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6) 스카라무챠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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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6) 스카라무챠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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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교회사 한 장면] (46) 스카라무챠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기근과 페스트에 쓰러진 이들을 살펴보는 목자의 눈길

 

 

루이지 스카라무챠,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 유화, 이탈리아 밀라노 암브로시아나도서관 소장.

 

 

1563년, 트렌토 공의회 폐막과 함께 공의회 결정 사항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 중 교회 쇄신의 가장 큰 동력이 된 것은 교회 지체들의 인문주의적인 삶 곧 ‘휴머니즘의 실천’이었다. 지난 150년간 교회 안에서도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실천하는 문제를 놓고 여러 가지 혼선이 있었다. 1400년대,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한창 꽃을 피울 때, ‘로마 학술원’을 폐쇄하고 인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싫어하던 바오로 2세와 같은 교황이 있었는가 하면, 비오 2세, 니콜라오 5세, 식스토 4세에 이어 율리오 2세와 레오 10세, 클레멘스 7세 등 문화와 예술을 장려하여 시대의 흐름에 응답했던 교황들도 있었다.

 

그러나 트렌토 공의회는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그것을 실천하는 정신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전환점이 됐다. 신자들에게 피부로 와 닿았던 두 가지는, 우선 전례 분야에서 중세 성당들에서 보던 신자석과 성직자-수도자석을 구분하던 트라메쪼(tramezzo)라는 벽을 모두 허물었다. 오늘날 미술사학자들이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당시에 글을 모르던 신자들을 위해 저명한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으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고위 성직자에서부터 무명의 신자에 이르기까지,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고단한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든 성인 성녀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것이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이렇게 교회 안에서 조용히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종교개혁가들이 외쳤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걸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그것이 1600년대를 규정하는 교회의 모습이었다.

 

 

박학다식하고 겸손했던 보로메오 추기경

 

오늘 소개하는 인물도 그중 한 사람이다. 앞서 언급한바 있던 밀라노의 대주교로 여러 면에서 모범이 되어 주었던 카를로 보로메오의 사촌 동생 페데리코 보로메오(Federico Borromeo, 1564~1631) 추기경이다.

 

그는 3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는 바람에 친척 성직자들을 아버지의 모델로 보고 자랐다. 가장 가까이 있었던 사촌 형 카를로 보로메오(1538~1584)는 그의 영적 지도자로, 사제가 되도록 길을 제시했다. 외사촌 구이도 루카 페라로와 먼 친척인 식스토 5세 교황, 알렉산드로 파르네세 추기경, 폰 호에넴스 추기경도 있었다. 카를로 보로메오가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을 때, 페데리코는 밀라노대학교에 입학해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후에 볼로냐대학에서 인문학을 공부한 다음, 다시 파비아대학으로 옮겨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로마에서는 필립보 네리와 그가 세운 오라토리오회 회원으로 있던 체사레 바로니오를 만나기도 했다. 로마에 있는 동안 고대 로마에 대한 관심이 커져 고전연구를 시작했고, 샤콘, 바로니오와 오르시니 등 석학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페데리코 보로메오는 박학다식함과 겸손한 인품을 인정받았다. 식스토 5세 교황은 겨우 23살밖에 되지 않은 그를 도메니카의 산타 마리아 성당(Santa Maria in Domenica)의 부제급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1590년 교황청은 불가타 성경 ‘로마판’ 개정에 들어가면서 재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페데리코 추기경도 포함되었다.

 

 

사비 들여 성당·대학 짓고, 밀라노 시민들 돌봐

 

1595년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던 비스콘티(Gaspare Visconti)가 사망하자, 필립보 네리의 권유와 클레멘스 8세 교황의 제안에 따라 밀라노의 대주교가 되었다. 그의 나이 31살이었다. 그는 사촌 형 카를로 보로메오의 모범을 따라, 또 트렌토 공의회의 규범에 따라 성직자 교육을 철저히 하고 사비를 들여 성당과 대학을 지었다. 그가 밀라노 대주교로 임명장을 받고 들어가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럽 전역으로 사절을 보내 수기본과 인쇄본으로 된 저작물들을 수집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1607년 2월부터 1609년 가을까지 그의 명령으로 수집한 저작물들을 보관하기 위해 1609년 12월 8일 암브로시아나도서관이 설립됐다. 그리고 로마에서 수집하여 갖고 있던 고대 조각상들과 회화 컬렉션들은 1618년에 ‘과드레리라 암브로시아나’를 지어 소장했는데, 이것이 후에 ‘암브로시아나 피나코테크’가 됐다. 그는 여러 개의 아카데미아를 더 설립해 평신도 교육에 힘썼다. 그러나 최근에 그가 새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저서 「1630년 밀라노 페스트(De Pestilentia)」를 쓴 작가로 알려지면서다.

 

「1630년 밀라노 페스트」는 페데리코 보로메오 추기경과 이탈리아 소설가 알렉산드로 만조니가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작품이 모두 그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데리코 추기경은 저서에서 페스트로 죽어가는 도시와 ‘한 인간 영혼’에 대한 초상을 잘 그렸다. 그해(1630년) 밀라노의 거리에는 시체를 실은 마차와 그것을 처리하는 사람들과 병을 전염시켰다고 의심받는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인간 영혼’은 대주교인 페데리코 보로메오 자신으로 보인다. 르네상스의 원칙에 있어서 단호하고 예측을 불허했던 그가 자신의 책에서 묘사한 죽음으로 점철된 끔찍한 광경은 그와 밀라노 간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됐다. 1628년의 기근과 1630년의 페스트에서 밀라노 시민들을 물심양면 돌보며 큰 사랑을 보여줬던 그는 이듬해인 1631년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는 밀라노 두오모 내(內), ‘나무의 성모(Madonna dell‘Albero)’ 경당 제단 아래 묻혔다.

 

 

탁월한 전기작가이며 미술사가

 

소개하는 작품은 페루지아 출신으로, 스카라무챠로 알려진 루이지 펠레그리니(Luigi Pellegrini, 1616~1680)의 ‘1630년 페스트에 라자레토를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1670년)라는 유화 그림이다.

 

스카라무챠는 일찍 고향을 떠나 로마, 볼로냐, 밀라노 등 장화 반도 전역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바로크 시대의 탁월한 전기작가이자 미술사가로 더 유명하다. 말하자면 ‘1600년대의 조르조 바사리’라고 하겠다. 그가 남긴 최고의 작품은 「이탈리아 붓들의 섬세함(Le Finezze De Pennelli Italiani)」으로 1674년 파비아에서 초판된 바로크 미술가들의 첫 번째 전기작 중 하나다. 화가로서, 그는 체리니와 함께 구이도 레니의 제자였다. 그가 이탈리아 전역에 작품을 남긴 것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여러 도시의 군주가 요청했기 때문이다.

 

1670년에 밀라노로 거처를 옮긴 후, 죽을 때까지 밀라노에서 활동했다. 암브로시아나도서관에 소장할 ‘1630년 페스트 시기 병자들을 방문하는 페데리코 보로메오’도 그 시기에 그렸다. 암브로시아나 아카데미아의 설립자에게 헌정하는 일련의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그에 관한 이런 작품은 여러 면에서 밀라노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전임 카를로 보로메오 대주교를 연상시킨다. 오늘날 브레라 아카데미아 아트 갤러리에는 스카라무챠의 초상화가 있는데, 그의 친구 프란체스코 카이로가 그려준 것이다.

 

 

그림 속으로

 

만조니는 소설 「약혼자들(I promessi sposi)」에서 추기경을 여러 차례, 비교적 길게 언급하고 있다. 성직자를 대개 악역으로 등장시킨 것과 달리, 페데리코 추기경에 대해서만큼은 관대하게 말하는 것으로 봐서 추기경의 인품이 원래 좋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시기에 걸쳐 참으로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놀라운 독창성, 모든 풍족한 수단, 특권적인 조건에서 오는 모든 이점을 활용하여 지속적인 의지로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긴 인물이다.” 1630년 밀라노 페스트는 기근과 전쟁에 이어 덮친 최악의 광풍이었고, 몇몇 사람이 기름을 발라 페스트를 퍼트린다는 소문으로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냉혹한 처참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주교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백성을 돌보았고, 절제심 강한 순수한 복음주의자였다. 인간의 모든 아픔과 조건에 대한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갖춘 특별한 인물이었다며, ‘약혼자들’에게 삶에 대한 복음적인 개념을 계속해서 실천하도록 인도하는 인물로 등장시켰다. 그가 보여준 자선과 교리 활동을 만조니는 가톨릭교회가 해야 할 ‘사회적’ 사명이자 메시지로 소개했다.

 

교회가 자신의 사명을 증거하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주저하지 않음으로써 신앙을 설교해야 한다는 것은 트렌토 공의회가 남긴 큰 메시지였다. 그리스도교의 힘은 오로지 이웃을 향한 봉사에서 나오는 것임을 설파했다. 작품 속에서 추기경은 기근과 페스트로 죽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 악취가 진동하는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인다. 배경 속 밀라노시는 참담한 분위기를 말하려는 듯 혼란에 휩싸여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7월 11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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