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숨은 이야기] 4. 다산 정약용과 「칠극」

Pilgrimage News 성지순례 뉴스
홈 > Knowledges > Pilgrimage News
Pilgrimage News

[교회사 숨은 이야기] 4. 다산 정약용과 「칠극」

관리자 0 1260 0

다산, 배교 선언 이후에도 「칠극」의 가르침 계속 되새겨

[정민 교수의 한국 교회사 숨은 이야기] 4. 다산 정약용과 「칠극」

2020.05.31발행 [1566호]

3232235521_YUiHdLqJ_5887b94e2e571e1348faef02ebd62a0991f9c067.jpg
▲ 「다산선생서첩」에 쓴 다산의 친필. 제자에게 주는 훈계의 말을 담았다. (조남학 소장)



▨ 「칠극」을 평생 아껴 읽은 다산

다산 정약용(요한 사도)의 자형 이승훈(베드로)이 동지사 부사로 간 아버지 이동욱을 따라 북경에 갔다가, 1784년 봄에 조선 최초로 세례를 받고 돌아왔다. 그의 수중에 방적아(龐迪我)의 「칠극(七克)」, 필방제(畢方濟)의 「영언여작(靈言勺)」, 탕약망(湯若望)의 「주제군징(主制群徵)」 등의 책이 들려있었다. 다산은 이를 큰 형 정약현의 처남인 이벽(요한 세례자)을 통해 구해 읽고 급격한 마음의 쏠림을 느꼈다.

여러 책 중 다산의 마음을 끈 것은 단연 「칠극」이었다. 「칠극」은 다산의 생애 전반을 함께한 책이었다. 강진 유배 이후에도 「칠극」의 그림자는 다산의 글 곳곳에서 얼비친다. 다산은 제자들에게 증언(贈言) 형식의 훈계어를 참 많이 남겼다. 다산의 제자 치고 스승에게 친필로 쓴 증언첩을 받지 못한 사람이 드물었을 정도였다. 이런 증언첩은 필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실물로 본 것만도 몇십 개가 넘는다.

증언첩에 실린 글은 잠언풍의 토막글이다. 이른바 어록체로 불리는 전통적 글쓰기와 외형상 비슷하지만, 어딘가 달랐다. 예를 들어 제자 윤종문에게 준 증언첩의 한 단락은 이렇다. “맹자는 대체(大體)를 기르는 사람은 대인이 되고, 소체(小體)를 기르는 사람은 소인이 되어 금수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했다.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만 뜻을 두어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쳐, 몸뚱이가 식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사라지는 것은 짐승일 뿐이다. 짐승으로 사는 것을 원한단 말인가?”

해남 사람 천경문에게 준 증언첩에서는 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부지런히 애를 쓰면서 입과 몸뚱이의 욕망만을 섬긴다. 가래 끓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서, 눈빛이 천장만 쳐다보게 될 때 돌이켜 평생 한 가지 말할 만한 사업조차 없고, 죽은 뒤에는 온갖 처량하고 괴로운 일들뿐임을 생각하다가, 몸이 차게 식기도 전에 이름이 이미 스러져 버리는 자는 대체 어떠한 사람이란 말인가?”

확실히 이런 글쓰기는 이전 유학자들의 훈계와는 자못 결이 달랐다. 오랫동안 이 필첩들을 되풀이해 읽다가 어느 날 문득 이 독특한 글쓰기의 연원이 바로 「칠극」이었음을 깨닫고 놀랐다. 그 같은 사실을 결정적으로 확인시켜 준 글이 바로 다산의 「취몽재기(醉夢齋記)」였다.


▨ 「칠극」의 논의를 풀어쓴 「취몽재기」

강진에 귀양 가서 5년쯤 지난 1805년 무렵, 다산은 강진 사람 황인태(黃仁泰)와 가깝게 지냈다. 그는 시도 잘 짓고, 글씨에도 능해 주막집 골방을 가끔 들러 다산의 말벗이 되어준 사람이다. 어느 날 그가 다산을 찾아와 당호를 ‘취몽재’로 지었다면서 글을 청했다. 다산은 그를 위해 「취몽재기(醉夢齋記)」를 써주었다.

글의 앞 대목을 간추리면 이렇다. “취한 사람에게 취했다고 하면 원통해 하며 자기는 취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높은 벼슬에 오르거나 귀한 보물을 얻는 꿈을 꾸는 사람은 깨기 전에는 그것이 꿈인 줄 모른다. 정말 병이 위독한 사람은 자기가 병든 줄을 알지 못한다. 자기가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미친 것이 아니다. 정말 간사함이나 음탕함, 게으름에 빠진 사람은 그것이 나쁜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잘못을 고칠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 취했다고 하고, 꿈꾼다고 하는 사람은 술과 잠에서 깨어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칠극」 권 1 「복오(伏傲)」의 1절 첫머리에 보니, “꿈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미 꿈에서 깬 것이다. 그것이 악임을 인지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선으로 옮겨가기 시작한 상태이다. 병을 처음 치료할 때는 모름지기 병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만약 병을 병으로 인지하지 못해 치료하지 못하면 낫기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나왔다.

또 권 3 「해탐(解貪)」에는 “배불리 먹는 꿈을 꾸는 사람은 그 꿈을 꾸고 있을 때는 능히 그것이 진짜 배부른 것이 아닌 줄을 깨닫게 할 수가 없다. 재물을 좋아하는 자 또한 능히 지금 얻은 재물이 결국 헛된 물건인 줄을 알도록 깨닫게 할 수가 없다. 죽을 때가 이르거나 꿈을 깨고서야 깨닫는다. 애석하구나, 그때는 너무 늦었다”라고 했다.

다산은 「취몽재기」 끝에다 “나는 취하고 꿈꾸는 것에 대해 들은 주장이 있으므로, 마침내 써서 준다(余於醉夢也有說, 遂書以贈之)”고 했는데, 그가 들은 주장이 바로 「칠극」에 나오는 위 두 도막의 글이었다. 배교 선언 이후 강진 유배 기간 중에도 다산은 이렇듯 「칠극」의 가르침을 계속 되새기고 있었다.



▨ 메기와 미꾸라지

다산은 「두 아들에게 써준 가계(示二子家誡)」에서 “재화를 비밀스럽게 감춰두는 것은 남에게 베풀어 주는 것만 함이 없다. 단단히 잡으려 하면 할수록 더욱 미끄럽게 빠져나가니 재화란 것은 메기와 같은 것이다(凡藏貨密, 莫如施舍. 握之彌固, 脫之彌滑, 貨也者鮎魚也)”라고 했다. 「칠극」 권 1에도 “너무 쉽게 흘러가 옮기는 것으로는 귀한 지위 같은 것이 없다. 굳게 붙잡으려 해도 진흙탕의 미꾸라지를 잡는 것과 같아 단단히 잡으면 잡을수록 빨리 놓치고 만다(至易遷流, 莫如貴位. 欲固得之, 如握泥鰍, 握愈固, 失之愈速)”고 했다.

제자 윤종심(尹鍾心)에게 준 증언(贈言)도 「칠극」의 느낌이 짙다. 곡산 부사 시절에 다산은 고을의 토지 문서를 살펴보았다. 100년 사이에 보통 대여섯 번 주인이 바뀌고, 심한 경우 아홉 번까지 바뀌었다. 다산이 말했다. “창기(娼妓)는 남자를 자주 바꾼다. 어찌 내게만 유독 오래 수절하기를 바라겠는가? 토지를 믿는 것은 창기의 정절을 믿는 것과 같다.” 부자는 넓은 밭두렁을 보며 자손을 향해 자랑스레 외친다. ‘만세의 터전을 너희에게 주겠다.’ 하지만 그가 눈을 감기도 전에 그 자식은 여색과 노름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만다.

「칠극(七克)」 2장 「해탐(解貪)」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탐욕스레 재물을 모으는 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를 위해 그토록 애를 씁니까?” “제 자식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의 아들은요?” “자기의 자식을 위하겠죠.” “이렇게 해서 끝없이 되풀이해도 결국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은 없군요.” 이어서 말한다. “세상의 재물은 나의 재물이 아니다. 다만 내 손을 거쳐 가는 것일 뿐이다. 앞서 이미 많은 사람을 거쳐서 이제 내게 온 것이다.(世財非我財, 惟經我手. 先曾已經多人, 乃今及我.)” 세간의 재물은 잠시 맡아 보관하는 것일 뿐, 천 년 만 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삶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식을 위해서는 안 하는 짓이 없고, 못 할 일이 없다.

또 권 5 「색도(塞)」의 한 단락이다. “대저 즐거움은 또한 괴로움의 씨앗이고, 괴로움 또한 즐거움의 씨앗이다. 지금 괴로움을 심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찌 즐거움을 거둘 수가 있겠는가?(夫樂亦苦種, 苦亦樂種. 今不以苦栽, 後安能以樂收?)”

다산은 이를 “즐거움은 비방의 빌미가 되고, 괴로움은 기림의 근원이 된다. 기림이란 나를 괴롭게 함을 통해 생겨나고, 헐뜯음은 나를 즐겁게 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것이다(樂者毀之䤂, 苦者譽之根. 譽由苦我生, 毀由樂我生)”라고 부연했다.

글을 읽다가 문득 기시감(旣視感)이 있어 보면 번번이 「칠극」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구문을 바꾸고, 메기를 미꾸라지로 교체했어도 뜻의 뿌리는 거기서 나왔다. 짧은 지면이라 다 소개할 순 없지만, 다산뿐 아니라 천주교를 믿지 않았던 연암 박지원의 글에도 「칠극」의 체취가 느껴지는 대목이 여럿 보인다. 「칠극」은 이렇듯 18, 19세기 조선에서 신앙 여부를 떠나 생각 이상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했던 책이었다.


3232235521_xFjuNAh2_fa0a7b7ad85c6657668b4259c981a3b102a25435.jpg
정민 베르나르도(한양대 국문학 교수)

0 Comments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61 · 끝) 페르난도 보테로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향해서’

댓글 0 | 조회 1,007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61 · 끝)페르난도보테로의‘제2차바티칸공의회를향해서’20세기교회의변화·쇄신향해담대한발걸음내딛는요한23세-페르난도보테로,‘제2차바티칸공의회를향해서’(1… 더보기
Hot

인기 [세계]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60: 피에트로 카노니카의 베네딕토 15세 교종 기념비

댓글 0 | 조회 1,12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60)피에트로카노니카의‘베네딕토15세교종기념비’국경 · 민족초월해인류애선물한베네딕토15세교종-피에트로카노니카,‘베네딕토15세교종기념비’(1928년),성…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9) 프리드리히 스팀멜의 ‘하느님의 교회를 인도하는 레오 13세’

댓글 0 | 조회 1,144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9)프리드리히스팀멜의‘하느님의교회를인도하는레오13세’‘보편적인권’이라는새로운길로교회를이끌다-프리드리히스팀멜,‘하느님의교회를인도하는레오13세’(1903…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8) 루크 필즈의 ‘노숙자 임시 수용소 입소 허가를 기다리는 지원자들’

댓글 0 | 조회 95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 (58)루크필즈의‘노숙자임시수용소입소허가를기다리는지원자들’‘새로운사태’산업화의그늘,추위와굶주림에시달리는빈민들-루크필즈,‘노숙자임시수용소입소허가를기다리는…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7)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댓글 0 | 조회 1,258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7)밀레의‘이삭줍는여인들’목가적풍경이면에담겨진19세기농민들의팍팍한삶-밀레,‘이삭줍는여인들(LesGlaneuses)’,1857년,오르세미술관,프랑스파리…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6) 무명화가의 삽화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비오 9세 교황’

댓글 0 | 조회 1,04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6)무명화가의삽화‘제1차바티칸공의회를소집한비오9세교황’세속권력은잃고교황의영적권위를얻은공의회-칼벤징거저,「1873년비오9세교황에관해서」에나오는‘1869…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5) 프란체스코 하예즈의 ‘입맞춤’

댓글 0 | 조회 1,41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5)프란체스코하예즈의‘입맞춤’‘작별키스’에담긴숨은뜻은19세기이탈리아통일의지-프란체스코하예즈,‘키스’(1859년),브레라피나코테크소장,이탈리아밀라노.이…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4) 프란체스코 포데스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 선포’

댓글 0 | 조회 1,04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4) 프란체스코포데스티의‘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으신잉태교의선포’비오9세교황‘원죄없이잉태되신성모교리’반포하다-프란체스코포데스티,‘복되신동정마리아의원죄없…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3) 필립 자크 반 브리의 ‘로마 공회장을 방문하는 그레고리오 16세’

댓글 0 | 조회 1,048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3) 필립자크반브리의‘로마공회장을방문하는그레고리오16세’로마황제개선문아래극빈촌을찾은교황-필립자크반브리,‘로마공회장을방문하는그레고리오16세’(1832년…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2)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

댓글 0 | 조회 1,27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2) 자크루이다비드의‘나폴레옹의대관식’대관식에서직접왕관을쓰는나폴레옹,교황은허수아비일뿐-자크루이다비드,‘나폴레옹의대관식’(1805~1807년),프랑스루…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1) 조셉 셀레스틴 프랑수아의 ‘1801년의 종교협약 비유’

댓글 0 | 조회 951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1)조셉셀레스틴프랑수아의‘1801년의종교협약비유’프랑스혁명정부의기세에밀려불리한조약을맺는교황청-조셉셀레스틴프랑수아,‘1801년의종교협약비유(Allego…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50) 펠리체 자니의 ‘연맹 축제를 위해 성 베드로 광장에 차려진 조국의 제단’

댓글 0 | 조회 987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50)펠리체자니의‘연맹축제를위해성베드로광장에차려진조국의제단’로마까지삼켜버린프랑스혁명의불길-펠리체자니,‘연맹축제를위해성베드로광장에차려진조국의제단’,179…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9) 자크 루이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댓글 0 | 조회 1,07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장면](49)자크루이다비드의‘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프랑스혁명의폭풍전야에그린로마영웅사,신고전주의를열다-자크루이다비드,‘호라티우스형제의맹세’(1784년),유화,루브르…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8) 자코모 조볼리의 ‘성 빈센트 드 폴의 설교’

댓글 0 | 조회 1,110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48)자코모조볼리의‘성빈센트드폴의설교’사랑의혁명가,소외된이들에게십자가의빛을비추다-자코모조볼리,‘성빈센트드폴의설교’(1737),룬가라의코르시니궁(Pala… 더보기
Hot

인기 [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7) 바치챠의 ‘예수 이름의 승리’

댓글 0 | 조회 1,072 | 추천 0
[명작으로보는교회사한 장면](47)바치챠의‘예수이름의승리’예수님이비추는찬란한황금빛이모두에게-바치챠,‘예수이름의승리’(1685년),예수성당내중앙본당천장,이탈리아로마.트렌토공의회는여러… 더보기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55 명
  • 오늘 방문자 1,450 명
  • 어제 방문자 1,891 명
  • 최대 방문자 5,379 명
  • 전체 방문자 1,807,479 명
  • 전체 게시물 1,379 개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