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15)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성사 같은 항아리
관리자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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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9 16:49
정웅모 신부의 아름다운 성화 아름다운 인생 (15)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성사 같은 항아리
나자렛 성가정의 조촐한 저녁 식사
‘성가정’에 등장하는 모든 소품은
예수님 구원과 관련된 내용 전해
예수의 흰옷 그의 무죄함 드러내
발행일 2011-10-09 [제2765호, 14면]
▲ 샤를 르 브룬(Charles Le Brun, 1619-1690), 성가정, 1655년, 유채,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이 작품에는 예수와 성모 마리아, 성 요셉으로 이루어진 나자렛 성가정의 저녁 식사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하루의 일을 마친 성가정 식구들이 작은 식탁 주변에 모여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기도를 바치고 있다. 작은 식탁 위에는 몇 개의 사과와 한 덩이 빵이 놓여 있고 식탁 주변에는 목수였던 요셉이 사용하던 연장과 물 항아리가 있다. 식탁의 가운데 어린 예수가 앉아 있고 성모님은 그 뒤에서 예수의 몸짓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성가정의 보호자인 성 요셉도 식탁 주변에 비스듬히 기대어 기도하는 예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촐한 음식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예수와 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마리아와 요셉을 보면 이 저녁 식사가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린 예수는 마치 최후만찬을 거행하는 것처럼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 동작을 통하여 장차 당신이 걸어야 할 구원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성가정’에 등장하는 성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소품은 예수님의 구원과 관련된 내용을 전해준다. 예수가 만든 삼각의 손가락 모양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예수의 흰옷은 그의 무죄함을 나타낸다. 몇 개의 사과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한 덩이의 빵은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커다란 물 항아리는 세례성사를, 십자가 형태로 놓인 목공 도구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려준다. 이처럼 이 작품에 표현된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삶을 알려주는 작은 성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오래된 장독 하나를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다. 메주를 넣고 간장을 만들었던 이 항아리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높이가 약 1m쯤 되는 이 항아리는 우리 주변의 여느 항아리처럼 수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이 조금 손상되었지만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항아리는 고물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 오래된 항아리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유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는 후에 도시로 나오셨지만 오래전부터 사용하시던 몇 개의 항아리만은 이사 때마다 꼭 챙겨 곁에 두셨다. 아마 어머니는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고단하면서도 힘겹게 살았던 지난날들을 회상하셨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항아리 가운데 하나를 바라보면서 힘겨운 시절에도 가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셨던 어머니와 재회하고 있다. 어머니의 손때와 사랑이 묻은 항아리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성사처럼 내 곁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
조촐한 음식을 앞에 두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예수와 이를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마리아와 요셉을 보면 이 저녁 식사가 평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린 예수는 마치 최후만찬을 거행하는 것처럼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는 이 동작을 통하여 장차 당신이 걸어야 할 구원의 길을 미리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 계획을 완성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성가정’에 등장하는 성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소품은 예수님의 구원과 관련된 내용을 전해준다. 예수가 만든 삼각의 손가락 모양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예수의 흰옷은 그의 무죄함을 나타낸다. 몇 개의 사과는 아담과 하와의 범죄를, 한 덩이의 빵은 성체성사를 상징한다. 커다란 물 항아리는 세례성사를, 십자가 형태로 놓인 목공 도구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알려준다. 이처럼 이 작품에 표현된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삶을 알려주는 작은 성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오래된 장독 하나를 애지중지 간직하고 있다. 메주를 넣고 간장을 만들었던 이 항아리가 여러 경로를 통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높이가 약 1m쯤 되는 이 항아리는 우리 주변의 여느 항아리처럼 수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이 조금 손상되었지만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항아리는 고물처럼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보물과 같은 것이다. 그 오래된 항아리는 다름 아닌 어머니의 유품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어머니는 후에 도시로 나오셨지만 오래전부터 사용하시던 몇 개의 항아리만은 이사 때마다 꼭 챙겨 곁에 두셨다. 아마 어머니는 항아리들을 바라보며 고단하면서도 힘겹게 살았던 지난날들을 회상하셨을 것이다. 이제 나는 그 항아리 가운데 하나를 바라보면서 힘겨운 시절에도 가족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셨던 어머니와 재회하고 있다. 어머니의 손때와 사랑이 묻은 항아리는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해주는 성사처럼 내 곁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