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당’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5) 바티칸 시국 ‘성 베드로 대성당’
찬란한 신앙과 예술 결정체… 하느님 나라가 눈앞에
발행일2017-02-05 [제3030호, 12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내부 전경.
바티칸 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은 ‘성 베드로 대성당’(Basilica di San Pietro)이다. 이 성당은 우리 교회뿐 아니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수많은 조각과 성물로 장식된 성당의 여러 제대에서는 중요한 미사가 거행되기 때문에, 바티칸의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살아있는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베드로 대성당을 바라보면 이 성당이 과연 사람들의 작은 손으로 지어진 게 맞을까 하는 의심이 생길 정도다. 거대하지만 어느 한구석도 소홀함이 없는 완전성 때문이다. 이 성당은 하느님께서 사람들의 손을 통해 만드신 하느님의 작품처럼 보인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을 통해서 완성한 하느님과 인간의 합작품이 베드로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심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신앙이 꽃피웠던 시절에 성당 건축과 예술도 함께 꽃을 피운 것이다.
■돔(dome)은 하느님의 영원성을 상징
성 베드로 대성당의 정면과 반구형 지붕.
성 베드로 대성당의 지붕 위에서 바라본 광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가 설계한 거대한 반구형의 지붕인 돔(dome)은 성당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베드로 대성당 위에 떠오르는 태양 같은 이 돔은 우주나 그것을 만드신 하느님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거대한 돔의 직경은 42m에 이르고, 내부는 아름다운 성화로 장식했다.
베드로 대성당 앞 광장은 바로크 시대의 거장 베르니니(Bernini, 1598~1680)가 타원형으로 만들었다. 주변은 열주로 장식했다. 수많은 열주는 천국의 백성이 방문객들을 줄지어 서서 환영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열주 위에는 높이 3.6m인 140명의 성인 입상이 있다. 이 지상의 교회는 성인들과 선한 사람들로 가득 찬 천상의 교회와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타원형 광장의 한가운데는 높이 26m의 거대한 돌기둥인 오벨리스크(obelisk)가 서 있다. 로마인들은 그것을 이집트에서 가져와 원형 경기장 안에 세웠는데, 그곳에서 초기 교회의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교황 식스토 5세(1585~1590년 재위)는 순교자들의 목격자 역할을 했던 이 돌기둥을 베드로 대성당 광장의 한가운데 세웠다. 오벨리스크는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수많은 순교자의 희생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을 알려준다.
대성당 지붕 위에 올라가 광장 전체를 내려다보면 그 모양이 커다란 열쇠 같다. 광장의 형상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준 천국의 열쇠를 연상시킨다(마태 16,13-20참조). 또한 자모이신 교회가 양팔을 벌려 신자뿐 아니라 만백성을 품어 주는 모습처럼 보인다. 대성당 광장에 들어서면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긴 것 같은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베드로 무덤 위에 세운 성당
최초의 베드로 성당은 90년경 교황 아나글레토(St. Anacletus, 79~90/92년 재위)가 베드로의 무덤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던 바티칸 언덕에 세운 것이었다. 그 후 콘스탄틴 대제가 313년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하면서 바티칸 언덕에 큰 규모의 바실리카식 성당을 건축해 360년경에 완성했다. 그로부터 1000년 이상 사용되던 이 성당은 낡아 붕괴의 위험에 놓였다.
1506년 교황 율리오 2세(1503~1513년 재위)는 콘스탄틴 대제가 지은 성당을 허물고 새롭게 짓기 위해,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브라만테(Bramante, 1444~1514년)에게 설계를 맡겼다. 그의 초기 설계도는 성당의 가로와 세로축의 길이가 같은 그리스 십자가 형태였고, 십자가의 교차점에 거대한 반구형 지붕을 얹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앙집중식 구조는 가톨릭교회의 전례 예식에 적합하지 않아, 후에 브라만테의 설계도에서는 회중석 부분이 긴 라틴식 십자가형으로 변경됐다. 그 후에도 교황과 책임 건축가가 바뀌면서 여러 차례 설계를 변경해 공사를 진행했다. 1626년에 건축가 카를로 마데르노(Carlo Maderno, 1556~1629년)는 자신보다 앞서 일했던 건축가들의 설계를 존중하면서 베드로 대성당을 완공했다. 공사를 시작한 지 1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이 성당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뒤 알렉산델 7세 교황(1655~1667년 재위)은 베르니니에게 타원형 광장을 만들게 했다. 이 광장은 대성당의 진입로 역할을 하면서 때로는 수많은 사람을 위한 야외 미사 장소로 사용되기도 한다. 베드로 대성당은 최대 길이 221m, 최고 높이 141m로 세계 최대의 성당 가운데 하나다.
■모든 성당은 땅에 맞닿아 있는 하늘
성 베드로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 제단 위로부터 신비로운 빛이 쏟아져 내린다. 그 빛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교황이 미사를 집전할 때 이용되는 중앙 제단 위에는 광장을 설계했던 베르니니가 제작한 보개(寶蓋)인 발다키노(baldachino)가 있다.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 형상을 한 발다키노의 네 기둥은 월계수 나뭇잎으로 장식돼 있다. 이는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보여준다. 베드로 대성당의 교황 제단 아래에는 베드로 사도가 묻힌 것으로 알려진 무덤이 있고, 그 주변에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역대 교황들의 무덤이 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성당은 땅에 맞닿아 있는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성 베드로 대성당도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상 성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이 성당에서 미사가 봉헌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일순간에 깨어나 하느님을 찬양하듯이 움직인다. 세상에서 멀리 계시는 듯한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나라를 우리 눈앞에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교회의 일원이 되어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로 고백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깨닫게 된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