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6) 성가정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정웅모 신부의 박물관, 교회의 보물창고] (16) 성가정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
자연에서 영감 얻어 ‘생명의 나무인 교회’ 표현
발행일2017-04-23 [제3041호, 14면]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말하면, 자연스럽게 한 건축가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이 도시에 성가정 성당인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를 설계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1852~1926년)다. 가우디는 성가정 성당 뿐만 아니라 구엘 공원과 여러 가정이 거주할 수 있는 저택 등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르셀로나 곳곳에 남겼다.
바르셀로나가 확장되던 시기인 1877년에 대지를 구입한 교회는 신자들의 감소를 막고 신앙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성당 건축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건축가 프란치스코 드 파울라(Francisco de Paula)가 신고딕 양식의 성당을 설계해 1882년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일 년 후인 1883년 31세의 가우디가 수석 건축가로 임명돼 성당 건축 책임을 맡게 됐다. 가우디는 파울라의 설계를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특별한 양식으로 바꿔 성당을 건축했다. 그는 자연을 통해 받은 다양한 영감을 성당 곳곳에 담으며 전적으로 새로운 성당을 만들어 갔다.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곳은 예수 탄생을 주제로 장식한 전면과 한 개의 탑, 측량과 지하 경당이었다. 작업이 이처럼 느리게 진행된 것은 건축가가 작업을 진행하면서도, 계속 설계를 변경하며 보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세부 설계 디자인과 여러 모형들을 남겼기 때문에, 후에 다른 건축가들을 통해 성당 건축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가우디가 세상을 떠난 후엔 자금 부족과 시민전쟁 발발로 건축은 천천히 진행돼, 2000년에야 비로소 성당 지붕을 완성할 수 있었다. 2026년에 완공을 목표로 작업 중인데, 그 해는 가우디가 세상을 떠나 하느님 품에 안긴지 꼭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성가정 성당에는 둥근 형태의 아름다운 종탑이 하늘 높게 솟아 있다. 성당이 완성되면 총 18개의 종탑이 장관을 이룰 것이다. 전면과 후면, 측면에는 각각 네 개의 종탑이 있는데, 이것은 네 복음사가를 상징한다. 각 종탑의 높이는 90~120m로 차이가 나며 다양한 형태를 보인다.
1852년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태어난 가우디는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나무나 식물, 하늘과 구름은 한결같은 친구였으며, 그의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성당 전면의 흘러내리는 듯한 장식도 그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의 바위와 비슷하다. 성당 내부의 큰 기둥과 그 위에서 뻗어난 작은 기둥은 커다란 나무와 가지를, 천장을 가득 덮은 별처럼 생긴 장식은 나뭇잎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형상들은 ‘생명의 나무’인 교회 안에서 사람들이 편히 쉬며 하느님을 찾도록 도와준다. 또한 유리화를 통해 들어오는 빛은 성당에 신비스러움을 더해 준다.
예수 탄생을 주제로 한 전면과 네 개의 종탑.
생명의 나무 형상을 한 기둥들.
후면 기둥에 묶이신 예수.
성가정 성당의 네 면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곳이 예수 탄생과 관련된 조각상이 장식된 전면이다. 이 부분은 가우디에 의해 완성됐으며, 예수상 외에도 바로크 양식의 동물과 식물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됐다. 후면에는 예수 수난 및 죽음과 관련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이곳은 1954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으며 1987년에 ‘기둥에 묶이신 예수님’ 같은 조각상이 완성됐다. 그러나 가우디 시대의 작품과 너무 상이해 많은 사람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2002년부터 공사가 시작된 측면에는 영광을 받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회화로 장식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예술가 미켈란젤로처럼 가우디도 홀로 살면서 성가정 성당 건축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는 미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전차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해 1926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가 성당 건축을 위해 헌신했던 기간은 무려 43년이나 됐다. 성가정 성당의 지하 경당에 묻힌 그는 이제 성당 일부가 돼 사람들을 맞이한다.
성가정 성당 지하 박물관에서는 이곳의 역사 뿐 아니라 가우디의 설계 작품 등이 전시돼 건축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박물관보다 더 흥미로운 곳은 성당 자체다. 이곳은 여전히 공사 중이라 대성당이 어떤 과정을 통해 완성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서 정성을 쏟아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현대는 종교에 대한 불신을 넘어 ‘무관심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성가정 성당에 사람들이 붐비는 것도 종교보다는 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에서 아름다움과 즐거움, 신비로움과 거룩함에 깊이 빠져든다. 그리고 삶의 고단함을 잊고 잠시 쉬며 삶을 재충전하고 돌아간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성당 건축과 예술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을 뛰어 넘어 진선미 자체이신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성가정 성당은 그 이름처럼 오늘날 삶에 지친 많은 사람을 어머니처럼 따뜻이 품어 주며 다독거려 준다.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종로본당 주임,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