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8)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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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8)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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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8) 엘 그레코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

입고 있던 망토 잘라 헐벗은 걸인에게 주는 자선의 손길

 

 

엘 그레코(El Greco), ‘성 마르티노와 걸인’, 1597/1599, 미국 워싱턴 주 National Gallery of Art 소장.

 

 

성체성사와 나눔 실천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은 ‘성체성사’다. 성체성사가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나눔’이다. 로마 제국에 의한 박해 시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도무스 에클레시에’(Domus Ecclesiae, 가정 교회)에 모여, 프라치오 파니스(Fractio Panis, 빵 나눔)로 그리스도교의 생명을 이어갔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교는 태생부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제정하신 ‘성체성사(마지막 만찬)’에 깊이 내재된 ‘나눔’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에서의 생명력을 드러내는 동시에 존재 이유를 상기해 왔다.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날, 주님께서는 만찬을 먼저 하지 않으셨다. 먼저 하신 것은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신 일이다. 순위를 알려주신 것이다. 이에 초대 교회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자선’을 공동체의 존재 이유와 동일시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고립된 어떤 집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보편적인 신앙 집단으로, 수는 적어도 온 인류 안에 흩어져 살고 있고, 그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존재한다고 인식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이 자신을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그것을 통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신앙인의 성소를 완성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이웃 사랑은 윤리적인 덕목을 넘어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생명을 사는 실존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며 가르친 탁월한 주교들이 교회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있었다. 바로 같은 시대에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와 투르의 성 마르티노다.

 

 

엘 그레코

 

이 작품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성 마르티노와 걸인’이다. 1597~1599년 엘 그레코가 스페인 톨레도에 머물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도미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Δομνικο Θεοτοκπουλο)로 스페인에서 40여 년 넘게 활동한 화가며 조각가다. ‘엘 그레코’라는 이름은 ‘그리스 사람’이라는 이탈리아식 표현이다. 그는 비잔틴 회화를 배우다가, 20세 무렵, 포스트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로 건너가 베네치아에서 티치아노, 틴토레토, 조르조네 등 베네치아 학파의 색채의 풍성함을 배우고, 코레조를 통해 명암에 의한 서정적인 분위기를 배웠다. 로마로 가서는 원색적인 느낌의 선명한 색채, 명암에 의한 극적인 대조, 특정 부위를 강조하는 듯한 인체 등 이탈리아 매너리즘 화풍을 배웠는데, 대표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접하며 신체를 조각처럼 묘사하는 법을 배웠다. 베네치아 학파와 미켈란젤로의 특징은 그의 작품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는 1577년 스페인 궁정에서 유능한 화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톨레도로 돌아왔지만, 펠리페 2세의 마음을 얻지는 못하고 톨레도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종교적인 주제의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엘 그레코는 종교개혁으로 힘든 시기에 스페인 가톨릭교회의 옹호자임을 자처하며 반종교개혁의 이념이 반영된 작품을 그렸다. 그것이 ‘자선’ 혹은 ‘선행’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다섯 솔라(sola, ‘오직’이라는 뜻)’로 알려진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하나님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맞서, ‘세례의 물은 지옥의 불을 끄고, 자선은 연옥의 불을 끈다’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가르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1586/1588)과 ‘성 마르티노와 걸인’(1597/1599)은 가톨릭교회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랑과 자선’을 실천한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관심과 그에 대한 기적을 담은 내용이다.

 

 

성 마르티노

 

엘 그레코가 소개하는 성 마르티노(Martinus Turonensis, 316~397)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성인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절에 태어나 테오도시우스 황제 시절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투르의 주교를 지냈기 때문에 흔히 ‘투르의 성 마르티노’로 알려져 있다.

 

그는 헝가리 솜버트헤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로마군 소속 기마 부대 보조군의 고위 장교로 이탈리아 북부 티치눔(오늘날의 파비아)에 주둔하는 바람에 마르티노는 어린 시절을 파비아에서 살았고, 성년이 된 후에는 프랑스에서 살았다.

 

마르티노의 생애에 대해서는 같은 시대에 살았던 술피키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 363?~420)가 기록하여 후대에 전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작품이 「성 마르티노의 생애」다. 그리고 후에 세 통의 친필 편지를 포함하여 자료들을 더 보충하여 「대화 (Dialogi)」(404)로 다시 한 번 성인을 세상에 알렸다. 성 마르티노의 제자이기도 한 만큼, 그가 소개하는 성인에 관한 미담은 많은 사람의 입으로 회자되었다.

 

가족들 가운데 가장 먼저 세례를 받은 이야기, 오랜 군인 생활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죽일 수가 없다며 무장하지 않고 전쟁의 선봉에 서기를 자처한 최초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였다는 이야기, 성소를 깨닫고 프랑스 투르 지방으로 가서 삼위일체 그리스도교 신앙의 지지자였던 힐라리오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되고 아리우스파 이단을 극복하도록 한 이야기, 힐라리오가 투르의 주교로 있는 동안 그가 세운 수도원을 통해 지역 복음화에 일조한(361년) 이야기 등이 있다.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일화가 여기에 소개하는 엘 그레코 그림의 내용이다. 마르티노가 로마 군인으로 갈리아에서 복무하던 시절, 어느 추운 겨울날 아미앵의 성문에 이르렀을 때 추위에 떨고 있는 한 걸인을 만났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그 자리에서 걸치고 있던 외투의 절반을 뚝 잘라 걸인에게 주었다. 그날 밤, 마르티노는 꿈속에서 자기가 준 외투를 걸친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이 옆에 있는 천사에게 “마르티노는 아직 예비신자에 불과한데, 나에게 이 옷을 입혀주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나 보니 잘라졌던 외투가 원래 모양대로 온전한 상태로 되돌아와 있는 것을 보았다.

 

‘성 마르티노의 기적의 망토’(cappa Sancti Martini)는 중요한 유물로 간주돼 그것을 관리하는 사제를 별도로 둘 정도였다. 그리고 이 ‘망토 지킴이’ 사제를 일컬어 작은 외투를 의미하는 단어 카펠라(capella)에서 파생된 ‘카펠라누(cappellanu)’라고 불렀다. 오늘날 경당 혹은 소성당을 말하는 영어 단어 채플(chapel)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마르티노는 세례를 받고 은수자, 설교자로 활동하다가 371년에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봉사했다. 주교가 된 후, 그는 여전히 남아 있는 로마제국의 신전과 제단, 우상 신상들을 제거하고, 자신의 선행과 자선과 겸손함으로 그리스도교가 뿌리내리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교구 내에 수도 공동체를 세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 죄수와 이단자들에 대한 국가와 교회의 강력한 처벌에도 반대했다. 그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가장 먼저 실천한 주교였다.

 

 

작품 속으로

 

이 작품은 성 마르티노가 망토를 잘라서 걸인에게 주는 순간을 묘사했다. 길쭉하게 왜곡된 것 같은 인물의 형태, 독특한 공간 배치, 극적이고 불안정한 색채와 강한 명암 대비로 인해 마치 조각처럼 보이는 가운데 강한 영성을 품어내는 듯한 이미지다. 매너리즘과 회화에서 조각 같은 이미지를 지향했던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공간 표현에서 원근법을 크게 강조하지 않고 추상적인 느낌이 들도록 배치한 것도 매너리즘의 특징 중 하나지만, 비잔틴 회화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가을,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대 야고보 사도의 유해를 찾아가는 성묘길 거의 모든 도시에서 성 마르티노를 만난 것 같다. 순례자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여정에 투르(tours)가 있어 성 마르티노를 만나고 떠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례의 여정 안에서 계속해서 그를 만나게 되고, 기억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태생부터 순교 영성, 순례 영성, 자선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처럼.

 

엘 그레코는 대부분 화가가 ‘사랑’을 의미하는 붉은색 계열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초록색 톤으로 쓰고 있다. 초록은 ‘희망’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의 ‘자선’이야말로 일그러진 우리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7월 5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피렌체 거주)]

 

* 그림 파일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찾은 것입니다.

원본 : https://www.wga.hu/art/g/greco_el/13/1304grec.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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