학징의」 작배질(作配秩)에는 1801년 당시 신유박해로 유배 간 23인의 명단이 나온다. 이중 이기연 집안만을 따로 추려내면, 이기연의 아들 이중덕(李仲德)과 연풍(延)에 살던 둘째 형 이혜연의 아들 이항덕(李恒德), 셋째 형 이제연의 아들 이종덕(李宗德: 족보명은 種德)이 더 보인다. 명단에 들지 않은 이최연 부자도 포함해야 마땅하다. 여기에 여종 덕춘(德春)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집안 여성들까지 포함한다면 온 집안이 천주교 신자였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충주 이기연의 집안에서 주목되는 또 한 사람은 이관기(李寬基, 1771~1831)이다. 그는 이기연의 큰형인 이세연의 장남 이문덕(李聞德, 1754~1827)의 맏아들로, 삼척공파 대종중의 종손인 이행덕(李行德)에게 입계되어 종가의 종손이 되었다. 그도 신유박해 때 사학의 혐의로 장흥에 귀양 갔다.

「사학징의」에 실린 1801년 10월 11일 자 사헌부의 이첩 공문에 “서부(西部)에 사는 유학(幼學) 이관기(李寬基)는 흉적 이기연(李箕延)의 종손(從孫)인데, 사학을 전습하여 이미 지목된 바가 있다. 그의 아비 이문덕(李聞德)이 미혹되어 믿고 높이 받들어 세상이 지목하자 그의 늙은 조부(李世延)가 이를 금하였지만 안 되니, 밤낮으로 호곡하였다는 이야기가 경향 간에 널리 알려져 있다”라고 썼다. 이로 보아 이문덕 부자도 천주교 신자였다.

이렇게 보면, 이기연의 부친 이지계(李之啓, 1703~1778)의 다섯 아들 중 장남 이세연과 일찍 죽은 차남 이혜연(1732~1775), 3남 이제연(1736~1767)을 제외하고는, 이기연 이최연 형제 및 5형제의 자식들 대부분이 천주교에 입교한 상태였고, 이들 집안을 중심으로 충주 교회가 터전을 닦아 나간 것으로 보아 무리가 없다. 이관기에 대해서는 뒤에 따로 쓰겠다.



충주 교회의 양반층 신자 그룹

충주 교회는 초기부터 이기연 집안 외에 양반층 신자 그룹의 존재가 확인되는 안정적인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1791년 12월 11일 박종악의 「수기」에 이름을 올린 홍장보(洪章輔, 1744~?), 홍계영(洪桂榮, 1746~1826), 최종국(崔宗國, ?~?) 등도 초기부터 이기연 형제와 서학서를 읽으며 함께 공부한 양반층 신자들이었다.

먼저 홍장보와 홍계영 두 사람이 당시 관아에 자수하며 바친 책자는 「성년광익(聖年廣益)」 제1책, 「문답(問答)」 1책, 「칠요(七堯)」 1책, 「석판진본연해(石板眞本演解)」 한글본 1책, 「일과(日課)」 한글본 1책, 「구은축문(九恩祝文)」 1책, 「여미사규정(與彌撒規程)」 한글본 1책, 「천주십계(天主十誡)」 한글본 1책, 「성사문답(聖事問答)」 1책, 「이십오언(二十五言)」 1책, 「점성수경(點聖水經)」 2책, 「만물진원(萬物眞原)」 1책, 「칠극(七克)」 2책, 「성모괴고경(聖母魁告經)」 1책, 「인진주(認眞主)」 1책 등 무려 15종 17책에 달해 눈길을 끈다.

1791년에 지방의 개인이 이 정도의 서학서를 보유했다는 것이 우선 놀랍고, 언해본이 다수 포함된 것은 집안에 여성 신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뜻이다. 특별히 미사 전례와 기도문, 예비 신자 교육에 필요한 서책들이 대부분이어서, 1791년 당시 충주 교회가 이미 첨례와 교리 교육이 대단히 활성화된 상태였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최종국은 「성교일과」 1책, 「천주십계」 한글본 1책을 바쳤고, 이기연은 「이십오언」 1책과 「성세추요」 1책을 더 바쳤다. 기본 교리서 공부에도 충실했음을 알 수 있다.

이중 홍장보는 「수기」에 직위가 참봉으로 나온다. 그는 풍산 홍씨로 충청도의 사학을 이끌던 홍낙민(洪樂敏, 1751~1801)과 한집안이었다. 홍장보는 1790년 선릉참봉을 지냈고, 1795년에 감역(監役), 1799년 아산현감, 1800년 옥천군수를 지낸 인물이었다. 또 같은 집안인 홍계영(洪桂榮, 1746~1826)은 홍낙증(洪樂曾)의 아들로, 족보에는 홍정모(洪鼎謨)란 이름으로 올라 있다. 자는 주빈(周賓), 호는 월도(月島)다. 최종덕은 따로 알려진 사실이 없다.

족보의 기록이나 이후 홍장보의 벼슬 이력으로 볼 때 두 사람은 1791년 서학책을 바치고 배교를 선언한 뒤에 천주교와는 발을 끊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충주 교회는 1785년 출범 당시부터 이기연 형제를 정점에 두고, 남필용, 이재섭, 권상익, 홍장보, 홍계영, 최종국 등 충주 지역 유력 가문의 자제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가운데 서학서를 깊이 연구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에 1775년 홍유한이 순흥으로 이사 가자 그와 좀더 가까운 곳에 살겠다며 1776년 여사울에서 충주로 이주했던 홍낙민 집안도 초창기 교회 형성에 가세했을 것이다. 홍장보, 홍계영이 다 그의 집안인 점에서 그렇다.

이 중 최종국의 경우는 신유박해 당시 그의 아들 최길증(崔吉曾)이 이기연에게 사학을 배운 죄로 언양(彦陽)에 도배(徒配)되었고, 이기연과 종유한 죄로 신천(信川)으로 귀양 간 최종해(崔宗海) 또한 아마도 최종국과 형제간이거나 사촌 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 중 익산(益山)으로 도배된 최조이(崔召史) 또한 최종국 집안의 여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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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2년 민아오스딩 감준 <텬쥬셩교공과>

교회의 허리를 떠받친 이부춘 부자와 여성 지도자 권아기련

신유박해 때 충주 지역 신자로 사형에 처한 사람은 이기연, 이부춘, 이석중, 권아기련 등 네 사람이다. 작배질(作配秩), 즉 유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무려 23명이어서, 전국 지역 단위에서 가장 많은 숫자였다.

이기연과 함께 충주 교회의 허리를 받쳐준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이부춘(李富春, 1734~1801) 이석중(李石中, 1773~1801) 부자였다. 이부춘은 이기연보다 다섯 살 위로, 충주 감영의 아전이었다. 뒤에 비장 노릇도 했다. 그는 이기연에게 사학을 배워 충주 지역 풀뿌리 신앙의 선봉장이 되었다. 「사학징의」 결안초(結案招)의 최후 진술에서 이부춘은 “이기연과 뒤얽혀 사설에 미혹되어 믿었고, 십계(十戒)와 오배(五拜)를 그치지 않고 강습하였습니다. 주일의 모임에 어지러이 함께 참여하면서 먼저 집안에서부터 이웃 마을의 남녀노소에 이르기까지 더러움에 물들게 하지 않음이 없어, 문득 와주(窩主)가 되었습니다. 집안 제사에 참여하지 않아 윤리와 기강을 없애 끊어버렸습니다”라고 자백하고 형장으로 끌려갔다.

위 진술 중 십계와 오배를 쉬지 않고 강습했다는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 두 가지를 신자 교육의 바탕으로 삼았다는 얘긴데, 이중 오배는 다소 낯선 내용이다. 이는 천주교 신자들이 날마다 행하는 조과경(早課經), 즉 아침 기도의 제1양식 중 오배례(五拜禮)를 말한다. 아침마다 다섯 가지를 다짐하며 절을 올리는 의식이다. 첫째는 “천주를 믿어, 일체의 삿되고 망령된 일을 모두 끊어 버리나이다(信天主, 一邪妄之事俱棄絶)”이고, 둘째는 “천주께서 보우하사 나의 모든 죄를 온전히 사하여 주시기를 바라나이다(望天主保佑全赦我諸罪)”이다. 셋째는 “지극히 높고 지극히 선하신 주님을 만유의 위에 사랑하고 공경하나이다(愛敬至尊至善之主于萬有之上)”이고, 넷째는 “한마음으로 제가 지은 죄와 허물을 통회하고, 다시는 감히 천주께 죄를 얻지 않을 것을 다짐하나이다(一心痛悔我之罪過, 定心再不敢得罪于天主)”이며, 다섯째는 “성모께서 천주께 전구하사, 내게 항상되이 마치는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비나이다(懇祈聖母轉求天主, 賜我恒終恩佑)”이다.

여기에 십계와 오배의 각 조목 마다에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들이 제시되었을 것이다. 그 내용과 방식은 최해두의 「자책」에 상세하다. 이는 당시 충주 교회의 신자 교리 교육이 대단히 실천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특별히 여성 신자 그룹에서는 충주 아전 집안 출신 과부 권아기련(權阿只蓮, ?~1801)의 역할이 우뚝했다. 그녀는 이부춘의 처 이조이(李召史)와 이부춘의 사돈댁 황조이(黃召史), 이부춘의 며느리인 이조이(李召史), 정조이(鄭召史)와 함께 충주 교회의 여성 사목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모두 신유박해 때 한몫으로 귀양 가서 뿔뿔이 흩어졌다.

이 같은 면면은 충주 교회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첫째, 이기연을 정점으로, 깊은 교리 지식을 갖춘 양반 지도자층이 중심에 존재했다. 둘째, 이기연, 최종국, 이부춘 등 부자간 또는 며느리로 대를 이은 교우 가정이 여럿 있어 가족 신앙의 모범적 형태를 갖추었다. 셋째, 양민과 신분이 낮은 백성을 이끈 아전 출신 이부춘 부자의 리더십이 있었다. 이들은 십계와 오배례 같은 실천적 신앙 지침을 교리 교육의 근간으로 삼아 포교에 매진하였다. 넷째, 권아기련을 중심으로 여성 조직의 일사불란한 활동 체계가 작동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충주 교회는 신분별, 직능별, 성별 역할 분담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고, 교리 이론뿐 아니라 신앙 활동에 있어서도 대단히 활성화된 안정적인 교회였음이 확인된다. 이들은 똘똘 뭉쳐 하나 된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신유박해의 충격파로 충주 교회의 기간 조직은 한동안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와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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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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