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2) 영국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32) 영국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천막 본뜬 원형성당… 유리화로 신비로움 더해
발행일2017-08-13 [제3057호, 13면]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외부 전경.
영국 서부의 리버풀은 항구도시로서 무역과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인다. 20세기의 유명한 록밴드 비틀즈의 고향이기도 해서 젊은이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리버풀에도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당과 성당이 곳곳에 있어서 도시 전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그 중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큰 성당이 있는데, 하나는 성공회의 ‘리버풀 그리스도의 교회 대성당’(Cathedral Church of Christ Liverpool)’이고 다른 하나는 가톨릭의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Liverpool Metropolitan Cathedral)이다. 가톨릭 성당은 ‘리버풀 그리스도 왕 대성당’이라고도 불린다.
1924년에 완성된 성공회 성당은 사암과 벽돌을 사용해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는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성공회 건물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가톨릭 성당은 돌과 시멘트, 철과 유리를 이용해 현대식으로 지어졌다. 이 두 성당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꼭 보아야 할 주요 건축물로 여러 책자에서 자주 소개된다.
19세기 중반에 아일랜드로부터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새 삶을 찾기 위해 리버풀에 몰려들자, 대성당의 건립이 필요하게 됐다. 대성당의 설계도는 1853년과 1933년, 1953년에 만들어져 공사가 부분적으로 진행돼왔다. 하지만 성당 지하만 완공된 채, 제2차 세계대전과 자금 부족 등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이런 상황에서 웨스트민스터교구장이었던 존 희난 추기경(Jon Heenan, 1905~1975년)은 성당 전체를 완성하기 위해 새로운 설계자를 공모했다. 300여 명의 경쟁자들 가운데 프레드릭 기벌드(Frederic Gibberd, 1908~1984년)의 작품이 채택됐고 5년간 공사를 한 후 1966년에 성당을 완성할 수 있었다. 성당의 높이는 85m, 지름은 59m이며 2500여 명의 신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이다.
성당 외관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 머물 때 기거하던 천막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런 형상을 통해 세상에 있는 교회는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장차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순례의 여정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막 지붕 위가 원통으로 된 것은 왕관을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과 같은 분이심을 알려준다. 또한 이 성당이 그리스도 왕 대성당이라는 것을 외적으로 선포하는 역할을 한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직후에 완공된 이 성당은 성찬례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백성의 믿음과 친교를 잘 드러내 준다. 2층에 있는 성당 내부도 외부와 마찬가지로 원형이며, 가운데에는 성당의 중심인 순백색 제단과 제대가 낮게 자리 잡았다. 겸손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의 참 빛이시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미사에 참례한 신자들은 제단 주변에 모여 성찬례를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하느님과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본받으며 살고자 다짐하게 된다.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내부와 제대 모습.
천상의 하늘을 상징하는 푸른 빛깔의 유리화가 있고 성당 내부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성상이나 회화, 태피스트리와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성물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제단 위에는 철로 만들어진 왕관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원통 모양의 왕관 지붕은 형형색색의 유리화로 장식돼 성당 내부를 더욱 신비롭게 만들어 준다.
성당 안의 둘레에는 13개의 부속 경당과 작은 방이 있어, 소그룹이나 개인이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성당 곳곳에는 임시 전시대를 만들어 대성당의 과거와 현재를 알려주는 글과 사진, 선교와 이웃 사랑의 실천, 미래 교회의 역할 등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성당 내부의 오른쪽에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형태의 세례소가 있다. 이곳에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원형 세례대와 부활초만 있으며 창문조차도 자연 빛만 들어올 수 있게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성당 안의 다양한 장식과는 달리 세례소는 꾸밈을 최소화해 세례 성사의 본질을 되새기게 만들어준다.
성당 내부의 세례소와 세례대.
대성당 아래의 1층과 지하 및 광장에는 신자들의 모임방과 경당, 역사관과 전시장, 안내소와 장애인 편의실, 기념품 매장과 휴게소 등이 잘 갖추어져 신자들뿐 아니라 방문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적이며 문화적 공간을 제공한다. 특히 역사관에는 본당 건립과 관련된 모든 자료, 설계도와 사진 등이 잘 전시되어 있어 성당의 오랜 역사를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유럽의 오래된 성당들이 더욱 풍요로운 것은 단순히 외적인 건물 때문만이 아니다. 성당과 관련된 크고 작은 유물을 잘 보관해 대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교회 전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그리스도교가 씨앗을 뿌린 지 2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박해 이후에 크고 작은 성당이 많이 건립됐고 오늘날에도 새 성당들이 들어서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성당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성당이 소중히 여겨야 할 설계도를 비롯한 크고 작은 유물들이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사라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성당을 짓기 위해 사용했던 작은 망치와 대패조차도 한 쪽 벽에 전시한 유럽의 성당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회가 유물 보존에 대해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