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66) 이탈리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66) 이탈리아 라벤나 ‘산 비탈레 성당’
15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성당이 곧 미술관이요 박물관
547년 완공된 원형 성당
예술성 높은 모자이크 등
성당 내부 화려하게 장식
발행일2018-08-19 [제3108호, 18면]
이탈리아 북동부 항구 도시 라벤나(Ravenna)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교회 미술사에서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로마 제국이 동서로 분리되었을 때 잠시 서로마 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에서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당 건축과 미술을 살펴볼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박해 때문에 성당을 지을 수 없어서 열심한 신자 가정에서 비밀리에 주님의 성찬례인 미사를 봉헌하며 신앙을
키웠다. 신자들은 로마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 밀라노 관용령을 발표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갖게 됐다. 박해가 끝나자
지하 교회가 지상의 교회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교의 성당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라벤나에는 5세기에서 6세기에 건립된 성당과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뛰어난 모자이크가 있다.
바실리카 양식의 사각형 교회로는 ‘산 조반니 에반젤리스타 성당’,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과 ‘산타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을
꼽을 수 있다. 교회 미술에서 사각형은 동서남북의 작은 세상을 상징한다. 이런 형태는 교회가 이 세상에 구원을 드러내는
상징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원형성당으로는 ‘산 비탈레(San Vitale)성당’이 있는데, 이런 형태의 유례는 둥근 묘실에서 찾을 수 있다. 원형 건물은
하느님 나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하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의 사명도 영원히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모자이크는 손톱 크기의 채색 유리나 돌을 붙여 만들었는데, 성당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면서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모자이크는 내부를 신비로운 공간으로 변화시켜 사람들이 하느님을 향해서 마음을 모아 기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모자이크는 그리스도교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미 그리스나 로마 시대부터 궁전이나 저택의 장식을 위해 널리 사용됐다. 이런 모자이크가 비잔틴 시대에는 성당 장식을 위해 많이 사용됐는데 이런 흔적을 라벤나의 여러 성당에서 볼 수 있다. 작은 돌 조각이 모여 아름다운 형상을 만드는 모자이크처럼 신자 개개인도 함께 모여서 하느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산 비탈레 성당의 모자이크는 주로 제단 주변에 장식돼 있다. 제단 벽에는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하늘나라에 앉아 계시는 그리스도가 있다. 예수님 모자이크 아래의 양쪽에는 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테오도라 황후가 신하들과 함께 있는 모자이크가 장식돼 있다.
성당 내부 벽은 ‘아벨과 멜키체덱의 제사’, ‘아브라함과 세 천사’, ‘아브라함의 이사악 봉헌’, ‘불 떨기 앞에서 신발을 벗는 모세’, ‘착한 목자 예수’, ‘네 복음사가’ 여러 예언자와 성인들, 천사와 식물, 다양한 문양의 모자이크로 꾸며져 있다.
성당 모자이크 가운데서 제단 벽의 전능하신 그리스도가 가장 돋보인다. 푸른 원형의 하늘나라에 앉으신 예수님은 양쪽의 천사로부터 호위를 받으며 왼쪽 끝의 성당 주보성인 비탈리스에게 순교의 관을 건네주신다. 오른쪽 끝에는 성당 건축을 주도한 라벤나의 에클레시우스 주교가 산 비탈레 성당을 손에 들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매우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그분의 커다란 눈은
모든 사람을 잊지 않고 살피신다는 것을 알려 준다. 단발머리의 수염 없는 예수님은 청년처럼 젊어 보인다. 이것은 예수님 안에 세월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산 비탈레 성당 내부는 예술성이 높은 모자이크 때문에 매우 화려하다. 그러나 내부 전체가 다 눈부신 것은 아니다. 미사가 거행되는
제대와 제단 뒤의 낮은 벽면은 모자이크 장식 없이 대리석으로만 꾸몄다. 이런 소박한 장식을 통해서 제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성체성사인 미사가 돋보이도록 한 것이다.
산 비탈레 성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성당으로서 기능을 하면서 그 안에 있는 아름다운 모자이크 덕분에 미술관과 박물관의 기능도 함께
한다. 이처럼 유서 깊은 성당과 모자이크 성화는 세계의 많은 사람을 이곳으로 불러 모은다. 라벤나는 작은 항구 도시지만 이곳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초기 그리스도교 건물이 여덟 개나 된다. 그래서 이 도시는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
오늘날 교회와 예술, 성당과 미술관은 서로 상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하면서 사람들에게 진선미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진선미의 원천이신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문화와 예술도 구세주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나갈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과 모자이크 앞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