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85) 주문모 신부의 동선과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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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숨은 이야기] (85) 주문모 신부의 동선과 2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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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85) 주문모 신부의 동선과 24시

교우들 집 전전하며 밤에는 성직 수행하고 낮에는 교리서 집필

 

 

-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

 

 

창백한 낯빛에 긴 구레나룻

 

달레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주문모 신부의 도착은 천주교인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위로와 기쁨을 주었으니, 이들은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맞아들였다”고 썼다. 1795년 실포 사건 이후 신부가 조선에 와 있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지면서, 주 신부는 끊임없는 사찰과 체포 시도 속에 노출되어 있었다.

 

달레는 조선 교회가 오직 하나뿐인 목자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고 하면서, “주문모 신부가 이런 비밀에 둘러싸여 있었으니 조선의 전설이 그의 사목활동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우리에게 전하여 주지 않았음을 이상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썼다. 글 속의 ‘조선 전설’은 정약용이 쓴 「조선복음전래사」를 가리킨다.

 

또 “교우들이 주문모 신부를 칭찬하는 것은 한결같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주문모 신부는 일에 지칠 줄을 몰라 먹고 자는 데 필요한 시간을 겨우 낼 지경이었다 한다. 밤에는 성직을 수행하고 낮에는 책을 번역하거나 새로 책을 쓰거나 하였다. 그는 금식을 하고, 극기를 하고 자기 본분에 자기를 온전히 바쳤다”고 적고 있다.

 

주문모 신부의 외모와 인상은 어땠을까? 복자 김연이 율리아나가 포도청에서 한 공초에서 말했다. “신부는 나이가 50 가까이 되고, 구레나룻이 조금 깁니다. 얼굴이 길쭉하고 아래턱은 뾰족하였습니다. 낯빛은 검은 듯하고 눈동자는 붉은 것 같았습니다. 키는 중간쯤 됩니다.” 유덕이는 또 이렇게 진술했다. “교종이란 사람의 용모는 얼굴이 둥글고 조금 길쭉한데 양쪽 광대뼈가 높고 크고, 하관은 뾰족합니다. 낯빛이 창백하고 구레나룻은 조금 길고 희끗희끗합니다. 눈이 크고, 나이는 50세가량 되는 사람입니다.”

 

그는 늑수(勒鬚) 즉 구레나룻이 길었고, 광대뼈는 솟고 턱이 뾰족한 데다 얼굴이 조금 길쭉한 편이었다. 턱수염도 꽤 길었다. 조금 길쭉한 얼굴에 유난히 긴 구레나룻은 홍어린아기연이와 폐궁 나인 강경복, 김달님 등도 한결같이 증언한 바이다. 위 두 사람의 진술에서 한 사람은 신부의 낯빛이 검다고 하고, 한 사람은 창백하다고 했다. 조선에 온 뒤 그는 낮에는 방안에 깊이 숨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햇볕 쬘 일이 아예 없다 보니, 얼굴색이 누렇게 떠서 핏기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주문모 신부는 조선 천주교회 신자들에게 큰 위로와 기쁨을 주는 존재였고, 조선 신자들은 교회에 하나 뿐인 목자를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사진은 어농성지에 있는 주문모 신부 동상.

 

 

신부의 동선과 24시

 

입국 후 주문모 신부가 처음 머문 곳은 계동 최인길의 집이었다. 1785년 1월부터 5월 초까지 4개월 남짓 이곳에서 생활했다. 두 번째 거주지는 강완숙의 창동 집이었다. 그마저도 처음 두어 달 동안은 장작광 뒤 겨우 웅크려 지낼만한 좁은 공간에서 집안 식구들조차 모르게 숨어 지냈다. 밤중이면 불도 없는 칠흑 속에서 그는 무더위와 싸우고 물것들을 견디며 오로지 기도 속에 그 참혹한 시간을 건넜다.

 

그 뒤 강완숙네 안방 뒤쪽 협실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햇빛 볼 시간은 없었다. 밖으로 다닐 수도 없었다. 그는 24시간을 늘 긴장 속에서 살았다. 이 와중에도 신부는 교리서 집필에 힘쓰고 미사 집전에 애를 썼다.

 

1801년 2월 말 폐궁 나인 서경의의 공초는 주문모 신부의 일과를 엿보는데 의미 있는 자료다. 하루는 그녀가 무심코 폐궁 송씨의 방을 여니 한 사람이 화들짝 놀라 일어나 곁방 뒷문으로 나갔다. 괴이하게 여긴 그녀가 누구냐고 묻자, 송씨는 홍필주 집안의 여종이 잠시 숨어 있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2월 20일 밤 2, 3경 무렵 사람의 발자국 소리에 놀란 그녀가 창문을 열고 살펴보았을 때는 웬 남자가 송씨 방의 측간에서 급하게 곁방 문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놀란 그녀가 송씨에게 가서 물으니, 며느리 신씨가 측간에 간 것을 잘못 본 모양이라며 말을 돌렸다.

 

연산 이보현의 집에서 상경한 뒤, 신부의 동선도 궁금하다. 1801년 3월 15일, 의금부의 공초에서 주문모 신부는 최인길의 집을 나와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에, 신부는 연산 이보현의 집에 도피해 몇 달간 머물렀고, 1796년 5월 상경 이후에는 강완숙의 창동 집과 계동 최인철의 집, 창동 김 우르슬라의 집을 하루 또는 이틀, 또는 사나흘씩 머물렀다고 대답했다. 그러다가 상황이 잠잠해지면 다시 강완숙의 집으로 돌아갔다.

 

1798년 충청도 지역의 박해가 일어났을 때는 반 년간 지방으로 도피해 숨었고, 이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1799년에 강완숙이 사동(寺洞)으로 이사했다. 집 확장 문제로 법적인 다툼이 생기자 전동 최인길의 집과 아현 황사영의 집에 번갈아 가며 묵었다. 1799년 겨울, 청주에서 교난이 일었을 때도 이를 피해 다시 몇 개월간 지방을 전전했고, 이때에는 교우의 집에 머물지 않았다.

 

1800년 3월, 강완숙은 사동 집을 되팔고 관훈동으로 이사했다. 이른바 충훈부 후동으로 일컬어진 곳이다. 4월에 충훈부 후동 집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여주에서 교난이 발생했다. 신부는 다시 황사영과 남대문 안 현계흠의 집, 창동 정약종과 벽동 정광수, 광통교 김가, 김종교의 행랑채의 집을 옮겨 다니며 지내야 했다.

 

정리한다. 주문모 신부의 주거는 처음 5개월 남짓 계동 최인길의 집에서 살았고, 이후 1795년 5월에서 연말까지 강완숙의 집에 숨어지내다, 해가 바뀐 뒤 충남 이보현의 집에서 두어 달 숨어지냈다. 5월 상경 이후에는 계속 여러 집을 전전하며 거처를 옮겨 다녔다. 검거 선풍으로 사정이 다급해지면 지방으로 몇 달씩 잠적했고, 이후 1799년 5월 이후로는 외교인의 행랑채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1800년 4월 이후 명도회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신부의 각 구역 순회 활동이 활발해졌다. 이 기간은 정조의 국상(國喪)으로 인한 국가적 애도 기간이어서 일체의 검거 활동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주문모 신부의 6년에 걸친 조선 체류는 그야말로 칼끝 같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낮 동안 그는 꼼짝도 않고 방안에 틀어박혀 지냈고, 그것도 여성의 거주 공간인 안방의 더 깊은 안쪽 협실에 숨어 지냄으로써, 양반 여성의 내실을 조사하지 못하는 조선의 관행을 보호망으로 삼았다.

 

 

주문모 신부의 조선어 구사력

 

조선에 6년간 머물렀음에도 신부의 조선어 구사력은 ‘반아(半啞)’ 즉 반벙어리 수준이었다. 여러 사람의 증언이 한결같다. 서양 신부들이 입국한 지 두어 달 만에 기본적인 언어를 익혀 바로 고해성사를 조선 말로 행한 것과 확실히 대비된다. 폐궁의 나인 강경복은 포도청의 공초에서 “사서를 배우려고 홍문갑의 집에 갔더니 홍문갑의 어미가 한 남자와 함께 같이 앉아서 경문을 가르치는데, 그 소리가 벙어리 같은지라 홍문갑의 어미가 대신해서 가르쳐주었습니다”라고 했다. 김계완도 “1800년 7월에 정약종의 집에 두 차례 갔다가 서양국에서 나온 신부를 만나보고 사학을 강론하였는데, 그 사람은 말이 어눌해서 반벙어리 같았으므로 필담으로 서로 수작하였습니다”고 한 것을 보면 확실히 주 신부의 조선어 습득 능력은 큰 문제가 있었다.

 

나중에 의금부에 자수했을 때도, 신부는 자신이 조선말을 잘하지 못하므로 글로 진술하겠다며 붓과 종이를 요청하기까지 했다. 이에 반해 김건순의 편지를 보고 그 문장력에 감탄한다거나, 유관검 등이 보낸 청원서의 문장이 시원찮다며 직접 손질한 것을 보면 한문 문장력은 몹시 뛰어났던 듯하다. 달레도 주문모 신부가 훌륭한 재질과 한문에 대한 박학한 지식, 비범한 종교 지식과 덕행의 소유자였고, 점잖은 외모와 고상한 태도, 크나큰 친절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고 말한 바 있다.

 

신부가 비록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거처가 일정치 않았지만, 강완숙의 집이 신부에게는 베이스캠프와 같은 곳이었다. 강완숙의 집에서 신부는 강완숙의 보살핌을 받았고, 대외 활동에서는 그녀의 아들 홍필주가 지척에서 수행하며 이른바 수행비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부가 거처를 옮기거나 이동할 때도 그가 곁에서 수발을 들었다.

 

1799년부터 강완숙의 집에서 심부름하며 지낸 여종 정임은 포도청에서 진술한 공초에 묘한 말을 남겼다. “바깥 상전은 작년 섣달에 피를 토하는 증세로 의원을 찾으러 나가서, 이제 석 달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아 간 곳을 알지 못합니다. 안 상전은 조금도 놀라거나 괴이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이 으레 그런 일로 보았습니다.”

 

홍필주가 1800년 12월 이후, 혈증(血症) 즉 폐병을 치료하겠다고 나가서는 석 달째 들어오지 않고 있는데도 강완숙은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해서 이상하게 여겼다는 내용이다. 또 권상문의 여종으로 강완숙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비녀 복점(福占)은 공초에서 “금년(1801) 정월에 들으니, 홍서방은 미친 증세가 나서 거처를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라고 진술했다. 당시 장기간에 걸친 홍필주의 부재를 이리저리 둘러대고 있었던 셈이다.

 

당시 주문모 신부는 정약종과 김가의 집을 옮겨 다니다가 12월에 김종교의 행랑채에 머물렀다가 해가 바뀌어 다시 천주교 검거가 시작되자, 남의 집 행랑채와 북산 등지로 달아나 숨어 지낼 때였다. 아마도 홍필주는 이때 신부를 밀착 수행하며 신변을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었을 것이다. 홍필주 자신도 결안에서 “저는 계모와 더불어 한마음으로 사학에 깊이 빠졌고, 외국인을 기이한 재화와 같게 보아 아비처럼 섬겼다”고 말한 바 있다.

 

마지막에 의금부에 갇혔을 때 가혹한 고문으로 마음이 약해진 홍필주는 천주를 배반하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강완숙이 조사를 받으러 가다가 홍필주와 마주쳤다. 강완숙이 크게 소리쳐 말했다. “필립보야! 네가 어찌 네 머리 위에 예수님이 임하시어 비추고 계심을 못 보고, 스스로 그릇된 길로 가려느냐?” 이 말에 홍필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마침내 기쁘게 순교하였다. 초기 교회에서 홍필주가 감당했던 역할과 비중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1월 30일,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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