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줄리오 바르젤리니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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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줄리오 바르젤리니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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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으로 보는 세계사 한 장면] (36) 줄리오 바르젤리니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


종교 개혁의 불씨 남긴 두 인물

 

 

줄리오 바르젤리니,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1897년), 브라스키 궁, 로마 박물관 소장.

 

 

1492년은 인류 역사는 물론 교회사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해였다. 우선, 스페인의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카스티야 연합 왕국이 무슬림의 마지막 보루던 그라나다를 정복함으로써 781년간 스페인 내(內) 무슬림 지배를 종식시키고 통일을 이루었다.(1월 2일) 이사벨라와 페르난도 부부는 르네상스 시대의 신흥 군주로 지위를 확립했고, 같은 해에 로드리고 보르자가 알렉산데르 6세 교황(재임 1492~1503)이 되었다.(8월 11일) 정치·지리·종교적인 통일을 이룩하고, 새로 국가의 비상을 꾀하던 이사벨라-페르난도 정부는 콜럼버스(Cristoforo Colombo, 1450~1506)를 후원하여 신대륙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다.(10월 12일)

 

반면, 이탈리아의 상황은 르네상스를 크게 후원하고 견인했던 피렌체의 로렌조 데 메디치(마니피코)가 사망했고(4월 8일), 인노첸시오 8세 교황이 사망했다.(7월 25일) 이후 피렌체는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가, 로마 교회에는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 등장하면서 종교 개혁의 불씨를 남겼다. 이번에는 이 두 인물, 사보나롤라와 알렉산데르 6세에 주목하기로 한다.

 

 

메디치 가의 몰락과 사보나롤라의 부상

 

페라라 출신의 사보나롤라는 1475년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기 전에 인문주의, 철학, 의학을 공부했고, 볼로냐에서 7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높은 학식과 금욕적인 생활로 수도자로서 모범을 보였고, 성경을 강의했다. 그의 강의는 쉬운 언어로 간결하면서도 깊이가 있어 많은 사람이 감동했고, 설교를 듣기 위해 대중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1480년 피렌체의 지도자로 있던 로렌조 마니피코는 도미니코 수도회 측에 요청하여 사보나롤라를 피렌체로 불러 성경 강의를 부탁했다. 그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동했고, 이에 그의 추종자들을 일컬어 ‘울보들(Piagnoni)’이라고 불렀다. 명성은 날로 높아졌고, 이런 대중적인 인기에 힘입어 공화주의 정치사상을 설파하며, 당대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를 공격했다. 자신을 피렌체로 부른 로렌조 마니피코는 물론, 알렉산데르 6세 교황, 밀라노의 루도비코 일 모로 공작, 프랑스 샤를 8세 국왕 등 가리지 않고 비판했고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중 가장 심한 공격의 대상은 가장 가까이에 있던 로렌조 마니피코와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었다.

 

로렌조 마니피코에게 돈으로 예술을 부추겨 사치와 허영을 시민들에게 주입해 타락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마니피코는 죽음이 임박하여 사보나롤라의 말대로 하느님의 심판이 두려워 어떻게든 용서를 청하고자 했으나, 사보나롤라는 이를 끝까지 외면하고 말았다. 이것은 메디치 가문이 거의 한 세기 동안 도미니코 수도회와 맺은 관계에 대한 배신이기도 했다. 이에 메디치가를 추종하던 팔레스키(Palleschi, 메디치의 상징이 빨간 공 5개가 박힌 거라고 하여 ‘공’을 의미하는 palla에서 나온 말로 ‘메디치 추종자들’이라는 뜻이다)의 분노를 샀다. 훗날 사보나롤라가 몰락할 때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팔레스키들이었다.

 

마니피코가 죽고 그의 아들 피에로가 피렌체의 통치자가 되었다. 1494년 샤를 8세는 밀라노를 점령하고 나폴리로 향하면서 피렌체로 진격해왔다. 피에로는 전쟁을 피하고자 샤를 8세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고 피렌체 성문을 열어주었다. 피렌체 시민들은 굴욕적인 항복에 분노했고, 메디치 가문을 추방했다. 메디치 가문이 몰락한 후, 피렌체의 정치는 깊은 혼란에 빠졌고, 시민들은 그간 새로운 정치를 주장한 사보나롤라에게 정권을 맡겼다.

 

이후 피렌체에서 화려한 색깔의 옷은 금지되고, 가발, 향수, 미술품, 고대의 필사본 등을 사고파는 것도 전면 금지되었다. 사보나롤라의 정치적인 영향력은 정점으로 치달았고, 1497년 2월, 사순절을 앞두고 시뇨리아 광장의 장작더미에서는 ‘허영의 화형식(fal delle vanit)’이 진행되었다. 엄청난 양의 고서(古書)와 미술품이 많은 귀금속과 함께 불에 타 사라졌다.

 

 

알렉산데르 6세 교황과 사보나롤라의 날선 공방

 

당시 교회를 이끌었던 알렉산데르 6세 교황도 사보나롤라의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르네상스 교황들 가운데 가장 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소재가 될 만큼, 한 마디로 끝내주는 교황이었다. 외교와 정치, 행정에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종교 지도자로서 호색과 족벌주의, 개인적인 야망이 너무 커서 늘 입방아에 올랐다. 여러 여성과의 사이에서 많은 자녀를 두었고 그들에게 온갖 특혜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자녀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가들과 교류하며 높은 직책을 얻거나 혼인하여 부와 명예를 누렸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체사레 보르자, 루크레치아 보르자 등은 모두 그의 자녀들이다. 라파엘로가 그린 ‘유니콘을 든 여인’에 등장하는 줄리아 파르네세도 알렉산데르 6세의 정부(情婦) 중 한 사람이다.

 

이런 교황에 대해 사보나롤라는 가만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교황은 부도덕했고, 로마 교회는 타락했다. 그런 교회는 곧 하느님의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고, 징벌이 지나가야 새로워질 것이며, 이런 일은 빨리 이루어질 거라고 예언했다. 샤를 8세가 이탈리아로 쳐들어오자 많은 사람은 사보나롤라의 예언이 적중했다며 그를 더욱 영웅시했다.

 

1495년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설교 금지 명령을 내렸고 사보나롤라는 거부했다. 재차 직접 로마에 와서 주장하라고 명했으나 사보나롤라는 건강을 핑계로, 또 로마로 가는 도중에 불상사가 생길까 봐 그것마저 거절했다. 이에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불복종의 죄를 물어 파문했다. 이런 교황을 사보나롤라는 더욱 거세게 비난했고 교황은 피렌체시에 사보나롤라를 로마로 보내거나 설교를 못 하게 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어길 시 피렌체시가 통째로 전례 금지를 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사보나롤라는 시의 명령에도 불복했고, 결국 시 법정은 그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다. 1498년 5월 23일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보나롤라는 화형에 처해졌고 추종자들에게 혁명의 불씨를 조금도 남기지 않기 위해 유해는 갈아서 아르노 강에 뿌렸다.

 

 

전통 예술에 현대 예술 접목

 

소개하는 그림은 줄리오 바르젤리니(Giulio Bargellini, 1875~1936)가 그린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의 신망을 거부하는 사보나롤라’(1897년)이다. 나보나 광장 근처 브라스키 궁전의 로마 박물관에 있다.

 

피렌체 출신 화가인 바르젤리니는 피렌체 국립미술원에서 고전 미술을 공부하고, 로마로 이주하여 모렐리(D. Morelli), 미케티(F. P. Michetti), 피아첸티니(M. Piacentini) 등의 영향을 받으며, 사실주의와 라파엘로 이전의 상징주의에 눈을 떴다. 이때부터 이탈리아의 전통 예술에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에서 보는 현대 예술을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그 시기에 ‘부활’, ‘사보나롤라’와 같은 역사적이고 종교적 주제의 작품을 남겼다. 1913년 로마 베네치아 광장에 있는 ‘빅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의 반원형 천장 장식을 위한 공모전에서 우승하여 명성을 얻었다. 여기에서 바르젤리니는 리찌(A. Rizzi)와 함께 법, 가치, 평화, 일치를 표현한 대형의 4개 모자이크를 완성했다. 기념관의 장엄함에 어울리는 표현 양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로마에서 여러 궁전과 공공건물에 프레스코화들을 많이 남기고 사망했다.

 

 

그림 속으로

 

그림에서 우측 그룹의 사람들 앞에 흰 수도복에 검은 망토를 입은 통통한 사람이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다. 그 옆에 선 어린 부제의 손에는 추기경의 옷이 들려져 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에게 추기경직을 주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이를 거부하고 방을 나가고 있다. 눈치를 보는 교황과 도도하게 바라보는 사보나롤라의 시선이 대조적이다.

 

무엇이건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법이다. 메디치가와 교회를 너무 오랫동안 적으로 돌렸고, 굽힐 줄 모르는 사보나롤라의 태도와 막상 그가 지휘봉을 잡은 정치는 실망스러웠다. 모든 것이 금지된 경제는 위축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의 설교에 눈물 흘리던 시민들은 냉정했다. 사보나롤라를 통해 공화주의에서 ‘신정정치’까지 여정을 보며 더 세속적이고 보수적인 정치 모델이 만들어졌고, 존 위클리프, 얀 후스에 이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 되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2월 28일, 김혜경(세레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상임연구원, 이탈리아 피렌체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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