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4) ‘롱샹 성당’ 20세기 건축의 걸작품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4) ‘롱샹 성당’ 20세기 건축의 걸작품
미적 감동과 종교의 숭고함 담은 성당
발행일2017-04-09 [제3039호, 13면]
롱샹 성당 외부 전경. 화가이며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의 설계로 건축된 이 성당은 20세기 건축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우리는 성당에서 하느님을 가까이 만나고 사람들과 친교를 나누며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선포한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느끼고 사람들의 소중함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이 바로 성당이다. 일반 건축물은 사람들만 만족시키면 되고 신전은 신만 만족시키면 되지만, 성당은 둘을 모두 다 충족시켜야 하기에 짓는 것이 쉽지 않다.
20세기에도 유럽과 세계 각지에서는 많은 성당이 건립됐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많은 성당이 파괴됐는데 특히 패전국인 독일의 교회 건축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전쟁 후 독일 여러 지역에는 현대식의 큰 성당들이 건립돼 주목받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전쟁 후에 여러 성당이 건립됐지만 오히려 규모가 작은 성당이 높이 평가된다. ‘방스(Vence) 로사리오 성당’, ‘아씨(Assy) 성당’, ‘롱샹(Ronchamp) 성당’은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밖에서도 많은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위 성당들은 뛰어난 예술가와 그들의 재능을 알아본 도미니코회 마리 알렝 쿠튜리에(Marie-Alain Couturier, 1897~1954) 신부가 있었기 때문에 세상에 빛을 드러낼 수 있었다. 이 성당들은 종교에 대해 무관심하던 시대에 지어졌지만, 그 아름다움과 거룩함으로 현대인들의 종교심을 불러일으킨다.
롱샹 성당 내부 전경.
그 가운데서도 프랑스 동부 롱샹에 ‘롱샹의 높으신 성모성당’(Chapelle Norte-Dame-du-Haut de Ronchamp)은 20세기 건축의 걸작품으로 평가된다. 화가며 건축가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의 설계로 1950년부터 1955년에 건축된 이 성당은 ‘롱샹 순례자 성당’ 혹은 ‘롱샹 성당’이라 불린다.
롱샹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는 4세기경에 지어진 경당의 유적지가 있었고, 바로 옆에는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작은 성당이 있었다.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순례지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고딕 성당이 파괴돼 새 성당 건립이 필요하게 됐다.
현대건축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위스 태생의 르 코르뷔지에는 아파트처럼 단순하고 실용적인 건물을 설계해 주거 공간의 변혁을 가져왔다. 그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지만, 특이하게도 롱샹 성당과 수도원 건축을 설계했다. 쿠튜리에 신부가 그의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며 성당과 수도원 건축을 맡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제며 예술가였던 쿠튜리에 신부는 “미적 감동과 종교의 숭고함을 담은 성당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 뿐”이라며 르 코르비지에를 설득시켰다. 처음에 건축가는 신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에는 롱샹 성당 건축을 하게 됐다. 이 신부와의 만남을 통해서 르 코르비지에는 1953년에 프랑스 에브(Éveux)에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라 투레트(La Tourette) 수도원도 지었다. 그가 설계한 롱샹 성당과 라 투레트 수도원은 2016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롱샹 성당 내부 유리화.
르 코르비지에는 해변에서 발견한 게 껍질과 같은 자연물을 참조해 롱샹 성당의 외관을 디자인했다. 성당의 외부는 보는 사람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진다. 야트막한 언덕에 놓인 노아의 방주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자를 쓴 수도자의 얼굴 같기도 하다. 성당 내부, 다양한 크기의 창문에는 추상으로 유리화가 그려져 있다. 내부는 자연 채광만 이용해 어둡게 느껴지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성당 외부에도 제단을 만들어 순례자 1만여 명이 언덕에 모여 미사를 지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성당 주변 잔디밭에는 옛 성당에 달렸던 종을 전시해, 옛 성당에 담긴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옛 성당의 돌도 새 성당 건축에 재사용했고 나머지 돌로는 외부에 피라미드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을 ‘평화의 피라미드’라 부르는데, 1944년 10월 2일 롱샹 폭격 때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위령비다. 옛 성당에 있었던 17세기의 채색 목조 성모상도 현재 성당의 제단 위 유리창 틀에 모셔져 있다.
르 코르뷔지에는 롱샹 성당 초입에 순례자들을 위한 집도 건축했는데, 성당 전체의 모습을 가리지 않도록 언덕 아래에 낮게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성당을 멀리서도 한 눈에 찾을 수 있다. 롱샹 성당이 돋보이도록 주변을 낮추고 정리한 건축가의 배려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롱샹 성당은 모든 부분이 조각 작품처럼 빚어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이 성당에는 200여 명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작지만, 현대 건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역사성과 시대성, 예술성과 종교성 등을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작은 성당을 보기 위해서 매년 8만여 명이 순례자처럼 롱샹의 언덕을 오른다.
하느님의 집이며 사람들의 집인 성당을 짓는 것은 오늘날에도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은 성당다운 건물을 짓는 것이다. 성당이나 수도원 등을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롱샹 성당 건축에서처럼 재능 있는 건축가와 예술가, 그들의 전문성을 귀하게 여기고 대하는 안목 높은 성직자와 수도자, 성당 건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기도하는 신자들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도 롱샹 성당처럼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성당을 더욱 많이 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런 성당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체험하며 사람들의 소중함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고 세상에 나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더욱 잘 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