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70) 이탈리아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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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70) 이탈리아 아시시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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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지은 대성당 안에서 옛 경당 보물처럼 빛나

대성당 안 원형 그대로인 작은 경당
수도 생활 공간은 박물관으로 활용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전경.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에 있는 아시시(Assisi)는 프란치스코 성인(1182~1226)의 고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성인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평화의 도시로 불리는 아시시에서는 1986년부터 ‘세계 종교인 평화 기도회’도 열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릴 정도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살았다. 그에게 있어서 신앙은 삶과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삶의 중심으로 여기며 살았던 그는 오늘날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 많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프란치스코가 태어나고 활동하며 살았던 아시시 곳곳에는 성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터전과 성당이나 수도원을 방문하면서 성인을 내적으로 다시 만난다. 이런 만남은 아시시를 방문한 사람들을 변화시켜 새로운 삶을 가꾸도록 도와준다.

성인의 흔적은 아시시 수바시오(Subasio) 산 중턱 도시에 흩어져 있다. 그 중심에는 대성당이 있고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만, 언덕에만 성인의 유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바시오 산 중턱 아래의 평지에도 우뚝 선 성당이 있고 그 주변에 성인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 있다. 여러 유적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degli Angeli)이다. 1909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진 이 성당의 정면 양쪽에는 천사상이 서 있다. 그리고 가장 높은 곳에는 양손을 벌리고 세상의 구원을 위해 전구하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두 성상은 이 건물이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란 것을 알려준다.
 

‘포르치운쿨라’ 제단 벽에는 승천해 예수 곁에 앉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 등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다.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화려한 성당 외관과는 달리 내부는 별다른 장식 없이 단순한 모습이다. 이것은 대성당 안의 작은 경당을 돋보이게 만들어준다. 이 경당을 ‘포르치운쿨라’(Porziuncula) 라고 하는데 ‘작은 몫’이란 뜻이다. 경당의 규모는 폭 4m, 길이 7m에 불과하지만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으로 밝게 빛난다.

프란치스코는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경당을 새롭게 손질하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는 경당을 중심으로 수도원을 만들어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다 1226년 이곳에서 숨을 거두며 하느님 품에 안겼다. 또한 이곳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도움으로 클라라 성녀(1194~1253)가 수도 생활을 시작한 매우 뜻깊은 장소다.

호노리오 3세 교황은 1216년, 경당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전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작지만 보석처럼 은은히 빛나는 경당은 대성당에서 가장 사랑받는 장소이며,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일상의 작고 단순한 삶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과 아름다움을 찾아 찬미하여 살았던 성인의 삶을 경당에서 느낄 수 있다.

경당의 제단 벽에는 성모 마리아와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관련된 프레스코화가 있다. 그 가운데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잉태에 관한 소식을 예고하는 장면과 성모님께서 승천하여 예수님 곁에 앉으신 장면이 눈길을 끈다. 이 벽화는 성모 마리아처럼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을 첫 자리에 두고 살았던 프란치스코의 삶이 떠오르게 한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좁은 경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성인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대성당 주변에서는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이 수도생활을 했던 건물과 정원을 볼 수 있는데, 오늘날에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물관의 상설전시관에는 성당의 유물과 성화들이 전시돼 있으며 기획전시관에는 특별한 주제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수도원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내부에서 바라본 포르치운쿨라.

교회 박물관에서 장미정원으로 가는 복도에는 바구니를 든 프란치스코상이 있다. 바구니에 둥지를 튼 순백의 비둘기 두 마리는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않고 성인과 함께 있다. 하느님의 창조물인 자연과 동물을 형제자매처럼 사랑했던 성인의 폭넓은 사랑을 이 상에 머무는 비둘기를 통해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초기 수도자들이 하느님께 기도하며 힘을 얻었던 경당, 포르치운쿨라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들은 백 년 전 경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큰 성당을 건립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간절한 기도가 스며있는 경당의 소중한 가치를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건물의 가치는 단순히 규모에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작은 건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 소중한 사람들의 흔적이 담겨 있으면 그것은 큰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했던 경당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잘 보존하기 위해 아시시의 사람들은 지혜와 힘을 모았다. 그 결과 그들은 대성당 안에 비록 규모는 작지만 보석처럼 빛나는 경당, 포르치운쿨라를 보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순례자들은 대성당 안에서 보다도 작은 경당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숨결을 더욱 가까이 느끼며 그를 그리워한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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