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9) ‘코라 성당’에서 빛나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성화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9) ‘코라 성당’에서 빛나는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성화
주님 구원활동 담은 작품에서 하느님 나라 느껴
발행일2017-05-14 [제3044호, 13면]
터키 이스탄불의 코라 성당 전경.
터키 이스탄불의 ‘코라 성당’(Chora Church)은 ‘카리예 박물관’(Kariye Museum)으로도 불리는데, 구시가지의 북서쪽 외곽에 있다. 이스탄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하기아 소피아 성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만, 그 안에 있는 뛰어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때문에 유명하다.
코라 성당은 고치지 않고 그냥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외관은 교회 건물처럼 보인다. ‘코라’는 성벽 밖의 지명으로 ‘시골’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오래된 성당이 박물관으로 변화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다.
원래 이 성당은 4세기 초 콘스탄티노플 성 밖 동방 정교회 수도원 부속 성당으로 건립됐으나, 허물어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현재의 성당은 11세기에 공사를 시작했지만 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14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할 수 있었다. 비잔틴 양식의 이 성당은 크고 작은 6개의 돔 지붕을 가진 소박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코라 성당은 16세기 오토만 시대(Ottoman era)에는 이슬람 사원으로 개조됐고 그 안에 있던 성화들도 많이 훼손됐다. 형상을 금지한 이슬람 교리에 따라 사람들이 프레스코나 모자이크를 회칠로 덮거나 모자이크를 뜯어냈기 때문이다.
1948년부터 시작한 성화 복원 작업이 끝난 1958년 이후에는, 이 성당을 일반인에게 박물관으로 공개하기 시작했다. 성당과 그 안을 장식한 모든 예술 작품들이 통째로 종교 박물관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여전히 오래된 성당의 거룩한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
중앙 돔의 천장 모자이크 성화.
성당 안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활동, 부활과 승천, 최후 심판을 묘사한 80여 장면의 프레스코와 180여 장면의 모자이크가 있다. 특히 세밀하면서도 생생하게 묘사된 모자이크는 비잔틴 예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코라 성당의 내부와 천장, 장례 예식을 치르던 파레클레시온(parecclesion) 경당 전체에 장식된 작품들을 보면, 마치 성경을 읽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지상의 세상과는 전적으로 다른 천상의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중앙의 둥근 지붕은 지름이 7.7m에 이르는데, 중심에는 ‘전능하신 그리스도’가 묘사돼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 손에 생명의 책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온 인류에게 축복해 주신다.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빛이 쏟아지고 그 끝에 주님을 찬미하는 24명의 성인이 묘사돼 있다. 원형 주변에서는 예수님의 주요 선교 활동을 다룬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코라 성당에는 천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예수님만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 머무시는 주님을 표현한 작품도 함께 등장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성화는 ‘간구’(Deesis)하는 모습인데, 예수님과 성모님만 계시고 요한 세례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에 왕자 이삭 콤네노스(Isaac Comnenos)가 성모님의 팔 아래에 나타나며, 마리아는 그의 뜻을 예수님께 전하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벽화의 예수님과 성모님은 금방이라도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튀어 나오실 것처럼 보인다. 작은 돌로 예수님과 성모님의 얼굴에 홍조까지 표현함으로써 그분들이 마치 살아 숨쉬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모자이크도 크게 훼손됐지만 다행히 두 분의 얼굴 부분 원형은 잘 유지됐다.
예수님께 전구하시는 성모님.
성당이나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보다 더 힘든 것은 그 건물을 잘 관리하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은 건물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다보면 건물의 본래 용도가 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건물을 허무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건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많은 사람으로부터 지혜를 모으면 그 건물을 새롭게 사용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회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 코라 성당을 박물관으로 만든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인다.
비록 코라 성당은 카리예 박물관이 됐지만, 빼어난 프레스코와 모자이크 예술 작품으로 여전히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사람들은 이곳의 성화를 통해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이 박물관은 일찍이 코라 성당이 담당했던 복음 선포의 역할을 문화를 통해서 계속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 선포에서 교회 미술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카리예 박물관에서 절실히 깨닫게 된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