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8) ‘산마르코 박물관’에서 만난 프라 안젤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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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8) ‘산마르코 박물관’에서 만난 프라 안젤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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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8) ‘산마르코 박물관’에서 만난 프라 안젤리코

 

수도자 머물던 모든 곳이 박물관으로 재탄생

 

도미니코회 산마르코 수도원 건물

침실과 식당, 기도실 등 곳곳에 벽화

일상 속 하느님 뜻 살피기 위한 배려

 

발행일2017-02-26 [제3033호, 14면]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예수님의 탄생 예고’. 수도자들이 일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갈 때 항상 볼 수 있도록 계단 위 2층 벽에 그려져 있다. 

 

문화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는 많은 성당과 경당, 미술관과 박물관, 유적지와 오래된 건물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산마르코 박물관(Museo di S. Marco)은 원래 산마르코 수도원(도미니코회)이었던 곳에 자리 잡았다. 이 수도원은 1300년에 착공됐으나 1430년대 화재 등으로 일부가 파손되면서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피폐한 수도원의 보수를 위해 피렌체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Medici, 1389~1464)가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코시모는 건축가 미켈로초(Michelozzo, 1396~1472)에게 의뢰해 수도자들의 거처를 짓고 수도원 재건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수도자들은 산마르코 수도원에서 쫓겨났고 1869년부터 이 건물은 박물관으로 변했다. 수도자들이 머물며 기도하고 활동했던 모든 장소가 박물관이 됐다. 대부분의 벽화는 제 자리에 있다. 또 박물관 부속 전시실에도 당시 작가들의 프레스코와 템페라가 잘 전시돼 있다. 

 

특히 이 박물관에는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년경~1455년)가 전성기에 그린 프레스코가 많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사 신부면서 르네상스 초기 화가였다. 원래 이름은 귀도 디 피에트로(Guido di Pietro)였다. 그러나 후에 ‘천사 수도자’라는 뜻을 지닌 프라 안젤리코로 불렸다. 그의 성품이 너무나 착해서 이런 이름이 주어졌을 것이다. 또 천사처럼 천상 세계를 그림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을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기도하지 않고서 붓을 든 적이 없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그릴 때엔 그의 뺨이 항상 젖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 활동은 수도생활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그 생활의 연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모든 작품에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과 겸손한 삶이 스며있다. 

 

산마르코 수도원은 2층 건물로, 1층은 식당과 작업실 등 공적 공간으로 활용됐다. 2층엔 개인방과 기도실 등 사적인 공간이 들어서 있었다. 한 명이 들어가 묵상하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좁은 방에는 작은 창문만 하나 있고, 그곳으로부터 한줌의 빛이 들어온다. 그 빛조차도 투박한 나무창을 닫으면 완전히 차단된다. 그 방에서 수도자들은 세상의 눈부신 빛을 닫고 하느님의 영원한 빛을 꿈꾸며 하루를 마감했을 것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조수와 함께 수도자들의 각 침실 벽에 하나씩 총 마흔세 개의 프레스코를 그렸다. 또 복도와 기도실, 식당과 도서관 등 수도원 곳곳을 프레스코로 장식했다. 주제는 신약성경의 주요 대목에서 따왔으며, 수도회에서 공경하던 성인들을 함께 묘사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화려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면서 소박하다. 등장하는 인물도 중량감에서 벗어나 가벼운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는 하늘을 품고 하늘을 보여준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작품마다 물질적인 세계와는 다른 영적인 세계를 드러낸다.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1438~1445년경,

230cm×321cm, 프레스코)이다. 하늘로부터 내려온 가브리엘 천사는 안뜰이 보이는 회랑(回廊)에서 기도하던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의 잉태에 관하여 알려주는 모습을 담고 있다. 천사의 날개가 접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하늘로부터 막 내려온 것 같다. 천사가 전해준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양손을 모아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자세를 취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는 마리아의 신앙 고백이 들리는 듯하다. 

 

그림 앞의 정원은 산마르코 수도원의 안쪽 정원과 비슷하다. 그림 속의 이 정원은 ‘마리아의 정원’이라고 불린다. 마리아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각자의 마음 안에도 아름다움이 꽃피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산마르코 수도원의 박물관 복도. 

 

화가는 이 그림의 배경을 산마르코 수도원의 건물과 비슷하게 그렸다. 이를 통해 수도원도 복음에 나오는 장소처럼 거룩한 곳이라고 말하고, 모든 수도자가 성모 마리아처럼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모님처럼 수도자들도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 보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산마르코 수도원의 작은 방과 벽에는 여러 성화가 그려져 있지만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특별한 장소에 있다. 모든 수도자들은 1층에서 일을 마치고 자신들의 방으로 올라갈 때 이 그림을 꼭 보게 된다. 이 작품이 계단 위의 2층 벽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프라 안젤리코는 왜 이 주제를 선택해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에 그렸을까? 

 

성모님은 언제나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며 사셨다. 마리아의 순명은 예수님 성탄 예고에서 뿐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활과 십자가 아래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이 그림을 보면서 수도자들도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며 하루를 살았는지 성찰했을 것이다. ‘예수님 탄생 예고’는 프라 안젤리코가 수도자들에게 자신을 살펴보도록 한 강론과 같다. 

 

수도자들의 일상 뿐 아니라 영성과 문화생활까지도 염려하며 수도원 곳곳을 그림으로 채워준 프라 안젤리코는 이탈리아의 여러 성당과 수도원을 위한 제단화나 종교화도 여러 점 그렸다. 우리 시대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에 그를 예술가와 미술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수도원의 좁은 방에 머물던 수도자들을 위해 그려준 그림보다도 더 아름다운 것은,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 성인의 따뜻한 마음씨다. 그가 남긴 아름다운 그림은 오늘날 고단한 삶에 지쳐있는 우리도 위로하며 감싸준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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