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직 현장에서] 거제도 유섬이의 묘
김영숙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한국순교자영성센터)
서울이라 유처자는 거제섬봉 귀양왔네 // 서울성부 연을꿔야 거제섬봉 연알잣네 //아래웃방 시녀들아 연줄삼가 귀경가자
거제시 거제면 내간리 송곡 마을에 사는 90세 할머니가 구성지게 부른 노래 가사다.
18살
꽃다운 나이에 동갑내기 신랑과 혼인했다는 그 할머니는 뒷산 유 처자 묘 주변에서 나물을 뜯으며 시어머니께 배웠다는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친절하게도 노랫말 해석까지 해주셨지만, 그래도 잘 알아들을 수 없기는 매한가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거제 섬으로 귀양 와서 살다간 유 처자를 기리는 노래임은 분명하고, 그 노래를 바로 유 처자 묘를 돌며 불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
유 처자는 2014년 5월 월간 「교회와 역사」를 통해 하성래 박사가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복자 유항검(아우구스티노,
1756~1801)의 둘째 딸 섬이(1793~1863)라는 사실과 평생을 수도자처럼 홀로 살다간 그분의 삶에 대하여 기고하면서
참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해 7월 그분의 묘지를 찾았다는 것을 들었다.
그 감동을 참을 수 없었던 나는 즉시 동창 수녀와 함께 유섬이의 묘역을 찾아 순례하였고, ‘면형강학회’ 회원들 성지순례를 통하여서도 두 차례나 더 순례하였다.
그때마다
그분의 묘지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내내 우리는 얼마나 절절한 기도를 드렸는지 모른다. 신유 풍파 이전 전주 초남이에서 복음적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던 유섬이가 유배살이 동안 한 번도 입에 담을 수 없었던 하느님이라는 말을 웅변으로, 아니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처럼 외치는 듯해서였다.
그래서 우리도 그분과 똑같은 마음으로 가슴이 터지도록 성가를 부르며 유섬이 일가가
걸었던 순교의 길을 묵상했다. 이어 올 들어서는 또다시 지난 1일 ‘수도자 면형강학회’에서 활동하는 수도자들과 함께 찾은 유섬이
묘소 앞에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설립자 방유룡(안드레아) 신부께서 말씀하신 “침묵은 웅변이요, 대월은 사자후라”라고 한 말씀을
노래로 불렀다.
평생을 천주(天主)라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살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는 천주님과 함께하고 있었음을 능히 알고도 남음이 있는 순례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