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48. 세례명 퍼즐 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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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21:01
중국음으로 읽어야 원음과 비슷… 어감 좋고 예쁜 글자로 대체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8. 세례명 퍼즐 풀기
2021.04.25발행 [1610호]
▲ 「성년광익」 마이야본 1월 목차. |
▲ 「성년광익」 한글본 목차. |
중국음으로 읽어야 풀리는 퍼즐
중국에서 쓰는 한자 이름은 중국 발음으로 읽어야 원어와 비슷해진다. 중국의 한자 이름이 조선으로 건너와 현지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앞글에 이어 세례명을 특정하지 못한 몇 가지 예들을 마저 살펴보겠다.
먼저 최조이(崔召史)의 세례명 이사발(二四發)은 엘리사벳(Elisabeth)을 가리킨다. 중국어 표기 의살백이(依撒伯爾)를 ‘이사보얼’로 읽는데, 줄여 읽으면 이사발로 들린다. 이사발을 중국음으로 읽을 경우 ‘얼쓰파’가 되어 영 딴말이 되고 만다. 흔히 이사벨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남판서 댁 여종 구월(九月)은 「추안급국안」에 박파투다(朴婆投多)로 나온다. 하지만 파투다가 세례명은 아니다. 성씨 박(朴)에다 파(婆)는 노파의 뜻이니, 세례명은 투다(投多)이다. 투다는 성녀 테오도라(Theodora)로 중국에서는 투다랄(投多辣) 또는 투다납(投多納)으로 쓰고, ‘토우도라’로 읽는다. 역시 앞쪽 두 글자만 따서 축약한 형태다.
성조이(成召史)의 세례명은 마달(馬達)이다. 중국음으로 읽어 ‘마아따’이다. 중국 표기는 마이대(瑪爾大)로 쓰고 ‘마얼따’로 읽는다. 동정 성녀 마르타(Martha)를 가리킨다.
유덕이의 세례명 갈오사(乫於沙)는 알기가 어렵다. 그나마 유사하기로는, 중국어로 기리사제납(基利斯弟納)이라 쓰는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의 첫 세 글자 ‘기리사’에서 유사한 음을 취한 것이 아닐까 추정해 본다.
「추안급국안」 1801년 3월 15일 주문모 공초 중에, 창동 사는 노파로 김오소랄(金吳蘇辣)이란 이름이 나온다. 오소랄은 ‘우스라’로 읽는데, 세례명 우르슬라(Ursula)에 가깝다. 다만 우르슬라 성녀는 「성년광익」에 나오지 않는 이름이다. 「성년광익」에 나오는 세례명으로 가장 근접한 것은 성녀 아셀라(Asella), 중국어 표기는 아슬랄(亞瑟辣), 즉 ‘아스라’이다. 우르슬라가 더 가깝다고 생각되지만 판단을 기다린다.
우아하게 바뀐 성녀들의 이름과 성녀 전기
같은 음의 한자를 쓰더라도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우아한 뜻을 지닌 글자를 끌어다 쓰는, 이른바 아화(雅化) 현상이 특히 여성의 세례명에서 자주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서양 여성의 이름 끝에 자주 나오는 ‘나(na)’와 ‘아’가 중국어에서는 거의 ‘납(納)’과 ‘랄(辣)’ 또는 ‘아(亞)’로 쓰는데, 조선에서는 대부분 ‘라(羅)’나 ‘아(阿)’로 교체되는 특징이 있다.
김순이의 세례명 다슬라(多瑟羅) 또는 다슬아(多瑟阿)는 성녀 타르실라(Tharsilla)에 해당한다. 한자명은 대서랄(大西辣)이니, ‘다시라’로 읽는다. 대서랄을 버리고 같은 발음으로 된 다슬라라는 어감 좋고 예쁜 글자로 대체했다.
여종 윤복점(尹福占)의 세례명 윤아(閏阿)는 성녀 레지나(Regina)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유납(類納)이고 음으로는 ‘레이나’이다. 유납을 ‘유나’로 읽고, 이것을 다시 우리 음운에 맞춰 윤아(閏阿)로 표기한 것이다. 똑같은 원리로 김염이의 세례명 안아(按阿)는 조선식 표기이고, 중국 표기로는 아납(亞納)이다. 둘 다 성녀 안나(Anna)를 나타낸다.
궁녀 문영인의 세례명 비비한아(非非漢阿)는 성녀 비비아나(Bibiana)이고 중국어 표기는 피피아납(彼彼亞納)이다. 정순매는 앞서 ᄲᅡ을이라고 쓴 조혜의와는 달리, 발발아(發發阿) 또는 발발아(發發娥)를 택했다. 조도애의 세례명 안아다시아(安阿多時阿)는 중국명 아납대서아(亞納大西亞)로 성녀 아나스타시아(Anastasia)에 해당한다.
홍순희의 세례명 루시아(樓始阿)는 중국에서는 로제아(路濟亞)로 쓰고 루치아(Lucia)로 읽는다. 윤운혜는 루치아를 루재(樓哉)로 표기했는데, 중국음 ‘루짜이’로 읽지 않고, ‘루치아’를 빠르게 읽는 느낌으로 적은 것이다. 강경복의 세례명 선아(仙娥)도 루재의 경우와 비슷하다. 수산나(Susanna)를 이렇게 썼다. 중국에서는 소살납( 撒納)으로 쓰고 ‘수사나’로 읽는다. 김연이의 세례명 유아납(柳亞納)은 중국 이름 유리아납(儒里亞納)에서 한 글자는 바꾸고 한 글자를 줄였다. 성녀 율리아나(Juliana)를 가리킨다.
이렇듯 발음이 다른 중국 이름을 우리 한자음에 맞게 바꿀 때는 발음이 편안하고 우아한 의미를 담으려고 애썼다. 바꾸는데도 어느 정도 일정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사학징의」 끝에 부록으로 실린 「요화사서소화기(妖畵邪書燒火記)」에 성인 전기에 해당하는 책들이 보인다. 「성녀 간거다」, 「셩녀 더릐ᄉᆞ(聖女 데레사)」, 「셩녀 아기다(聖女 아가다)」, 「셩종도보(聖宗徒譜)」, 「성 안드레아[聖安德肋]」, 「셩녀 아ᄭᅡ다(聖女 아가다)」 등이다.
당시 여성 신자들에게 데레사, 아가다 성녀가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성녀 간거다는 「성년광익」에 없는 낯선 이름인데, 사학 매파로 이름이 높았던 정복혜의 세례명 간지대(干之臺)에 해당한다. 간지대는 성녀 칸디다(Candida)로, 같은 이름의 두 성녀가 있다. 성녀 칸디다에 대해서는 간지대 정복혜를 논의하는 별도의 글에서 따로 살피겠다.
동일인명 이(異) 표기와 추정 오류의 예
같은 이름을 다르게 표기한 예는 여럿이 있다. 세례명 시몬(Simon)은 한자로 서만(西滿)으로 적고 ‘시먼’으로 읽는다. 김계완은 중국 표기를 따라 ‘서만’이라 했고, 황일광은 ‘심연(深淵)’으로 표기했다. 조선식 한자음으로 좋은 뜻을 취해 빌어쓴 것이다. 김계완은 김백심(金百深), 김심원(金深遠) 등의 별칭으로도 불렸다. 백심은 그의 자이고, 심원은 시몬을 조선식으로 고쳐 부른 명칭이다. 안토니오(Antonius)의 중국 표기는 원래 안당(安當)이지만, 홍익만은 안당(安堂)으로 고쳐 적어, 마치 별호처럼 보이게 했다.
홍재영의 세례명은 파라(玻羅), 즉 ‘보로’이다. 파라는 중국어 이름 파라대삭(玻羅大削)의 줄인 표현이니, 프로타시오(Protasius) 성인을 가리킨다. 네 글자 중 앞 두 글자만 취해 별호처럼 썼다. 손경욱의 세례명은 액로대삭(厄老大削)인데 앞쪽의 ‘ㅍ’이 묵음으로 처리되어 ‘으로타시아’로 읽는다. 같은 세례명 프로타시오의 이표기이다.
특이한 이름으로 유항검의 노비였던 전주 출신 낙선(樂善)의 세례명인 강량(姜良)이 있다. 두 글자 중 량(良)은 세례명 레오(Leo)에 해당한다. 순교자 정은(鄭溵)의 후손인 정규량(鄭奎良, 1882~1952) 신부의 세례명이 레오여서, 집안의 돌림자인 규자에 본인의 세례명을 얹어 이름을 지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량의 강(姜)은 아마도 그의 성씨가 아니었을까 싶다. 강낙선 레오가 실제 이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통용되는 세례명이 잘못되어 고쳐야 할 것도 있다. 1801년 2월 13일 공초에서 정약용은 “권파서(權巴西) 형제는 아마도 권철신의 아들 권상문을 가리키는 듯하다”고 진술했다. 「추안급국안」 3월 15일 자 주문모의 공초에서는 권상문에 대해 말하면서 “남대문의 권가는 바로 파서략(巴西略)인데 현재 양근에 있습니다”라고 더 분명하게 짚어 말했다.
한편 달레는 「조선천주교회사」에서 복자 권상문(權相問)의 세례명을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라고 했다. 세바스티아노의 중국어 표기는 파사제앙(巴斯弟)이다. 파서와는 ‘파(巴)’자만 일치한다. 중국어 표기 파서략(巴西略)은 바실리오(Basilius)이지 세바스티아노가 아니다. 권상문의 세례명은 세바스티아노가 아닌 바실리오가 분명하다. 달레의 기록보다 당시 주문모 신부와 정약용의 언급에 따르는 것이 맞다. 수정해야 한다.
달레의 기록에는 이런 종류의 오류가 적지 않다. 황일광의 세례명도 「사학징의」에서 본인의 입으로 심연(深淵) 즉 시몬이라 했는데, 달레는 알렉시오라 적고 있다. 또 윤운혜의 경우 「사학징의」에는 루치아[樓哉]라 했으나 1811년 신미년 백서에는 마르타(瑪爾大)라 했고, 홍낙민의 세례명도 황사영은 백서에서 바오로라고 했지만, 다블뤼 주교의 기록에는 루카로 나온다.
김이우의 알려진 세례명은 바르나바(Barnaba)로, 이 또한 달레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사학징의」에서는 발라소(發羅所)로 표기했다. 바르나바는 중국에서는 파이납백(巴爾納伯)으로 쓰고 ‘빠얼나바’로 읽는다. 정광수의 세례명이기도 하다. 하지만 발라소는 어떻게 읽어도 바르나바로 연결 짓기가 어렵다. 불리사(弗理斯) 또는 불리사(弗利斯), 비리사(斐理斯) 등으로 표기되는 펠릭스(Felix)에 더 가깝다. 「사학징의」에 나오는 윤상득(尹尙得)의 세례명은 불리사(拂利斯)로 썼다. 발라소는 바르나바의 표기가 아니라 팰릭스의 조선식 이표기에 더 가깝다. 재고가 필요하다.
또 「성년광익」에 수록된 성인 성녀의 이름 중에는 다른 사람인데 이름 표기가 같은 예가 아주 많다. 이 경우 의도적으로 글자를 조금 바꿔서 사람을 구분하기도 한다. 이현 안토니오(Antonius)는 안돈(安頓)으로 표기했다. 홍익만은 안당(安堂)이라 하고, 중국에서는 안당(安當)으로 적거나, 안다니(安多尼)로 쓴다. 1월 17일의 주보 성인 안당(安當)은 은수자 안토니오이고, 6월 13일의 성 안다니(安多尼)는 현수자 성 안토니오이다. 베드로의 경우도 사도 베드로는 백다록(伯多祿)으로 적지만, 4월 29일의 주보인 순교 성인 베드로는 백다록(白多祿)으로 달리 표기했다. 앞서 나온 최필제의 세례명은 후자에서 취한 것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